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신입생에겐 싸움이 너무 쉽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dimsom
그림/삽화
dimsom
작품등록일 :
2024.09.14 13:38
최근연재일 :
2024.09.15 18:42
연재수 :
3 회
조회수 :
46
추천수 :
0
글자수 :
11,234

작성
24.09.15 18:42
조회
11
추천
0
글자
10쪽

2화

DUMMY

스테이지가 열리기 5초 전.

나는 조용히 건틀렛의 실린더를 장착했다.

건틀렛 리볼버.

검과 창에 비해 다루기 어려운 무구임은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메리트가 있었다.

한평생 싸움을 해온 내게 있어선, 검이나 창 따위보다 너클과 같은 건틀렛이 오히려 더 다루기 쉬울 테니까.

5초의 카운트다운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띠링!

〔귀하의 조는 D조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눈앞에 디스플레이가 잠시 떠오르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뜨니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북적거리는 연무장은 온데간데없고, 웬 무너진 신전 같은 구조물이 있는 황폐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우. 대단한데?”


그렇게 감탄을 속으로 삼키고,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공간 자체는 그리 넓지 않은 듯 했다.

그 증거로 벌써부터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고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으니까.


‘혈기왕성하구만.’


어깨를 으쓱인 나는 그대로 갈대밭 구석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내 키가 꽤 큰 편임에도 내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갈대들은, 분명 나를 완벽하게 숨겨주리라.

그렇게 갈대밭에 몸을 숨긴지 5분이나 지났을까.

나는 사방이 지나치게 조용한 것을 알아차렸다.


‘···벌써 끝났나?’


스무 명이 한 조이니만큼 서로가 서로를 베고 찌르는 난전이 꽤나 오래 이어져야 정상이다.

쇳소리, 혹은 고함소리나 하다못해 욕설이라도 들려야하는 게 정상인데.

무언가 상황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펴보자, 주인 잃은 무구들이 나뒹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스테이지가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대부분의 생도들이 정리된 상황.

그 말은 곧, 그 많은 생도들을 정리할 수 있는 강력한 무력을 지닌 이가 이 D조에 속해있다는 뜻이었다.


‘하하. 숨어있길 잘했네.’


하마터면 광탈할 뻔 했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남아있는 생도들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도, 나 이외의 생도들은 도대체 보이지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하다.

무난한 성적으로 입학하겠다는 내 계획이 틀어지려하는 그때.


파캉──!!


“음?”


폐허의 중심 쪽에서, 문득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아직 누가 싸우고 있나?’


“───!!”


무어라 울리는 고함소리도 들리고.

분명 생존자들이 싸우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폐허의 중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들의 잔해를 넘어가자, 두 사람의 인영이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웬 노란 머리의 뚱땡이.

그리고 그 앞에서 역력히 지친 기색으로 서있는 벨라.

이 두 생도가 서로를 으르렁거리며 쏘아보고 있었다.


“검성의 손녀님이라 기대했더니, 별 거 없는걸.”


뚱땡이가 키득거리며 조롱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 조롱에 벨라가 이를 악물었다.


“검만 부러지지 않았다면──”

“정신 차려. 손녀님. 자진해서 E급 무장을 갖고 온건 그쪽이야.”


슬프게도, 맞는 말이었다.

그녀의 전용무장이 아닌 E급 무장을 갖고 온 것은 순전히 벨라 자신의 의지였다.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한 줄 알겠어.”


비웃음이 노골적으로 담긴 같잖은 표정.


“뭐. 그렇다 치더라도. 검까지 부러진 마당에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


히죽 웃은 노란 돼지가 성큼성큼 벨라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예쁘기는 더럽게 예쁘네. 그래도 재미 좀 볼 수 있겠어.”


저 미친 돼지새끼.

감히 메인 히로인을 더럽히려는 돼지의 행동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혐오가 넘실거리는 눈으로 돼지를 노려본 벨라가 부서진 검을 역수로 잡고 휘두르려는 찰나.


“야 이 미친 돼지새끼야.”


나는 자리에서 뛰쳐나가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야 이 미친 돼지새끼야.”


찬혁의 신랄한 욕설에 프린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돼지.

이 단어는 프린스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였다.

뒤에서 들려온 방해꾼의 말에 프린스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키는 그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고, 날렵하면서도 야성적인 인상의 미남이 프린스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시험장이 생중계 되는 마당에 너는 진짜 그러고 싶냐?”


찬혁의 비아냥거렸지만 그 말은 프린스에게 그닥 와닿지 않는 듯 했다.

천천히 몸을 돌려 방해꾼을 마주본 프린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너, 너······. 뭐라고 했냐 방금?”

“미친 돼지새끼라 했다. 왜.”


찬혁의 대답에 프린스의 얼굴이 마치 김이 새는 밥솥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찬혁은 능청스럽게 건틀렛의 실린더를 장전하며 성큼성큼 거리를 좁혔다.


“돼지 넌 이제 ㅈ됐어. 검성 할배가 너네를 가만히 둘 거 같냐?”

