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 총사(10)
“추기경.”
프란체스코 데 리베라 추기경이 정중히 절을 했다. 이사벨이 손을 내밀었다. 추기경이 예의적으로 그녀의 반지에 입을 맞췄다.
이사벨이 말했다.
“의외로구나. 신하들도 돌아간 이 시간에 아직도 남아 있다니.”
“디에네 마마를 모시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추기경이 웃으며 말했다. 이사벨은 오만하게 눈을 뜨고 그 성직자를 바라보았다. 교황에게 임명 받은 이 추기경은 키가 크고 얼굴에 잿빛 콧수염을 기른 깡마른 사내였다. 그는 히스파니아에서 하나 밖에 없는 가톨릭의 수장으로, 이 나라의 재상 직책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
히스파니아 제국에서 추기경이 재상을 하기 시작한 것은 히스파니아가 교황에 의해 제국으로 선포되었을 때부터이다. 히스파니아에게 공식적으로 제국 칭호를 내린 이는 교황이었고 이는 곧 고대 에우로파를 통일했던 라툰 제국의 영광을 이어받음을 의미했다. 그 영광의 대가로 황제는 어느 정도 교회의 권한을 인정해주어야만 했으며, 이런 전통은 제국이 성립된 이후 백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물론, 이에 따른 장단점이 존재한다. 장점은 바로, 콘클라베(대회의)다. 콘클라베란 교회의 추기경들이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회의를 말하는데, 최근 들어 교황의 자리에는 히스파니아 교회 출신 추기경이 두 번 연속으로 임명되어왔다. 이 부분에서 제국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는 즉 황제의 권한이 강화되어 있을 때는 히스파니아 제국이 구교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물론 단점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황제의 권력이 악화되어 있을 때는 추기경에 의해, 교회의 심한 간섭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왜냐 하면 그가 재상이기 때문이다.
리베라 추기경은 잿빛 수염을 길렀고, 진홍빛 사제 옷과 모자를 쓰기를 즐겨했으며 깐깐하면서도 날카로운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50대 중반의 깡마른 사내였다. 그는 박식하고 신앙심이 깊다고 알려졌으며, 선천적으로 타고난 카리스마적인 눈빛이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황녀는 추기경을 경계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신교도들을 몰아내는데 뜻을 같이 하고 있지만, 훗날 그녀가 제국을 승계 받을 때 이런 자를 미리 조심하고 확실히 내 밑에 두지 않는다면 화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명령 없이 살롱까지 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설령 디에네의 일 때문에 왔다 해도 이견은 없었을 것이다.”
“용서해주십시오, 마마. 제 불찰이었습니다.”
추기경이 다시금 절을 하며 깍듯이 사과했다. 그는 자신의 예의를 차리면서 상대에게 사과하는 법을 잘 아는 듯했다.
하긴 그는 십 여 년 동안 황제 밑에서 국정을 운영해왔지 않았는가. 추기경이 공손한 목소리로 해명했다.
“수녀원에서 피정을 끝내신 디에네 데 아라고른 마마께서 하루 속히 ‘섭정’ 마마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본의 아니게 무례를 저지르게 되었나이다.”
추기경은 섭정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다. 이사벨이 황녀보다는 섭정이라 불리고 싶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리라.
역시나 교활한 자로군. 그러나 섣불리 미소를 보일 수는 없는 일이다. 남자들이 다 그러하듯 미소를 보이면 이런 자도 등에 칼을 꽂을 테니까.
내정이 벌어진 이후로 추기경은 황실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디에네를 돌봐 왔다. 그것은 현 황제의 유언과도 같은 명령이었다. 역모로 두 황녀가 모두 죽지 않도록 신앙심이 깊은 디에네의 신변을 추기경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이사벨은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합법적이고 명분이 있는 연금 상태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무리 황제의 명이라 해도 그 어느 누구도 황족을 그런 식으로 연금할 수는 없다.
이사벨이 내친 김에 으름장을 놓았다.
