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마고 (聖魔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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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가
작품등록일 :
2024.09.12 00:57
최근연재일 :
2024.09.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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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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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ut - 03

DUMMY

김대섭은 좌우 어깨를 가볍게 몇 번 털었다. 그는 여전히 얼얼하게 남아있는 불쾌함을 걷어내고 싶었다.


-기교보단 순수한 무력武力의 추구인가. 순純을 추구하는 거야 자기 선택이다만, 괜히 요상한 자부심 갖고 멀쩡한 다른 무공을 단순 기교라 여기며 무시하는 놈들이 있다지. 네 말 꼬라지를 보니 딱 그렇게 막 나가는 느낌인데... 면상이랑 딱 맞군.


-내가 남자답고 시원시원하게 생기긴 했지. 어쨌든 이해가 빠르구나. 그래... 본성이니 뭐니, 그런 거 필요 없다. 힘의 스케일 그 자체가 압도적이라면 그 아래 모든 것이 무의미하지. 언월도가 좀 덜 예리한들 갈고 닦은 주방 칼 따위로 당할 수 있겠나?


김대섭은 입을 한 번 삐쭉 내밀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왜 일격파성이라 불리는지 아나...?


주위로 요동치는 배웅진의 운기가 그 존재감을 더욱 분명히 했다. 이미 단순한 내공 방출을 넘어섰다. 그의 내공이 뿜어져 나갈 수 있는 범위에 전혀 제한이 없는 것만 같았다.거칠게 몰아치는 기운이 조금씩 더 공간을 잡아먹을수록 그 주인의 존재감 또한 거대해졌다.


-유치한 자칭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김대섭은 배웅진의 뿌리 깊은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럴수록 저 심리를 무시해야 했다. 배웅진이 뭐라 지껄이건 말건 김대섭은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시도했다. 헌데 그는 숨을 들이마시는 와중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영문을 알 수 없이 혀 차는 소릴 냈다. 배웅진 또한 김대섭의 행동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오성五星의 권좌를 차지했을 때, 즉 전 오성의 자리에 있던 놈과 자리를 건 대결을 했을 때 말이다! 단 일격. 그 어떤 탐색이나 합 없이 일격으로 상대를 박살 냈다. 과장이나 비유가 아냐. 말 그대로 일격으로 별을 부쉈다!


-쓰...


김대섭이 눈을 떴다. 웬일인지 그의 얼굴에서 방금 전까지 감돌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보이는 거라곤 원인을 알 수 없는 짜증 섞인 표정 뿐이었다. 그가 말했다.


-알았으니까. 빨랑 와봐.


안 그래도 배웅진의 체구를 감당하기 버거운 교복이 더욱 팽팽해졌다.


-그 일격이 어떤 거였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배웅진의 뒷발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경공을 구사하여 땅을 박차 오르지 않았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운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땅에서 먼지가 팍하고 튀어 올랐다. 이 주먹을 곧 네 면상에 쳐박겠다고 아주 노골적으로 맹세한 오른손을 뒤로 젖힌 채 쿵쿵 땅에 발도장을 찍으며 달려드는 모습이 마치 코뿔소를 연상시켰다.


배웅진의 이 단순 무식한 돌진은 본능적으로 상대에게 정면대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마치 피하면 그 자체로 패배를 인정해야 할 것처럼 말이다! 다소 억지스런 진검 뽑기였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이런 치기 속에 더욱 타오르는 학원고수들의 심리 그 뿌리를 파고드는 정수이기도 했다.


사실 그냥 피한다면, 받아주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을 만큼 무식한, 그러나 무지막지한 공격. 배웅진은 권위와 자존감에 한껏 차오른 이전의 오성에게 이런 식으로 정면대응을 이끌어 내어 그대로 박살 내버렸을 것이다.


그때는 보다 위에 있는 상대를 향해 도전의식을 품고 달려들었던 배웅진이었으리라. 허나 지금은 자기 아래가 분명한 풋내기를 내려보며 달리고 있었다.이번엔 흠집 난 자존심 탓에 불이 붙은 분노가 그의 동기이리라.


-파破-성星!


배웅진이 괴성을 내질렀다.


'구아앙..'


