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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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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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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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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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그림자 141

DUMMY

진홍은 연옥빛 천담복을 입은 채로 서안 앞에 바짝 다가앉아 조보를 한장한장 넘기며 차분히, 또 따분히 읽는 참이었다. 매미 울음소리가 맹렬한 한여름날인데도 무릎에 세모시이불을 덮고서.


"마마, 정녕 덥지도 않으시옵니까?"


대청마루쪽 장지문을 지키는 상아가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힌 채로 묻는 말이었다.


"더우면 이불을 덮겠느냐?"


진홍은 배시시 웃었다. 상아의 질문을 받고 보니 진홍은 문득 七月칠월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戊午 康熙 十七年 七月一日 第六

무오년 강희 17년 7월 1일 여섯번째 기별

院前啓, 請還收金壽恒量移之命

승정원에서 김수항의 양이를 환수해달라고 청하였다.

請還收鄭祥龍·尹櫶·尹憲卿·崔錫鼎·趙根及代射·漏籍者, 逆獄緣坐人等, 放釋之命,

또한 정상룡, 윤헌, 윤헌경, 최석정, 조근 등을 석방하라는 명을 환수해달라고 청하였다.


벌써 7월...매미울음이 귀청을 휘감다시피 하였다. 무더운 여름철 한낮이라 통명전 서온돌의 장지문을 모조리 활짝 열어놓아서 더 시끄러울까. 문간 좌우로 지키고 선 지밀나인들과 상궁들은 힘찬 매미울음이 지겨운지 어깨를 움츠리는 참이었다.


"하오시면, 문 좀 닫으면 아니 되옵니까? 매미소리가 시끄러워 죽겠사옵니다..."


상아가 참다 못해 애원하듯 아뢰다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상전은 눈웃음을 머금고 맞은편 동온돌을 쳐다보며 대꾸했다.


"맞바람이 쳐야 전하께오서 좀더 시원하시지."

"..."


상아는 더는 대꾸도 못하고선 진저리를 쳤다. 이미 맞은편 동온돌도 장지문이 모조리 열린 채로 그 좌우로 지밀나인들과 두광이 문간을 지키고 서 있었다. 물론 그들도 똑같이 귀 따가운 매미소리에 몸서리를 치면서.


마침 숙종은 지도책을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보다가는, 익선관이 땀에 젖어 이마에 착 달라붙어 짜증스러운지, 익선관 틈새로 손가락 끝을 넣어 사브작사브작 잡아떼는 참이었다.


숙종은 다시 배소단자配所單子(유배지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집어들었다. 형조판서의 이름만 빠진 채로, 먼저 형조당상에 임명되어 사은까지 정식으로 마친 이하진과 강수학의 이름만 수결이 된 종이였다.


罪人 李東亨 죄인 이동형

罪目 罪犯 伸救 죄목 죄범 신구

配所 慶源府 배소 경원부

康熙 十七年 七月二日 광희 십칠년 7월 2일

刑曹參判 李夏鎭 형조참판 이하진

刑曹參議 康遂學 형조참의 강수학


배소단자를 훑어보던 숙종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하필이면 칠월七月 부분이 시꺼멓게 번졌다. 손에 묻은 땀 때문이었다. 숙종은 얼굴을 와락 구기고서 시꺼멓게 변한 손가락을 배소단자 귀퉁이에 쓱쓱 문질렀다. 그리고는 다시 지도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동형의 유배지가 경원부라?


두만강의 서쪽에 慶源府경원부라는 글씨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머리에 쓴 익선관 틈새로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미간으로 흘러내렸다. 땀이 눈물샘으로 흘러들어 눈이 몹시 따가웠다.


숙종은 다시 손가락을 익선관 틈새로 넣어 꼬물꼬물 땀을 닦아내곤 지도책을 보며 손가락으로 가만히 짚어보고, 손가락을 쭈욱 내리그어 한양을 짚어보았다. 그런데 또 검은 얼룩이 번졌다. 숙종은 인내심이 폭발하여 짜증스레 두광을 불렀다.


"두광아!"

"예에!"


두광이 쪼르르 달려오자 숙종은 턱짓으로 서안 위의 접부채를 가리켰다. 워낙 몸에 열이 많아 더위를 타는 자신이었다. 당연히 부채를 부치라는 손짓이었다.


두광은 팔이 빠져라 부채질을 하게 생겼기에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자꾸만 손가락을 흠뻑 젖은 익선관 틈새로 찔러넣는 왕을 보니 군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잔소리를 할 수 밖에.


"전하, 자꾸 손가락을 넣으시면 매미가 늘어나옵니다."

"..."


익선관을 이마에서 좀 떼어놓으려고 그 틈새를 비집던 숙종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숙종은 뜨끔하여 두광의 얼굴을 눈치 보았다. 얄궂게도, 또 얄밉게도 두광이 씨익 웃었다.


"매미는 백성들의 피땀이오니 부디 아끼시옵소서."


기어이 한마디를 더 내뱉고서 냉큼 부채를 잡는 두광이었다. 그 모습에 숙종은 지지 않고 받아쳤다.


"나는 네 팔을 아끼느라 매미를 버리는 것인데?"

"..."


두광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숙종은 쾌감을 느끼며 한마디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얼른 부채나 부쳐라. 팍팍."

"..."


순간 건너편에서 서온돌의 지밀나인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숙종의 예민한 고막에 잡혔다.


"전하도 참. 더위를 너무 타셔."

"그러니 우리 중전마마께오서 맞바람 치라고 문을 다 열어두시지. 정작 본인은 무릎에 이불 덮어가며. "


숙종은 두광의 고개를 옆으로 밀치며 대청마루 맞은편의 진홍을 쳐다보았다. 진홍은 서안에 기나긴 종이들을 쌓아두고 입안 가득 바람을 채우는 참이었다. 정말로 무릎에 이불을 덮고서.


"중궁! 또 어마마마한테 조보를 받아왔소?"

"네?"

"조보 받아왔냐고!"


숙종은 목청을 돋우다가 인상을 썼다. 자신은 귀는 트인 대신 목이 답답했다. 세칸이나 되는 대청을 가로질러 중궁과 대화를 하자니, 목이 부을 지경이었다.


숙종이 목을 부여잡고 마른침을 꼴깍 넘기는 모습에, 두광은 부채질을 하면서도 키득거렸지만, 진홍은 웃지도 않았다.


