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의 슬기로운 무사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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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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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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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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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대륙 동부의 영원한 패자, 케다하스 왕국.

그들은 오래전부터 기사의 나라로 유명했다.


특히 왕실 기사단 ‘여명’이야말로 자타공인 대륙 최강의 기사단 중 하나였으니, 인류 역사상 최초의 소드 마이스터 데커드 쇼가 여명 기사단 출신이었음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여명 기사단은 단지 입단 시험을 신청하는 조건부터 까다롭기도 유명했는데, 첫째가 5년 과정의 왕립 검술 아카데미 수료, 둘째가 3년간의 종자 경험,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5년 이상의 무사 수행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세 번째.

5년 이상의 무사 수행이야말로 수많은 입단 희망자들이 고배를 마시는, 하여 기사단에 입단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끔 만드는 극악의 구간이었으니······.


“종자야.”


오늘도 케다하스 출신의 젊은 자유 기사.

무사 수행 10일차에 빛나는 예네스 윈저.

그가 오른손을 뒤로 쭉 뻗으며 중얼거렸다.


“검을 다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군가 달려왔으니.

검 한 자루 품에 안고 나타난 그는 칼리 브레이크.

자유 기사 예네스 윈저의 하나뿐인 종자였다.


스르릉······!


칼리가 들고 온 검을 예네스가 뽑았다.

갑옷에 검까지 갖추니 제법 그럴싸했다.


“기회를 주마.”

“······?”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

“그럼 목숨만큼은 살려주도록 하마.”


금발의 예네스 윈저가 항복을 권유했다.

그 대상은 무려 12명의 산적 무리였다.


“······아니, 그러니까 네놈이 누군데 아까부터 항복을 하니 마니 하면서 개지랄을 떠는 거냐고. 엉?!”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대머리 산적.

우락부락하기 짝이 없는 자가 나섰다.

험악한 표정과 말투는 덤이었다.


“종자야.”

“예, 나리.”


그럼에도 예네스 윈저는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아까와 마찬가지로 종자만 찾기 바빴다.


“이곳 야산을 무단으로 점거, 일대를 오고 가는 나무꾼과 사냥꾼, 약초꾼, 행상인 등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뒤 금품을 갈취한 산적 무리는 들으시오!”


별다른 명령 없이도 알아서 움직이는 종자.

칼리 브레이크가 도적 무리를 향해 외쳤다.

어딘가 몹시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이분의 함자는 예네스 윈저!”

“예네스······ 윈저······?”

“예네스 윈저 경께서는 윈저 영지의 대영주이신 마르시오 윈저 공의 장남 되시는 분으로, 왕립 기사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셨으며, 윈저 기사단 소속 레이튼 존스 경 아래에서 3년간의 종자 경험을 쌓으셨고, 이제는 진정한 기사도의 실현을 위하여 열흘째 무사 수행을 이어나가는 중이시오!”

“······.”


······글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일단 거창하다. 거창하기는 한데······.


“아아, 그러니까, 어느 대단하신 가문의 대단하신 나리께서 대단한 뭐시기를 하려고, 바꿔 말해 우릴 다 때려잡으러 행차하셨다, 뭐 그런 이야기 같은데.”

“얼추 그러하오.”


대머리 도적의 축약.

종자 칼리의 인정.

그다음 차례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잠깐, 이게 아닌데?


“뭐? 어디라고? 윈저 영지? 거 저기 뭐냐, 북쪽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촌구석 아닌가?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가 한······ 밤새 달려고 몇 주는 걸릴 텐데?”

“······.”

“근데 네놈들은 둘이고, 우리는 열둘이고.”

“······.”

“머릿수 차이가 제법 크지.”

“······.”

“자, 그럼 여기서 문제. 우리가 너희 둘 모가지를 따서 개새끼 밥으로 던져주는 게 빠를까? 아니면 너희 그 잘난 영지의 대영주 나리께서 친히 병사들을 이끌고 첫째 아드님 구하러 오시는 게 빠를까?”

“······.”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왜 가문과 이력부터 소개하겠는가?

