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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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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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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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0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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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69)

DUMMY

“격발!”

뿌연 연기 사이로,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레드코트들이 쓰러져내렸다. 강선 파인 머스킷총의 위력이었다. 교전거리가 무려 100미터나 되었지만 히스파니아 총사들이 발포한 이 가공할 탄환들은 예상도 못하고 적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던 빌랜드군에게 극심한 타격을 입혔다. 그것도 첫 번째 일제사격만으로도.

“재장전!”

총사들이 탄약포를 꺼내 입으로 물어뜯고서는 외쳐댔다. 장교들도 검을 집어넣고 어깨에 메고 있던 머스킷총을 꺼내 들었다. 총사의 특성상, 이 사냥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악기를 든 군악대와, 히스파니아 국기와 연대기를 든 기수만이 사격을 할 수 없다는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다른 장교들처럼 총을 든 리카르도가 적진을 주시하며 말했다.

“빌랜드인들이 이번에는 피하려고 들까요?”

벨린이 간단히 대답했다.

“아니, 저들은 머저리야.”

히스파니아군의 일제사격에 1오 횡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지만 적과 정면으로 교전중인 빌랜드군 대대는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최전선의 중대는 완전히 허물어졌다. 전방의 기수들은 모두 사살당해 깃대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중대원의 반 이상이 널브러졌으며, 군악대조차 일시적으로 그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살아남은 부사관들은 그저 대열을 메우라고 외칠 뿐이었다. 이윽고 뒤에 있던 중대 규모의 예비 대열이 신속하게 5보 앞으로 전진했다. 그들은 구멍난 대열을 메꿨고, 움직임은 마치 영혼이 깃들어있지 않은 듯이 기계적이었으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살당한 레드코트들의 위에 서서 대열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허나 빌랜드군 입장으로는 놀랍고도 두려운 경험임에는 분명했다. 붉은 제복을 입은 빌랜드 병사들이 달려 나와 바닥에 스러진 깃대를 다시 들었지만 장전을 끝낸 히스파니아 총사들이 다시 한 번 총을 세우기 시작하자, 꼼짝도 못하고 온 몸이 얼어붙어버렸다. 그럼에도 빌랜드군 장교들은 히스파니아군을 향해 사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일단은 거리가 너무 멀어 그들의 총으로는 달을 향해 쏘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사거리까지 전진하여 일제사격을 가하자니 상급부대에서 전진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장전을 끝낸 리카르도가 잠시 기침을 터트렸다. 그 대위가 바닥에 침을 뱉고서는 말했다.

“당신과 싸워 영광입니다. 세뇨르 벨린 데 란테. 더 이상은 당신의 권한을 빼앗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부디 격발 명령을 내려주시겠습니까?”

벨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총을 겨누며 외쳤다.

“조준!”

그리고는 목표물을 바라보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격발!”


안젤라 노스트윈드는 멀리서 울려퍼지는 수백여발의 총성에 발작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의 중대가 자리 잡은 대열은 맨 우측이었으며 더 우측으로 나아가면 1개 연대만이 전방을 사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장의 중심 부근에서 막연히 울려 퍼지는 그 일제사격의 총상은 안젤라의 정신을 일순간 깨웠다.

그녀는 일제사격을 가한 군대를 확인했다. 히스파니아의 야전 총사대였다. 머스킷총의 연기 속에 숨은 히스파니아군이 바쁘게 재장전을 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올리버가 히스파니아 총사들이 진출한 전방을 살피더니 말했다.

“용기는 가상하나 교전 거리가 너무 멀군요. 저곳에서 일제사격을 가한다면 효과가 없을 텐데요.”

“멍청이 같으니!”

안젤라가 인상을 찡그리며 쏘아붙였다.

“저들은 히스파니아 총사야, 올리버! 에우로파에서 최초로 강선이 파인 총을 쓰는 군대라구. 보통 총에 비해 사거리와 정확도가 최소한 두 배는 넘어. 저들이 저 거리에서 효과적으로 타격을 입힌다는 건 계집애도 아는 사실이야. 월슬리가 병력을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저들과 맞서는 레드코트들은 단지 사형수에 불과….”

별안간 적을 주시하던 안젤라 노스트윈드가 어느 한 곳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날렸다.

“이런.”