"..."


"아...예. 전하께오서 이번에 형조판서에 제수하신 남용익이 누구인지, 가르침도 들었사옵니다."

"..."


숙종의 눈가가 실룩였다. 어마마마도 참. 서인이 형조판서가 되었으니 기꺼우셨으려나, 아니면 최석정의 인맥이 이어졌으니 고까우셨으려나. 중궁의 얼굴을 보니 둘 다인 것 같았다.


진홍은 자경전에서 쌉싸름한 국화차를 마시면서 나눈 대비 김씨와의 담화를 떠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에 노란 국화차 빛깔이 그대로 담겼다. 그녀의 시어미는 노상 서인과 남인의 계보를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귀에 딱지가 앉아서 떨어지지도 않도록.


- 어마마마, 남용익이 누군지, 박신규가 누군지, 누가 서인이고, 누가 남인인지, 신첩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이옵니까? 소첩은 정치엔 관심이...

- 알아야지요. 알아야 정치적 동반자로 함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소한 말귀라도 통해야지 않겠어요? 주상은 지금 진솔한 말벗이 필요해요. 그러니 언제든지 주상이 허심탄회하게 정치 얘기를 하고 싶게끔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으란 말입니다.


"헌데 전하께오선 어찌하여 애먼 매미, 아니 익선관한테 화풀이를 하시옵니까?"


진홍은 그저 대비전 기억을 떨치려 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묻고 나니 정치 얘기가 될 것 같은 느낌에 괜히 손발이 움츠러들었다. 시어미에게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물어놓고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진홍은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 모습에 숙종은 괜히 밑지는 기분이 되었다.


"이보시오. 중궁. 중궁이 소근소근 말하여도 나는 카랑카랑 들리오. 헌데 내가 카랑카랑 말하면 중궁은 소근소근 들리면서, 물어놓고 오히려 뒤로 상체를 빼다니? 태도가 나쁘오. 아주 나쁘오."

"정치 얘기가 되실까봐..."

"쳇. 또 생각해주는 척..."

"진심이옵니다."

"허면 이리 가까이 와서 말을 하시오. 내 목청을 아낄 겸."


숙종이 응큼한 눈웃음을 치며 살랑살랑 손짓했다. 진홍은 움찔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목을 쉬시는 게..."

"내가 매미한테 계속 화풀이를 해도 좋으오?"

"..."

"이리 와서 이 매미가 찐득하게 달라붙지 않게 땀 좀 닦아주시오. 어서어서."

"전하, 그런 일은 두광이한테도..."

"난 내 얼굴에 아무나 손 닿는 게 싫소."

"..."


진홍은 결국 대청마루를 건너와선 고운 손으로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숙종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숙종은 진홍의 손가락끝이 스치고, 닿는 감촉이 좋은지 눈꼬리가 살며시 풀어졌다.


"헌데, 요즘엔 어째 조보 읽는 모습이 자주 보이오? 재미 있소?"

"전하께오서 최석정 하나를 사면하시려고 윤헌, 정상룡 등 아홉을 사면하라 명하시어 신료들과 싸우시는 모습은 재미 있사옵니다."

"이런, 내가 중궁을 정치에 맛들리게 해버렸군. 그래 어마마마께오서 남용익에 대해 뭐라 하시었소?"

"자신은 죄인 송시열의 제자라며, 형조판서직을 고사하고 여태 사은숙배도 미룬다 들었사옵니다."

"흥.."


숙종은 코웃음을 쳤다. 그나마 남용익이 최석정과 줄이 닿았으니 개성유수일 때도 파직을 시키지 않았고, 또 한성부 판윤으로 삼았고, 지금은 형조판서로 삼았다. 뭇 남인들의 떨떠름한 시선을 내심 즐기면서 고신도 내렸겠다, 공식으로 부임하는 마지막 관문인 사은숙배만 남았...


"전하, 형조판서 남용익이 사은謝恩을 청하였사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


숙종은 살짝 일그러진 얼굴로 대청마루 쪽을 쳐다보았다. 늘 하던 일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갑자기 하기 싫을 때가 있다. 특히나 지금 이 순간. 오늘따라 굳이 사은숙배를 받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눈앞에 꽃같은 중궁의 얼굴이 있는 판에.


"남용익이?"

"예 전하.."

"이 시간에?"

"아직 정오가 안되었사옵니다."


두광이 대청마루에서 소반째로 사은단자를 받아들고 씨익 웃으면서 답하였다. 대청마루 앞을 흘낏 내다보며, 남용익이 이미 대청마루 앞에 와 있다는 것을 눈짓으로 알려주며. 숙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시간이 얼마나 남았더냐?"

"일각이 남았사옵니다."

"좀 일찍 좀 오지. 벌써 정오가 다 되었잖은가."


시간을 문제삼으려 하였더니 하필이면 정오가 안되었다니. 그래도 숙종은 사은을 받지 않으려고 계속 생트집을 잡았다. 그 속내를 모를 리가 없는 두광이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남용익이 며칠째 사은을 미룬 것에 대한 옹졸한 보복인지, 아니면 중궁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겠다는 옹골찬 일념인 건지. 헌데 두광의 뒷덜미를 왕의 옥음이 잡아당겼다.


"그냥 사은단자謝恩單子만 내고 가라 하라."

"예에? 여태 기다려 놓으시곤..."

"사은단자면 되었다."

"하오나...예법이..."


두광의 말을 우승지의 음성이 가로채었다.


"전하, 신 우승지 이원록 감히 사뢰옵니다. 지방과 달라서 중앙은 사은을 아니하면 정식취임이 안되는지라..형판대감이 하관들을 통솔하기가..."

"참으로 번거롭구나. 처음 한번하면 됐지, 왜 매번 그때그때 하고 또 하는 건지."


숙종은 새삼스레 투덜거리면서 눈앞의 진홍을 흘끗 쳐다보았다. 진홍이 마침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


숙종은 어쩐지 아까운 마음에 진홍의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었다. 진홍은 숙종에게 눈을 곱게 흘기며 숙종의 손을 놓으려 했다. 하지만 숙종이 손깍지까지 하여 더욱 단단히 그러쥐었다.


"전하..."

"..."

"놓아주시옵소서."

"난 안 놓을테니 그대가 놓아보든지."


