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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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이아빠
그림/삽화
내복이아빠
작품등록일 :
2011.05.26 12:44
최근연재일 :
2019.01.29 07:06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9,355
추천수 :
90
글자수 :
250,466

작성
17.09.28 16:11
조회
76
추천
1
글자
8쪽

제2장 오랜비가 끝나면 - 2

DUMMY

"자, 부어라! 마셔라!"


술자리에서 꼭 한번은 나올 법한 대사를 날리고 잔을 높게 치켜드는 대장장이 노인은 꽤 마신 듯 이미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이리는 혀를 끌끌 찼다.


"다 늙은 영감탱이가 저런 추태를."


"닥쳐라 이놈. 와하하!"


아니꼬운 건 이리 뿐인 모양이었다. 가운데에 커다란 탁자를 낀 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열댓 명 남짓의 사람들은 모두 잔을 치켜들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중에는 물론 희아도 껴 있었다.


"꺄아앗! 오빠 최고!"


가장 신나게 취한 것 같았다.

이리는 탁자에 팔을 대고 턱을 괸 채 나무잔을 가득 채운 맥주를 홀짝거렸다. 역시 질 좋은 보리가 재배되는 비어랑 근처의 맥주는 맛이 좋았다. 느긋한 자세로 맥주를 홀짝거리며 탁자 위로 올라가려 하는 희아를 바라보는 이리의 표정은 평온했다. 근심도, 걱정도 별로 없는 듯 해탈한 표정이다.

요 한 해의 생활은 편했다. 먹을 것이 떨어지는 상황도, 잘 곳이 없어지는 상황도, 목숨이 위협받는 급박한 상황도 없었다.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일상. 희아를 만나며 난데없는 일상에 취한 이리는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졌다. 자신이 왜 여섯 해를 방랑하였는지, 여섯 해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그저 다 잊은 것만 같았고, 사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뭐 어떤가. 지금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희아는,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일 년 사이 성장했다. 정신적으로 성장한 것은 이리로써는 잘 모르겠고 분명히 몸은 자랐다. 열여덟 먹은 처녀가 또 크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지만, 어쨌든 희아는 성장기라도 만난 듯 키가 크고 몸의 맵시도 좀 더 여성스러워졌다. 처음에는 잔보다도 한참은 어려 보였던 희아가 지금은 잔과 비슷한 체격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보고, 이리는 괜히 흐뭇해하곤 했다.

집들이는 좋은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원래 하녀 출신이라 요리와 살림살이는 잘했던 희아는 한 해 동안 잔의 술집 겸 여인숙(이리와 희아가 일을 거들고부터는 잠시 닫아두었던 2층의 여인숙도 시작했다) '은잔'에서 요리와 노래를 맡았고, 그 덕에 요리 실력도 일취월장했고 노래 실력도 마찬가지였다. 하여 맛있는 음식과 신나는 노래 속에서 이어진 집들이는 잔의 가게로 자리를 옮겼고, 이렇게 밤이 늦도록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계속 되고 있었다.


"이리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던 이리에게 희아가 다가왔다. 새빨개진 두 볼이 귀여웠다. 몸은 자랐어도 동그랗고 큰 눈과 새하얀 피부는 여전했다. 키도 여전히 이리의 턱 밑을 겨우 맴돌아서 적어도 이리에게는 아직도 여자보다는 귀여운 여동생의 느낌이었다.


"어어."


이리는 반쯤 뉘어있던 상체를 일으키며 대답했고, 희아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이리의 무릎 위에 앉았다.


"아! 무겁다, 비키라."


"에이-. 이 아리따운 처녀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희아를 쏘아 본 이리는 이내 포기했다는 듯 의자에 기댄 채 두 손을 깍지 껴 머리에 대었다.

술판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노래의 반주는 챙챙거리는 귈타였다. 귈타는 손가락이 많이 가서 치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은데, 신장이 노인의 대장간에도 '은잔'에서 일하는 종업원 중에도 마침 귈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귈타 생각이 나자 이리는 손이 근질근질 한지 손가락을 몇 번 쥐었다 폈다.


"앗, 변태."


"니 멋대로 상상하지 마라?"


희아가 부끄럽다는 듯 두 볼을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돌렸다. 저거 또 야한 생각한다.

이리는 아무튼 어린 녀석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리야."


"와 자꾸 이름을 부르노."


"그때 기억나? 우리 마을 나와서 작은 시냇가 근처에서 노숙한 날."


"어. 기억난다."


희아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그때를 떠올리는 듯 했다.


"그때 니가 불러준 노래 있잖아-."


"노래?"


분명히 그때 노래를 불러준 것 같기도 했다.


"어. 근데 왜?"


"그거 진-짜 우울했던 거 알아? 안 그래도 그때 얼마나 우울했는데."


"그기야 니 인생 자체가 우울하니까 그런 기지."


이리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다가 곧바로 후회했다. 이건 희아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확실히....... 특이한 일이고 또 우울한 일이니까.


"아, 미안......."


이 멍청한 자식! 괜한 말을 해서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이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희아에게 사과했다. 희아는 이리의 말에 속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아무 말도 없었다. 눈가가 조금씩 젖어드는 것 같았다. 당황한 이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듯, 두 손으로 희아의 어깨를 감싸 쥔 채 우물쭈물 할 뿐이었다.

그래도 무슨 말이라도 해서 희아의 기분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아 이리가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아야, 내가......읍."


희아가 이리를 덮쳤다.

두 팔로 이리가 도망 못 가게 목을 꽉 껴안은 후, 이리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 것이다. 당황한 이리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눈도 감지 못하고 멀뚱멀뚱 눈앞의 눈을 꼭 감은 희아만 바라보았다. 이리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알쏭달쏭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말릴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우오오!"


정말 우연히도 그 장면을 본 대장장이 노인의 제자 모루가 괴성을 질렀다. 시골청년 같은 외모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감성을 지닌 듯 화들짝 놀라서 얼굴을 가득 붉힌 채였다.

그 괴성에 가게 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쌓였다. 집들이 때문에 가게 문을 걸어 닫은 채 지인들끼리만 모여 있어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리와 희아가 비록 같이 살기는 하지만 부부라기보다는 남매 같은 느낌이 강해서 대부분 그런 관계이려니 생각했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특히나 잔이 많이 놀란 것 같았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데,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분명히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이어진 두 사람의 입맞춤은 희아가 입술을 때며 눈가에 그렁하던 눈물을 한 줄기 흘리고 나서야 끝났다. 그때까지 두 손을 머리위로 치켜 든 채 마치 자신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듯한 모습을 그대로 취하고 있던 이리는 희아가 입술을 때고서야 팔을 내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자신이 희아를 때놓지 않았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는 얼굴이 달아오른 탓이었다.

그때까지도 이리를 묶은 두 팔을 풀지 않은 희아가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이리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넌 내 옆에서 사라지지마."


이리는 눈도 돌리지 못하고, 희아의 눈동자에 홀린 듯 대답했다.


"아, 어, 뭐."


희아가 눈가에 가득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우리 결혼하자."


"어, 그래 뭐....... 뭐?!"


"우오옷!"


옆에서 숨을 죽인 채 반짝이는 눈으로 둘을 보고 있던 모루가 아까보다 더한 괴성을 질렀고, 주변 사람들은 더 커질까 싶었던 눈을 더 크게 뜨며 한결같은 동작으로 입을 가렸고, 잔은 입을 가리고 있던 손마저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리고 이리는 귀가 터질 듯 벌개져선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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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1장 남자와 소녀 - 10 17.09.28 119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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