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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훈
작품등록일 :
2024.09.09 19:56
최근연재일 :
2024.09.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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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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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룡

DUMMY

계룡대, 과거 군의 통합 본부가 있던 군사의 중심지. 그곳에는 팔각형의 거대하고 육중한 요새가 있었다.


계룡은 사령부라고 불리는 세력에 의해 통치되는 거대한 군벌이었다.


사령부는 완전히 계급화된 군인 사회였는데, 그에 속한 모든 이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군인으로 여겨졌고, 부모의 계급에 따라 장교, 부사관, 병사로 나누어지는, 극단적이라 볼 수 있는 카스트 제도로 이루어졌다.


사령부는 계룡을 중심으로 논산, 부여, 서천 곡창지대를 지배했으며, 보호에 의한 세금과 징병이라는 명분으로 지역민들을 착취했다.


이곳이 처음부터 이렇게 극악무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정전 직후 계룡대는 치안유지와 대민 지원 그리고 복구 작업 진행을 위한 컨트롤 타워로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문민통제의 부재와 오랜 고립은 폐쇄적인 계룡대를 썩히기에는 충분했고, 이어서 힘을 잃은 군 수뇌부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전복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계룡대는 놀라울 정도로 대정전 이전의 모습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러 발의 포탄이 계룡대를 노렸지만 운 좋게도 대부분이 빗나갔고, 잇단 내전과 쿠데타 속에서도 본부 건물과 벙커는 온전하게 남을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벙커 안에 있었다.


문서고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지하 벙커 안에는 엄청난 양의 비축유가 보존되어 있었다. 전기가 사라진 세상에서 화석연료는 필수적인 에너지원이었고, 계룡은 이를 바탕으로 ‘평의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산을 오르며 쉬마그를 벗자 신선하고 찬 공기가 수현의 폐로 들어왔다.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저 멀리 섬뜩한 안광들이 보였으나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서둘러 움직였다. 짐승보다 무서운 것은 극심한 일교차였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길을 오르던 수현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계룡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녹슨 철조망에 난 좁은 틈을 지나 계룡대 활주로에 다다르자 밝은 지향성 횃불이 달린 또 다른 철조망과 모래주머니로 만들어진 초소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추위에 얼은 손을 떨며 등유 랜턴을 가방에서 힘겹게 꺼내 들었다. 그리고 초소를 향해 불빛을 보였다.


불빛을 본 초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화랑!”


“나는 조합의 우체부다! 평의회 개회를 요구하는 광주시의 공문을 가져왔다!”


수현은 재킷 안쪽 주머니에 있는 황금 마패를 꺼내 들었다. 황금 마패는 조합원들에게만 주어지는 신분증과도 같았다.


그녀는 마패를 들고 계속 걸어 나갔다.


“당장 멈춰 서!”


그럼에도 초병은 과장된 동작으로 장전 손잡이를 당기며 더 크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살짝 들었다.


누적된 피로와 추위에 짜증이 밀려왔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자 옆에 앉아서 졸고 있던 다른 초병이 일어나 그에게 물었다.


“야 무슨 일이야··· 누군데?”


“황금 마패를 갖고 있다는 데요?”


“우체부? 아이씨 오밤중에 왜 기어들어 오고 난리야”


두 번째 초병은 고개를 내밀고 쌍안경을 들었다. 그는 수현과 황금 마패를 번갈아 보다니 쌍안경을 내려놓고 소리쳤다.


“지난주부터 규정이 바뀌어서 일몰 이후부터는 외부인 출입 금지다!”


“뭐야? 이 밤중에 어디로 가라고!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알아!”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여기서 총 맞고 뒈지고 싶은 거 아니면 왔던 길로 돌아가!”


“엿이나 처먹어! 병정놀이나 하는 멍청한 새끼들아!”


“뭐? 다시 한번 말해봐!”


그는 초소에 거치되어 있던 기관총의 장전 손잡이를 당기며 말했다. 녀석들은 그녀를 그냥 들여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수현은 차오르는 분노를 가다듬고 멈춰서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가방과 짐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말했다.


“잠깐! 알았다!”


수현은 바닥에 널브러진 짐들 사이에서 아까 전 약탈자들로부터 노획한 5.56밀리미터 탄창들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5.56밀리 30발 탄창 세 개다! 이거면 어때!”


두 초병은 눈짓을 주고받더니 갑자기 모래주머니 안쪽으로 숨어들어 가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수현은 추위에 이를 악물고 떨었다. 소리를 너무 질렀더니 목이 찢어질 것 같았다.


초병들은 이야기가 끝났는지 제자리로 돌아왔다. 두 번째 초병이 입을 열었다.


“먹을 것도 있냐?”


“잠깐만 기다려 봐!”


수현은 서둘러 약탈자들의 가방을 파헤쳤다. 온갖 쓸모없는 잡동사니를 밖으로 던져버리고 나니 냄새나는 옷가지 틈 사이에 땅콩 통조림이 보였다.


아깝다.


하지만 별 수 있나, 그녀는 그것을 높이 들어 보이며 소리를 질렀다.


“땅콩 통조림!”


“하하! 그래 좋아! 천천히 이쪽으로 와!”


그들은 환호를 지르며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


“뭐야? 되게 조금 들어 있잖아?”


땅콩 통조림을 열어본 초병은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바로 문명시대의 과대포장이라는 거야”


수현은 세 개의 탄창을 포개어 모래주머니 위에 올려놓고 초소를 지나갔다.


계룡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가운데로 길게 뻗은 길 왼쪽으로 길게 늘어진 노랗게 빛나는 온실들이었다. 비닐로 이루어진 둥근 온실 속에서는 새하얀 방진복을 입은 농부들이 커다란 분무기를 들고 식물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를 뿌리고 있었다.