나 이러이러한 사람이니, 알아서 기어라.

보기보다 쏠쏠하게 먹혀드는 처세술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나리,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만.”

“음, 확실히 그런 것 같구나.”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맡겨둬. 알아서 할 테니까.”


칼리의 속삭임에 예네스가 고개를 저었다.

빛나는 금색 머리칼이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안타까운지고.”


근엄한 말투, 근엄한 표정.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록 너희가 짐승만도 못한 살인자라고는 하나, 그래도 왕국의 백성이니만큼 적법한 절차 아래 죗값을 치르도록 인도하고자 했건만······.”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 예네스 윈저.

그가 양손으로 검을 단단히 잡았다.


“이제 보니 네놈들.”


우묵한 눈빛.

안정된 호흡.

바짝 선 칼날.


“피를 봐야 철이 들겠구나.”


윈저 가문의 장남, 자유 기사 10차, 대대로 미남미녀만 배출하는 윈저 가문에서도 특히 빛나는 존재.

예네스의 역사적인 무사 수행이 시작되었다.


“하아아아압!”


우레와 같은 기합!

예네스에게 망설임 따윈 없었다.

적이 1명이든 12명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단숨에.’


왜냐고?

그야 간단하다.

압도적인 무력 아니겠는가?


‘끝낸······!’


단숨에 끝낸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능히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자신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빠각······!


하나 예네스 윈저의 자신감은 거기까지였다.

단숨에 끝내겠단 생각조차 완성시키지 못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혼절해버렸으니까.


“······뭐, 뭐야?”

“나, 나도 몰라. 그냥 휘둘렀는데······.”


허무함을 넘어 당혹스러운 상황.

오죽하면 몽둥이를 휘두른 산적마저 놀란다.

부러진 나무 몽둥이를 몇 번이고 계속 살핀다.


“······하, 하하하! 아주 그냥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시더니만, 겨우 이거였어? 엉? 고작 이따위 실력 하나 믿고 그렇게 까불어댄 거야?”


하나 그 당혹감도 찰나에 불과할 뿐.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는 산적 무리였다.


“아하! 딱 보니까 알겠네. 지금까지는 뭐 내가 어디 가문 누구입네~ 하기만 하면 죄다 무기고 뭐고 다 내던지고 줄행랑을 쳤나 보구먼?”


그 말에 종자 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서 그럴까?

고개가 절로 움직여버렸다.


“이봐, 종자.”

“······.”

“어쩌냐? 네놈 주인께서 땅바닥이 좋다는데.”


기절한 예네스를 발로 툭툭 치는 대머리 산적.

놈이 겁먹은 듯 보이는 종자에게 이죽거렸다.


“쯧쯧, 네놈도 참 딱하다.”

“······.”

“주인 잘못 만났다가 이런 산중에서 개밥이 되게 생겼네?”

“······.”

“아아, 그래도 너무 겁먹지는 마. 저승길 외롭지는 않을 테니까.”

“······.”

“네놈 주인, 그리고 네놈들한테 우리가 여기 있다고 발고한 나무꾼 마을 놈들까지 싹! 한 놈도 남김없이 싹 다 모가지를 따버릴 작정이거든.”


대머리 산적이 부러진 몽둥이를 버렸다.

대신 허리춤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기절한 예네스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였다.


“자, 그럼 우선 이 귀족 나리부터······.”


모가지를 따버려야겠다.

그것이 놈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푸욱······!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마 영원토록 실현될 수 없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커, 커허······?”


눈 깜짝할 새 날아든 비수 한 자루가 목구멍을.

그러니까 대머리 산적의 목을 꿰뚫어버렸으니.


쿵!


짙은 피 분수를 뿜으며 쓰러져버린 대머리 산적.

졸지에 11명으로 줄어든 산적 무리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많이도 남았네.”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도 잠시.

이내 모두가 한 사람을 바라봤다.

대머리 산적을 절명시킨 비수의 주인.

그는 놀랍게도 종자, 칼리 브레이크였다.


“이 빌어먹을 소꿉놀이.”