숙종이 손깍지를 한 손가락 마디마디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진홍은 손을 빼내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하...사은을 받지 않고 남용익을 그냥 돌려보내시면 신첩이 어마마마께 꾸지람을 듣사옵니다. 당장 대조전으로 옮기라 하실 것이옵니다."

"알았소..."


숙종은 입을 비죽이며 진홍을 쏘아보았다. 나라고 모를까. 억지가 맞다는 것을. 그래도 억지라도 좀 받아주면 안되나.


숙종의 손가락이 스르르 풀리자마자 진홍은 곧장 일어서서 대청마루로 건너갔다. 서온돌 장지문이라도 열어두길 바랐지만. 곧바로 눈앞에서 스르르 닫혀버렸다. 숙종은 안타까움에 손을 뻗었다.


"자, 잠..."


이미 눈앞에서 중궁의 얼굴이 닫혔다. 짧은 순간 문 틈새로 놀리듯이 웃는 눈웃음을 끝으로. 숙종은 한숨이 턱에 차서 대청 앞으로 눈길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마침 흰 백의에 오사모烏紗帽, 흑각대黑角帶까지 엄숙하게 갖춰입고, 사은단자를 두손에 든 남용익이 희끗한 수염이 흔들리도록 침 섞인 웃음을 내뿜는 참이었다. 그 옆에 선 우승지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슬그머니 제 팔뚝을 긁기까지 했다.


"경건하게 사은숙배하는 자리에, 누구는 흥건하게 침을 튀기고, 또 누구는 불건하게 이를 튕기고."

"흠, 흠..."

"송구하옵니다. 하오나 이가 아니라 그저..."

"우승지는 들어오지 말고 밖에 있으라."

"예? 예? 하오나 3품 이상 대신과의 독대는 불가..."

"문을 열어둘테니 귀를 씻고 들으면 되지 않는가? 난 더러운 건 질색이라서."

"..."


왕의 면박에 우승지는 할 말을 잃었다. 팔뚝 한번 긁었다가 동온돌 안으로 입시도 못하게 되었다. 장난인가 슬쩍 왕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폈더니, 그 눈은 진짜였다. 오히려 사은 자체가 넌더리가 나는지 승지라도 떼어내려 대뜸 꼬투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사실 신하나 왕이나 피차 아는 사이에 사은숙배만큼 지루한 건 없었다. 사은단자에 사은전이든 사은표든 뭘 적어놓든간에, 맨날 보는 얼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기에. 피차 고신을 주고 받을 때 얼굴 보면 되었지, 또 사은단자라 하여 주절주절 사은전을 적어 가져오고 또 절을 올리고 하는 것도, 사은전을 읽고 또 절을 받고 하는 것도 피곤했다.


결국 남용익이 혼자 사은단자를 들고 동온돌로 입시했다. 그는 다 보았다. 왕과 중궁 사이에 오가는, 서로를 감질나게 간질이는 듯한 그 눈길을, 그 음성을. 이 얼마나 천만다행인가. 중궁이 남인이 아니라 서인이라서, 또 왕의 눈길과 손길을 받는 유일한 여인이라서, 왕이 자신을 귀찮아하는 이 순간이 차라리 좋았다. 물론 대청 아래로 외떨어진 우승지는 달갑지 않겠지만.


"신, 형조판서 남용익, 전하를 뵈옵니다."


남용익이 사배례를 올리는 것을 숙종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모두 네번의 절을 마치고 남용익은 다소곳이 일어섰다가는 다시 숙종 앞에 꿇어엎드렸다.


"그렇게 버티더니 때를 참 잘 골랐군?."

"송구하옵니다."


숙종은 남용익을 힐끗 노려보곤 서안 위에 놓인 사은단자를 집어들고 가만히 훑어보았다.


"헌데 이 사은전은 참으로 담백하군? 보통은 일월日月과도 같은 군주의 성덕이 천지를 뒤덮는다느니, 규곽葵藿(해바라기)의 정성으로 보필하겠다느니, 구구절절 구질구질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데 말이지."


왕의 혀끝은 모질고 독하고 신랄했다. 하지만 남용익은 부드럽게 웃으며 답하였다.


"신이 재주가 미천하여...알곡 같은 글로 향기로운 술을 빚는 경지는 못되옵니다."

"술이라?"

"..."


숙종이 차갑게 되묻자, 남용익은 희미하게 웃음지었다. 숙종은 서안 위에 놓인 주소인설酒小人說을 힐끗 읽어보며 답하였다.


"글로 술을 빚어 무엇할까. 그저 밥을 짓는 경지면 된다."

"황공하옵니다."


남용익이 안도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자신이 근래에 쓴 주소인설을 왕은 읽었다. 그냥 술타령일 뿐이지만, 신하로서의 포부 같은 것도 깃든 글이었다. 임금을 취하게 만드는 술이 아니라, 힘을 주고 병을 낫게 하는 밥이 되고 싶은, 그렇게 백성에게 바른 정치를 펴는 신하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 소박한 포부를 왕이 알아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은을 하루만 빨리 하지 그랬나. 그랬으면 여기 배소단자에 형판의 이름이 빠지진 않았을텐데."


숙종은 서안 위의 배소단자를 손가락끝으로 콕콕 찍어대며 피식 웃었다.


남용익의 눈길이 서안 위로 향하였다. 배소단자 밑에 깔린 지도책이 눈에 들어왔다. 유배죄인의 귀양지까지 꼼꼼하게 찾아보는 집요함이라니.


남용익이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실룩거리자, 숙종은 피식 웃었다.


"아, 경원부가 어디인가 궁금해서 한번 펴보았다. 두만강 인근이던데...죄인 송시열을 비호한 이동형에게 아주 적합한 곳이더군."


숙종이 손가락으로 짚어보인 지점은 함경북도 북단...송시열을 비호한 죄만으로 저 머나먼 경원부까지 유배를 떠나야 하다니...남용익은 입맛을 쓰게 다셨다.


족제 남구만의 제자 최석정만 해도 그리 신랄하게 왕과 조정을 비판하고 송시열을 비호했는데도 고작 문외출송으로 그쳤다. 그런데 한낱 진사에 불과한 이동형은 도성에서 뚝 떨어진 경원부까지 가게 생겼다. 새삼 최석정에 대한 왕의 총애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온데 최석정 등을 사면하라는 말씀은...."