그와 동시에 한껏 압축된 기운이 귓구멍을 먹먹하게 조이는 진동을 뿜어냈다. 거대한 몸집은 김대섭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이 돌진의 모든 관성이대섭은 좌우 어깨를 가볍게 몇 번 털었다. 그는 여전히 얼얼하게 남아있는 불쾌함을 걷어내고 싶었다.


-기교보단 순수한 무력武力의 추구인가. 순純을 추구하는 거야 자기 선택이다만, 괜히 요상한 자부심 갖고 멀쩡한 다른 무공을 단순 기교라 여기며 무시하는 놈들이 있다지. 네 말 꼬라지를 보니 딱 그렇게 막 나가는 느낌인데... 면상이랑 딱 맞군.


-내가 남자답고 시원시원하게 생기긴 했지. 어쨌든 이해가 빠르구나. 그래... 본성이니 뭐니, 그런 거 필요 없다. 힘의 스케일 그 자체가 압도적이라면 그 아래 모든 것이 무의미하지. 언월도가 좀 덜 예리한들 갈고 닦은 주방 칼 따위로 당할 수 있겠나?


김대섭은 입을 한 번 삐쭉 내밀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왜 일격파성이라 불리는지 아나...?


주위로 요동치는 배웅진의 운기가 그 존재감을 더욱 분명히 했다. 이미 단순한 내공 방출을 넘어섰다. 그의 내공이 뿜어져 나갈 수 있는 범위에 전혀 제한이 없는 것만 같았다.거칠게 몰아치는 기운이 조금씩 더 공간을 잡아먹을수록 그 주인의 존재감 또한 거대해졌다.


-유치한 자칭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김대섭은 배웅진의 뿌리 깊은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럴수록 저 심리를 무시해야 했다. 배웅진이 뭐라 지껄이건 말건 김대섭은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시도했다. 헌데 그는 숨을 들이마시는 와중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영문을 알 수 없이 혀 차는 소릴 냈다. 배웅진 또한 김대섭의 행동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오성五星의 권좌를 차지했을 때, 즉 전 오성의 자리에 있던 놈과 자리를 건 대결을 했을 때 말이다! 단 일격. 그 어떤 탐색이나 합 없이 일격으로 상대를 박살 냈다. 과장이나 비유가 아냐. 말 그대로 일격으로 별을 부쉈다!


-쓰...


김대섭이 눈을 떴다. 웬일인지 그의 얼굴에서 방금 전까지 감돌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보이는 거라곤 원인을 알 수 없는 짜증 섞인 표정 뿐이었다. 그가 말했다.


-알았으니까. 빨랑 와봐.


안 그래도 배웅진의 체구를 감당하기 버거운 교복이 더욱 팽팽해졌다.


-그 일격이 어떤 거였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배웅진의 뒷발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경공을 구사하여 땅을 박차 오르지 않았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운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땅에서 먼지가 팍하고 튀어 올랐다. 이 주먹을 곧 네 면상에 쳐박겠다고 아주 노골적으로 맹세한 오른손을 뒤로 젖힌 채 쿵쿵 땅에 발도장을 찍으며 달려드는 모습이 마치 코뿔소를 연상시켰다.


배웅진의 이 단순 무식한 돌진은 본능적으로 상대에게 정면대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마치 피하면 그 자체로 패배를 인정해야 할 것처럼 말이다! 다소 억지스런 진검 뽑기였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이런 치기 속에 더욱 타오르는 학원고수들의 심리 그 뿌리를 파고드는 정수이기도 했다.


사실 그냥 피한다면, 받아주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을 만큼 무식한, 그러나 무지막지한 공격. 배웅진은 권위와 자존감에 한껏 차오른 이전의 오성에게 이런 식으로 정면대응을 이끌어 내어 그대로 박살 내버렸을 것이다.


그때는 보다 위에 있는 상대를 향해 도전의식을 품고 달려들었던 배웅진이었으리라. 허나 지금은 자기 아래가 분명한 풋내기를 내려보며 달리고 있었다.이번엔 흠집 난 자존심 탓에 불이 붙은 분노가 그의 동기이리라.


-파破-성星!


배웅진이 괴성을 내질렀다.


'구아앙..'


그와 동시에 한껏 압축된 기운이 귓구멍을 먹먹하게 조이는 진동을 뿜어냈다. 거대한 몸집은 김대섭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이 돌진의 모든 관성이 맞바로 내지를 주먹에 집중될 것이다. 그건 인간의 타격 같지 않을 것이다. 마치 교통사고와도 같은 충격과 함께 건방진 풋내기는 입학 며칠 만에 고교무림 은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빡!’