안젤라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주먹을 쥐었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히스파니아 총사 나으리가 저기 있었군.”

“뭐라구요?”

올리버가 정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안젤라는 어깨에 멘 브라운베스 머스킷총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붉은 제복을 휘날리며 앞으로 걸어 나와 호령했다.

“중대!”

안젤라의 레드코트 중대가 제 자리에서 척 하고 발을 굴렸다. 붉은 제복차림의 그 머스킷티어들이 총검을 장착한 총열을 앞으로 내밀자, 그들의 마녀 지휘관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전진!”

레드코트들이 그녀를 따라 발을 척척 굴렸다. 올리버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아직 공격명령도 없었고, 명령이 없다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빌랜드군의 교리였다. 그것을 어긴다면 즉결처형도 감수해야만 했다.

“잠깐만요, 안젤라!”

올리버가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 뛰어오며 외쳤다. 안젤라는 거침이 없었다. 올리버가 소리쳤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월슬리 장군이 이 짓을 안다면 우릴 가만히….”

안젤라는 뒤도 바라보지 않고 대꾸했다.

“겁이 난다면 너는 빠져도 좋아, 올리버.”

“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아까 전에 말한 적 있지. 내 원수가 내 눈앞에 있어. 마지막 전투라고 할 수 있지. 결코 피할 수 없는 거야.”

“개인적인 원한으로 아끼던 부하들을 다 죽이려고요?”

올리버가 소리쳤다. 그 바람에 안젤라는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녀가 멈추자 중대의 전진도 멈췄다.

안젤라가 뒤로 돌아 오랫동안 전장을 함께 한 건장한 체격을 지닌 레드코트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올리버.”

그녀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

“내가 깜빡했었군. 이것은 나만의 싸움이라는 것과, 나 혼자 독단으로 싸우는 대신 중대를 포기하기로 했던 거 말이야. 그렇다면 이젠….”

안젤라가 올리버에게 다가섰다. 그녀가 핏빛 입술로 뺨에 키스하고서는 물러나더니 말했다.

“이 중대의 지휘관은 너야.”

안젤라가 삼각모를 벗어 올리버에게 고개 숙여 경례했다. 올리버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사이 안젤라은 몸을 던져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중대원이 그녀를 따르려고 하자, 정신을 차린 올리버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외쳤다.

“중대, 동작 그만!”

중대가 제 자리에 멈춰 섰다. 올리버는 허탈한 심정으로 붉은 대열에서 이탈한 작은 점 하나가 푸른 벌판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누군가 진심으로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탄식했다.

“저건 자살행위입니다! 혼자 간다면 베스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우리도 따라야 합니다!”

“베스는 이미 죽었어.”

새로이 중대의 지휘관이 된 올리버가 허무한 어조로 대답을 이었다.

“그녀는 아스티아노에서 자기 스스로를 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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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긴장을 풀면 안되겠지요. 연재가 조금 늦는데 죄송합니다... 앞으로 좀 긴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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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베나레스의 총사(172, 마지막화) +93 09.02.23 5,057 16 15쪽
174 베나레스의 총사(171) +25 09.02.15 2,957 10 8쪽
173 베나레스의 총사(170) +21 09.02.10 2,857 11 9쪽
» 베나레스의 총사(169) +24 09.02.07 2,611 12 7쪽
171 베나레스의 총사(168) +27 09.02.03 2,642 9 7쪽
170 베나레스의 총사(167) +30 09.01.29 2,678 12 12쪽
169 베나레스의 총사(166) +26 09.01.26 2,734 12 10쪽
168 베나레스의 총사(165) +33 09.01.22 2,824 12 10쪽
167 베나레스의 총사(164) +28 09.01.22 2,745 9 7쪽
166 베나레스의 총사(163) +27 09.01.18 2,701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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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베나레스의 총사(156) +22 09.01.07 2,706 13 8쪽
158 베나레스의 총사(155) +21 09.01.06 2,757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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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베나레스의 총사(153) +28 08.12.31 2,668 13 12쪽
155 베나레스의 총사(152) +25 08.12.25 2,737 12 9쪽
154 베나레스의 총사(151) +21 08.12.22 2,476 11 10쪽
153 베나레스의 총사(150) +26 08.12.21 2,586 1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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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8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708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90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92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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