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으려는 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슈무
작품등록일 :
2024.09.05 11:57
최근연재일 :
2024.09.05 20:10
연재수 :
1 회
조회수 :
6
추천수 :
0
글자수 :
4,820

작성
24.09.05 20:10
조회
6
추천
0
글자
11쪽

5화. 되찾으려는 자.

DUMMY

사기도박은 사기인가 도박인가. 주저앉아 울고 있는 변태신사의 모습을 보면 사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웃으며 앉아있는 청년을 보면 도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태신사는 겨우 속옷 한 장만을 걸친 채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것이 사기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결국 도박과 사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로크와 딜러는 적절히 변태신사를 요리했다.


처음에는 돈과 작위를 팔았다. 중반부부터는 주택을 팔았다. 놀라운 것은 마지막까지 소녀 하인을 팔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소녀 하인의 표정은 점차 굳어갔다. 그러나 시간은 하인의 편이었다. 그는 방금 판을 마지막으로 소녀 하인을 로크에게 맡겨두었다.


변태신사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오겠다고 했으나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마차를 부를 돈도 없어 홀로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런 그의 뒤로 은밀한 그림자가 붙었음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림자를 지니고 가는 변태신사의 구부정한 등 뒤로 숨 막힐 듯한 정적만이 남았다. 여유롭게 입맛을 다시는 금발청년과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로크, 그리고 그런 로크의 눈치를 보고 있는 딜러. 거미줄같이 엮이고 엮인 시선은 서로의 입도 묶어놓았다.


이 방에서 누군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분명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금발청년을 바라보는 로크의 시선은 그 어느 때 보다 신중했다.


"청년. 다시 봤어. 대단하더군. 꽤 실력이 좋은데?"


청년은 아무 말 없이 새 와인병의 코르크를 손으로 따더니 와인잔에 붉은 액체를 따랐다. 로크의 와인잔이 조금씩 붉게 채워졌다.


"와인이 달아."


"······."


"이거, 한 번 마시면 둘이 죽어도 모르겠어. 아니다, 다섯이 죽어도 모르겠군."


찰랑거리는 소리와 흐릿 불빛에 반사되는 와인의 붉은빛이 탐스럽게 빛났다. 분명 싸구려 미약이 있을 터인데, 왜 자꾸만 마셔보고 싶은 것인지. 로크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야."


"흐음, 내 소개를 해보자면 말이지······."


탕자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난······. "


"······."


"아니다, 이건 비밀이고."


"······."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을 이었다.


"흠, 그대는 아나? 제국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오."


"음, 하긴 돼지가 알 리가 없지."


"······."


"큼, 놀랍게도 제국 이전에는 재가 내리지 않았다."


금발청년의 목소리는 한없이 작았지만 방 안을 채우기에는 충분한 내용이었다. 딜러도, 나도, 심지어 로크도 탕자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재가 없으니, 길거리는 회색빛이 아니었고, 무려 하늘은 파란색이었다고 하지."


청년이 내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


"그것을 되찾으려는 자이다."


역시 미친놈이다. 한없이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내 눈과 같은 색의 하늘? 상상만 하더라도, 아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되찾으려는 자라니. 가만히 듣고 있던 로크도, 딜러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시끄러운 로크의 웃음소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크하하하하핫, 어이 청년, 재밌었네. 이야기꾼이구만!"


웃다 못해 배가 아픈지 앞으로 허리를 숙이기까지 했다. 딜러도 웃음기를 참지 못하고 뒤로 돌아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금발청년은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와인잔을 기울기만 했다. 가끔씩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얼마나 로크가 웃었을까. 그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청년, 어서 가보게. 오늘 와인값은 재밌는 이야기로 치룬 것으로 하지."


어느새 청년의 옆에는 빈 와인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그래?"


청년이 일어섰다. 나는 다시 한번 놀랐는데, 청년의 키가 꽤 컸기 때문이다. 로크도 그의 키를 흘끗 보았다.


"흠···근데 내 이야기는 더 비싸긴 한데 말이지."


고민하던 그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좋아, 내 이야기 값은 나중에 내가 받아내주지."


청년은 로크가 말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문을 나서버렸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가 나가고 찾아온 것은 적막이었다.


***


로크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자 딜러가 눈치를 보았다. 방금 나간 금발청년이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을 모두가 안 것이다.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던 로크가 입을 열었다.


"맥. 방금 나간 저 개자식을 쫓아가봐."


"네?"


쨍그랑 ― 붉은 액체가 벽에 산발적으로 튀었다. 빈 병들과 와인잔들이 산산조각이 난 채로 나뒹굴었다.


"귓구멍이 틀어박혔냐? 저 망할 개자식을 잡아와라."


딜러의 이름이 '맥'인 듯 했다. 딜러는 흘끗 바닥에 나뒹구는 조각들을 보며 고개를 수도 없이 끄덕였다.


"저거, 평범한 시골 귀족이 아니야."


로크의 손 안에서 유리조각이 다시 잘게 가루가 되었다.


"흡······!"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니 구석에 서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신사 뒤에 서 있던 하인이었다. 로크는 구석에서 조용히 움츠려 있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무자비하게 아이의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몸을 가누지 못하겠는지 비틀거리는 여자아이다. 로크는 흥미가 떨어졌는지 나에게 말했다.


"데려가서 애꾸눈에게 넘겨라. 걔가 알아서 비싸게 팔아줄 거다."