"아...이번 사면령에 반대상소가 무려 십육계를 넘어 스무계더군...지난번 탄핵소와 합치면 정확히 삼십육계.."


숙종이 우승지가 부복한 대청마루 쪽을 노려보며 답하였다. 승정원부터 양사까지 모조리 들고 일어나서 반대하는 참이었다. 물론 남용익 뒤의 우승지도 마찬가지였다. 최석정을 비롯해서 모조리 석방이라니. 남인인 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다시금 서온돌 장지문이 열렸다.


"중궁?"


겨우 남용익에게 쏠렸던 왕의 눈길이 도로 옆길로 새어버렸다. 숙종은 남용익의 어깨너머로 눈을 홉뜨고 서온돌 문쪽을 쳐다보았다. 남용익도 자신도 모르게 눈길을 돌렸다.


천담복을 갖춰입은 중궁이 초점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대청마루 쪽을 내다보는 참이었다.


"고양이 소리인 거냐, 애기 소리인 거냐?"

"애기...소리일 리가 없잖아요 마마..."


중궁이 불안한 음성으로 묻고, 나인 하나가 불안한 음성으로 답하는 모습에 남용익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했다. 궐안에 간난아기가 있을 리가 없었다. 벌써 두번이나 회임을 해놓고도 중궁은 용종을 보존하지 못하였다. 왕은 왕비 외의 다른 여자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니 더욱 궐안에서 간난아기 울음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중궁은 뭐가 그리 불안해서 고양이 울음 소리에 예민한 건지. 고양이 울음이 애기 울음소리로 들릴 만큼 상심이 컸던 건지, 아니면 왕이 자신 모르게 다른 계집을 가까이할까 불안이 컸던 건지.


차르륵.


순간 남용익의 시야로 왕의 황칠부채가 차르륵 펼쳐졌다. 지금 남용익의 시야를 차단한 황칠부채는 백선이라 불릴 정도로 부채살의 수효가 많은 데다, 부채살에 새겨진 삼극 및 열십十자와 우물정井자 또한 남달랐다. 게다가 맑디 맑은 황칠향이 솔솔 풍겨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용익의 신경을 잡아끌 만큼 신기한 건 왕의 이번 부채는 용의 문양이 아니라 별의 성좌 같은 것이었다.


"이 부채 어떻소?"

"예?"

"동궁시절, 송시열이 나와 똑같은 부채를 든 것을 본 적 있소. 내 그때 기분이 참으로 더러웠던 탓에, 단오부채라 해도, 내 부채는 따로 만들게 하였소.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도록."

"..."

"보시다시피, 나는 내 것에 남의 손길은 커녕 눈길이 닿는 것도 싫소."

"..."


남용익은 온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방금 자신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중궁을 감히 쳐다본 것이 왕의 심기를 건드렸나 싶었다. 그 눈엔 어떤 사심도 담겨있지 않았을텐데도, 왕은 자신이 중궁을 쳐다보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급히 두눈을 내리깔고 말하였다.


"송구하옵니다. 중전마마께서 고양이 소리에 예민하신 것 같아서... "

"사은전은 잘 보았소. 이만 물러가시오."


숙종은 차갑게 묵살했다. 자신도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누구보다 귀가 밝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좀전에 또렷하게 고막에 잡힌 소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와 함께 간난아기 울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그리고 중궁은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울음소리에 왜 이리 민감한지. 그 예민함이 불안했다.


隔隣聽呱呱 이웃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

幾度錯疑汝 몇번인가 헷갈려 너인가 하였으니...


순간 뇌리에 김수항의 싯귀가 떠올랐다. 아기를 잃은 아비도 이토록 울음소리에 예민해질 때가 있다. 그러니 그 어미는 더욱 여린 신경으로, 더욱 움츠리고 웅크릴 터였다. 숙종은 가슴이 먹먹해져서 가만히 진홍을 바라보았다.


그 큰 동공에 무엇을 담았는지, 연옥빛 천담복 앞섶을 꾹꾹 누르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런 그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숙종은 목구멍이 얼얼해졌다.


남용익이 물러가는 장면도 이미 그의 시야엔 들어오지도 않았다. 애기 울음이라고? 다시 귀를 기울였지만 이번에는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리는 참이었다.


나도...잘못 들은 건가? 이 내가? 숙종은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이러다 말겠지. 외조부 김우명이 죽었을 때만 해도, 어미는 스스로 굶어죽겠다는 자살유서를 약방 신료들에게 툭 던져놓았었다. 아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왕인 아들과, 적인 조정신료들에 뿜어내는 깊고 독한 분노였다. 그렇게 반쯤 미친 듯 했던 어미도 이제는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니, 자식을 잃은 진홍도 점차 아픔을 잊을 터였다.


- 시간이 약이지요. 자식을 잃은 아픔은 자식을 얻은 기쁨으로 치유해야 해요. 그러니 아플 수록 주상이 더욱 중궁을 보듬어 안으세요. 그게 주상도, 중궁도 낫는 약입니다. 약.


어미가 했던 말이었다. 그 말대로, 세번째 회임이 자신과 중궁을 치유시켜 주길 바랄 따름이었다. 올해가 가고 새해가 되어, 중궁이 천담복을 벗게 되는 즉시, 세번째 축복으로 회복하면 되었다. 그때까지 지금은 그저 견딜 뿐이었다.


가끔씩 아기가 거울을 뺏겼다고 입을 비죽이며 울먹이던 얼굴, 꼬물거리던 조막손...같은 것이 눈앞에 봄날 아지랑이처럼, 가을바람에 바스락거리는 가랑잎처럼 맴돌기는 해도.


하필이면 바로 오시, 오점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와서 숙종은 곧바로 주강을 위해 편전으로 향하였다. 마침 수의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의 진사 이동형에 이어, 그리고 채하징이라는 경상도 생원이 올린 상소로 편전 안이 발칵 뒤집혔다.


숙종 역시 도승지가 가져온 채하징의 상소를 펼쳐보고, 상소를 붙잡은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가는 참이었다.


己亥朞服, 實遵國朝已行之制

기해년의 기복은 사실 국조에 행해진 제도를 따른 것입니다.


"이미 바로잡은 예론을 오히려 부정하다니? 무조건 제 스승이 옳다? 내가 틀렸다? 이건가? 여기도 스승이 송시열, 저기도 스승이 송시열...도대체 송시열은 제자가 몇인가? 3만? 8만?"


