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편집자인데, 원수지간 작가놈 소설에 빙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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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9.14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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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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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그 씹새끼가 쓴 소설 속에서 김철수의 딸 김달빛이 한 선배 기자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을 편집자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저에 대한 증거 뭐요?’’

‘‘박영웅 기자에 대해서요.’’

‘‘바, 박선배님이요?’’


예상대로 그녀가 화들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예. 달빛씨! 이런 말씀 드리기 뭐 하지만, 박영웅 선배에 대해 좀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계시죠?’’

‘‘......’’

‘‘평소 달빛씨 올곧은 성격상 유부남을 마음에 둘 분은 전혀 아니시죠, 그런데 박선배는 부인과 이혼 소송 중에 별거 중이라고 하니 그걸 곧이곧대로 믿으며 사랑을 키워나가고 계시는 거죠.’’

‘‘곧이 곧대로요?’‘

‘‘예, 곧이 곧대로요. 순진하게시리.’’

‘‘그, 그렇다면?’’

‘‘그 박선배라는 분, 은연중에 계속 곧 조정이 끝나고 전부인과 합의를 볼 것처럼 말을 하고 있죠. 그렇지만 실상은 .....’’

‘‘그, 그렇지만 실상은, 뭐요?’’


그녀가 다소 동요하는 어투로 물었다.


‘‘아마 이혼하지 않을 겁니다.’’

‘‘예에?’’


그녀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씹새끼가 소설 속에 그렇게 쓴 거다.


‘‘지금 박영웅 기자 그 사람이 부인이랑 따로 살고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뭐 꼭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고. 직장 다니기 편한 것도 있고, 또 원체 그 부부가 좀 자유롭고 모던한 캐릭터라서. 서로 간섭 받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있습니다.’’

‘‘결국, 그, 그 말은, 박선배가 제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는 이야기인가요?’’


김달빛의 목소리가 다소 떨리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예, 그렇습니다.’’

‘‘......’’


그녀가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달빛씨.’’

‘‘......’’

‘‘김달빛씨?’’

‘‘......’’

‘‘얼른 그 박영웅 선배한테 연락해 확인해 보시고 저에게 다시 연락 좀 주시겠어요?’’

‘‘왜 제가 다시 연락을 해야 하죠?’’

‘‘저랑 힘을 합쳐 아버지 김철수 후보의 타락과 변심을 막아야 하니까요.’’

‘‘저희 아빠의 타락과 변심이요?’’

‘‘예. 아버지께서 곧 초심을 잃으실 겁니다. 아니, 애초 초심을 속이고 계신지도 모를 겁니다. 심지어 자식들한테까지도. 아무튼 제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 도를 닦고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믿게 되신다면 빠른 시일 내에 꼭 다시 저를 좀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안 그러면 인류에 커다란 불행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달빛씨가 외계인 출신이라고 해도 저희 지구인의 불행을 바라지는 않으시지 않겠습니까?’’

‘‘저기 ......’’

‘‘예, 말씀하시죠.’’

‘‘저도 엄연히 지구인이에요.’’

‘‘예? 아! 예, 그렇죠. 그러시죠. 달빛씨도 지구인이시죠.’’


그녀는 확실히 그 씹새끼 소설 속에서 본 캐릭터와 실지로 다르지 않았다.

올곧고 신중하며 현명해 보였다.



+++



김철수의 딸 김달빛과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난 직후였다.


‘‘만복씨! 진짜 뭐 해요?’’


옆 자리 송성희가 또 전화를 해 왔다.


‘‘뭐하긴요. 퇴근했으니까 집에 들어가고 있죠.’’

‘‘정말 여기 안 올 거야? 내가 만복씨 이야기 진창 해 댔더니 애들이 난리도 아닌데.’’

‘‘으잉? 내 이야기 뭐에 난리도 아니에요?’’

‘‘뭐긴. 만복씨는 실존 자체가 스타잖아.’’

‘‘예에? 내가 실존 자체가 스타?’’


정말 난생 처음 듣는 낯 선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실존 자체가 스타라니?


학창시절 때부터 존재감 없기로 소문났던 나인데.

사회생활 하면서 주위에 변변한 친구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나인데.


전공과 별 상관없는 중소기업 두 군데쯤 다니다가 1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관두고 나서는 웹 소설 3질 정도 냈다.

하지만 웹소설 역시 전부 중박도 못 치다가 그저 맞춤법 잘 안 틀리고 시간 맞춰 원고 인도 잘 한다는 이유로 편집자 생활 시작한 지 이제 반년.

내후년이면 이제 앞자리 숫자가 3으로 바뀌는데 현재까지 모아둔 돈이라고는 천만 원도 채 안 되는 인생인데.

그렇다고 얼굴이 잘 생겼나 키가 훤칠하나 성격이 상남자스럽나 남들한테 없는 남다른 재능이나 취미가 있나.


이런 내가 실존 자체가 스타라니.

정말로 그 씹새끼가 장난치고 있는 걸까?


