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강화 실패로 터져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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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포라
작품등록일 :
2024.09.19 01:15
최근연재일 :
2024.09.2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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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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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in 11

DUMMY

내 능력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따라다니던 기질이었는데, 이런 걸 달고 있으면 자연스레 미래 직업에 대해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아이들과 같이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하기에는, 눈앞을 가리는 창 때문에 사고를 칠 것 같았다. 어린아이 특유의 감자 같은 두 주먹 불끈 쥐고 고심해보니,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이 좋아 보였다.


그리하여 커서 공방을 차렸다. 어릴 적 꿈을 이루었으니 어찌 보면 성공한 삶이었다. 내 또래 친우 중에 진정으로 과학자나 대통령이 된 이가 없었고, 죄다 사형수처럼 넥타이로 목을 조르고 표정을 구긴 기업맨이 되었으니 말이다.


공방은 아주 소중한 인연의 실까지 이어줬다. 눈인지 비인지 분간 안 되는 무언가가 하늘에서 쏟아지던 날, 가게 앞에서 우당탕탕! 물건 쏟아지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물고 나가보니, 아주 고운 피부의 여인이 자전거를 붙들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는 찬기를 막기 위해 하얀 목도리가 걸쳐져 있었다. 그 끝단이 자전거 바퀴살에 말려들어 가 곤욕을 치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이로써 도덕 교육을 배웠기에, 당연하게 도움을 주었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바퀴살을 빼서 엉킨 실을 빼고, 다시 살을 조립하고. 시간으로 따지면 3분여가량이었고, 손에 묻은 것도 없었다. 놀랍게도 이 짧은 시간이 남녀 사이에 스파크를 튀기기에는 충분했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입가에 떨림이 오는 미소를 머금다가 동시에 외쳤다. '저기··· 시간 있으세요?' 같은 마음으로 이어졌다는 게 소리 새어나오는 웃음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자는 보답으로 커피 한잔 사러 했고, 나는 추운 날씨에 넘어졌으니 잠시 쉬다가 라는 권유를 했다.


이 두 가지 제안은 하나로 합쳐졌다. 불야성 도시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가맹점 커피 두 개가 공방에 초대된 것이다. 그녀는 한겨울에도 얼음 띄운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공방에서 향수 향에 지친 나는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셨다.


그게 이서연과의 처음 만난 날이었다. 이서연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세상에 존재함을 인지한 첫 순간이기도 했다.


그 우연한 마주침 이후, 결혼까지 뜨겁게 사랑했다. 이서연의 몸에서는 늘 무화과 향이 났는데 살을 깨물 때면 코코넛 향으로 바뀌었다.


추억을 상기하던 나는 한쪽 입꼬리는 올리고, 한쪽 입꼬리는 내렸다. 가만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진실했다. 바람은커녕 다른 이성에 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상태로 서른을 넘겼고, 중년에 접어들었다. 우리에게는 둘이라는 규모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서로 의지하는 환경이었다.


그런데도 나이라는 마법이 흩뿌려진 건지 사랑이 점점 식어버렸다. 상대에게 짜증을 내지는 않았지만, 각자 생활하는 영역에서 불만이 하나씩 자라났다. 몸을 겹친 사이인데 무언가 언짢지 않다는 표정 못 알아볼 리 없지 않은가. 이걸 계속 쌓아두고 배우자와 마주하다 보니··· 그렇게 사랑이 식어버렸다.


저벅. 달동네를 걷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곳에서는 졸음이 없었다. 그저 지루한 시간에 역류하여 아내를 꺼낼 방도만 쫓아다닐 뿐이었다. 저벅.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11살 이서연과 나의 접점이 떠오르지 않는다.


[불량배]


아, 산책길에는 적도 있었다. 맵에서 괴물이 리스폰 되듯이 똑같이 생긴 놈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사시미로 처단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후···"


인간이란 참으로 이중적인 생물이다. 그래, 인정한다. 분명 이서연과의 결혼 생활에 지쳤다. 인생이란 긴 마라톤에서 옆에 손을 마주 잡은 파트너가 버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가 없어지는 순간, 나는 목적지를 망실해버리고 말았다. 동반자가 달리며 교차하던 숨결의 열기가 절반이나 떨어져 나가니 그토록 시릴 수가 없었다. 이서연의 자전거를 매만지던 겨울은 따뜻했고, 아내가 터진 날 여름은 차가웠다.


"빌어먹을···"


새벽 두 시쯤 되었을까? 골목길 한 쪽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참았던 눈물을 흘리면서 양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누굴 탓하겠는가. 다 내 잘못이다. 질병처럼 달린 능력을 격발해 아내를 조각내었다. 30분 정도를 주저앉아있다가 다시 일어났다. 다시 길거리를 배회하며 단서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보니 새벽 4시쯤 되었을 때, 달동네 아래쪽에 도달했다. 귀마개를 한 소년이 고물 자전거 뒤에 신문을 한가득 싣고 있었다. 과거의 풍경이다 보니 이상하게 무채색 흑백처럼 보였다.