숙종은 기가 막혀 상소문을 구겨쥐고 두손을 파르르 떨었다. 치가 떨려 입이 다물어지지도 않았다.


"전하, 채하징의 상소는 죄괴인 송시열을 두둔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기해년 송시열의 예론 자체를 정당화하려 들었나이다. 엄정하게 바로잡은 예론을 다시 어지럽혔사오니, 엄벌로 다스리시옵소서."


새 도승지가 나서서 간하였다. 정원政院에서 먼저 채하징의 상소를 비난하고 나섰으니 양사의 대간들도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좌의정 권대운까지 나서서 간하였다.


"채하징을 원찬시키시옵소서."


한순간에 등골이 후끈 달아올라 더욱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숙종은 등뒤에 파초선을 들고 시립한 내관들을 쏘아보았다. 내관들이 움찔하여 부채질에 속도를 더하였다.


숙종은 피로가 부쩍 내려앉은 눈매로 신료들을 훑어보고 전교했다.


"채하징蔡河徵의 상소는 그 말뜻이 음흉하고 흉험한 데다, 죄괴 송시열을 신구하고 왕법을 능멸한 죄는 징계할 수 밖에 없다. 채하징을 극변極邊에 정배하라. 또한 이후로 다시 투소投疏(상소를 올림)하는 자가 있으면 역률逆律(대역죄로 목숨을 거두는 율)로 논하라."


남인들로선 공적 송시열을 비호한 채하징을 엄벌에 처하는 것이 달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허적은 짐짓 난감한 기색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하오나 전하, 역률 두 글자는 너무 무거우니, 중률重律로 매듭짓는 것이..."

"뭐라? 중률?"


숙종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유심히 허적을 내려다 보았다. 마치 허적의 입에서 무겁다느니, 과하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기막히는 눈빛이었다.


"공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좀 신기하오."

"..."


남인이 웬일로 서인한테 선심을 쓰는가? 왕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참이었다. 허적이 머뭇거리면서 입을 다물었다. 숙종은 그런 허적을 다시 서늘하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효묘 때도 강옥姜獄(강빈의 옥사)을 신구하는 자는 역률로 논하였다. 마땅히 역률로 논해야지 송시열을 신구하는 일이 근절될 것이다."


하지만, 부교리 이식이 냉큼 허적의 의견에 동조했다.


"역률까지는...너무 중합니다. 대불경이면 모를까..."

"허면 대불경大不敬으로 정하라."


대불경이란 단어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숙종은 허공을 빙빙 돌던 솔개가 먹이를 낚아채듯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자 대불경이란 말을 내뱉은 부교리조차도 움찔해서 허적의 눈치만 보았다. 허적이 이식을 흘겨보곤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리며 간곡히 사뢰었다.


"하오나 대불경 역시 죽을죄이옵니다. 죽을죄로 논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십..."

"대불경까지는..."


송시열을 두둔한 채하징의 일인데도 갑자기 선심을 쓰는 척 대불경은 과하다고 반대하는 남인들을 숙종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대불경이 맞다. 경들이 일전엔 최석정의 상소 또한 대불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이거였나. 최석정에게 대불경을 적용하지 않은 일을 은근슬쩍 꼬집기 위해서 채하징을 최석정과 동급으로 매기는 건가.


"그땐 대불경이라는 말을 잘도 주워섬기던 경들이, 이제 와서 대불경은 심하다?"


숙종이 가시돋친 눈길로 그들의 속내를 꿰뚫어보자, 신료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홍우원은 슬쩍 말을 바꿔 왕의 빈틈을 공략했다.


"하오나 전하께서도 최석정에게 특별히 인정을 두시고 하였으니...신들 역시 대불경은 좀 아닌가 싶어서...어디까지나 전하의 뜻을 존중해드린 건데 이랬다 저랬다 하시오니 어느 장단에 맞춰드려야 할 지..."


숙종은 사나운 눈초리로 홍우원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최석정이 대불경이 아니니, 채하징도 대불경이 아니다?"

"그러하옵니다."

"그 말인 즉, 최석정과 채하징이 똑같다? 일전에 영상이 뭐라 하였던가? 귀한 자에겐 법이 굽어지니, 천한 자에게라도 법이 펴지도록 해야한다지 않았던가?"


숙종이 허적을 쏘아보며 대꾸했다. 허적은 두눈을 질끈 감았다.권대운, 민희가 눈을 굴리면서 서로 고개를 기울여 속닥거렸다.


"거참, 잊어먹지도 않으시네."

"우리고 또 우리고."


숙종은 허적 등을 힐끗 노려보곤 홍우원의 도발적인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만 홍우원은 재빨리 눈길을 피해 고개를 납작 조아렸다.


"비단 최석정 만이 아니옵니다. 전하께오선 근래에 정상룡과 윤헌 등에게도 미온적인 처벌을 내리셨사오니 벌써 기강이 흐트러져 너도 나도 이리 불측한 상소를 올리는 것이옵니다."


숙종은 홍우원을 차갑게 쏘아보며 한마디 한마디 잘근잘근 씹어서 뱉아내듯 물었다.


"과인이 최석정과 윤헌 등을 모두 석방하라 명한 것을 거두면 되겠느냐?"

"..."


순간 편전 안이 조용해졌다. 신료들로선, 특히 남인들로선 내심 기다리던 바였다.


"사면령을 환수한다."


왕의 날선 옥음에도 남인들은 고개를 조아린 채 소리죽여 웃을 뿐이었다.


"추후 송시열을 신구하는 상소를 올리는 자들은 무조건 역률로 다스리고, 관직을 제수받고도 송시열의 제자를 자처하여 출사하지 않는 자들은 중률로 논단論斷하라."


숙종으로선 그저 낚싯대를 드리웠다 도로 거둘 뿐이었다. 어차피 윤헌, 정상룡 등을 모두 사면하긴 어려웠다. 정국을 갈아치우진 않고서는. 하지만 뱃속이 뚫린 것처럼 공허했다.


"지당하시옵니다."

"삼가 분부대로 받들겠나이다."


숙종은 남인들을 가만히 노려보며 두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최석정은 부여와 포천을 오가면서 할 일이 많았다. 도성 근처로는 얼씬도 안할테니 사면령이 필요가 없었다. 그저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하오시면 채하징은 배소를 어디로 정하면 되옵니까?"


