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을 다시 써 보려 한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좀봐라
작품등록일 :
2024.09.20 20:54
최근연재일 :
2024.09.21 00:18
연재수 :
2 회
조회수 :
9
추천수 :
1
글자수 :
5,084

작성
24.09.21 00:18
조회
3
추천
0
글자
10쪽

만고의 그대게

DUMMY

연락이 왔다.

새벽 두 시에.

지겨운 전화벨 소리는 그칠지를 모른다. 아마 이소율일 거다. 분명하다. 이상한 스팸 전화가 아니라면 지금 이 시간에 나한테 전화를 걸 사람은 이소율뿐이니.

아니, 스팸전화도 사람 다 자는 이 시간에는 안 하겠다.

띠리링!!

전화벨은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진짜 핸드폰을 꺼놓든가 해야지.

시선은 여전히 컴퓨터의 모니터에 고정해놓고선 손만 뻗어 더듬거린다. 몇 번의 헛손질 후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을 내뿜고 있는 핸드폰은 내 손에 들어왔다.

밝기 조정을 해 놓지 않아 방의 어둠을 밝히는 화면의 빛에 눈을 찌푸린다.

역시 예상대로 이소율이다.

나는 주섬주섬 이어폰을 꺼내 한쪽 귀에만 꽂은 뒤 전화를 받았다.

“왜 그렇게 늦게 받아.”

“왜?”

익숙한 목소리.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는 내 오른쪽 귀에 바로 들어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손은 마우스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듯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아직도 게임 하고 있어?”

“아마도 그럴걸.”

마우스의 딸깍 거리는 소리와 만 원짜리 싸구려 키보드의 소리가 핸드폰 너머까지 들렸나 보다.

“우리 내일부터 중간고사인 거 알고 있지.”

“. . .진짜?”

어이가 없다는 그녀의 한숨 소리에 화면에 빨려 들어 갈 듯 집중하던 내 눈동자는 컴퓨터 옆에 놓여 있는 달력을 흘깃 쳐다본다. 그리고는 다시 게임에 집중한다. 10월 3일엔 빨간색 색연필의 동그라미 표시와 함께 고3, 2학기 중간고사 시작이란 말이 조그맣게 쓰여 있었다.

“괜찮아, 어차피 고3, 2학기잖아.”

“너 수시야?”

“수시? 아니 나 수시 하나도 안 썼는데.”

순간 핸드폰 너머로 정적이 흐른다.

정적 속 마우스 클릭 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수능은 볼 거지?”

“봐야지, 이미 본다고 그때 종이 냈잖아.”

“그래. .다행이네”

그 말을 끝으로 정적은 다시 찾아왔다. 마우스의 클릭 소리는 더욱 빨라지고 급박해진다.

“할 말은 그게 끝이야? 그럼 끊는다.”

“왜? 지금 바빠?”

“어, 나 한타 해야 해.”

“한타?”

“···.있어 그런 게.”

“그거 게임 얘기지.”

"맞아.”

그 뒤로 그녀의 잔소리는 이어졌다. 이 시간까지 왜 게임을 하냐부터 시작해, 내일이 시험인데도 정신 안 차리고 게임이나 하고 있다, 대학은 갈 거냐, 갈 거면 왜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냐, 수능이 이제 한달 도 남지 않았는데 왜 게임을 하고 있냐. 아니 수능이 한달 밖에 남지 않은 건 알고 있냐. . .

대부분은 게임에 관련 되어 내게 기관총처럼 쏟아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익숙했다.

수능이 가까워지고 고3이 예민해지는 건 당연한 거다. 어쩌면 지금 그녀는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감정 쓰레기통이든 그냥 쓰레기통이든 상관 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끊겨질 인연.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심결에 튀어 나온 비속어. 모니터에는 회색의 화면이 나를 반기고 동시에 찾아온 차가운 정적. 방금 까지 열변을 토해내던 그녀의 목소리는 뚝하고 끊겼다.

너무나 차가워 이제 무서워질 정도다.

빨리 사과를 하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한다.

“. .너한테 한 거 아니야. 진짜 방금 우리 팀 원딜이 게임을 던져서. .40분 마지막 한타였는데. . .”

나는 왜 지금 이소율한테 사과를 그것 새벽 두 시에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야 할 분위기다.

이윽고 정적을 깨고 입을 연 그녀.

“아니야, 계속 게임 해.”

본능 적으로 알 수 있다.

좆됐다.

캐릭터 부활까지는 40초.

그녀가 왜 화가 났는지 생각을 해야 했다. 등신도 아니고 당연히 내가 욕을 해서 그렇겠지. 근데 오늘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서로한테 장난치며 가벼운 욕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하잖아.

“미안, 게임 껐어. 껐으니까 계속 얘기해 봐. 다 들어 줄게.”

결국 내가 생각해낸 대답은 이거다. 물론 컴퓨터는 끄지 않았다. 이내 회색 화면에는 [패배]라는 문구가 화면 정 중앙에 올라왔다. 그리고 시작된 죄인 찾기. 채팅은 쉴새 없이 올라온다. 죄는 없지만 죄인이 된 이는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그에 대한 심한 욕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몇 초간 더 이어진 정적을 깨고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컴퓨터 안 껐지.”