“리베라 추기경은 잘 듣도록 하라. 앞으로 디에네 황녀는 ‘짐’이 돌볼 것이다. 내 아우가 설령 다시금 수녀원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내 뜻을 꺾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한말에 자기가 속으로 다소 놀랐다. ‘짐’이라. 그것은 황제에게나 허용되는 표현이었다. 그것을 은연중에 써버린 것이다. 추기경도 그 호칭에 속으로 뜨끔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 있으랴. 히스파니아 제국의 절대왕정에서 짐은 즉 국가를 상징하고 그녀는 즉 국가가 될 운명인 것을. 이사벨 황녀는 이미 이 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황제는 곧 죽을 것이고, 그의 자리는 자연히 이사벨에게 물려질 태세다.
“마마.”
추기경이 약간은 당혹스럽다는 투로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그는 역시 노련한 정치가였고, 자신에게 명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 누가 마마의 뜻을 거역하겠사옵니까. 마마의 영광이 곧 국가의 영광이고 우리 신민들의 영광이지요.”
“내 뜻을 알았다면 이만 물러나도록 하라. 히스파니아 동방회사의 현안을 비롯하여, 오늘 열지 못한 국정회의는 내일 열릴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추기경이 고개를 숙인 채 순순히 물러갔다. 이사벨 황녀는 마저 집무실로 걸어갔다. 그녀에게는 오늘 내로 결재를 내릴 서류가 쌓여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집무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은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주일 전에 추기경이 했던 말과 정 반대되는 말을 했던 자가 있다.
‘영광은 위로 향할 뿐이지 아래로 향하는 것은 아니야.’
그래 그 자의 말도 옳다. 허나 그것이 제국을 온전히 유지하는 힘이 된다.
이사벨은 그 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름이, 벨린 데 란테라고 했던가. 그 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구했다. 그 복면을 쓴 신교도가 내게 권총을 겨눠 쏘려고 하는 순간, 몸을 날려 쓰러트려버렸던 것이다.
그 자의 능력과 영광이 동맹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아마 그자는 영광은 오지 않아도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그녀는 즉각 깃펜을 들었다. 궁내부에 보낼 명령서였다.
‘총사대와 연계하여, 지난주의 습격 사건에 있었던 벨린 데 란테라는 자를 찾을 것. 그 자를 찾는 대로 은화 오만 페소의 포상을 내릴 것이며, 즉각 황궁으로 초청하여 ‘짐’을 알현토록 할 것.
- 제1황녀이자 제국 섭정 이사벨 데 아라고른 -'
3장 - 애국과 충정
에우로파 대륙에서 화약무기가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안력 1400년대부터다. 화약의 발명은 이미 1300년대 후반에 널리 알려졌는데, 이 화약을 발명한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마법사 겸 연금술사였다. 그는 불로불사의 약을 찾던 중, 우연히 숯과 황, 염초를 1:1:7비율로 섞어 불을 붙여 보았고, 그 바람에 그의 연구실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신뢰성 있는 총기가 개발된 것은 그로부터 이백여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이 총기는 에우로파 대륙의 전장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바로 검이나 마법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점 덕분이었다.
과거 에우로파 대륙에서는 숙련된 마법사를 양성하는 것이 가히 병적일 정도로 횡행했었다. 왜냐하면 마법사를 양성하여 전장에 투입시키면, 그 마법사들은 강력한 마법을 바탕으로 전투에 큰 이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마법사들도 검이나 화살에는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그들은 강력한 공격주문을 사용할 줄 알았고, 창병처럼 냉 병기를 구사하는 보병과 조합되면 큰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법에 잠재력이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이러한 잠재력이 있는 자가 포함된 인구에 따른 비율도 나라마다 달랐다. 가장 마법사를 많이 양성할 수 있는 나라는 빌랜드였고, 가장 마법사의 양성이 제한적이었던 나라는 히스파니아였다.
히스파니아가 아직 왕정이던 시절, 다른 나라의 전쟁에서 열세를 보였던 이유도 이 마법사들 때문이었다. 히스파니아인들은 천성적으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었다. 대신 그들의 신체는 매우 튼튼하고 강인해서 병사들 간의 백병전에서는 쉽사리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허나 그것도 각 나라의 마법 주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밀리기 시작했고, 히스파니아는 항상 값비싼 돈을 들여 용병 마법사들을 고용하고는 했다.
