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기사는 영지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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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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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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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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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받은 말, 갑옷, 시종. 내가 얻은 못, 물자, 시녀.

DUMMY

근엄한 표정을 지은 남자가 촛불 앞에 놓여진 물품을 내게 밀면서 말한다.


“네게 남은 것은 네 아버지가 쓰던 갑옷과 이 말 한마리 뿐이구나. 갑옷은 오늘을 위해 미리 개수를 끝내 놓았다. 이것과 함께 나가라.”


강철을 두드려서 편건지, 아니면 고철들을 덧댄건지 모를 거대한 판금 갑옷과 만든지 얼마 안 된것처럼 보이는 사슬갑옷을 건넨다. 거기에 가문의 깃발까지 수놓은 태피스트리도 얹어줬다.


하지만 이걸로 어쩌라는 건가. 갑옷이야 몸에 딱 맞겠지만···.


귀족가의 차남으로 이세계 환생했을 때는 나름 편하게 삶을 살겠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정말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속이 이뤄지니 그 생각은 이미 온데 간데 없다.


그냥 여기 있고 싶은데···!


“그, 그러면 어디 작은 오두막이라도. 없습니까?”


“너에게 남은 집, 장원은 없다. 하인 한명은 데려가도 좋다.”


“형님. 저 아직 14살인데요?”


16살 정도는 되어야 어른이라고 대접받으니 나이를 말하면 조금이라도 길게 있게 해줄까 싶어 말해봤다.


“다 컸구나! 그래도 돈도 조금 챙겨줄테니. 떠나라. 주의 축복이 너와 함께하길.”


당연하지만 딱 잘라 거절당했다. 부흐그 아샤흐에 가주가 정리해서 내온 상속문서하고 관할 주교, 수도원장이 직인들이 있다.


“제가 반란 같은 짓을 안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자리에 일어나서 애걸하듯이 말하지만 형은 나를 올려보면서 한숨을 쉰다.


“나도 안다. 알지만, 네가 너를 봐도, 나를 따르겠냐? 너를 따르겠냐?”


형도 마주 일어났지만 나의 눈높이 근처에도 오지 않는 형을 내려보다가 한숨을 뱉으면서 말한다. 판타지 세상이라 그런지 대책도 없이 커진 덩치 때문인지 기사 가문인 우리 가문의 가신들은 나를 후계자처럼 따르던 게 문제였겠지.


“아니, 그냥 내가 형만 밀어준다니까? 하···.”


“미안하다. 이 작은 장원에서도 파벌이 있는데 너까지 있으면 장원을 유지하는게 힘들다. 하지만 네가 이 가문 밖에서도 충분히 잘할거라 믿는다. 편지도 하고.”


단호한 형의 말에 조금 불쌍한 표정을 지어봤지만 역겹다는 표정만 덤으로 받았다. 단념 해야하나.


“그래. 어쩔 수 없지. 편지는 보낼게.”


“잠깐, 내가 따로 챙겨놓은 금화가 있으니까. 그것도 가져가라.”


“사양하지 않을게.”


권력을 나누지 않기 위해서 나가는 모양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가서 맞이한 말은 내 거대한 덩치를 지탱할만큼 커다란 녀석이었다. 녀석에게 밥을 주는 하인 한명이 눈에 띈다. 어려보이고, 한번도 말을 관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던 아이인데. 발소리를 듣고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인사한다.


“도, 도련님. 제,제가 안장을 메어놨습니다.”


“기다린 게냐?”


“예. 예···.”


영리하다. 내가 떠난 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내 상속 재산 목록까지 알고 있었겠지. 어린 아이들은 곧 잘 자신의 마을에서 떠나고 싶어한다. 이왕이면 준비된 녀석을 데리고 나가는 게 낫겠지.


“이름이 무어냐?”


“월터, 월터라고 합니다.”


“그래. 따라 오거라.”


묘하게 신나서 이미 준비해둔 주머니를 가득채우는 월터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이어간다.


하지만 막상 떠나자니 이 망할 중세랜드에서 어디를 가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영화에서는 기사들이 어떻게 살지?


생각나는 매체들이 도움이 하나도 안된다. 용이라도 잡으러 가야하나?


일단은 물자를 챙겨야 한다.