형조판서 남용익이 말귀를 못 알아들었는지, 알아듣고도 못 알아들은 척 하는 건지, 새삼스레 질문했다. 숙종은 어느 틈에 익선관 틈새가 또 젖어버린 것이 신경쓰여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다 말고 가만히 두눈을 가늘게 내리뜨고 남용익을 노려보았다.


"배소를 정하는 것은 형조의 소관...형판이 알아서 정하라."

"알겠사옵니다."


육조거리의 형조로 돌아온 남용익은 커다란 장지에 그려진 전도全圖를 걸어놓고, 속하인 형조참판 이하진과 형조참의 강수학과 함께 채하징의 배소를 논의했다. 하지만 실각한 서인쪽 사람인 자신과는 대척점에 선 남인쪽 사람들을 수하로 두었으니, 분위기가 원만할 리가 없었다.


"유배의 배소는 그 죄의 등급에 따라서 그 거리와 지리가 정해집니다. 원지遠地, 변원邊遠, 극변極邊, 절도絶島...단계별로 정해야지요."

"누가 모르나?"


너무 당연한 것을 가르치려 드는 이하진의 태도에 남용익은 미간을 찡그리고 이하진을 쳐다보았다. 도승지 노릇을 잠깐 하더니 보좌하고 설명하는 듯한 태도가 몸에 배었나. 아니면 동갑인 주제에 상관으로 온 남용익에 대한 반감의 표출인가.


"갓 부임하시어 모르는 게 많으실텐데."


참판 이하진이 자질구레한 설명을 늘어놓는 동안 가지런히 손깍지를 하고 잠자코 듣던 강수학이 손깍지를 풀고 희끗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비웃었다.


순간 남용익은 그들의 태도를 확실히 알아차렸다. 네가 뭘 아냐, 그냥 우리가 정해주는대로 수결이나 해라...라고 말하는 듯하였다.


"갓 부임했어도, 그 정도는 그 정도는 조정에 녹을 먹고 사는 신료라면...상식이지. 허니 내게 상식을 가르치려 들지 마시게. 자네들 상관이 나라는 걸 잊지 말고."


남용익은 자신을 무시하는 이하진과 강수학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냥 나이차이가 많아도 불편한데, 당파차이까지 있는 하관들을 다루기란 더 쉽지 않았다.


"그래요? 허면 높으신 대감의 고견은 어찌 되시는지?"


강수학이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남용익은 전도를 걸어놓고 고심하며 지도를 살폈다. 경연청에선 채하징을 중률로 다스리기로 하였던가. 중률로 하여 변원으로 보내려면, 어디가 좋을까.


헌데 막상 고르려니 딱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상식적인 일까지 가르치려 드는 것이 마뜩치가 않아서 한소리 하였는데 괜히 그랬나 싶었다. 호남이나 영남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박회장을 비롯해서 송시열을 두둔한 이들은 대체로 북도北道로 보내졌으니, 북도에서 골라야만 했다. 그래서 더 막막했다.


"여기 선천宣川이면 되겠는가?"


평안북도의 중남부를 남용익이 손가락으로 짚자, 이하진은 미간을 찡그리며 소리죽여 웃었고, 강수학은 대놓고 입꼬리를 비틀어 비웃었다.


"거긴 이옥이 귀양간 곳이외다. 귀양지가 겹쳐서는 안되는 걸 모르시오?"

"아..."

"참고로 철산鐵山은 이옥의 아우 이발이 귀양간 곳이외다."

"..."


강수학이 이죽이는 말에 남용익은 입을 비죽였다.


"허면 그대들 생각은...?"


남용익이 묻자, 강수학이 소매춤에서 이미 작성해둔 배소단자를 꺼내었다. 갑자기 나타난 종이에 남용익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罪人 蔡河徵 죄인 채하징

罪目 罪犯伸救 죄목 죄범신구

配所 昌城府 배소 창성부

康熙 十七年 七月二日 광희 십칠년 7월 2일

刑曹參判 李夏鎭 형조참판 이하진

刑曹參議 康遂學 형조참의 강수학


"이건?"

"미리 작성해둔 건데...아 오해는 마시구요."

"누가 뭐랬나."

"어쨌든 대감께서 벌써 사은을 마치시는 바람에...대감의 수결도 받아야 한다고 도로 돌려받았습니다. 그냥 여기다 대감의 수결만 해주시지요."

"..."


남용익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배소단자를 구겨쥐었다. 자신이 사은을 오전이 다 되어서야 하였으니, 정식 권한이 없다고 여겨서 자기들끼리 미리 정해두었다고 해도 탓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미리 말하지 않고 이제 와서 내어놓는 심보가 고약했다.


"진작 내어놓지 않고..."

"어디까지나 대감의 뜻을 존중해드리는 차원에서..."

"..."


남용익은 숨결이 거칠어져서 흉골이 크게 들썩였다. 하지만 그는 버럭 화를 내지 않고 가만히 눈길을 돌려 벽에 내걸린 전도를 쳐다보았다. 배소단자에 적힌 채하징의 배소는 창성부...그 동쪽이 박회장이 귀양간 벽동부碧潼府였다.


"벽동부는 극변이지 않은가?"

"그야 당연히 극변..."


별 생각 없이 대꾸하는 강수학에게 이하진이 눈짓했다. 남용익은 채하징의 배소 등급을 변원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손가락을 하나 접어보였다.


말귀를 알아들은 강수학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애초에 왕은 채하징을 극변에 귀양보내라 하였다. 편전에서 허적 등이 반대하여 흐지부지 마무리 된 셈이었다. 최석정의 일을 물고 늘어지다보니 역률인지 중률인지도 사실 애매하였다. 경연청에서 남인들은 모두 역률로 알아들었다. 오직 남용익 한 사람만 빼고.


"강계江界로 하게나."


남용익이 전도에서 강계를 손가락으로 짚어보였다. 이하진과 강수학이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강계는 극변이나 변원이라고 하기엔 다소 애매한 곳이었다. 그야말로 남용익은 중률에 의거하여 배소를 정한 셈이었다.


"강계요? 대감, 강계는 너무 편한 곳이 아닙니까?"

"편하다니? 이 정도면 역률과 중률, 그 어중간한 상황일 때에 적합한 배소가 아닌가? 전하께서 추후로 역률로 다스리라 하였으니 아직은 중률이어야..."