1482년, 빌랜드와의 전투에서 대패한 후, 히스파니아는 이 난관을 타계할 새로운 전술을 내놓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퀴버스라는 화승총의 대량 사용이었다. 이 화승총은 공업이 발달한 히스파니아의 기술을 모두 응용하여 개량되고 생산되었다. 히스파니아는 예로부터 견고한 냉병기와 갑옷을 만들기로 이름이 높았고, 이러한 기초 기술을 응용하여 신뢰성 있는 화약무기를 연구,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연구는 화승총 전술의 선구자이자, 테르시오 전법의 창시자, 제국 원수 겸 톨레도 공작 곤살로 데 코르도바에 의해 진행되었다.
1500년대, 히스파니아는 받침대로 겨누는 무거운 화승총과 견고한 갑옷과 창을 갖춘 갑사들을 이용하여, 전장에서 마법사와 기사들을 사실상 퇴출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화승총의 지속성과 즉발성, 화력과 정확도, 이 네 가지 요소 덕택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즉발성이었다. 화승총은 화승에 불을 붙여두기만 하면,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격발이 가능했지만, 마법은 주문을 외우는데 최소한 10여초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이마저도 히스파니아 병사들의 돌격으로 방해를 받으면 주문이 실패하기 부지기수였다. 그때를 노려, 화승총부대는 적 마법사들을 일제사격으로 쏘아 죽였고, 이런 식의 전투가 몇 번 이어지자, 마법사들은 본래의 일로 돌아가 연금술 같은 학문연구에만 몰두하게 됐다.
이는 두터운 갑옷을 입은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총알을 막기 위해 갑옷이 두꺼워지고는 했지만, 랜스를 이용하여 적진에 돌진하는 전략은 이미 총포에 의해 한 물 가버린 전법이 되어버렸다. 나라들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기사들 대신에, 대량으로 운용할 수 있고, 위력도 강력한 머스킷총 사수들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어느새 전장의 주역이 되어, 다른 집단을 몰아내버렸다.
벨린이 사는 시대는, 이제 이러한 총포가 어느 정도 전장에서 확립되어가던 시기였다. 아직은 기병이 존재했고, 마법사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장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이제 전장의 주역은 밀집대형을 이루며 전진하는 보병들과 그와 같은 속도로 보조를 맞추며 이동하는 야포들이었다.
1600년대, 히스파니아는 대대적인 군제 개편을 하게 된다. 창병과 사수가 엑스자 모양으로 밀집을 이루는 테시도르 전법 대신, 북 에우로파에서 개발된 신식 전법으로 군 체계를 개편한 것이다. 이 전법은 머스킷 사수들을 이열종대로 위치하도록 하여 화력을 집중시키는데 요점이 있었다.
그때부터 병사들이 얼마나 대오를 잘 유지하고, 재빨리 머스킷총을 장전하는지가 숙련된 군인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다. 이 대열에는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군기를 든 기수와, 드럼과 피리, 트럼펫을 든 군악대가 포함되었고, 이들의 역할은 병사들이 적의 사격에 겁을 먹지 않도록 사기를 진작케 하는 것이었다.
벨린과 같이 훈련을 받는 총사 후보생들은 대다수가 이런 진법에 매우 능숙한 숙련된 군인들이었다. 첫째 날 시작된 훈련에서, 그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서로가 능숙하게 대열을 짜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 더불어 그들은 대다수가 일분에 세 발을 장전했고, 세검을 사용하는 검술 실력도 매우 뛰어났다.
연병장에서 일 킬로미터 떨어진 사격장에서 훈련관들은 모든 훈련을 직접 참관 및 지도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했던 일은 데 모레는 온데간데없고, 스피놀라가 훈련관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는 점이다.
훈련이 끝나자, 스피놀라가 후보생들의 대열 앞으로 걸어 나와서는 말했다.
“더는 이런 훈련이 필요 없을 것 같군. 이제부터는 진형을 짜지 않고서도, 적들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훈련을 실시하겠다. 바로 총사가 되는 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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