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의 인형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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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바보
작품등록일 :
2024.09.23 16:49
최근연재일 :
2024.09.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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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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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조직의 다이버

DUMMY

엘바니아 사가는 어마어마한 자유도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그 게임은 레벨도, 전직도 없지만 5개까지 선택할 수 있는 특성을 바탕으로 유저들이 원하는 온갖 컨셉으로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었다.


마법과 검을 함께 사용하는 마검사 컨셉의 비교적 흔한 플레이부터 극악한 부작용을 감내한다면 언데드를 부리는 성직자 같은 컨셉까지 가능할 정도로 한계가 없었다.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에 지친 내가 그 자유로운 게임에 빠진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몰랐다.


반복되는 일상을 힘겹게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게임에 접속하는 날을 반복하던 나는 남들이 다 해본 흔한 컨셉을 모두 섭렵했고, 이내 여타 다른 유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갖 기상천외한 컨셉의 캐릭터를 키웠다.


그렇게 키워낸 수많은 캐릭터 중 내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것은 유저들 사이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특성으로 평가받는 <인형술>을 메인으로 하는 인형사 컨셉의 캐릭터였다.


<인형술>은 메인으로 삼을 다른 특성에 비해 지나치게 떨어지는 효율과 끔찍한 난이도의 조작 방식까지 합쳐져 사용하는 유저가 한 손에 꼽히는, 가히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자를 위한 특성이었다.


그러나 그런 점이 내게는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남들이 하지 않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캐릭터.


그 부분은 내게 특별함으로 비춰졌고 그래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캐릭터를 키웠다.

그동안 쌓아온 수많은 노하우와 편법을 총동원해 그 끔찍한 비효율을 넘어섰고 광기에 가까운 노력을 통해 마침내 ‘네임드’ 캐릭터급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얼굴 없는 인형사’


이름도, 얼굴도, 성별도, 본체에 관해 무엇 하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그 행적만으로 칭호를 부여받은 그 캐릭터는 나의 자랑이자 관심과 애정, 그리고 노력이 담긴 아주 소중한 캐릭터였다.


마치 또 다른 나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렇다고 그게 진짜 그 캐릭터가 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빙의시킬 거면 하다못해 엘바니아 사가에 쳐넣던가.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마력이 있는 세계에는 넣어줘야 하는 거 아냐?”


문득 치솟는, 가슴 깊은 곳에서 기어 나온 울분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개소리하지 말고 서둘러.]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통신기 너머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다 끝나 갑니다···. 지금!”


보안 프로그램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무너트리는 것에 성공하자, 화면에 띄운 CCTV 속의 거대한 금고 문이 자동으로 스르르 열렸다.


[열렸다! 돌입!]


그러자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빠르게 금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휴···.”


복잡한 보안 프로그램을 뚫어내느라 혹사당한 머리가 지끈거리고 부하가 걸렸는지 뇌 보조 장치가 기묘한 소음을 일으켰다.


우웅!


“아오, 이 망할 고물. 빨리 새것으로 갈아 끼우던 지 해야지.”


양쪽 관자놀이에 삐죽 튀어나온 뇌 보조 장치가 달아올라 느껴지는 열기에 한탄을 내뱉았다.


[가방이 차는 대로 밖으로 던져!]

[1번 금고 클리어!]

[크레딧 칩만 챙겨라! 부피 차지하니까 나머진 그냥 버려!]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급박한 상황과 달리, 현장에서 제법 떨어진 벤은 조용했다.


“으음···.”


하나둘 금고 밖에 던져지는 크레딧 칩이 담긴 가방과 쑥대밭이 되어버린 로비를 바라보다가 운전석 쪽으로 난 창을 열었다.


“프레디 씨, 밖은 어떻습니까?”


운전석에 앉아 주변을 감시하던 남자에게 묻자, 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무 일 없어. 여긴 D구역이잖아. 외곽 지대에 경찰이 제때 출동하는 거 봤냐?”


“하긴 그렇겠네요.”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왠지 모를 찝찝함에 여전히 작업 중인 CCTV 화면 속의 동료들을 살폈다.


‘동료는 무슨···.’


그러면서도 자조적인 미소로 그들이 작업을 마무리하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벤에 설치된 모니터 중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검은 화면에 희미하지만 내 모습이 보였다.


기껏해야 15살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의 모습.


그런 소년을 은행 강도에 강제로 참가시키는 놈들이나 좋다고 따라온 나나 둘 다 정상은 아니었다.


‘내 세계의 기준으로는.’


그러나 지금 내가 있는 이 거지 같은 세계에서는 별문제가 되는 사항은 아니었···.


“어?”


갑자기 잡히는 이상 신호.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급히 통신기에 소리쳤다.


“바, 방위대 출현! 빨리 빠져나오···.”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흔들리는 벤.


“이런 미친!”


열린 운전석 방향의 창에서 들려오는 프레디의 비명.


어느새 모두 검게 변해 버린 화면을 확인하고 서둘러 목뒤의 포트에서 연결선을 분리했다.


“프레디!”


“꽉 잡아! 간다!”


그리고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자, 급히 출발한 벤이 빠르게 D구역의 밖을 향해 내달렸다.










짝!


“윽!”


뺨을 후려치는 거대한 손바닥에 꽉 깨운 입술 사이로 짧은 비명이 스며 나왔다.

고통을 참고 서둘러 고개를 원위치시키자 거대한 거구의 남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현장에 투입된 놈들은 모두 몰살했고, 너희만 살아 돌아왔다?”


“···.”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자, 만신창이가 되어 널브러진 프레디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희귀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많이 편의를 봐줬는데, 이거 영 쓸모가 없는데? 방위대의 출현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어느새 다가온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슴을 밀었는데, 그의 팔 전체가 의수인 만큼 쇳덩이에 치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망할 놈.’