장원을 떠나 가까운 곳의 마을에 멈춰서 식량창고를 털고, 못, 리벳, 그리고 망치와 같은 물건들을 대충 챙긴다. 여기 북쪽 사람들의 땅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덩치와 갑옷, 거대한 말, 그리고 말에 얹어놓은 태피스트리를 본 마을 주민들은 저항하려고도 안했다.


“기, 기사님! 부디. 겨울을 날 식량만큼은···!”


“아. 다 계산한 거다. 여기 기록한 수만큼 나누어 식량을 먹도록.”


양피지는 비싸서 못쓰고, 나무에 못으로 기록한 목판을 건넨다.


“네···?”


“지속 가능한 약탈이라는 거다. 주님께 두려워서 어떻게 한 마을을 전부 굶어죽게 할 수 있겠느냐?”


결국 이 곳이 다리 몇개만 건너면 기사들끼리 전부 안다. 하나님이 번개를 내리치는 것 보다, 어디선가 삼촌의 사촌의 아들의 팔촌이 튀어나와서 장원의 복수를 한다고 난리를 치면 문제다.


“자,자비에 감사합니다.”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약탈을 해가면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에 마을 사람들이 열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들이 뭘 어쩌겠는가.


월터가 거기에 한마디를 더 얹는다.


“우리 나으리께서 이렇게 경건하시다!”


“감사합니다. 으흐흑!”


눈물을 흘리면서 땅바닥에 머리를 찧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조금 양심이 쿡쿡 찔리는 듯하다.


솔직히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세상이 그렇다.


“우리 나으리의 이름은 다니예 드 퀘스노이. 퀘스노이 가의 자유기사시다. 퀘스노이 가의 성전 서약 기사. 고드프리 드 퀘스노이의 아들이시며···.”


가계도를 전부 읽을 셈인지 주절 거리는 월터를 그냥 가만히 뒀다. 결국 저렇게 광고를 안하면 이름이 안 퍼진다. 마을을 약탈하면서도 자비를 보이고, 한사람도 죽게 하지 않은 건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그렇게 10분에 가깝게 가계도를 읊은 월터의 말을 전부 들은 촌장처럼 보이는 노인 한명이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말한다.


“경건하신 나으리. 이 마을에 불경한 사탄의 신부가 있습니다. 이름 높으신 나으리가 처치해 준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악마를 말하는 건가? 아니. 그냥 판타지인 줄 알았는데. 이거 다크판타지야?


조금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얼굴을 굳힌다. 노인이 천천히 긴장한 모습으로 헛간으로 다가간다.

헛간에 숨어 있는 건가? 모 게임에서 나온 것처럼 갑자기 그림자로 변해서 나를 공격하면 어떻게 대응해야하지? 내 검은 조금 녹슨 강철로 만든 롱소드인데?


긴장한 채로 검자루를 집은채로 성호를 그으면서 그 ‘사탄의 신부’가 있다는 헛간에 들어가니 그냥 사람이 하나 묶여 있다. 조금 맞아서 얼굴이 붓긴했지만, 그냥 사람이다.


묶어놓고 왜 나한테 죽여달라고 하는 건가?


“히익! 저,저는 그냥 약초를 조금 만진 죄 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점을 쳐달라길래 그런 건 못한다고 하니까 묶어가지고는···.”


단순한 변명이다.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한번 들어보려고 했더니 노인이 허리를 똑바로 세우면서 말한다.


“닥쳐라 이 년!”


노인이 하는 거라고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굉장한 발차기를 하는 것을 보고만 있으려다가 막는다. 발을 붙잡힌 노인이 항의하듯이 나를 바라봤지면 눈을 부릅뜨니 눈을 깐다.


“잠깐. 때려 죽이기 전에, 이 여자가 마을에 무슨 일을 했는가?”


“이 년이 오고 나서 마을에 온갖 나쁜일이 겹쳐 일어났습니다! 이 년의 사악함을 알려주려고 나쁜 징조를 주께서 내려주신 것이지요!”


“무슨 일이 있었나?”


죽은 자가 걷기 시작하고, 전염병이 도는 정도의 징조를 생각하던 나는 이어지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우물이 말랐습니다! 별똥별도 떨어졌고요!”


우물이 말랐다고? 뭐 우물에 독을 푼 것도 아니고 그냥 물을 다 쓴거 아닌가? 그런데 별똥별?


