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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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woon)
작품등록일 :
2013.06.1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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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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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1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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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7)

DUMMY

삼산동의 윤락가.

울산의 가장 화려한 밤을 자랑하는 이곳은 새벽 세시가 가까워졌음에도 거리에 사람이 가득하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 오직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서로 탐닉하는 눈빛, 떨어지는 빗방울과도 같이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달콤한 말들, 연인들의 밀어보다 더욱 부드럽게 느껴진다. 어느새 남과 여로 짝지은 무리는 저마다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아 나선다. 곧 찾아올 쾌락에 달아오른 그들의 모습은 마치 부나방을 연상시킨다. 돈으로 맺어진 인연, 술로 이어진 인연, 사랑하는 이들을 잠시 두고 새로이 맞이한 인연, 오직 쾌락만을 위한 인연. 그 어떤 인연이든 오늘 밤만큼은 설레는 연인이리라. 그것이 단 하루의 인연일지라도. 사랑과 성, 이 둘은 죽음과 삶처럼 맞붙어 있으나 그 관계는 마치 연인과도 같이 위태하지만 달콤할 지어니.

여기 한 남자를 보라.

지금 그는 늘 자신을 옭아매던 가족들을 알코올의 힘으로 지워냈다. 그의 신경세포는 지금 눈앞의 여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취기 때문일까. 여자는 남자의 이상형과 닮아있었다. 긴 생머리, 쌍꺼풀이 진 큰 눈, 오뚝한 코에 앙증맞은 붉은 입술까지 그가 평소에 꿈꾸던 여인이었다. 여인은 그의 시선을 알아차린 듯 그를 보며 수줍게 눈웃음을 지었다. 남자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그 미소를 보자 자신의 아내가 떠오른 것일까. 문득 아직 자신을 기다릴 아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새 세월의 흐름이 자잘하게 생겨난 마누라의 얼굴과 그녀의 미소는 어째서 닮아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알코올이 다시 그의 신경을 따라 흐른다. 혈액에 흐르는 알코올은 아내의 얼굴을 시냅스 속에 감췄다. 남자의 눈에 여자의 사슴처럼 곧게 뻗은 다리가 들어왔다. 잠시 생겨난 죄책감은 이미 사라졌다. 그의 신경세포가 다시 눈앞의 여자에게 집중했다. 두 남녀는 골목길의 한 모텔로 향했다.


끼이익.

두 남녀가 들어간 모텔 주차장에 차가 들어섰다. 한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조수석이 아닌 뒷좌석으로 향했다. 남자는 동행자를 깨우려는 듯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이내 포기한 듯 그를 끄집어낸다. 한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긴 가디건으로 몸을 감싼 여자는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섰다. 두 남녀를 들여보낸 카운터의 직원은 남녀의 관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든, 불륜이든, 하룻밤의 불장난 상대이든 그들 사이 일은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돈을 받고 방을 건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비를 홀딱 맞은 한 남자가 제법 미인인 여자를 부축하며 들어왔다. 여자는 이미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것 같았고 남자도 역시도 심하게 비틀거렸다. 직원은 잠시 그들에게 흥미가 일었으나 이내 주차장에 다른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키를 내밀었다. 남자는 키를 받아들더니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 새 주인을 맞이했다. 남자, 진석은 여자를 침대에 누이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 한참을 미동도 없이 그렇게 앉아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진즉 이곳에 도착해서 한참 대리를 뛰고 있을 시간, 그런데 현재 그는 낯선 여자와 모텔에 와있었다.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집은 영문도 모른 채 침입자에게 점거당했건만 그는 아무런 짐조차 챙겨 나오지 못했다. 분명 그들은 병원 관계자일 텐데 직원이란 놈이 자신에게 이상한 약을 먹이려 했고 현재까지도 그를 잡으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무슨 영문인지 경찰조차 그들과 한패인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도대체 뭘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왜 쫓기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마냥 도망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쫓기는 이유.’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여자에게 향했다. 여자! 그들은 분명 여자를 노리고 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때문에 난…. 여자를 바라보는 진석의 눈에 원망의 빛이 가득했다.

비를 맞아서일까.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진석은 덜컥 겁이 났다. 여자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는…. 그는 비로소 자신이 경솔했음을 알게 되었다. 주차장에는 아마 CCTV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엘리베이터와 복도의 CCTV는 그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 말인즉슨 이미 자신의 얼굴이 찍혀있다는 것이다. 그는 후회가 몰려왔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숨으면 그놈들이 자신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진석은 지금 너무 피곤했다. 아까의 충격으로 다리는 만신창이었고 비를 계속 맞아서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그는 그저 좀 쉬고 싶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그들도 그를 찾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모텔로 차를 몰고 왔다.