강수학이 바로 비웃었다.


"적합? 뭘 몰라서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면 뭘 알아서 이러시는 겁니까?"

"이보시게 참의!"


남용익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실각한 서인의 관료란 게 이런 건가. 수하들조차 어쩌지 못하다니. 자괴감이 깊어졌다. 하지만 이대로 남인 수하들에게 휘둘리며 수결이나 하는 신세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는 씩씩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붓을 잡고 일필휘지로 새로 배소단자를 써내렸다.


罪人 蔡河徵 죄인 채하징

罪目 罪犯伸救 죄목 죄범신구

配所 江界府 배소 강계부

康熙 十七年 七月二日 광희 십칠년 7월 2일

刑曹判書 南龍翼 형조판서 남용익


그리고 남용익은 붓을 거칠게 탁 내려놓았다. 빈 장지에 먹물 묻은 붓이 또르르 구르면서 먹물자국이 묻었다.


"그대들은 수결이나 하시게나."

"..."


남용익이 강수학을 차갑게 쏘아보며 못박았다. 강수학의 눈밑이 꿈틀거렸지만, 그는 그저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남용익을 마주 쏘아보았다.


"후회하실텐데?"

"내 소신껏 하는 일에 후회가 있겠나?"

"기회를 드릴 때 바꾸시지요."

"협박씩이나? 감히 하관이 상관을 협박해?"

"나는 분명히 기회를 드렸소.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시오."


강수학이 차갑게 코웃음을 치곤 그 자리에서 수결을 해버렸다. 이하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배소단자를 내려다보며 침묵하더니, 착잡하게 붓을 잡고 수결을 하였다. 하지만 붓을 내려놓으면서 남용익을 보는 그 눈길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해질녘의 노을이 땅위를 감싸안은 탓인지, 그들이 남용익을 보는 얼굴은 불그스름한 분노의 기운이 더욱 짙게 깔렸다.


다음날 아침 편전에서 상참의를 마치고 숙종은 서안에 수북하게 쌓인 문서들을 살피면서 신료들을 접견했다. 열여덟의 나이에 등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서류를 검토하는 숙종의 얼굴을 신료들이 주의깊게 훔쳐보는 참이었다.


"내게 무슨 할 말들이 있는가?"


숙종이 힐끔 눈길을 뻗어 신료들의 등줄기를 대번에 훑어보며 건넨 말이었다. 몰래 왕을 훔쳐보던 신료들은 눈길이 마주치기 무섭게 피했다. 감히 용안을 쳐다보는 불경죄를 범했다는 질책을 받고 싶진 않은 까닭에. 그저, 용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감지하는 왕의 동물적인 감각을 속으로 욕할 뿐이었다.


"채하징의 배소가 강계라?"

"예 전하."


형조판서 남용익이 고개를 조아리는 순간, 허적과 권대운, 민희를 비롯해서 남인들의 눈길이 먹이를 앞둔 맹금처럼 번뜩였다. 심지어는 남용익의 하관인 이하진과 강수학마저도. 하지만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서로 무언의 눈길들만 음침하게 주고 받는 느낌이었다.


숙종은 자꾸만 자신의 신경을 긁는 신료들의 시선교환에 기분이 어쩐지 찜찜했다. 상참, 조회를 파하고 상월대에 놓인 남여에 올라타면서 그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숙종은 두광에게 일러 다시 침전으로 문서들을 가져오게 해서 오수午睡(낮잠) 시간과 식사시간을 쪼개어 지도책을 펼쳐보고 배소단자를 검토했다.


"이동형이 경원...채하징이 강계..."


손가락으로 두만강 쪽에 있는 함경북도 경원부를 짚고, 다시 독로강 쪽에 있는 평안북도 강계를 짚어보니, 손가락이 주르륵 내려왔다. 이동형의 유배지인 경원보다 채하징의 유배지인 강계가 훨씬 아래쪽이었다.


"강계가 더 아래라? 이거였군."


숙종은 입을 꾹 다문 채로 가만히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가만 있을 남인들이 아니었다. 분명히 새로 형조판서가 된 남용익이 고의로, 혹은 불의로 강계로 배정했을 터였다. 그리고 남인들은 얼씨구나 얼기설기 그물을 짜는 참이었다. 아까 숨죽이고 자신을 지켜본 것도, 자신이 모르고 지나가면 일을 더욱 키울 요량이었다.


"..."


숙종은 고민이 되어 이마를 만졌다. 그런데 또 손에 땀이 묻어났다. 음력 칠월의 무더위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나 해마다 몸에 화火가 쌓이는 건지, 해마다 자신이 체감하는 더위가 심해졌다.


"두광아!"

"예에!"


두광이 냉큼 대답하고 파초선을 부쳤다. 숙종은 문득 두광이 그때그때 '예이'와 "예에'로 나누어 대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팔 아프냐?"

"예? 예에."

"그래도 부쳐라."

"예에."


숙종은 두광이 모르게 피식 웃고는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지도책을 다시금 들여다 보았다. 남인들이 어떻게 나오려나...


"이게 무엇인가? 여지노정기?"


이튿날 오후 갑자기 승정원에서 신임 도승지 정윤을 비롯하여 승지들이 한권의 책을 들고 청대를 하였다. 숙종은 '輿地路程記여지노정기'라 적힌 두툼한 서책을 받아들고 도승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도승지는 승지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 다소곳이 꿇어엎드린 채로 답하였다.


"도성에서 출발하여 걸린 노정路程들을 기록한 책이옵니다."

"이런 게 있었나?"

"예 전하."


도승지가 고개를 조아려 대답하는 순간, 숙종은 책을 세워들고 흘낏 어깨 뒤의 두광을 돌아보았다. 두광의 눈에도 책 이름이 똑똑히 보일 수 있도록. 앞으로 자신이 책을 찾을 때 같이 찾아오라는 의미였다.


두광의 부채질이 잠시 느려졌다. 엎드려 있던 도승지로선 왕이 두광에게 책 표제를 보여주는 것은 미처 보지 못하였지만, 자신에게까지 닿는 부채바람이 다소 느슨해진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도승지는 이마에 진땀이 맺히는 것을 느끼며 다소 빨라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옵고, 경원은 총 24일 노정이고, 강계는 총 15일 노정이옵니다. 무려 아흐레의 격차가 있사옵니다."