본래 다이버는 재능만큼이나 장비빨을 많이 받는데,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지원해 준 적이 없는 놈이 많은 것을 바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박살 난 프레디(였던 것)을 보니 다이버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작 둘이 살아왔다는 이유로 프레디를 두들겨 팬 남자, 마커스는 혀를 차며 자리에 앉았다.


“저 쓰레기는 처리하고 저 애송이는 한동안 독방에 처넣어.”


“네, 마커스 님.”


대기하고 있던 마커스의 똘마니들에게 독방으로 끌려가면서도 곧 ‘처리’당할 프레디를 슬쩍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앞으로 다신 그를 볼 수 없을 것이 뻔했다.


끼익! 쿵!


독방의 문이 닫히고 방 안에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웠기에 바닥을 더듬어 벽까지 이동한 다음 벽에 기대어 앉았다.


“쓰레기 같은 세계···.”


그리고 왜 하필 이런 빌어먹을 세계에 떨어졌는지 한탄했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익숙한 외형의 소년.


처음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내가 엘바니아 사가의 ‘얼굴 없는 인형사’ 에딘의 몸으로 깨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기대감에 가득 찼었다.

지루한 현실이 아닌, 신비로운 힘이 존재하는 엘바니아 사가에 들어왔다는 기대감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손끝에서 시작한 얇은 푸른 선이 대충 흙을 뭉쳐 만든 흙인형을 움직였을 때, 그 기분은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내 내가 눈을 뜬 이 세계가 신비가 가득한 엘바니아 사가와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것을 파악했을 때 굉장히 당황했다.


삭막하고 건조한 대기 어디에서도 신비로운 힘은 느껴지지 않았고, 뿌연 하늘은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도, 은은하게 어둠을 비출 달과 별도 모두 가리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과 콘크리트의 도시와 그 도시를 둘러싼 거대한 장벽, 그리고 그 장벽 너머로 펼쳐진 망가진 세계.

이 세계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모든 사실들이 들뜬 마음을 아주 차갑게 식혀버렸다.


그리고 가장 심각했던 것은 이 세계의 대기에는 마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조악한 흙인형 하나를 조종하는 것만으로도 모두 소모한 체내의 마력은 다시 저절로 차오르지 않았다.

마력이 없기에 당연히 대부분의 특성 효과가 비활성화될 수밖에 없었다.


일부를 제외하면.







독방에서 나오자 수많은 일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뒷골목에 흘러 들어온 데이터칩의 해독, 보안 프로그램이 가동된 의체의 재조정, 조직 내부 서버 정비 및 보안 점검 등 다이버로서 조직에 합류(?)한 이후 늘 내가 맡았던 업무들이었다.


익숙하게 낡은 접속기의 연결선을 목뒤의 포트에 꽂고 밀린 업무를 하나씩 해결했다.


“의체 조정은 끝났고···.”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알고 싶지도 않은 온갖 물건들의 보안을 파헤치고 재조립해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그 의체의 보안 수준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었기에 쉬운 것부터 시작해 빠르게 일을 쳐냈다.


데이터칩 역시 마찬가지.


사실 뒷골목까지 굴러들어 오는 데이터칩의 경우 대부분 쓸데없는 내용이었기에 해독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정말 한 번씩 문제가 될 수 있는 데이터칩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괴상한 요리 정보가 담긴 데이터칩을 처리하고 마지막 레드문의 서버를 점검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제는 익숙한 감각이 의식을 사로잡고 잠시 뒤 눈을 떴을 때는 서버의 내부에 들어와 있었다.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 서버 대부분이 내 손길을 거쳤기에 능숙하게 프로그램의 상태를 점검했다.


“흠···.”


별문제가 보이지 않아 빠르게 점검을 끝냈고 서버를 빠져나왔다.

연결선을 포트에서 뽑아내자, 무거웠던 머리가 금방 가벼워졌다.


“끙···.”


과도한 정보를 처리하느라 고생한 뇌와 뇌 보조 장치를 식히기 위해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게임 캐릭터에 빙의해 이 세계에 떨어진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마력의 부재로 특성의 대부분이 잠기며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레드문이라는 조직에 의탁한 지 3개월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내가 가진 특성 중 하나인 <화신체>를 이용해 제법 뛰어난 다이버가 되기는 했지만, 마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낮은 수준의 특성 효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한계까지 개발이 끝났다.


여기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내게 이식된 낡은 뇌 보조 장치를 더 뛰어난, 새것으로 바꾸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럼 돈이 필요한데···.’


기본적으로 의체 가격이 높은 데다가, 다이버처럼 특수한 용도의 의체 같은 경우는 그 가격이 또 천차만별로 치솟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조직에 벌어주는 돈에 비해 내게 떨어지는 돈은 매우 적었다.


‘삼류 조직이 다 그렇지.’


뒷골목 조직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 없었다.


‘하다못해 무력이라도 멀쩡했다면···.’


새삼스럽게 마력의 부재가 아쉬웠다.


무력이 충분했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았다.

레드문에서 빠져나가 홀로 살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유일한 다이버라는 위치를 이용해 조직에서 더 많은 것을 뜯어낼 수도 있었다.


“아닌가? 그 새끼 때문에 힘들었으려나?”


잠시 머릿속에 레드문의 보스, 마커스의 얼굴과 충격적이었던 첫 만남이 스쳐 지나갔다.


“에휴···.”


답답한 상황에 습관적으로 도시 전산망의 이면에 존재하는 다크넷에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넘기며 출처 불명의 정보들을 훑어 내리고 있을 때,


“어?”


무언가를 발견하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거 확실해?”


역시나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였지만 첨부된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지금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존재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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