하지만 곧이어 들린 타격음은 거창한 과정에 비해 다소 빈약했다.


-억...


그 똥줄 타는 전개의 참을 수 없음을 견뎌내고 등장해야 할 파괴적인 주인공은 없었다.


김대섭은 순간 앞으로 반 발짝 나서 짐승의 거리감을 흐트러뜨렸다. 덕분에 화려하지 못한 그의 주먹이 요란한 주인공을 대체했을 뿐이었다. 굉음이나 특수효과 따윈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타격음과 함께 하이라이트는 끝났다.


누가 봐도 주인공스럽게 흘러가던 연출을 믿고 벅차하던 관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떡하니 입 벌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럴 수가, 이건 NG였다. NG수준이 아니라 실시간 방송사고다.


김대섭이 바르르 떨리는 손을 빼며 뒤로 물러서는 동시에 문공의 수행원들에게 그 듬직한 등을 보이던 거구는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가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김대섭의 타격보다 더 웅장하게 울렸다.


-네 녀석한테 맞장구 쳐주느라 본성이니 뭐니 꺼내지도 않았다. 만족하나?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쾌감을 누리고 있는 자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멍청아.


-서, 선배님!


-파성!


뒤늦게 현실거부를 포기한 문공인들이 배웅진에게 달려왔다. 바닥에 엎어져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흘리는 배웅진을 똑바로 누이곤 이놈 저놈이 울부짖으며 그를 불렀다. 그런다고 대답이 재깍 나오는 게 아니었다.


-식칼이니 언월도니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찌르는 놈이 이기는 거다. 식칼 맞으면 안 죽냐?


울고불고 난리가 난 문공정보고 학생들을 뒤로 하고 김대섭은 아까 던져둔 가방을 다시 들어 멨다. 가방은 정확히 그의 발치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대섭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자리를 떠났다.















시간이 멈춘 것인가.


아니면 물질의 운동이 멈춘 것일까.


발톱을 서늘하게 뽑아 들고 뛰어오른 맹수의 몸체는 사냥꾼을 깔아뭉개지 못 하고 있었다. 그저 그대로 동선의 최고점이었어야 할 위치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 이..!


성마 먹이사슬 최고의 맹수는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납득하지 못 하고 있었다. 몸이 가라앉는 동시에 앞발을 휘두르면 모든 게 끝나련만 그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중력을 거부하고 있었다.


-바람과 바람이 부닥쳤을 때 결과는 지극히 단순하다.


맹수를 올려다보는 사냥꾼에게선 딱히 여유라 부를만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지나친 담담함은 여유하곤 거리가 멀었다. 이것에 비하면 여유 따위 애써 보여주기 위한 노력에 불과할 뿐이다.


-더 높은 기압이, 더 강한 풍압이 약한 것을 삼켜버리지. 헌데 그 바람을 다루는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하면...


-끅... 윽...!


보이지 않는 사슬이 온몸을 휘감기라도 한 듯 이구석은 전신을 바르르 떨면서도 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더 약한 것을 맘대로 압축시키고 묶어버리는 것도 가능해. 알잖아.


진오수가 왼손을 꺼내 들어 천천히 말아 쥐었다. 이구석의 교복이 마구잡이로 줄인 것 마냥 구깃구깃 그의 몸으로 죄어들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멩수는 고통 때문에 울부짖는 게 아니었다. 분노에 휩싸여 뱉어내는 그 포효는 어느 때보다 거대했다. 허나 포획된 순간부터 맹수는 더 이상 맹수가 아니었다. 그의 포효는 길고양이 하악질 수준으로 가볍고 거슬릴 뿐이었다.


-네놈의 바람을 부를만한 공간을 남겨주고 있음에도 넌 아무런 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진오수가 앞으로 두어 발짝 걸어나갔다. 이구석이 공중이 아니라 땅을 딛고 서있다면 바로 앞에서 마주 볼 수 있는 위치였다.


-흥.


어딘가에 맴돌던 바람이 틀에서 벗어나 자연스레 퍼져나가는 소리가 관내를 채웠고-


-어어...


땅을 박차 오르던 관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 이구석의 몸은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진오수가 상체 전체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오른발을 높이 들어올렸다.