신문사 옆에는 전파상이 있었다. 밤잠 없는 할아버지가 기지개를 켜면서 파리채를 휘두르고 있다. 노인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콧김을 한번 내뱉고는 안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손을 움직이더니, 구들장과 이불 사이에 넣어둔 두유 한 병을 척 내밀었다.


"못 보던 양반이네. 이른 시간인데 건설 현장 일이라도 알아보러 가는 거요?"


이서연의 가족 말고는 이렇게 다 알아봤다. 유령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잠시 말을 골랐다. 아무래도 과거이다 보니 서울이라도 말투나 단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뒤에서 왔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면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건설 현장은 아니고 그냥 일거리 좀 찾고 있습니다."


"어이고. 성실한 양반일세. 요즘 시골에서 상경하는 이들이 많다더니만··· 저 여거. 한병 마시고 잠 좀 깨서 사고 없이 일하더라고."


"감사합니다."


두유를 받으면서 지폐를 내밀었다.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내가 슈퍼도 아니고 돈 받고 팔려던 거 아니니까 그냥 가져가요."


"아, 그게 아니라 부품 좀 사려고요."


"부품?"


"화면이 깜박거리는데 그··· 이렇게 생긴 거 교체하려고요."


공방 일하면 어려가지를 만지게 된다. 아날로그 TV도 그중에 하나였다. 레트로 열풍이 불어서 몇 개 가져다가 뜯어보았다. 그중에 대화를 열기에는 콘덴서(Capacitor) 구매가 적절해 보였으나, 과거에도 이리 부르는지 몰라 모양만 그려주었다. 전파상 노인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뻗어 위쪽 서랍을 뒤적거렸다.


"콘덴사(コンデンサ) 말하는 거구먼. 기다려보더라고."


[김춘수를 강화하시겠습니까?]


[NO]


상인이라는 직업이 다 그렇듯, 물건 하나 사주면 이런저런 정보를 주기 마련이다. 일부러 가장 값이 비싼 걸로 골라서 지폐를 내밀고, 슬쩍 운을 띄웠다.


"그런데 어르신. 이 근처에 김윤영이라는 사람 살고 있습니까?"


아내의 옛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장모의 옛날은 아는 정보가 꽤 있었다. 장인이 술을 거나하게 들이켜면 자기 마누라 자랑을 한창 늘어놓았고, 늘 똑같은 내용이라 달달 외우고 있었다.


"이대 나온 여자인데 석호 가구에서 일하던 분이요. 그분이 대전 출장 오셨을 때 제가 거래처였는데, 서울 오면 자리 좀 잡는 거 도와주시겠다고 하셨거든요. 동네는 여기가 맞는데 연락도 안 되고 못 찾겠더라고요."


"아, 거기. 저 감나무 파란 지붕 있는 집인데, 두 딸내미 보살피느라고 회사 그만뒀거든."


이 시기쯤에 장모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유가 달랐다. 분명 장인은 자신의 벌이가 괜찮아서 장모가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나름의 자랑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곁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감사 인사하면서 콘덴서를 챙기고 일어났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어제 그 슈퍼 앞이다. 아침 일찍 문을 열었기에 벤치에 털썩 앉았다. 두꺼비 담배를 꺼내 들고 입술 사이에 끼웠다.


"어르신이 분명 두 딸내미를 보살피느라 회사 그만두었다고 했었지."


이건 말이 안 된다. 이서연은··· 외동딸이었다. 처제라는 존재는 전혀 본적이 없었다.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을 세웠다. 하나, 어르신이 착각하셨다. 둘, 이서연이 과거를 말하지 않았던 이유에 처제 지분이 크다. 고뇌하고 있는데 슈퍼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앞마당을 쓸고 있었다.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불현듯 충동이 올라왔다. 사람이 한번 하리는 어려워도, 두 번째는 스르륵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춘자를 강화하시겠습니까?]


껌벅거리는 창에서 평소와는 다른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강박감이 터져 나왔다. 이 공간이 게이트라 실제 현실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이 안에서 강화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더불어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이서연이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못 본 척 피해 다녔던 시스템을 파헤쳐볼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수십 개의 변명을 방패 삼아 친절을 베푼 아주머니를 살해할 결심을 마쳤다.


어쩌면 총기 따위와는 비교되지 않을 버튼을, 꾸욱 격발했다.


[YES]


아주 오래전부터 보였으나, 이번이 두 번째로 누르는 거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인상을 찡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데구르르르. 아내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주사위 굴러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마치 신이 장난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경과 보고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이춘자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TIP: 인간 +1강 확률은 100%입니다]


작가의말

후원금 감사합니다…

다만 한가지 알아두셔야 하는데, 이 글은 1년 6개월 전에 5화까지 쓰다가 조회수 30나와서 비공개 후 추하게 재업한 글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단편이고요.



처음에 장편 생각했으면 108 조각 내고 돌잔치 시절부터 시작했을 거예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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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가 강화 실패로 터져버림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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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11 NEW +11 9시간 전 753 22 10쪽
2 in 11 +8 24.09.19 2,570 43 10쪽
1 퍼어엉! +22 24.09.19 3,086 55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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