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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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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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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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7)

DUMMY

흐트러진 머리카락, 마치 나찰을 연상케 하는 눈빛, 그리고 기다랗고 붉은 빛이 감도는 창이 들린 손까지, 그 모습은 분명 죽은 문하시중 천신영의 딸 천인예였다.

“너···희···냐···.”

천천히, 그러면서 또박또박 말을 꺼내는 그녀에게서 흘러넘치는 살기는 모두를 긴장케 하기 충분했다.

특히 천신영을 저격한 장본인인 망아는 예상치 못한 이의 등장에 당황스러웠다. 그녀의 살기는 이해하고도 차고 넘치지만 그와 별개로 만나고 싶은 상대도 아니었으며, 설마 이런 식으로 등장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 머나······.”

소은 역시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와중에 천인예가 창을 든 손의 반대편으로 눈이 갔다. 비단 소은만이 아니라 이 자리 전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왜······.”

천천히 말을 꺼내며 걸어오는 천인예는 그녀의 법보인 창만이 아니라 사람 역시 들려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이었던 것이 축 늘어진 채 들려 있었다.

“왜······.”

그로부터 감지되는 비릿한 냄새가 들려있는 이가 절명했음을, 그리고 천인예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도, 대체 왜······.”

아울러 앞으로 이 자리에 평지풍파가 불 것임도 말이다.

“왜······내 아버지···는 돌아···가셔···야 했어······?”

“어머나······.”

소은을 비롯한 이들은 모두 당혹스러워 했다. 천인예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두 아이와 해독이 되면서 간신히 정신을 차려가는 이소연도 천인예가 내뿜는 기백에 두려움을 느끼며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기운이 쭉 빠지는 말과 함께 천인예는 들고 있던 시체를 놔버리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이 들고 있던 이와 같은 복장을 한 망아와 환관을 향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음을 감시한 망아는 급히 자신의 쇠뇌를 들어 화살을 장전했다. 수세에 몰리는 입장이었어도 크게 당혹스럽지 않았던 망아는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걸 느끼며 다가오는 천인예를 막으려 했다. 망아와 달리 다른 이들은 굳이 천인예를 막거나 할 필요는 없었으나 천인예의 기백에 무엇을 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단 하나 소은에게 얻어맞고 나가떨어진 환관이 천인예를 뒤에서 기습하고자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역시 무의미하게 천인예는 쳐다보지도 않고 창을 휘둘러 막아냈다. 아니, 정확하게 환관의 목을 창날로 베어버렸다. 베인 상처에서 흘러넘치는 피를 막고자 손으로 목을 부여잡으며 그 환관은 쓰러졌다.

다행히 그 작은 틈에 망아는 쇠뇌에 화살을 장전할 수 있었다. 망아는 급히 주문을 외며 천인예를 향해 쇠뇌를 겨누었다. 그럼에도 묵묵히 다가가는 천인예에게 조심하라고 이소연이 외치려 했으나 그만한 기력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순조로이 주문의 힘이 담겨 발사된 화살은 천인예에게 닿지 않았다. 화살은 허공을 갈랐을 뿐이고, 분명 그 자리에 있었던 천인예는 어느새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더니 망아의 앞에 창을 휘두르며 착지했다.

붉은 빛이 머금은 창은 급히 피한 망아는 베지 못했지만 대신 그가 들고 있던 쇠뇌를 부숴버릴 수 있었다.

“······너······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이번에 칼을 휘두른 망아였지만 역시 천인예에겐 닿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피해버린 천인예는 자신의 창을 내질러 멍하니 있던 환관 하나의 가슴팍을 꿰뚫어버렸다.

“하하, 이거 잠자는 범의 콧수염을 뽑은 셈인가.”

“뽑은 정도가 아니라 뒤통수를 후려친 셈이지.”

노려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입장의 소은은 그리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한숨을 돌리는 정기와 주호, 그리고 이소연을 돌보는 두 아이 모두 천인예를 보고 있었다. 다들 차이가 있을 뿐 천인예의 기백에 눌려 있었다.

단 하나, 이소연만이 쓰러진 비도의 모습을 보며 울고 있었다. 아직 독의 여파로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망아는 천인예의 공격을 비도의 칼로 간신히 막아내며 뒤로 밀리고 있었다. 허나 과연 선랑들 중 실력 면에서 뛰어난 편에 해당하는 천인예를 상대로 망아도 이기긴 힘들었다.

그렇다고 순순히 밀리지는 않던 망아는 점차 벽으로 몰리고 있자 입술을 꽉 깨물며 거칠게 칼을 휘둘렀다. 거센 바람이 천인예를 덮치는 와중 망아는 급히 부적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덮쳐온 바람을 가볍게 피한 천인예에게 부적을 급히 날렸다.

환한 빛을 내며 날아가는 부적을 창으로 쳐내버린 천인예였으나 망아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끼다, 그건.”

이윽고 망아가 땅을 걷어차자 일대가 전부 뒤흔들리더니 눈앞이 보이지 않을 흙먼지가 일었다. 당연하게도 흙먼지가 가셨을 때에는 망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이거야 원, 어디로······.”

“놓···치지 않······아.”

마치 망아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 마냥 천인예는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

한 차례 태풍이 가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 와중에 이소연만이 간신히 움직였다. 그녀에게 있어 마지막 남은 동지였던 비도에게 다가간 그녀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비도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우는 그녀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호야, 가서 일련의 상황을 알려줘라.”

[그럴 필요는 없지.]

남영의 목소리가 울리면서 기이한 새 형태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형태는 바람을 타고 내려오더니 소은의 어깨에 안착했다. 소은은 짜증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그 형태를 붙잡고 말했다.