중력 가속도의 원칙에 따라 찰나의 순간에도 이구석의 몸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첫 순간엔 천천히 들어 올리는 것 같던 진오수의 발은 순식간에 반원을 그리며 땅으로 내리꽂혔다.


'빠악!'


그 스윙이 타점으로 삼은 것이 하나 있었던 모양이다. 순식간에 날아든 힘을 안면으로 받아내고 고개가 뒤로 재껴진 이구석의 얼굴은 케찹 폭탄을 맞은 꼴이 되어버렸다.


-쳇!


'부웅..'


이구석의 몸이 머리부터 떨어지는 걸 본 진오수는 짜증스럽게 왼손을 한번 휘둘렀다. 순간 체육관 바닥에서 어떤 부력이 피어오른 것 마냥 이구석의 몸이 부드럽게 바닥에 닿았다.


우두머리 수사자가 형편 없이 박살 난 지금 암사자나 새끼 노릇을 하던 것들을 이제 침입자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선후배 따위의 조악한 규율 이전에 고교무림엔 생태계적 본능이 존재한다. 이구석이 나가떨어지는 걸 제 눈으로 본 선배들에겐 더 이상 진오수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의지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진오수는 그대로 뒤돌아서 강당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제외하곤 모두가 얼어버린 공간에서 관내를 울리는 건 그의 발소리 뿐이었다.


-아아, 맞다. 깜빡할 뻔 했네.


진오수는 뭔가 생각난 듯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가서 전해라. 이 순간을 기점으로 성마의 일인자는 김대섭이라고. 내일 점심 시간까진 교내의 모두가 알 수 있게, 그리고 모레까진 동진 전체가 알 수 있도록 말이다.


말을 마친 진오수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할 때-


-너... 너는!


방금 상체만 겨우 일으킨 이구석이 피라도 토할 것 같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넌 김대섭이 아니잖아!


더 이상 저항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후의 자존심이 섞인- 조롱을 거부하는 패자의 사자후였다.


진오수는 뒤를 돌아봐 그 모습을 봐주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대로 멈춰 선 채 답했다.


-어. 그래서 불만이냐?


마지막 포효조차 굴욕적으로 짓눌린 이구석은 턱만 덜덜 떨 뿐 넋을 잃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탁, 탁/..'


다시 진오수의 발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그는 가방을 다시 들어 멜 필요도 없었다. 가방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엥, 야, 뭐야? 왜 아직도 안 나와 있어? 나 기다리느라 주문 안하고 있던 거라면 내가 이 기적적인 배려에 감동 좀 해도 되겠냐?


진오수가 분식집 문을 막 열고 들어섰다. 김대섭은 구석 진 자릴 떡하니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나온 음식이 없었다. 김대섭이 흘끗 돌아보며 진오수를 확인하곤 말했다.


-대강 무슨 일인지 감이 올 거 아냐.


진오수는 싱긋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며 김대섭이 잡은 자리로 걸어갔다. 그가 김대섭의 어깨를 인사치레로 툭툭 털어주니 모래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밥 먹는 데서 먼지 털지 마라.


-네 말이 맞다만, 넌 밥 먹는데 이 꼴로 들어오지 마라.


진오수가 손을 뒤로 한번 휘저으니 의자 하나가 스륵 빠지며 그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야씨. 이런 데서 쓰지 마.


-뭐 임마. 일상에서 내공을 다루는 게 뭐가 문제라고. 오히려 수행의 생활화라 할 수 있지.


진오수는 마치 자기가 고고한 선인이라도 되는 마냥 지그시 눈을 감고 반듯한 자세로 김대섭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물론 괜히 장난 치는 것에 불과했다. 김대섭이 말했다.


-어떻게 됐냐?


-축하하네 자네. 방금 전 부로 성마의 권좌를 차지했다네.


한껏 안면근육을 이상하게 굴리며 비아냥거리는 느낌을 내뿜어 본 진오수였지만 으레 그렇듯 김대섭의 반응은 심심하기 그지없었다.


-그해...


-그래가 뭐야 그래가, 이 자식. 당장 굽신거리며 이 몸의 손을 잡고 감사함을 표하진 못할망정.


-그래서 밥 사잖냐.


김대섭은 진오수의 손을 잡는 대신 검지로 상을 콕콕 두드리며 자신의 보답 방법을 설명했다.


-뭐로 시켰냐.