왼손에 쥔 흑색 비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저 비릿한 표정이야말로 결정적인 증거였으니.


“그놈의 계약만 아니었어도······.”


그가 나머지 산적을 몰살하기까지는.

고작해야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 * *



왕실 기사단 여명의 입단 조건 중 하나.

‘5년 이상의 무사 수행’에는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세상 곳곳을 떠돌며 약자를 도와주고, 악인을 징벌한다 하여 충족되는 조건이 아니다.


케다하스 왕국을 이루는 22개의 영지.

그중 10개 이상의 영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어떤 영지에서 의로운 행위를 거듭했을 때, 해당 영지의 영주만이 내려줄 수 있는 표식.

이름하야 ‘귀빈의 증표’를 10개 이상 획득해야만 비로소 왕실 기사단 여명의 입단 시험 자격이 충족된다는 뜻이다.


귀빈의 증표는 그 이름처럼 언제나 해당 영지의 귀빈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증표였기에, 어지간한 선행으로는 받기가 어렵다.

모르긴 몰라도 영주가 만족할만한 큰 건을 해결한다든지, 혹은 영지 내 민심이 크게 움직일 정도로 다양한 선행을 베푼다든지,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 귀빈의 증표를 노려봄직하다.


“으으음······.”


그리고 그 귀빈의 증표는 지금.

예네스 윈저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영지의 야산 중턱에서 머리통을 얻어맞은 까닭이기도 했다.


“······어?”


얼마나 쓰러져 있었을까?

마침내 눈을 뜬 예네스 윈저.

그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셨습니까, 나리.”

“조, 종자야? 이게 다 무슨······.”


사방팔방에 널브러져 있는 도적 무리.

그들을 살핀 예네스가 종자부터 찾았다.

그는 기절한 예네스 윈저 곁에 앉아 그의 무사 수행 일지를 대신 기록해주고 있었다.


“평소와 같으셨습니다.”

“······뭐?”

“방심한 틈을 타 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으셨고, 그 순간 이성을 잃어 눈이 돌아가셨으며, 압도적인 무위를 바탕으로 12명의 도적 무리를 소탕하셨습니다.”


종자 칼리가 목격한 바를 덤덤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사실과는 다른 것 같다.


“그랬단 말이지.”

“예, 그러셨습니다.”

“으음······!”


하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예네스 윈저.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가 싶더니.


“······많이 놀랐겠구나. 종자야.”

“예? 아, 딱히 그렇지는······.”

“내 너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

“괜히 나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무사 수행을 따라나서지 않았더냐? 심지어 이런 위험천만한 꼴을 하루가 멀다고 지켜봐야 하는 처지이니······.”


예네스의 말은 진심이었다.

요즘 들어 더더욱 미안했다.

하나뿐인 종자, 칼리 브레이크에게.


“나야 윈저 가문의 후예로서 피와 날붙이, 죽음의 냄새에 익숙하다지만, 이 모든 것이 처음인 너로서는 곤욕도 이런 곤욕이 없겠지. 암, 그렇고말고.”

“······.”

“하지만 종자야, 부디 조금만 참아주었으면 고맙겠구나. 내 훗날 오늘의 미안함을 반드시 갚아줄 터이니까. 백 배. 아니, 천 배로 말이다.”


종자 칼리의 어깨를 다독여준 예네스.

그랬던 그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산적의 시체.

그것들을 슥 훑어본 예네스가 말했다.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지요?”

“비록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극악무도한 도적 무리였으나, 이리 방치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

“그 말씀은······.”

“간단하게 화장이라도 해줄까 싶은데, 너도 알다시피 내 비위가 좀 약하지 않느냐? 특히 사람 타는 냄새는 정말이지, 우욱······! 벌써부터 올라오는구나.”


예네스의 말을 간단히 해석하자면 이렇다.

나는 도저히 못 하겠으니, 네가 대신 태워라.


“부탁 좀 하마.”

“······.”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고.

비위가 약한 것은 약한 것이며.

종자는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법.


“쉬고 계십시오. 금방 끝내겠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한숨 푹 자고 일어난 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척 고단한 하루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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