그런데 여자가 죽어버린다면? 자신과 여자의 얼굴은 모두 카메라에 찍혀있다. 게다가 아까 직원은 자신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보지 않았던가. 그는 다급했다. 여자의 코앞에 자신의 손등을 가져다 댔다. 미약하게나마 숨은 계속 쉬고 있었다. 그의 눈이 여자의 가슴으로 향했다.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으로 봐선 당장 위험할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의 시선이 계속해서 여자의 가슴께로 향해 있었다. 본래 헐렁했던 환자복이 비를 맞아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 덕에 가슴의 굴곡이 완연하게 드러났다. 문득 그녀를 업었을 때의 감촉이 떠올랐다. 진석은 삽시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폐쇄된 방안에 단 둘뿐인 남녀. 진석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도 남자인가. 지금 자신이 다른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자신의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우스웠다. 하긴 여자를 만나본 지도 한참 됐지. 팔이 멀쩡할 때도 몇 번 못 만나봤으니…. 그는 피식 웃으며 여자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떠올리기로 했다. 그의 머릿속에 아까의 통화가 떠올랐다. 이 시간에 전화하는 것이 걸렸으나 그만큼 그도 다급했다. 진석은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순간 엇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바로 침입자들이 있는 그 방에 두고 온 것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평소 전화번호란 것을 외우고 다니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있는 요즘 세상에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박씨의 집을 안다는 것이었다. 예전 팔이 멀쩡할 적에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는 그의 집에서 잠든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그리고 박씨의 집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으나 가도 별 소득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일단 한숨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휴식, 휴식이 필요했다. 그는 방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그리곤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병원의 직원이 그를 노려봤다. 그놈의 눈은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는 독사와 같이 사악해 보였다. 그는 그런 눈으로 자신을 탐욕스럽게 응시하고 있었다.


“말했잖아요? 실수하는 거라고.”


진석은 그놈의 눈을 찔러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 그놈의 시선에는 진석을 향한 조롱의 빛이 담겨있었다. 진석은 팔을 들려 했으나 웬일인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밧줄! 그의 온몸이 밧줄로 묶여있었다. 진석은 온몸을 버둥거렸으나 그럴수록 밧줄은 그의 몸을 더욱 세차게 옭아매었다.


“하핫, 소용없어요. 진석씨, 아무리 발버둥 쳐도 쥐새끼는 결국 쥐새끼라고요.”


직원의 웃음소리가 날카롭게 그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는 귀를 막고 싶었으나 밧줄에 묶인 몸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웃음소리가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진석이 고개를 들자 어느새 그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다시 몸을 마구 움직였다. 한참을 그랬을까. 밧줄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그는 팔을 세차게 버둥거렸다. 그러자 작게나마 한쪽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몸을 감은 밧줄을 풀어내려 했다. 그가 밧줄을 손에 쥐자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마치 쇠와 가죽을 섞은 미묘한 느낌, 그 싸늘한 촉감에 자신도 모르게 밧줄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밧줄이 기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뱀! 어린 아이의 손목만 한 하얀 뱀 여러 마리가 어느새 그의 온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밧줄은 어느새 뱀으로 변해있었다. “허억.” 진석은 짧은 숨소리를 내뱉었다. 파충류 특유의 눈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진석은 감히 그 눈과 마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뱀의 눈이 직원의 눈을 닮아있었다. 아니 직원의 눈이 뱀을 닮은 것인가.

쉬이익 소리와 함께 징그러운 뱀의 움직임이 살갗에 느껴졌다. 서늘한 촉감이 그의 피부를 스쳐 지나가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뱀을 괜히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게 분명했다. 뱀들은 서서히 그의 몸을 다시 옭아맸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그들의 행동을 받아들였다.

투욱. 그때 그의 뺨에 무언가 미지근한 액체가 떨어졌다. 진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뱀처럼 목을 길게 늘인 직원이 그의 왼팔을 물고 있었다. 팔에서 흘러내린 피가 진석의 뺨으로 떨어졌다.


“팔에 감각이 없으니 팔이 붙었는지 떨어진 지도 모르나 봐요?”


직원이 말을 마치고 그의 팔을 오도독 소리를 내며 씹었다. 뼈가 부서지는 기이한 소리, 미지근한 피가 그의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직원은 마치 진석의 살을 음미하듯 살점을 천천히 씹어 먹고 있었다. 그의 징그러운 눈은 진석에게로 향해 있었다. 먹잇감을 앞에 둔 유희, 진석은 그에게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의 눈을 바라보자 진석은 뱀의 눈동자가 생각났다. 그의 눈은 뱀, 그 자체였다. 그의 비정상적으로 긴 목은 마치 뱀의 몸뚱이 같았다. 진석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목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씹다 만듯한 여자의 머리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진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진석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심장이 멈춰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자의 초점 없는 눈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몸은 괜찮은 거요?”