진오수가 미심쩍은 얼굴을 한 채 물었다.


-학생들, 라면 두개에 김밥 다섯줄, 맞지? 김밥은 치즈 둘에 참치 셋.


-예, 고맙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이번엔 안 흘려듣고 잘 외웠구만 김대섭.


시기적절하게도 분식집 아주머니가 나타나 진오수의 궁금증을 해결 해줬다. 진오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모락모락 김을 피우는 빨간 국물과 흑백의 줄들이 등장하니 배고픈 십 대 둘 다 일단 젓가락부터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치즈에 참치니까 넘어간다. 센스 없게 그냥 김밥으로 후려쳤으면 이 건수로 한 달은 우려먹었을 거라고.


진오수는 김대섭이 자신에게 떠넘긴 일이 여전히 못내 찝찝한 듯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젓가락에 꼬여 들린 에스 라인들에 완전히 시선을 강탈 당했다. 그 순간부터 그에게 더 이상 툴툴거릴 명분은 사라졌다.


-그것보다... 오히려 내가 너한테 물어볼게 생겼구만. 배웅진이 왔던 건가?


-음.


걸신 들린 청춘의 십 대가 고수이기까지 한다면 이리도 유려하게 멀티태스킹 취식이 가능한 것인가. 분명 면발을 후루룩거리던 진오수가 젓가락 끝으로 김대섭을 가리키며 말까지 주절주절 제대로 지껄였다. 너무도 부드럽게 이어지는 동작들을 보면 착시가 일어날 정도였다. 이 또한 학원무림 고수의 필수 덕목일지라.


-하긴, 그냥 문공 놈들이 몇 명 온 거면 네가 그렇게 땅바닥에 뒹굴 거리진 않았겠지..


-뒹굴다니. 딱 한번 기술에 걸린 게 다야.


-그게 뒹군 거지. 그럼 본격 주짓수 하듯 바닥에서 굴러야 구른 거겠니?


김대섭은 내색 없이 김밥을 씹어삼키려 했지만 방금 전 그의 오른쪽 눈썹이 좀 심하게 꿈틀거렸다. 어깨 쪽에 찡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세긴 세더라.


-그럼 임마! 일격파성이라는 거창한 호는 괜히 달린 줄 아냐. 순수한 공력과 무력의 상징 같은 캐릭터에, 전前 오성五星이였던 놈이라구. 애초에 구석이 같은 놈이랑은 급이 달라. 그러고 보니, 이거 쌤통이네. 네가 이구석 건을 떠넘기지만 않았어도 우리 둘이 오늘 붙어야 할 상대가 바뀌었을걸.


뭔가 본인에게 위안이 되는 점을 찾았다는 듯이 진오수는 낄낄거리며 김대섭을 골렸다.


-옌장... 난 그 일격파성이란 별명도 그 자식한테 처음 들었는데, 넌 어찌 그리 잘 아는 거냐?


-한순간이라도 오성의 자리에 올라본 놈이라면 동진에선 쥐새끼라도 그 이름을 아는 법이다. 내가 무슨 신변을 캐고 다닌 것도 아니고, 무공으로 설쳐 보려는 놈으로서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상식을 갖고 있을 뿐이야. 네가 괴이하리만치 무신경한 거지 이 자식아.


-아무튼 솔직히 좀 놀랐다. 그냥 체외로 운기를 확장시키는데 무슨 미친 듯이 기를 쏟아내는 것 같더라니깐. 그대로는 한 번에 장담이 안 오더라고. 아니, 무조건 좆 됐을 거야.


김대섭은 마지막 문장을 얼버무리듯 흘렸지만 면을 들이키느라 고개를 숙였던 진오수는 그 말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홱 고개를 치켜 들고 입에 달려있던 누런 줄 한 가닥을 재빨리 들이킨 그의 눈가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삼제三制를 건드렸어?


-아... 권拳에 걸어둔 걸 반 쯤 해제했다. 절대 충동적으로 한 건 아니야. 안 했으면 거기서 내가 당했어. 확실히.


진오수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둘 다 그렇게 열성적이던 취식을 멈췄다. 진오수는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고 김대섭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 김대섭의 표정 역시 밝지 않았다. 그는 침묵이 감도는 동안 찝찝하게 입맛을 한 번 다셨다.


진오수가 굳었던 표정을 풀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살짝 우울해 보였다.