"아흐레?"


숙종은 시큰둥히 도승지를 쏘아보았다. 강계가 좀 짧다 싶긴 하였다. 그런데 무려 9일 차이라니.


"예 전하. 전하께오서 이동형은 차율次律, 그리고 더 괘씸한 채하징은 역률로 다스리라 하셨사옵니다. 하온데 형조에선 거꾸로 이동형보다 아흐레나 짧은 노정으로 배소를 정하였으니, 마땅히 추고하셔야 하옵니다."

"일단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예? 예."

"내일 아침이면 재미있어지겠군."


하지만 도승지를 비롯해서 승지들을 쳐다보는 숙종의 눈빛은 하나도 재미가 담기질 않았다. 정치가 재미있을 때는 아니었다. 허구한 날 상대편을 물어뜯는 정치에 질릴 때도 되었다. 숙종은 가만히 여지노정기를 들추어 손가락으로 콕콕 짚었다. 아흐레, 아흐레, 아흐레...


작가의말

1. 실제로 숙종이 최석정을 처벌하지 않으려고 하여, 김석주가 있는 홍문관까지 삼사가 탄핵하고 여기저기서 상소가 빗발쳐서 두어달만에, 또 16계만에 문외출송을 시켰지만, 곧바로 윤헌, 정상룡 등과 최석정을 다시 사면하라 명하여 또 두어달을 질질 끌었습니다. 36계는 제가 상상한 농담인데, 나중에 또 20계만에 사면령을 철회했다는 기록을 읽고 , 더해보니 딱 맞네요. 하지만 정말로 최석정 때문이었는지는...


2. 실제로 진사 이동형은 실존인물이며, 수의 이동형과는 동명이인입니다.


3  채하징도 실존인물이며, 실제 사건입니다. 하지만 숙종은 최석정에게만 자비를 베풀어 대부분은 극변에 유배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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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3.11.05 22:16
    No. 1

    1번 같은 예가 자주 나와서 이제는 작가님이 콩을 팥이라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
    지금 숙종의 머리 속에는 최석정의 여정과
    남인/서인의 균형 분배가 복잡하게 얽히겠군요.

    저는 숙종이 뒤로, 보이지 않게 서후행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중궁이 제일 불쌍해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3.11.06 16:39
    No. 2

    천지인 때에 비하면 이런 일이 좀 뜸해졌죠. ㅎㅎ 서후행은...실제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우연치곤 너무 인경왕후가 불운해서, 또 나이터울도 있고 불우하지 않은 언니 오빠들이 있는데도 숙빈최씨가 빌어먹는 신세가 되어 입궁한 게 걸려서, 또 남인과 손잡고 허적과 친밀했다는 사실로, 배후로 상상해서 써본 건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뚱뚱한멸치
    작성일
    13.11.06 09:59
    No. 3

    정말 서후행이 얄밉게만 보입니다
    이번 편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진홍이만 나오면 찐득찐득하게 눈에 밟히는게 서후행이네요
    에궁~
    역사를 바꿔가며 쓸 수도 없는건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3.11.06 16:45
    No. 4

    승정원일기대로 하면 수난이 좀 남았...그래도 저는 확실히 인경왕후든 숙종이든...두사람 얘기를 쓰는 게 좋네요. 원래 해피엔딩 주의인데도 이번 소설은 절 힘들게 하지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일화환
    작성일
    13.11.07 11:30
    No. 5

    1 번 같은 일이 천지인 때보다 뜸해졌다는 건 작가님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아흐레 차이......다른 나라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는 지도만 봐서는 여행 일정이 안 뽑히죠. 유럽의 다른 나라 같으면 그냥 대뜸 어림짐작하면 거리랑 일정이 나올텐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3.11.07 21:10
    No. 6

    예, 지도만 봐서는 몰랐기에 승정원에서도 여지노정기란 책을 들춰보고 확인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1번 같은 일이 저는 살짝 아쉽네요. 뭐에 홀린 듯이 쓰는 기분일 때가 전 더 좋아서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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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해의 그림자 223 +2 14.12.27 1,390 26 43쪽
223 해의 그림자 222 +4 14.12.22 1,895 27 43쪽
222 해의 그림자 221 +1 14.12.16 1,445 23 43쪽
221 해의 그림자 220 +2 14.12.10 1,496 28 43쪽
220 해의 그림자 219 +1 14.12.05 1,628 21 43쪽
219 해의 그림자 218 +3 14.11.30 1,357 29 41쪽
218 해의 그림자 217 +1 14.11.25 1,623 23 43쪽
217 해의 그림자 216 +2 14.11.20 1,575 28 43쪽
216 해의 그림자 215 +3 14.11.14 1,718 30 43쪽
215 해의 그림자 214 +3 14.11.10 2,374 30 35쪽
214 해의 그림자 213 +3 14.11.06 1,321 27 42쪽
213 해의 그림자 212 +3 14.11.02 1,615 29 43쪽
212 해의 그림자 211 +3 14.10.26 1,831 33 44쪽
211 해의 그림자 210 +3 14.10.20 1,635 26 42쪽
210 해의 그림자 209 +4 14.10.13 1,957 30 44쪽
209 해의 그림자 208 +3 14.10.07 1,496 28 43쪽
208 해의 그림자 207 +3 14.10.02 1,318 22 43쪽
207 해의 그림자 206 +4 14.09.25 2,693 34 43쪽
206 해의 그림자 205 +4 14.09.19 1,627 26 43쪽
205 해의 그림자 204 +3 14.09.12 1,715 26 40쪽
204 해의 그림자 203 +6 14.09.05 1,502 30 39쪽
203 해의 그림자 202 +7 14.08.30 1,735 31 41쪽
202 해의 그림자 201 +4 14.08.21 1,849 42 41쪽
201 해의 그림자 200 +5 14.08.14 1,387 30 42쪽
200 해의 그림자 199 +4 14.08.07 2,041 34 42쪽
199 해의 그림자 198 +5 14.07.31 1,858 41 43쪽
198 해의 그림자 197 +3 14.07.21 1,789 41 41쪽
197 해의 그림자 196 +7 14.07.15 1,852 34 42쪽
196 해의 그림자 195 +3 14.07.11 2,020 32 41쪽
195 해의 그림자 194 +3 14.07.06 1,947 34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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