동생이 보던 육아물 악역이 되었다
#1화. 동생이 보던 육아물 로판 속으로 들어왔다.
내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애는 화장실 갈 때도 웹소설을 읽으려고 스마트폰을 들고 가는 애였다. 아마 나와는 전혀 다른 인종이 아니었을까.
뭐,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동생이 마지막까지 미쳐서 읽던 웹소설이······ 로판, 그것도 육아물이었다는 것이다.
육아물.
‘그게 뭐야? 육아 타이쿤 같은 건가?’
‘그건 게임이고! 이건 주인공이 아기 상태에서 크는 거야. 오빠 말대로 키우는 작품도 있지만.’
‘결국 내 말이 맞잖아. 천 원 내놔.’
‘우웩이다, 진짜.’
내 말에 아직도 질색하던 동생의 얼굴이 선명하다.
‘이거 무료 연재분 읽고 이벤트 댓글 달면 치킨 사 줄게.’
동생이 선심 쓰듯 말했다.
3분도 안되는 시간과 치킨 한 마리라니, 훌륭한 교환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댓글을 확인받고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시켰다.
그런데 잠깐 배달시킨 치킨을 받으러 나갔다 오는 사이에 아기가 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우쭈쭈, 우리 공자님!”
“와, 공작님을 닮아서 엄청 잘생겼는데요.”
팔다리가 잘 움직여지지 않아서 보니, 몸이 무슨 포대기 같은 것에 단단히 싸여 있었다. 유모로 보이는 여자들이 장난감을 흔들며 까르르 웃었다.
“공자님, 아버님이 곧 오실 거예요! 잘 보이셔야 해요!”
아버님은 누구 아버님.
분명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입에서는 전혀 다른 옹알이가 나왔다.
“아바?”
이쯤 되니 확실했다. 나는 빙의한 모양이다.
트럭에 치이지도 않았고 5000자 감상문도 안 썼는데, 이렇게 쉽게 빙의해도 되는 건가. 어이가 없다.
‘오빠는 빙의하면 어떨 것 같아?’
‘빙의는 무슨 빙의. 공부나 해.’
‘음······ 남주나 서브남주는 아닐 것 같고, 아! 그거다. 남주한테 처맞는 엑스트라 악역!’
동생이 말하는 엑스트라 악역은 여자 주인공의 전 약혼자였다. 건실한 공작가 아들이지만, 왜 그런지 몰라도 여자 하나에 절절매다가 뒤지는 역할이다.
‘죽을래, 아니면 공부할래?’
그래, 그런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지. 거기까지 떠올리자 나는 더 이상 현실 도피를 할 수 없었다.
돌겠네, 진짜.
“아부부! 아부!”
내가 격하게 욕설을 토해내자 유모나 시녀들이 꺄르륵거리며 좋아했다. 하지만 내 정신은 멀쩡했다. 생각보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혼절하지 않는 모양이다.
“어머, 역시 글래스턴 가문 아드님이세요!”
언젠가 동생과 그런 대화를 나눠서일까? 재수 한 번 지지리도 없지.
글래스턴 공작가는 동생이 보던 로판 <막내 황녀님이 되었습니다>에 등장하는 악역 가문이었다. 그리고 거기 후계자는 여주인공과 소설 첫 장부터 파혼하고, 끝내 남주에게 죽는 엑스트라였다.
나는 소리 없이 절규했다.
“아부부바! 바바바아!”
누군지 몰라도 내 동생을 빙의시켰어야지, 왜 나인데 이 씨발놈아?
“바아아아아!”
다 됐으니까 내 치킨이나 돌려줘라.
내 말에 유모가 물개박수를 쳤다. 어느 예능에서 보았던 것 같은 익숙한 리액션이었다.
“어머, 공자님이 되게 활기차네요!”
“기분이 좋으신가 봐!”
환장하겠네. 육아물 클리셰가 너무 막강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육아물이 아니라 하렘물인데 가능한 거냐, 이거? 나는 짧뚱한 팔다리를 움직여 보다가 좌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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