“닥쳐.”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쉬던 프린스가 도끼를 꼬나들었다.


“너는 꼭 죽여버리겠어.”


그렇게 선언한 프린스가 단숨에 거리를 좁혀 도끼를 휘둘렀다.

무식한 돌격이었으나 그렇기에 묵직했다.

E급 무장을 충분히 깨부술 수 있을 정도로.

프린스의 도끼가 벼락 같이 내리꽂혔으나 의외로 방해꾼은 멀쩡했다.

다만.


킹──!!


건틀렛에 금이 가며 실린더에서 마력이 새는 소리가 울렸다.


‘쯧.’


손등으로 도끼를 흘려낸 찬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고작 한 번의 공격을 받아냈을 뿐인데, 건틀렛에 금이 갔다는 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너는!!! 내가 무조건 죽일 거다!!!!!!”


그렇게 고함을 고래고래 지른 프린스가 다시금 찬혁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정말로 찬혁을 죽이려는 듯이, 프린스의 도끼에는 살기가 어려있었다.


“미친놈.”


쏟아지는 도끼세례를 용케도 피해내면서, 찬혁은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한 합에 한 걸음씩.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지는 찰나, 뒤로 훌쩍 물러난 프린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거리를 재고 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의외네. 멍청하게 생겨가지고는 눈치는 빨라.”


까득.

찬혁의 능청스런 대꾸에 프린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개자식이──!!!”


욕설을 내뱉은 프린스의 피부가 점차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고 있던 찬혁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미친놈아. 그렇다고 가호를 끌어다 써?”


찬혁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프린스가 그 말을 이해할 리가 만무했다.


가호.

그것은 이 게임 속 세상에서 인류를 구원할 단 하나의 동아줄이었다.

비현실적인 힘과 능력을 발현시켜주는 가호는, 그 능력에 따라 귀와 천, 그리고 빈과 부를 가려왔다.


그리고 지금 찬혁의 눈앞에 있는 프린스 같은 경우.

A급 가호로 분류되어 대인전에 한해서는 S급도 넘볼 수 있다는 가호, <버서커>를 발현시키고 있었다.


“ㅈ됐네.”


찬혁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자신이 싸움에 도가 텄어도 저 미친 돼지 앞에서는 무력할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프린스의 도끼는 이미 날아들고 있었다.

찬혁의 반응을 넘어서는 속도의 일격에, 가드가 한 박자 늦고 말았다.

제대로 들어간 프린스의 공격.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벨라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고집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웠다.

저 뚱뚱한 생도가 가호를 끌어다 쓴 만큼, 저 남자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가호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동등한 가호뿐이니까.


절그럭.

반파된 검을 쥔 벨라가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려 했다.

저 남자가, 아니, 남자가 아닌 무언가가 강림했음에, 몸이 얼어붙었기 때문이었다.



**



도끼가 날아든다.

반응속도를 아득히 넘은 일격에 가드 타이밍이 늦고 말았다.


쩌엉──!!!


“크아······.”


아프다.

여기로 넘어와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다.

건틀렛을 완전히 부수고 파고든 도끼날이 보인다.

저 도끼날에 손목이 잘리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다.


“크아아아!!!”


저 미친 돼지를 어떻게 상대해야할까.

나는 입술을 뒤틀며 상황을 가늠했다.

유일한 무장인 건틀렛은 파괴됐고, 저 미친 돼지는 여전히 혈기왕성한 얼굴로 고함을 내지르고 있다.


그러니까 맨손으로 저 돼지를 상대하라는 말인데.


···ㅈ됐네.


띠링!!


갑자기 귀에 익숙한 알림소리가 울렸다.


[무장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가호가 활성화됩니다.]

[해당 플레이어의 격이 낮습니다.]

[강제로 가호의 격을 조정.]

[하향된 가호가 적용됩니다.]


【투신의 가호가 적용됩니다.】

【싸우십시오. 그것만이 당신의 본능일지니.】


쿵──


심장이 내려앉는듯한 서늘한 느낌과 함께 시야가 넓어진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멍한 자아를 겨우겨우 붙잡으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본다.

도끼를 쳐들고 달려드는 돼지.

그걸 보고서야 내 목표가 선명해진다.

내가 이곳에 왜 서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전부 하나의 목표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동공이 좁아지며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 일단은 널 족치려고 했었지.”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그대로 땅을 박찼다.

마중 나오는 건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날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상대를 죽인다는, 그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



찬혁이 눈을 뜨자, 웬 하얀 천장이 그를 맞이했다.


“이게 무슨······.”


찬혁이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자 넓으면서도 고급스러운 1인용 병실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내가 이런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하하.”


실소가 흘러나왔다.


“통장 잔고가 20만원인데. 병원비가······.”


이상하게도, 제 몸 상태보다 병원비가 걱정이 되는 찬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 신입생에겐 싸움이 너무 쉽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2화 24.09.15 12 0 10쪽
2 1화 24.09.14 16 0 10쪽
1 프롤로그 24.09.14 19 0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