나는 대충 끄덕였다. 어차피 내일 새벽 도망칠 것이기에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지금은 저 화난 돼지의 난동에서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망할, 개같은 놈이 꼬여가지고―"


로크는 차마 내일 팔릴 날 때릴 수는 없었는지 오도 가도 못하는 딜러, 맥의 뺨을 한 번 더 거세게 때렸다.


퍽―소리와 함께 맥이 휘청였다. 그러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로크의 특성상 쓰러지면 쓰러졌다고 더 팰 것이었기 때문이다.


로크도 속이 쓰릴 터였다. 간만에 777번방을 열었으나, 돌아온 것은 쭉정이 신사 하나와 언제 보안관에 고발될지 모르는 위험 뿐이었으니 말이다.


한참이나 씩씩거리던 로크가 쾅― 소리와 함께 문 밖으로 나갔다.


이제 방 안에는 단 셋 뿐이었다. 한 명은 또다시 팔려 갈 여자아이, 한 명은 꼬리가 잘리며 죽을 놈, 한 명은 도망치거나 아님 내일 팔리거나 할 놈이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셋만이 남았다.


물론 이 불쌍한 조합은 얼마 가지 못한다. 늦게 나오면 로크의 거대한 난리를 감당해야 했고, 빨리 나와도 그 화를 모두 받아내야 했기 때문에 적당한 시간대에 나갈 필요가 있었다. 맥은 고여있던 피를 바닥에 뱉었다.


"히발······."


이빨이 몇 개가 빠졌는지 새는 발음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앞에 있는 청년도 불쌍했으나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내일 새벽, 즉 몇 시간 후 나는 패밀리의 눈을 피해 도망쳐야 했다. 도망치다 실패하면 ······.


"시발······."


절로 욕이 나왔다.


"씨발······."


음. 내가 한 욕은 아니었다. 깡마른 여자아이에게서 나올 욕설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살아온 바닥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흘끗 보니 여자아이는 7살 정도인 듯 했다. 꽤 기구한 인생이었으나 이 바닥에서 사는 인생들은 비슷하여 별다른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당장 나만 해도 ······.


썩 보기 좋은 옷차림은 아닌지라 바닥에 굴러다니는 정장 윗도리를 건네주었다. 신사가 막판에 자신의 의복까지 모두 건 나머지 생긴 허물이었다. 아이가 끄덕이며 몸 위에 걸쳤다. 워낙 마른지라 적당히 가릴 정도가 되었다.


"이름은?"


"······."


벙어리는 아닐 터. 아마 소아성애 변태가 지어준 이름도 있을 것이었다. 기다려도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무어라 부를 호칭이 필요했다. 당장 생각나는 단어를 툭 뱉었다.


"그레이스."


"······."


"그럼 이제부터 그레이스야."


물론 이를 자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일지는 이 아이에게 달렸다. 그러나 대충 생각해 만든 이름치고는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적어도 '나잇'이나 '스타'보다는 낫지. 나름대로 만족하던 순간, 눈 앞으로 무언가가 날라왔다.


"······이걸 왜?"


바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와인 한 병이었다. 로크가 난동을 부리며 입구가 깨진 것인지 절반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맥은 이미 몇 모금 마셨는지 실실 웃었다.


"어이, 그어나 마셔. 이게 으근히 강하다고."


약이 새는 발음은 고쳐주지 못한 듯 했다. 특히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와인병은 777번방의 최후의 수단과 같은 것이었다. 앞선 와인들의 열 배 정도 되는 약들이 녹아있었다. 와인에 약을 녹인 것이 아닌, 약에 와인을 첨가한 수준이었다.


"적허도 죽을 때 아흐지는 않겠지."


탕자, 아니 의문의 청년이 마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찰랑거리는 소리와 빨갛게 빛나는 액체. 그리고 맥의 말대로 이걸 마시면 적어도 고통 없이, 오히려 웃으며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붉은 것을 넘어 검붉은 액체가 보였다.


***


쾅―마차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였다. 마차 위로 쌓인 재들이 흔들림에 양옆으로 떨어졌다.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진 로크였다.


"미친 새끼가 하라는 일은 망치고 술은 술대로 처마시고―"

욕설을 하는 로크의 주먹 아래로 빨간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그의 주먹에 붙은 살점들이 떨어지는 붉은 액체가 단순한 와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어느덧 창밖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애쉬."


로크의 시선이 나를 뚫어질 듯 바라봤다.


"날 실망시키지 마라."


"······."


덜컹거리는 마차가 거의 도착했음을 알리듯 5구역의 역겨운 오물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너의 현실이라는 듯했다. 황금으로 된 분수상, 탁자에 가득 쌓인 칩들, 꽤나 만족스럽게 지은 이름인 '그레이스'도 모두 환상이었다. 로크의 주먹에서 떨어지는 핏방울들이 나의 현실이었다.


"애쉬, 실망시키지 마."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사고팔며 얻은 살의가 로크의 눈에 새겨졌는지 서슬 퍼런 두 눈이었다. 로크의 금빛시계 속 시침이 12시를 가르켰다.


오늘 도망쳐야 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이 서슬 퍼런 두 눈의 시야에서 나는 도망쳐야 한다. 술에 취한 것인지, 약에 취한 것인지 두려움도 잊혔다. 심장이 느릿하게 뛰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되찾으려는 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5화. 되찾으려는 자. 24.09.05 7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