온실의 오른쪽으로는 기관총이 거치된 수십 대의 군용 트럭들과 소형 방탄 차량 몇 대가 일렬로 주차되어 있었고 그 너머의 언덕에는 여섯 대의 야포가 방열 되어있었다.


곡사포,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얼굴도 모르는 저 너머 어딘가의 사람들을 도살하는 기계. 구시대가 남긴 잔혹함의 상징 중 하나였다.


수현은 옛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누르스름한 불빛이 본부 건물에서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이곳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밤에 보는 계룡대 본부 건물은 정말이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남부 그 어떤 곳에서도 이런 식으로 연료를 사치스럽게 낭비하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팔각형의 발광하는 거대한 문명의 유산을 감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돌계단을 올라 선글라스를 낀 헌병들이 지키는 본부건물 정문에 다다랐다. 그녀는 그들이 도대체 왜 깜깜한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지만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헌병들의 입은 그들의 발만큼이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


본부 건물로 들어서자 꽤 밝게 타오르는 랜턴들에 눈이 아팠다. 눈을 찡그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청소를 담당하는 병사 몇몇은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고 말단 장교로 보이는 군인들은 마치 이사를 준비하듯이 분주하게 서류와 물자를 손수레에 실어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늘 그렇듯 이방인의 존재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제 할 일을 이어 나갔다.


수현은 그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오른쪽 복도 벽에 붙어 지나갔고 복도 중앙에 있는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한적한 지하에 들어서니 지상의 소란은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 작아졌고, 공기 순환을 위해 돌아가는 모터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녀는 다시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고 두꺼운 철창과 나무 벽으로 만들어진 무기고 창구에 다다르게 되었다. 창구에는 아무도 없이 ‘자리 비움’이라고 휘갈겨 쓰인 이면지가 벽에 붙어져 있었다. 수현은 창구 테이블에 있는 종을 두어번 때렸다. 그러자 안에 있는 문이 소름 끼치는 목재 마찰음을 내며 열리더니 러닝셔츠만 입은 배가 나온 아저씨가 인상을 쓰며 걸어 나왔다. 그는 오랫동안 행상을 담당해 왔던 장중사였다.


“누군데 오밤중에 귀찮게 하고 난리인가?”


“어째 살이 더 찌셨네”


“어, 이게 누구야. 지난달에 선불 떼먹고 도망간 놈 아니야? 어떻게 오밤중에 여까지 다시 기어들어 왔나?”


그녀는 말없이 어깨에 멘 총들과 함께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피범벅이 된 민방위 방독면들을 테이블에 던졌다.


“익산에서 잡은 놈들이야. 산적은 아니고 그냥 잡것들. 이 정도면 얼마나 쳐줘?”


“어이쿠, 이제 조합에서 현상금 사냥도 하나?”


“엄연히 정당방위였다. 나는 조합수칙을 어기지 않아”


“농담도 못 해. 아무튼 이번에는 며칠?”


장중사는 테이블에 고리가 달린 철제 키를 툭 내던지며 물었다. 수현은 키를 집어 들고 말했다.


“하룻밤. 평의회 개회 요구서 전달 때문에 내일 바로 세종으로 가야 해”


“음··· 안 가는 게 좋을걸”


“왜?”


“그냥, 안 가는 게 좋아. 왠지는 말 못 해”


“내게는 임무가 있어. 하늘이 무너져도 의뢰받은 건 전달해야 해”


“역시 조합 놈들은 항상 확실해. 그래, 몸조심하라고 임마”


“걱정은 고맙네. 근데 대충이라도 알려줄 수 없는 거야?”


“세종에서 피바람이 불 거다”


“뭐?”


“그니까, 정확한 건 말 못해. 내가 말한 거 입도 뻥끗하면 안 돼”


“그래, 우체부는 의뢰받은 우편만 전달하면 그만, 보고 들은 것은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아”


“역시 조합원답다니까”


-


수현은 침상에 누워 장중사가 한 말을 되새겼다. 유혈사태, 그것은 분명 기습전쟁을 의미했다. 세종과 계룡은 서로 적이었다. 크고 작은 분쟁이 있었고, 유혈사태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듯이, 그 분쟁의 종지부가 코 앞에 있던 것이다.


세종은 구시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도시국가였지만, 우습게도 권력은 마치 왕정처럼 세습되는 곳이었다. 다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황과도 같은 한반도에서, 인권과 법치라는 것을 인정하는 곳은 오직 세종뿐이었다.


하지만 세종은 약했다. 징집과 징용을 비롯한 그 어떤 착취도 하지 않아 민중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만큼 군사력에서 계룡에게 압도당했다. 계룡에게는 오직 명분만 있으면 눈엣가시와도 같은 세종을 짓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룡에게는 명분이 없었다.


아무리 평의회의 강력한 발언권을 쥔 계룡이지만, 세종의 동맹 천안과 청주,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많은 도시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피바람이 분다는 것일까? 계룡의 세종에 대한 기습? 계룡이 평의회의 반발과 그에 따른 후폭풍을 감당하겠다는 것인가?


어찌 되었든 장중사는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분명한 것은 세종에 사변이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수현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연민과 같은 것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세종에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작동되는 영사기가 있는 영화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현은 무너진 정부대전청사의 국가기록원에서 영화 필름을 잔뜩 구해 세종으로 가져와 무상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수현은 한반도 최후의 시네필 중 한 명이었다.


아침 일찍 세종으로 가면 아직 보지 못한 영화 ‘킬 빌 Vol. 2’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수현은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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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익산 24.09.15 2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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