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정리의 시작
‘크리에타는 영혼이 기억합니다, 주군. 굳이 나눈다면 무술이 아닌 영술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렇기에 크리에타를 익혀 건강해진 영혼은 육체가 약해지거나 병들었을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합니다.’
당시에는 이리얀이 일부러 과장하여 말하는 것인 줄 알았었다. 전생의 강성우, 리온이 크리에타를 열심히 익혔으면 하는 마음에 한 하얀 거짓말.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리얀의 말. 크리에타는 영술이란 말. 그거, 진짜였구나.”
아침에 그리 힘든 운동들을 했음에도 전신에선 활력이 넘치고 힘이 충만했다.
현생의 발달된 과학문명적 관점에서 봐도, 전생의 마도문명적 관점에서 봐도. 이렇게 빠른 체력의 증가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맙다, 이리얀. 너의 잔소리가 지금에서 나에게 이리 큰 도움이 되는구나.’
강성우가 집에 들어가 씻고 나오니 어느새 아침 여섯시 50분이었다.
동생 강수영이 등교하는 시간이 아침 7시 30분. 강성우는 그보다 좀 더 늦은 7시 4~50분가량이었다. 어머니인 임봉숙은 이미 출근을 한 상태.
강성우는 자신과 동생이 먹을 밥을 빠르게 하기 시작했다.
우선 어제 먹고 남은 김치찌개에 남은 햄 조금과 라면사리 반개를 물과 함께 넣어 새로 끓이고 후라이팬을 꺼내 계란 프라이를 만들었으며 냉장고 속에 들어가 있던 밥을 전자렌지에 돌려 데웠다.
이제 식탁에 음식들을 놓기 시작하는데 어느새 시간이 7시 15분이었다.
문을 벌컥 열며 강수영이 방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상을 차리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다 얼음이 된 것처럼 멈춘 강성우와 눈이 마주쳤다.
감동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던 그녀는 곧 일부러 앙칼지게 말했다.
“왜 쓸데없는 짓은 하고 그래! 밥은 내가 차릴 테니까 오빤 오빠 앞가림이나 잘하란 말이야!”
강성우는 그저 포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신 차리고서 처음으로 음식을 해본 거라, 뭐가 제대로 된 건지도 모르겠네. 앉아 수영아. 같이 밥 먹자.”
“아 싫어! 오빠나 먹어.”
그렇게 말하고 강수영은 홱 돌아서 집 밖으로 나가려다 입술을 깨물며 다시 되돌았다.
그리고 쿵쿵 거리며 걸어가 식탁에 앉았고. 최대한 빨리 먹고 나가겠다는 듯 공격적으로 밥을 떠서 먹기 시작했다.
달그락, 우물우물. 달그락······.
두 사람이 말없이 밥을 먹는 소리가 다른 템포로 집 안에 울려 퍼지고. 강성우가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다 이해해.”
그 순간 강수영의 빠르고 공격적이던 숟가락질이 멈췄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서 투명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빠는 다 이해해, 라는 말이 왜 이리 아프게 가슴을 후벼 파는지. 강수영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오빠와 있었던 일들과 최근에 잘못한 일들 등이 떠올라 도무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뚜둑, 뚝뚝뚝······.
천천히 흐리기 시작했던 눈물은 이내 폭포수처럼 흐르기 시작하였고, 요새 부쩍 진해지고 있던 강수영의 화장이 엉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다 커서도 이런 울보라니.”
강성우가 손을 뻗어 강수영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차마 할 수 없었던 말을 했다.
“오빠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말하고서 강수영이 어깨를 파르르 떠는데, 따뜻한 손길이 어깨에 닿아 토닥여주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 수영아. 오빠는 다 이해한다니까. 그게 가족이잖아.”
그 말에 강수영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오빠인 강성우가 이제 병이 나은 것에 대한 기쁨과, 동네에서 바보라 불리던 오빠 때문에 당하던 설움과 슬픔, 근래 잘못했던 것들 등등이 한꺼번에 버무려져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니 자기 자신도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 강성우는 동생 몰래 눈가를 훔치며 다정스레 강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면서 보이는 이상한 것 하나.
바로 반창고였다.
‘······얼굴인데. 어지간해서는 다칠 일이 없는 곳인데 왜 다친 거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잘못하면 지각할 시각이었지만 강성우는 엉망이 된 얼굴을 급히 고치고 헐레벌떡 뛰어나간 동생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집 근처의 뒷골목에서 옷이며 머리 등등이 불량스런 아이들에게 가서 어울리는 동생을 보고 뒷목을 잡았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기 마련이지. 끙.’
곧 남자들이 학교에 바래다준다니 어쩌니하며 소리도 요란하게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동생은 한 남자애의 뒤에 올라타 학교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니, 여태껏 이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던 다른 중학생들이 쭈뼛거리며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야, 너!”
강성우가 그런 아이들 중에 안경을 쓰고 겁 많아 보이는 아이를 지목하여 앞으로 가니, 안경 쓴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네? 왜요!?”
바이크를 타고 사라진 양아치들쪽을 턱짓하며 강성우가 말했다.
“쟤네, 누구냐?”
***
사실 박종식은 학교에 오자마자 다시 강성우를 찾아가 뭐가 됐든 간에 싸움을 걸려고 했었다.
하지만 등교하여 자리에 앉는 강성우를 보자마자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다리가 후들거려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비······ 빌어먹을. 젠장! 어떻게 해야 되지? 오늘 내가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일진들이 나서서 직접 처리할 거고. 그러면 나도 똑같이 망하는 거야! 죽겠네 진짜.’
박종식이 일진들에 대한 두려움과 강성우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때. 그를 고뇌에 빠뜨린 당사자가 찾아왔다.
바로 강성우였다.
“박종식. 너네 패거리가 점심시간에 모이는 장소가 어디냐?”
퍽!
배를 걷어차이면서 뒷걸음질 쳤던 초라한 행색의 남자애는 쭈뼛거리며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엔 싸다귀가 날아왔다.
짜악!
때리는 건 두세 명이고 둥글게 서서 지켜보는 건 대여섯 명의 일진들이다. 다른 한쪽에선 역시나 더럽혀진 교복의 여자애가 여자 일진들 사이에서 맞고 있었다.
“하! 역시 이 새끼는 뭔가 때리는 맛이 없어. 강성우 그 새끼가 딱이었는데 말이야.”
손목시계까지 풀고 구타를 하던 전문현의 말에 다른 일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하긴 그렇네. 근데 어쩌냐? 그 새끼 병이 다 나아서 정상인 되었다며. 킬킬, 진짜 정상인인지 병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들도 주목하고 있고 껄끄럽단 말이지. 당분간은 지켜보는 게 맞아.”
거기까지 말할 때였다.
꽤나 넓던 체육 창고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학생이 들어왔다.
“뭐야?”
“어? 저 새끼 강빡이잖아?”
강빡.
강성우란 이름에 박약아를 합성시켜 만든 강성우의 별명이었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일진들의 흉흉한 눈길 속에서, 강성우는 아무렇지 않게 휘적휘적 움직여. 구석에 있던 의자 하나를 꺼내와 문 앞에 놔두고 보란 듯이 앉아 다리를 꼬았다.
거기서 고작해야 어린 양아치일 뿐인 그들이 흉내 내려고 해도 할 수 없을 기품과 자신감 등이 넘쳐흐른다.
강성우가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이야기 좀 해볼까?”
- 작가의말
주로 대사들을 위주로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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