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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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이아빠
그림/삽화
내복이아빠
작품등록일 :
2011.05.26 12:44
최근연재일 :
2019.01.29 07:06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9,357
추천수 :
90
글자수 :
250,466

작성
17.09.28 16:07
조회
86
추천
1
글자
6쪽

제1장 남자와 소녀 - 13

DUMMY

"내 쟁반 위에 토사물을 뿌려놓은 자는 자네가 처음일세."


남자는 쟁반이 뭔지 몰랐지만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핑 돌았다.


"내를 멀미로 토악질까지 몰고 간 뱃사공도 누님이 처음인데예."


"정말 아팠거든, 자네 발차기. 그래서 감정을 좀 실었지."


좀은 개뿔.......


남자는 한마디 쏴주고 싶지만 꾹 꾹 눌러 참는 듯 했다. 단지 걸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새까맣고 자그마한 강아지를 증오를 담아 쏘아보았다.


"자네, 아직 속이 개운하지 않은가 보오?"


"에헤이, 누님이 농담도."


남자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며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개가 두 눈을 감으며 기분 좋은 듯 가르릉 거리는 소리를 냈다.


자기가 정말 개인 줄 아는 건가?


붉은 옷을 입은 머리 긴 남자와 작고 귀여운 까만색 강아지 강은 슬슬 땅거미가 기어오르는 비어랑의 거리를 결코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저 앞에서 왼쪽으로 꺾으시게."


"예."


남자는 왼쪽으로 한 번 돌고, 건물 세 개 쯤 지나친 후에 다시 오른쪽으로 돌고, 앞으로 한참을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자마자 보이는 이 층짜리 건물 앞에 섰다. 눈에 확 띄는 붉은 등이 달려있었고, ‘은잔’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술집?


"들어가시게."


남자는 입구에 쳐 놓은 발을 걷어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대문 안쪽으로 들어서니 작은 정원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정말 작지만 연못도 있고, 운치 있는 나무도 몇 그루 있고, 심지어 연못에는 물레방아도 돌아가고 있었다. 정원을 작게 꾸몄다기 보다는 커다란 정원을 그 크기만 줄여 놓은 느낌이었다. 들어오면 마치 자신이 거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아기자기한 정원이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본관에 도착한 남자가 곧장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개가 말했다.


"잠깐 기다리시게."


남자가 발을 멈췄고, 개는 남자의 품에서 폴짝 뛰어 내렸다.


"내 몇 마디만 해도 되겠나."


남자가 말했다.


"말씀하이소."


말을 한다더니, 한참동안을 아무 말 없이 남자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개가 이윽고 그 입을 열었다.


"사람의 이름에는 그 운명이 담겨 있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라고 말하려던 남자는 갑자기 속이 매스꺼워 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네. 허나, 여러 말하지 않아도 이름과 운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확실하지."


남자는 새까만 사내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는 사람끼리라 그런가 똑같은 말을 하네예."


"뭐, 흔한 생각이니까."


개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높이의 차이가 큰 만큼 주저앉아 고개를 바싹 세워 바라보는 것이 꼭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


왠지 모르게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남자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개의 눈빛이 조금 축축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다시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남자만 바라보던 개의 눈빛. 한낱 개 따위가 보일 수 없는, 아마 사람조차도 저런 눈을 가질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슬픈 눈빛.

남자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아려옴을 느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슬픔이 꼭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어서, 자신이 그 슬픔의 이유가 된 것 같아서.


"하나만 묻지."


개의 목소리가 남자의 귓가에 울렸다.


"자네는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가? 그 결과가 크나큰 슬픔이라 하여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남자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내도, 이 개도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만 놓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시게.”


남자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하늘거리는 푸른 미녀로 돌아온 강의 우수에 찬 두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약속. 약속.......


새까만 사내도, 물빛 여인도, 모두 단 한 명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으니, 저 약속 이야기도 아마 소녀와 관계가 있는 거겠지. 특이할 것 하나 없는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일 뿐인데. 그 아이가 뭐라고. 그 아이가 어떤 의미라고, 저 대단한 사람들이 하나 같이 달려드는 걸까. 어쨌든, 저 일에 발을 들이면 귀찮아 질 게 뻔했다. 남자는 더 이상은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일단은 소녀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 다음의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할 셈이었지만, 남자 자신은 그저 예전처럼,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가면 그만일 거라고 이미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두 번 다시 귀찮아 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남자는 방랑을 떠난 후 약속 따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어떤 것에 얽매이기 싫었고, 그냥 되는 대로 살다가 죽을 운명이라 여겼고 또 그렇게 죽고 싶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려 했다. 맹세나 약속 같은 책임과 미련과 후회를 부르는 것은 일부러라도 피했다. 머리를 그리 잘 쓰지 못하는 남자도 바람이 클수록 실망도, 후회도 커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몸소, 뼈가 시리도록 느꼈었다.


"제가 한 약속이라면, 그 약속 반드시 지킬 겁니더."


남자는 자신이 뱉은 말에 스스로 조금 놀랐다. 분위기에 휩쓸려 되는대로 내뱉은 말 아닐까. 잘 모르겠다. 다만 여인의 이야기 속에서 한 소녀를 떠올렸고, 그 소녀의 미소를 떠올렸으며 그 소녀의 눈물을 떠올렸고, 잠깐의 망설임조차 없이 저 말이 나왔을 뿐이었다.

남자의 말을 들은 여인의 입가에 쓸쓸한 웃음이 서렸다.


"그러하다면 들어가 보시게."


여인의 말에, 이리는 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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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2장 오랜비가 끝나면 - 3 17.09.28 98 1 7쪽
16 제2장 오랜비가 끝나면 - 2 17.09.28 77 1 8쪽
15 제2장 오랜비가 끝나면 - 1 17.09.28 119 1 12쪽
14 제1장 남자와 소녀 - 14 17.09.28 110 1 8쪽
» 제1장 남자와 소녀 - 13 17.09.28 87 1 6쪽
12 제1장 남자와 소녀 - 12 17.09.28 88 1 9쪽
11 제1장 남자와 소녀 - 11 17.09.28 112 1 9쪽
10 제1장 남자와 소녀 - 10 17.09.28 119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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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1장 남자와 소녀 - 7 17.09.28 181 1 8쪽
6 제1장 남자와 소녀 - 6 17.09.28 215 4 8쪽
5 제1장 남자와 소녀 - 5 17.09.28 250 4 7쪽
4 제1장 남자와 소녀 - 4 17.09.28 289 6 8쪽
3 제1장 남자와 소녀 - 3 17.09.28 342 6 6쪽
2 제1장 남자와 소녀 - 2 17.09.28 523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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