그녀는 마치 지금 내 상황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말한다.

더 이상의 거짓말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을 거 같다. 그랬기에 나는 나지막하게 그렇다는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예상 밖의 말.

“그럼 그냥 들어. 게임 계속 해도 되니까 그냥 들어줘.”

“. .알았어.”

왠지 힘이 없는 그녀의 목소리. 무슨 일이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의자에 등을 편하게 기댄다.

“말해, 들어줄 테니까.”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천천히 입술을 땠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고 중2병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 . “

궁금하게시리 말을 끄는 그녀.

“뭔데, 빨리 말해 봐.”

“지루해.”

“지루해? 뭐가?”

“삶이. 그냥 이 자체가 지루해. 매일 아침 같은 곳에서 일어나서 같은 사람이 차려 준 밥을 먹고 매일 같은 교복을 입고 매일 같은 길로, 매일 같은 학교로, 그리고 매일 같은 애들을 만나는 것도 전부 지루해.”

힘 하나 없는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하게 이어진다.

“그래도 다음 달이면 끝나잖아.”

“. .모르겠어. 정말 끝나는 건지. 혹시 1년을 더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근데 그런 생각을 하면 불안하다가도 또 편해져.”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지만 나는 지금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가 왜 내게 대학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아니 애초에 이 고민의 근본적인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거 하나 뿐이다.

“놀아. 하루 정도 놀면 돼.”

내 대답이 맘에 들지 않았던 건지 그녀는 말이 없다.

벌써 몇 번째 찾아온 정적.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게임 창을 닫는다. 게임을 끄기 바로 전까지 죄 없는 죄인을 향한 욕은 멈추지 않았다.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고 방안엔 드디어 어둠이 찾아왔다.

몸을 좀 움직여 침대로 가 누웠다.

언제나와 같은 침대는 나를 아무 말 없이 반겨준다.

이제야 정적을 깨는 그녀의 목소리.

“그냥 지루해. 한번 재미있어 졌으면 좋겠어.”

“.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내 말을 끝으로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어이가 없어 나는 몇 분 동안 어둠 속에서 불을 잃은 핸드폰만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리고 잠에 들었다.

더 깊게 생각하기 싫었다.

그냥 새벽에 취한 헛소리 정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 * * * * *

언제나 그렇듯 아침은 찾아온다.

어제의 밤이 지나고 오늘의 아침이 왔다.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뒤척거리고 있다.

학교를 가야 되는 건 알지만 내 몸은 침대를 원했다.

결국 몇 분 더 누워있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하늘에는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거센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 했기에 나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가 간단하게 머리만 감고서 부엌으로 향했다.

머리를 감았음에도 졸음은 계속 몰려왔다.

나는 의지 없는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가 커피를 타 마셨고 그제서야 눈이 조금 떠지는 듯 했다.

바람은 어찌 이리 부는지 아무리 우산으로 막으려 해도 사방팔방으로 다 들어온다. 그 덕에 교복은 흠뻑 젖어 축축해졌다.

어찌어찌 도착한 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 시간이 6시30분이다. 아무도 없는 게 당연하다.

딱히 빨리 온 이유는 없다. 집도 가깝기도 하고 집에서 몇 분 더 자다가 지각을 하는 것 보다 그냥 학교에서 자는 게 더 이득이라 생각했다.

왼쪽 앞에서 두 번째 자리.

거리가 내 자리다.

원래는 오른쪽 가장 끝 자리지만 시험기간에는 출석번호 순으로 앉아야 했기 때문에 여기에 앉게 됐다.

하암~~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한다.

번쩍!

순간 번개가 번쩍이더니 몇 초 있다 우르릉 거리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한껏 움츠린다.

이 넓은 교실에 혼자 있는 것도 모자라 아직 불도 켜지 않았다. 짙은 먹구름이 껴 회색 빛이 감도는 하늘.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창문을 때리는 비까지.

공포심을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아까 커피를 마신 탓인가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늘 볼 시험 공부를 하자니 그건 또 싫었다.

흘러가는 시간 동안 음악이라도 들을 생각에 나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낸다.

12%

어. .분명 충전 하고 잤을 텐데.

짧은 탄식 뒤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야 나는 어제 자기 전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충전기를 연결하기 위해 콘센트가 있는 창가 쪽으로 몸을 옮겼다.

몸을 숙여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을 때.

번쩍이며 어두운 하늘을 빛내는 번개가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쳤고.

콘센트와 연결된 충전기를 잡고 있는 나의 손을 타고 죽을 만큼 짜릿한 전류가 몸을 전율했다.

나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신음을 내뱉었다.

시야는 점점 흐릿해지다 이내 어둠 밖에 남지 않았다.


작가의말

어쩌면 무한한 시간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대에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결말을 다시 써 보려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만고의 그대게 NEW 5시간 전 4 0 10쪽
1 0.이방인 NEW 8시간 전 6 1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