-허.... 뭐, 이미 한 건데 어쩔 수 없지. 네가 성급하게 그랬을 리도 없고. 근데 왜 그런 거 있잖냐. 아쉬운 맘에... 내가 분위기 조졌네, 미안.


-얼마나 중요한 건진 나도 아니까. 아 이건 아닌데 싶긴 했지. 근데 그만큼 여지가 없었어. 경우의 수가 안 보이더라고. 거기다 그 놈 정말로 날 아작 내려고 온 게 분명하단 생각이 들었어서, 오기로 끌고 갔다간 어찌 됐을지 몰라.


-쯧. 그래도 고등학교 입학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경우가 생기다니, 우리가 생각한 시기보다 너무 빠르게 닥쳤어. 후릅


진오수는 발칵 일어났던 흥분을 이내 가라앉힌 듯 젓가락을 다시 놀렸다.


-나도, 못해도 오성 정도는 만났을 때로 생각하고 있었다만.


김대섭의 말에서도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진오수가 말한 삼제가 무엇이건 간에 직접적으로 그와 관련된 어떤 행동을 취한 건 김대섭 본인이었다. 보통이라면 진오수가 느꼈을 아쉬움은 아무리 크게 쳐도 지인, 관전자로서의 안타까움에 지나지 않을 터.


-전 오성이었다는 걸로 위안 삼자. 동시에... 현재의 오성이 얼마나 만만찮은 놈들인지 네가 충분히 가늠했으리라 본다.


어느새 진오수는 자기 앞에 놓인 그릇을 비운 채였다. 그에 반해 김대섭은 방금 전 대화 이후 거의 건드리지도 않은 듯 젓가락만 휘휘 놀리고 있었다. 진오수가 김대섭을 빤히 보다 말했다.


-먹어 임마. 답지 않게.


-어.


-야. 어쨌건 다른 놈들이 보기에 우린 벌써 엄청난 일을 벌인 거야. 그것도 상상하기 힘들 만큼 빠른 시간 안에. 학기 단위를 셀 것도 없어,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모교의 맹주와 그보다 더 센 이웃 학교 강성을 같은 날 한 번에 거꾸러뜨렸으니깐. '1학기 만에 뭐시기 뭐시기 이뤘다.'하는 무용담 따윈 비교도 안 되는 사건이라니까. 당장 몇 시간 뒤부터 토픽이 되는 건 물론이고, 동진의 생태가 내일부터 우리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야. 즐길 건 즐기자. 자축할만한 일이니까.


-그럼, 이제 다음은 어떻게 할까?


-봐야지, 일단은. 아, 우리 집 오기로 한 거, 내일 모레로 하자. 생각해보니 굳이 집에 물어 봐서 날 잡을 이유가 없더라고. 니들 데려오는 거라 오늘 얘기하면 아마 바로 허락해줄 테니. 마침 토요일이기도 하고. 그때 이런 저런 얘기 좀 더 하자.


-그냥 말만 하면 된다고...? 뭐 너네 집 얘기니까. 그나저나 안소정은, 연락 닿았냐?


-연락했는데 감감무소식이야. 있다 전화나 해보려고.


-그래...


진오수가 장황하게 지껄이는 사이 몇 번 질문을 찔러 넣던 김대섭도 어느새 그릇을 비웠다. 김밥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가자.


김대섭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어, 야 나 근데 중간에 딴 길로 빠진다. 오늘부터 가기로 한 학원 있꺼든.


-뭐? 이 새끼 얻어 쳐먹곤 재미없게...


투닥거리며 분식집을 나서는 두 교복들은 영락없는 십 대였다. 지금 이 둘의 모습만을 본다면 그 누가 강호의 울타리 안에서 다투는 전사를 떠올릴 수 있을까. 누가 그들의 자존심과 승부욕을 알 수 있을까.


어느새 해가 져가는 시간이었다. 딱히 진오수의 손장난 없이도 선선한 바람이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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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마고 (聖魔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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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but - 03 24.09.17 6 0 23쪽
5 Debut - 02 24.09.14 8 0 19쪽
4 Debut - 01 24.09.13 12 0 15쪽
3 녀석들 - 03 24.09.12 12 0 18쪽
2 녀석들 - 02 24.09.12 15 0 27쪽
1 녀석들 - 01 24.09.12 14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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