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베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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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123
작품등록일 :
2017.12.08 20:53
최근연재일 :
2017.12.08 22:11
연재수 :
7 회
조회수 :
795
추천수 :
0
글자수 :
10,561

작성
17.12.08 20:55
조회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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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쪽

들개

DUMMY

도베르만


1)

반주 한 잔에 목을 축였다.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고단한 하루를 지독한 긴장으로 태워버렸다. 나는 낮에는 택배 일을 했고 밤에는 복싱장에 나갔다.

가장 싼 술은 동네 포장마차에서 팔았다. 허겁지겁 끼니를 챙기며 종일 주린 배를 채우고 잠시나마 긴장을 잊기 위해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한 잔을 들이키자 피곤과 긴장이 조금은 사라졌다.

노인으로 가득한 실내 포장마차에 젊은이는 나뿐이었다. 섀시에 덕지덕지 붙은 시트지 사이로 보이는 창밖에 또래로 보이는 무리가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끼어 대학생처럼 옷을 입고 부자같이 말하고 스타처럼 웃고 싶었다.

나는 혹시 그들이 지나가며 나를 볼까봐 죄도 짓지 않았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쩝쩝거리며 밥공기만 비웠다.

택배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좋은 집은 구할 수 없었고 생활정보지를 뒤져 간신히 ‘잠만 자는 방’이라는 광고를 발견해 계약서 없이 낡은 다세대 주택 한 가구의 남는 방을 빌려 살고 있었다.

집주인은 나이든 미망인이었다. 외동딸이 하나 있었는데 미대에 다닌다는 딸은 따로 나가 살고 있어 가끔 찾아올 때가 있다고는 하지만 거실에 걸린 커다란 가족사진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을 뿐 이었다.

미망인은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인상이 나쁜 나를 받아줬을 뿐만 아니라 새벽녘 몰래 그녀의 냉장고에서 김치나 반찬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래도록 모른 체 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반찬을 훔쳐 먹고 집에서 나간 날이면 미망인과 마주치지 않게 평소보다 늦게 들어가야 했는데 보통 자정을 넘겨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배회하는 것은 나의 의무였다. 어려서부터 배회해야 했다. 부모 없이 살아 온 나는 갈 곳이 마땅찮았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고아원에 돌아가도 됐겠지만 일찍 들어오는 아이를 반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모도 없었는데 친구도 없었고 갈 곳마저 없어 인파를 헤치며 목적지 없는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철저히 혼자였다. 혼자 걷는 길에 사람이 가득했지만 나는 그들 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 가 봐도 그들 하는 말을 들으며 마른침을 삼켜 봐도 용기 내 말을 걸어 봐도 눈길 한 번 끌 수 없는 흔하디흔한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타인과의 접촉이 잦지 않자 내게 남은 것은 본능이었다. 나는 유창하게 나에 대해 말할 능력이 없었다. 마치 동물처럼, 동물과 함께 자란 아이처럼 나는 말을 잃어갔다. 고아원에서 함께 지냈던 영민한 아이들과도 달라서 나는 고아원 안에서 특별한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에는 시장 노점상에서 들리는 고함소리, 비 맞고 난 후에 듣는 콸콸 흐르는 하수도 소리, 길을 잃고 적적한 골목에서 흐느꼈던 울음소리, 나를 떠나가는 버스에서 울려대는 소음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헤매는 나를 버려진 강아지와 같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특히나 점점 들개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는데 길 위에서 춥던 날 갈 데 없는 들개의 불안한 눈빛을 나도 가졌다고 생각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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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링 위에서 17.12.08 114 0 4쪽
6 들개의 출소 17.12.08 109 0 4쪽
5 도베르만의 출소 17.12.08 99 0 2쪽
4 도베르만과의 대결 17.12.08 105 0 6쪽
3 도베르만과의 만남 17.12.08 110 0 3쪽
2 도베르만 17.12.08 86 0 3쪽
» 들개 17.12.08 173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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