진석이 무뚝뚝한 말투로 물었다.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봐, 댁 때문에 나까지 죽을 뻔했다고!”


진석이 소리쳤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진석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모든 실마리를 안고 있는 여자, 그런 그녀가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었다. 진석은 가슴을 탕탕 쳤다.


“도와달랄 때는 언제고. 마음대로 하쇼.”


진석이 포기한 듯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을 향해 있었다.


“난 갈 거요.”


진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 걸어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곤 신발을 신고는 다시 한 번 안을 흘끔 바라봤다. 여자가 어느새 일어나서 현관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나가려고 문 손잡이를 잡자 여자가 현관으로 나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믿을만한 사람인 거죠?”


진석은 아무 대꾸도 없이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으면 말을 더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진석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 * *




“창 형, 형이 여긴 어떻게….”


모두의 시선이 창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표정의 변화 없이 은하를 바라봤다.


“못 올 곳이라도 온 것처럼 대하는군.”


창림이 나직이 말하자 태화가 말을 받았다.


“‘사자는 죽음을 동반한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얘기거든요.”


창림이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태화를 응시했다.


“남화의 우두머리는 사교성이 좋고 활발하다던데 소문과 다른가 보군.”

“그건 산자들과의 얘기죠. 사자와 수호자의 관계는 저보다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수호자들이 일방적으로 대하는 것을 관계라고 표현하는지 처음 알았군.”

“산자라면 대부분 죽은 자를 두려워합니다. 하물며 사자라면 더더욱 멀리해야 할 대상이죠.”

“그래서 나더러 사라지란 건가?”


창림의 두 눈에 기이한 빛이 감돌았다. 은하는 그의 눈이 화가 난 맹수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창림, 그만하게.”


그때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흘러들어왔다. 연기는 마치 생명이 있는 듯 그들의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곤 서서히 사람의 형태로 바뀌더니 이내 검은 천으로 몸을 감싼 청년이 나타났다.


“강림 도령!”


혈마가 그의 모습을 알아보곤 소리쳤다. 사자는 본래 영혼의 형태이기에 그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었다. 평소에는 이처럼 공기에 스며들어 움직이며 명부에 오른 사람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호자들을 포함한 산자들은 평소의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없으며 사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자 할 때만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강림은 혈마와 붉은 매에게 눈인사하고 창림을 바라봤다.


“어째서 수호자와 언쟁을 벌이는가. 자네답지 않게.”


창림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은하의 눈에는 오늘따라 그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이가 더 어려 보이는 강림이 창림을 하대하는 것이 모두의 의문을 일으킬 만도 했으나 모두는 이미 강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강림은 그런 그를 보며 하하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강림의 웃음소리를 들은 은하는 문득 제웅이 떠올랐다.


“강림 도령이 이승엔 어쩐 일이오?”


혈마가 묻자 강림이 씨익 웃었다.


“칙칙한 저승에만 있으니 좀이 쑤셔서 말입니다. 이승은 공기부터 다르군요.”


강림이 어깨를 휘두르며 말했다. 사자는 모두 창림과 같이 냉정한 줄만 알았던 은하는 그가 몹시 흥미롭게 생각되었다.


“하하. 도령은 여전하구려. 대왕님은 잘 계시오?”

“물론입니다. 매일 곡소리를 벗 삼아 하루를 보내시지요.”


이들이 말하는 대왕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본래 저승에는 각 지옥을 다스리는 여러 대왕이 있었으나 이승에서 저승의 대왕을 부를 때는 오직 한 명만을 의미했다. 바로 염라대왕이었다. 그는 평소 강림차사를 극히 아껴 늘 자신의 곁에 두었기에 그들은 이번 강림의 행보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도령이 예까지 왔다는 것은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오?”


혈마는 강림이 이승에 온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강림은 성격이 호탕하고 남자다우나 그만큼 일 처리가 확실했다. 염라대왕이 그런 강림을 이승으로 보냈다는 것은 무언가 중요하게, 그리고 확실히 처리할 일이 있음을 의미했다.


“사자가 이승에 뭐 하러 왔겠습니까.”


강림이 빙그레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연일까. 그의 시선이 은하와 그의 수호신을 향해 있었다. 은하는 그의 시선을 느끼자 온몸에 오싹한 한기가 도는 것 같았다. 마치 벌거벗은 채로 온몸이 얼음에 갇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시선을 더 받고 있다간 그대로 심장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그때 다행히도 붉은 매가 강림에게 물었다.