“아니 맙소사. 별똥별이 이곳에 떨어진 건가? 그 별똥별은 어디에 있지?”


메테오라도 불러온 건가? 엄청난 수준의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인가 싶어 마녀를 바라보니 어이가 없어 미치겠다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그런 걸 할 줄 알면 이렇게 묶여 있을리가 없지 않아요?”


“네? 별똥별이 떨어지다니요? 소돔도 아니고.”


그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촌장의 말에 불현 듯 생각이 떠오른다.


“그냥 재수가 없는 건 아닌가?”


“아닙니다요! 저년이 오고 전부 벌어진 일이라니까요?”


혹시 내가 그냥 과거로 온 게 아닐까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이 미개한 사고방식은 그냥 시대상이겠지···. 판타지 세계도 중세는 중세니까.

논리적으로 그 말을 논파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건 그냥 내가 아는 마녀사냥이지 않던가.


“저년을 죽여서 빠르게 주님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게 내버려둘 생각도 없다.


“내가 와서 다행이구나. 너희들이 죄를 저지를 필요 없이 내가 저 년을 데려다가 처리해주마.”


그렇게 말하고 여자에게 속삭였다.


“조용히 따라와라. 해치지는 않아주마.”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 직접 때려 죽이지 못해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뒷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거로 맞서 싸울 거였다면 보급품을 대놓고 약탈해 갈때부터 무슨 말이 나오지 않았겠나.


그렇게 겁쟁이들의 무리를 뚫고 마을 밖으로 나가니, 마을에서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무슨 약초로 사람도 고치고 그랬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좋아할까.


그 모습에 조금 풀이 죽은 여자를 격려해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굳이 그런 말을 했다가 자기가 뭐라도 된 양 의기양양해지면 그것도 귀찮으니 참았다.


그렇게 말을 자중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을 밖으로 나가니 마녀라는 소리를 왜 들었는지 알법할 정도로 말문이 트였다.


“그러면, 어디로 가시는 거에요? 장원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디에 있으신가요?”


평온하던 여정–하루도 안 지났지만–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장원이 없으시다고요?”


“그래. 없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마을에 돌려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한치 망설임도 없이 하는 그녀의 말에 농담기는 하나도 없었다. 정신이 나간 건가? 목숨을 살려준 사람한테 이 말투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개같은 년이?


“이 개같은 년이?”


생각은 그대로 월터의 입을 통해 튀어나온다. 정말 충직한···.


“아무리 우리 나으리가 무슨 사생아가 쫓겨나듯이 장원도 없이 가문에서 쫓겨났다지만 네년은 우리 나으리를 존중해야한다. 그는 많고 많은 경건한 업적과 이러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이룰 예정을 하신 위대한 운명을 타고난 기사시다···.”


지금 아무것도 아직 이룬 게 없다고 비꼬는 건지 뭔지 모를 변호를 듣고 있자니 모멸감이 타오른다. 내가 뭘 잘못했는가? 마을 좀 털고, 마녀사냥 당하는 여자를 구해왔는데. 장원이 없다고 그냥 납치범 취급을 받는게 맞나?


시발. 그냥 수도사도 사람을 구했을 때 이런 취급을 안 받겠다. 걔네들은 진짜로 고아같은 애들 잡아와서 수도 서원을 시키는 이 판타지 세계의 진짜 흑막인데!


경건한 내게 이런 수치스러운 경험을 하는 것은 세상이 잘못된 것이지만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다.


영지. 영지가 필요하다. 이 판타지 세계에서 기사는 영지가 필요하다. 그럼 뭘 해야하지? 일단은 잠을 자야겠지. 약탈한 마을에서 잠을 잘거면 불이라도 질러야 하는데. 그러면 밖에서 자야겠구나.


이 너른 땅은 아직 나를 위한 집 하나가 없다. 세계가 달라져도 바뀌는 건 없구나.



작가의말

대체역사로 돌아왔습니다! 틈틈히 모으던 자료와 재밌는 사건들을 찾아서 기사의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드 퀘스노이(du quesnoy)가는 실존하는 노르망디의 기사 가문입니다. 첫 기록은 부흐그 아샤흐의 수도원에 기부한 헌금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부흐그 아샤흐에 장원을 가졌는지, 그 명부와 가계도는 작중 시대(1200년도)의 기록은 찾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창작으로 대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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