“보고 있었으면 얘기 좀 하지.”

[그 상황에서?]

“어떤 상황에서건.”

[에이, 그건 좀 아닌 거 같고 말이지.]

“얼쑤. 그보다 뭐야? 상황 보고는 필요 없는 것 같고. 그보다 이렇게 나타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아, 맞다. 상황이 조금 재밌게 돼서 말이지.]

“우리한테는 귀찮게 됐고 말이지.”

짜증을 담아 새 형태의 무언가를 꽉꽉 쥐는 소은에게서 주호가 그것을 빼앗았다. 어차피 통신용 도구이기에 남영의 목소리는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일입니까?”

[상황이 크게 진적된달까, 막나가고 있지. 제각기 머리쓴 놈들이 어설프게 계획 짜서 서로 자멸 중이라고 할 수 있어. 일단 마무리를 짓자는 의미에서 너희들 보자는 사람이 있으니 일단 가봐.]

그 말을 마치자마자 남영의 목소리를 전해주던 도구에게서 힘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도구가 바스러지면서 기묘한 빛을 내는 불꽃이 되어 날아다녔다.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 같은 불꽃은 천천히 어느 한 방향에서 머뭇거리며 빙글빙글 허공을 맴돌았다.

“아무래도 따라오라는 것 같네.”

“이 정신없는 전개에 마무리를 지을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 궁금은 하군.”

주호를 비롯한 초정회 일원들과 함께 불꽃을 따라가려던 정기는 이소연 쪽을 바라보았다. 죽은 동료를 붙잡고 눈물만 흘리던 이소연에게 정기가 물었다.

“갈래?”

아무런 대답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정기는 이소연을 두고 가지 않고 다시금 물었다.

“따라 갈텨? 사실 여기 그냥 있어도 문제는 없어보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얼굴 맞대고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낸 사이라 그냥 두고 가기 그렇거든? 어쩔래? 네 동료 죽은 건 안 됐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잖아?”

사실상 같이 가자는 그 제안에 이소연은 반응치 않았다. 정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뒤를 돌아서고 나서야 이소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서두르지. 곧 있으면 해도 뜰 거 같고.”

소은이 앞장 선 일행의 뒤를 이소연도 따라갔다. 정기의 말대로 그저 슬퍼만 할 수 없으니까. 대신 이소연은 두고 가는 비도의 시신을 뒤돌아보며 복수를 다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초정회와 정기, 이소연은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무천군 저택을 습격한 환관들을 지휘하는 주초는 그야말로 계산을 잘못했다고 자책하는 중이었다.

오랫동안 환관으로서 일을 해온 주초는 이주신의 계획에 따라 여러 대신들을 제거하는 계획에 협조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조정의 권한을 태자에게 주는 것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을 비롯한 환관들이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주신에게 열심히 협력한 그는 마침내 조정의 유력한 인물인 무천군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현재 선랑은 물론 응양군을 비롯한 중앙군의 보호를 못 받는 무천군이야말로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무천군의 집에는 무천군만이 아닌 그를 따르는 유력 대신들이 대부분 함께 모여 있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상황에 주초는 기쁘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무천군의 집에는 무천군을 곁에서 호위하는 소수의 가병과 하인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단련된 환관들의 상대를 하기엔 부족해보였다.

그러나 무천군이 있었다.

주초의 자신감에 찬물을 끼얹은 이는 다름 아닌 무천군이었다.

단순히 종친들의 수장이며 조정의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 신하에 불가할 거라 여겼으나, 무천군은 그 이상이었다. 애초에 선랑들의 지휘를 맡고 있던 것을 그저 종친들의 수장이며 상서령의 지위에 있기 때문이라 여긴 게 큰 실수였다.

가병들과 하인들을 쓰러뜨리며 무천군의 측근 중 하나인 서양필을 해치려는 순간 무천군을 중심으로 글자들이 환한 빛을 내며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글자들은 땅바닥에 여러 문양을 형성했고, 그 문양에서 각기 다른 무기를 든 무장들이 소환되었다.

그야말로 신장(神將)이라 불릴 만한 그 무장들은 지금까지 상대해온 이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환관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환관들 역시 지니고 있던 법보를 사용해 맞선 결과 무천군의 집은 반파가 되긴 했지만 대신 환관들 역시 반수가 죽어 밀리기 시작했다.

“내가 따르는 이가 많은 수장의 입장으로서 앞서 나서지 않는다고 약하다고 생각하면 조금 곤란하지 않겠는가. 내가 허투루 이 나라의 정상을 논했겠느냐.”

과연 그 말대로 무천군은 그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었다.


작가의말

 지난주에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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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2) +1 19.03.24 57 0 10쪽
111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1) 19.03.18 60 0 9쪽
110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6) 19.03.11 67 0 9쪽
109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5) 19.03.03 46 0 10쪽
108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4) 19.02.25 44 0 9쪽
107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3) 19.02.18 47 0 10쪽
106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2) 19.02.11 47 0 9쪽
105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1) 19.02.04 55 0 9쪽
104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0) 19.01.28 46 1 9쪽
103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9) 19.01.21 66 1 9쪽
102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8) 19.01.13 71 1 10쪽
»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7) 19.01.06 96 1 11쪽
100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6) 18.12.23 64 1 10쪽
99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5) 18.12.17 52 1 10쪽
98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4) 18.12.09 73 1 9쪽
97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3) 18.11.26 81 2 9쪽
96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2) 18.11.19 86 2 9쪽
95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 18.11.11 7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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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제11장 : 용이 되고자 이무기는 몸부림치는구나 (4) 18.10.21 8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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