“매를 데리러 온 것입니까?”


강림의 시선이 붉은 매를 향했다. 그 덕에 은하는 비로소 떨림을 멈출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이 경험을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하하, 저기 누워있는 수호자 말이오?”


강림의 시선이 은매에게 향했다. 강림은 빙긋이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유능한 청년이로군. 수련이 잘된 몸이로다. 저 상처는…. 칼에 찔렸군. 다행히 급소는 피한 것 같은데 솜씨를 보니 전문가가 찌른 것은 아니로군. 찌른 이는 적어도 칼로 사람을 죽인 경험은 없을 것이오. 가만 사람을 죽인 경험 자체가 없군. 사람을 때린 경험은 있으나 죽여본 적은 없는 놈이로군.”


강림은 멀리서 힐끔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은매의 상황을 알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찌른 이의 과거까지도 밝혀냈다. 이는 사자 중에서도 오직 강림만이 지닌 능력이었다. 단편적인 내용에 불과하지만 그는 업경을 비추지 않고 과거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영혼에 업경의 조각을 흡수시켜 얻은 능력으로 염라대왕이 특별히 그에게만 부여한 것이었다.


“내가 온 건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요.”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말에 모두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수호자들의 위기를 우리 사자들이 지켜볼 수만 있나.”


강림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모두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사자들이 자신을 도와준다면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반수호자들을 같이 상대한단 말입니까?”


태화가 놀란 눈으로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강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오.”


이내 모두는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강림은 그들의 표정을 한 차례 살펴보곤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산자들이 좋아, 창림. 이런 다채로운 표정은 산자가 아니면 못 느끼지. 이승까지 내려온 보람이 있어.”


강림이 창림에게 말했다. 창림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인제 그만 말해주시지요. 이승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아, 참! 그렇지. 이승에 온 게 너무 오랜만이라 잠시 망각했군.”


모두는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자, 여러분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이오?”


갑작스러운 그의 물음에 모두는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강림은 다시 빙그레 웃었다.


“반수호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돕지 않는다 했소. 그렇다면 뭐가 남겠소?”


모두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강림은 답답한 듯 가슴을 탕탕 쳤다.


“반수호자들이 어째서 이승에 나타난 거요? 균형은 어째서 깨진 거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러분들은 찾아야 할 영혼이 있지 않소?”

“그렇다면….”

“그렇소. 주작을 찾는 것을 도와주겠소.”


모두의 놀란 표정을 본 강림이 다시 한 번 호탕하게 웃었다.


작가의말

본래 어제 올렸어야 했는데 글이 마음에 안 들어 조금 늦춰졌습니다.

오늘 내용을 조금 더 추가 하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미흡한 느낌이 드네요.

 

그나저나 대구 너무 덥습니다.

더위를 먹은 것 같아요. 밤에 잠이 안 와서 매일 뒤척거리네요.

그러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진 느낌입니다. 덕분에 요즘 까칠까칠 하네요. ㅠㅠ

여러분 더위 조심하세요. ㅠㅠ

 

항상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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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9) 13.09.29 698 39 18쪽
38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8) +4 13.08.26 671 12 21쪽
»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7) 13.08.13 336 7 19쪽
36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6) 13.08.05 697 27 16쪽
35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5) 13.07.20 307 4 16쪽
34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4) 13.07.12 466 6 14쪽
33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3) 13.07.10 1,313 16 16쪽
32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2) +2 13.07.08 896 16 17쪽
31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1) +5 13.07.01 681 7 16쪽
30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8) 13.06.24 1,979 36 23쪽
29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7) 13.06.22 865 32 17쪽
28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6) 13.06.16 584 9 16쪽
27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5) 13.06.16 552 8 15쪽
26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4) 13.06.16 509 8 18쪽
25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3) 13.06.16 1,206 31 25쪽
24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2) 13.06.16 556 14 14쪽
23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1) 13.06.16 1,032 29 11쪽
22 제 2장 네 개의 세력(11) 13.06.16 647 8 12쪽
21 제 2장 네 개의 세력(10) +3 13.06.16 1,144 36 18쪽
20 제 2장 네 개의 세력(9) 13.06.16 979 50 14쪽
19 제 2장 네 개의 세력(8) 13.06.16 695 16 15쪽
18 제 2장 네 개의 세력(7) +3 13.06.16 1,023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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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 2장 네 개의 세력(4) 13.06.16 1,359 29 13쪽
14 제 2장 네 개의 세력(3) 13.06.16 789 1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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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 2장 네 개의 세력(1) 13.06.16 679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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