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태양 아래 내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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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젠
작품등록일 :
2015.12.18 15:46
최근연재일 :
2015.12.22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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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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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 1

DUMMY

가을바람을 타고 떨어진 낙엽들이 정신없이 달려가는 근위대 막내, 정의 발아래서 산산이 부서졌다.


“근위대장님! 큰일입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연무장에서 검술을 연마하는 근위대장을 찾는 건 근위대 사람이라면 식은 죽 먹기였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을 떨어?”


숨까지 헐떡이는 정을 보며 근위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궁의 규율을 지키는 자로서 저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부하의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어명이옵니다.”


입맛을 다시며 칼집에 칼을 꽂아 넣던 자웅이 부하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근위대장직에 오르자마자 후궁의 경비를 맞게 된 이후로 제대로 된 명령을 받은 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참으로 달콤한 말이었다.


“어서 말해 보거라.”

“마을에 사는 악녀를 죽이라는 명입니다.”

“악녀라니?”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궁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퍼져있는 악녀에게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는 대장의 표정을 본 정이 고개를 저었다. 검술과 싸움을 빼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문이 결코 헛소문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 정이었다.


“남문으로 나가면 마을 끝자락에 폐허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불행을 몰고 다니는 악녀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마을은 물론 궁에까지 쫙 퍼졌습니다.”

“근데 그 악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전하께서 친히 어명까지 내렸단 말이냐?”

“그게, 실은 후궁의 부탁으로 전하께서 어명을 내리신 것입니다.”


후궁이라는 말에 자웅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졌다. 마을에서 평민을 보쌈해오는 게 취미인 왕의 눈에 든 덕분에 후궁의 자리에 앉고 난 뒤 그녀가 보여준 행실은 입에 담기도 끔찍할 정도였다.


“또 후궁이냐?”


이마를 짚은 대장을 바라보던 정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후궁께서 강아지를 한 마리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최대한 대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강아지를 찾기 위해 근위대 전체가 삼일동안 잠도 못 잤던 걸 생각하면 검을 쥔 자웅의 손에 힘이 들어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강아지를 찾았다고 합니다.”


개 한 마리 없어졌다고 자신에게 온갖 짜증을 부리던 후궁의 얼굴을 떠올리며 치를 떨고 있던 자웅의 표정이 살짝은 밝아졌다. 매일 마주칠 때마다 그 개의 소식을 묻는 통에 영 죽을 맛이었다.


“어디서 찾은 것이냐? 궁이랑 궁은 다 뒤졌었는데.”

“그게, 마을 남쪽 폐허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남쪽 폐허면 악녀가 산다는 곳 아니냐?”

“맞습니다. 강아지를 찾아온 게 바로 그 악녀였습니다.”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흐르자 근위대장의 얼굴이 눈에 띠게 밝아졌다.


“그럼 상을 줘야지, 도대체 왜 악녀를 죽이라는 것이냐?”

“오늘 아침에 강아지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궁께서는 그게 그 악녀 탓이라고..”

“하… 이래서 노비들이랑 왕족은 결혼을 금지해야한다니까. 권력이란 걸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잖아.”


자웅이 다시 한 번 칼집에 꽂혀있는 검신을 쓰다듬었다. 짜증이 나거나 불만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습관 중 하나였다.


“앞장서거라. 내 직접 가마.”


기분이 나쁠 때면 주위는 돌아보지도 않는 대장의 성격을 아는 정으로서는 아무 말 없이 그를 폐허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가서 저주 받기 싫다는 말을 꺼냈다가는 곧장 목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이곳이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지붕 전체가 검게 물든 초가집을 바라보던 자웅이 물었다. 하지만 겁에 질린 채로 저 멀리 떨어져있던 정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곳이냐고 물었다!”


고함소리에 놀란 정이 덜덜 떨리는 다리로 대장의 옆에 서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이름만으로 사람을 떨게 만든다는 근위대가 이제는 스스로 저리 떠는 꼴이라니, 대장으로서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혹여나 내가 놓칠지도 모르니 너는 여기서 기다리거라.”


으스한 분위기를 잔뜩 뿜어내는 폐허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들뜬 정이 존경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자웅을 바라봤다. 자웅은 부하의 그런 낯간지러운 시선을 무시한 채 좁은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것 봐라?”


밖에서 봤을 땐 사람이 사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안에는 온통 사람 냄새로 가득했다. 구석에 양동이에는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아있었고, 방 앞에 놓인 신발은 흙도 거의 묻지 않은 새것이었다.


“게, 누구 없느냐?”


자웅이 절차에 따라 큰소리로 죄인을 부르자, 조용히 열린 문틈 사이로 천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여인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네가 이 폐허에 산다는 그 악녀가 맞느냐?”

“세간에서는 그리 불리고 있는 듯하옵니다.”


그의 목소리에 답해온 건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였다.


“죄인은 당장 이리 나와 어명을 받들라!”


자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드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이 소리없이 자웅의 앞에 섰다. 하얀 소복을 입고 있었지만 무섭다기 보다는 신비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죄인은 어제 이곳에서 발견한 개를 궁에 가져다 준 적이 있느냐?”

“그렇사옵니다.”


그가 진중한 분위기를 지키려고 했지만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헛기침을 토했다.


“그 개가 오늘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죽었다고 한다. 혹, 이 일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느냐?”

“소인이 발견하였을 당시에 이미 많이 다쳐있었습니다. 목에 두른 비단이 왕실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궁에 데려다주었지만 그 뒤에 일은 저도 모르고 있었사옵니다.”


이쯤 되자 자웅은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지금 이 여인을 죽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어찌 그냥 나오십니까?”


울타리 너머로 자웅과 악녀의 대화를 훔쳐보고 있던 정이 악녀를 그대로 둔 채 밖으로 나온 대장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네 눈에는 저 여인이 악녀로 보이더냐?”


정이 고개를 젓자, 자웅은 아무 말도 없이 언덕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후궁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만히 서있던 정이 조금씩 멀어지는 대장에게 바짝 따라붙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네가 돌아가서 목을 베어 오거라. 내 여기서 기다리마.”


자웅이 제자리에 멈춰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닙니다. 얼른 돌아가시지요.”


으스스한 초가집을 떠올린 정이 고개를 저으며 앞장섰다. 뒤를 돌아 초가집을 한 번 바라본 자웅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부하의 뒤를 따랐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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