‘‘얼른 와요, 우리 클럽에 룸까지 잡아서 놀기로 했거든. 친구 하나가 글쎄 코인으로 지난달에 천 단위 벌었다고 해서.’’

‘‘음 ......’’


솔직히 쏠리기 시작했다.

송성희, 그녀에 대해 들은 소문이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그녀는 클럽에서 마음잡고 놀기로 하는 날에는 꼭 원 나잇을 즐긴다는 소문.

만약 지금 내가 그녀 초대를 받아들여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면 아마 오늘 그녀의 가장 유력한 원나잇 상대가 될 것이다.


‘‘저기 미안하지만 안 되겠네요, 성희씨.’’

‘‘으잉? 리얼리?’’

‘‘예.’’

‘‘와이?’’

‘‘비코우즈, 송성희씨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여자가 저를 원해서요.’’

‘‘뭐, 뭐야?’’


잠시 고민하는 사이 송성희보다 모든 면에서 상위호환인 김달빛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확실히 스피드가 장난이 아니다.



+++



송성희한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치 나는 프로축구 선수가 된 느낌이었다.

일종의 하이재킹 같은 것.

그러니까 중상위권 구단 스카우트 대상이 되어 그쪽과 막 사인을 하려는 찰라, 자타가 공인하는 빅 클럽에서 나의 포텐을 인정하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데리고 가려는 순간을 맞이하는 기분 같은 거라고나 할까?


‘‘여보세요.’’

‘‘예, 저 방금 전에 통화했었던 김달빛이라고 합니다.’’


빅 클럽은 확실히 다르다.

정제되고 또렷하다.


‘‘예, 제가 말씀 드린 거 확인해보셨나요?’’

‘‘예, 바로 확인해 봤어요.’’

‘‘음, 그렇군요. 그래서요?’’


나는 다소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박선배님이 관련서류까지 바로 보내주셨어요.’’

‘‘관련서류요? 그게 무슨 소리 .......’’

‘‘이혼소송 관련 서류요.’’

‘‘예에?’’

‘‘박선배님이 심지어 재정 관련 서류까지 복사해서 보내주셨거든요.’’

‘‘아, 아니, 그, 그게 ......’’


내가 잠시 말문이 막혀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차분하고 동요 없는 어조였다.


‘‘뭐, 뭐가요?’’

‘‘본의는 아니셨겠지만, 덕분에 박선배님이 저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저도 설마 재정 관련 서류까지 보내오실 줄은 몰랐어요. 그만큼 저를 믿으신다고 하시면서 선배님께서 보내주시더라고요.’’

‘‘하, 참나.’’

‘‘죄송하지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 뭐죠?’’

‘‘도 닦는 분이 아니라 해커이신 것 같은데 ......’’

‘‘뭐, 뭐요, 해커?’’

‘‘예. 소중한 시간 더 이상 저희 가족 때문에 허비하지 않으셨으면 해서요. 아무리 협박을 하려고 하셔도 저희 가족은 절대 그런 거에 안 넘어갈거 거든요.’’


그녀의 말투에는 조금의 비아냥도 없어보였다.

오히려 정말로 나의 시간낭비를 걱정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럼, 이만.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그녀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나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러다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어! 시발!’’

‘‘허허. 전화 매너가 왜 이러시나.’’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가 씹새끼였기 때문이다.


‘‘아이, 시발. 좀 아까만 해도 결번이라더니 어떻게 다시 또 전화가 되는 거야?’’

‘‘푸하하하하.’’


씹새끼가 또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아니, 아직도 못 믿는 거야? 나 여기서 정말 신이라니까. 전지전능한 신!’’

‘‘그, 그럼, 그 사이 김달빛이 짝사랑했던 그 박기자 그 인간 스토리 설정도 그새 니가 수정한 거야? 원래 나한테 주었던 원고 속에서는 그 박기자라는 놈이 이혼할 생각도 없으면서 이혼 소송 준비 중인 척 하면서 김달빛을 농락하려 들었잖아.’’

‘‘그렇지. 하지만 만복이 니가 내 말만 잘 들어주면 언제든 다시 박기자 그 인간이 김달빛을 농락하게 바꿔 줄 수 있지, 하하하.’’

‘‘뭐, 뭐야?’’

‘‘어때? 혹시 나와 본격적으로 딜 해 볼 생각 정말 없나?’’

‘‘딜? 무슨 딜?’’

‘‘혹시 여기에서 히어로로 본격적으로 활약할 생각 없냐고?’’

‘‘히어로?’’

‘‘그래. 내 말만 잘 듣기만 하면 여기서 니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니까. 김철수가 아니라 니가 진짜 히어로가 될 수 있다고.’’

‘‘대체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그래.’’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방심하지 말고 자기 전지전능함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훈련해야 하니까.’’

‘‘뭐야? 그건 또 뭔 소리야?’’

‘‘내 소설에 가장 딴지 많이 걸던 놈이 누구야? 바로 편집자였던 너였잖아. 그런 너를 오히려 내 소설의 히어로로 포섭하는 전지전능함. 개인적으로 졸라 흥분되는 일이거든. 푸하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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