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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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woon)
작품등록일 :
2013.06.16 13:43
최근연재일 :
2013.09.2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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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26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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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8)

DUMMY

대부분의 새로운 생명은 많은 관심과 축복 속에서 태어난다. 수천 번의 세포분열로 부모의 모습과 흡사한 외형을 지닌 생명을 보라. 누군가 돌보아주지 않으면 금방 꺼져버릴 듯 위태한 생명들은 그 연약함과 나약함이 그들의 무기이다. 그것으로 보호를 받으며 그 큰 눈망울로 부모의 행동을 배워 차츰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랑으로 결실을 맺은 부부 사이에 잉태된 새로운 생명은 기쁨의 대상이요, 행복의 산물이다.

그러나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남녀 사이에 잉태된 생명이란 그 존재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다. 분명 동일하게 남녀의 유전자를 이어 받았음에도 그 태동은 시작부터 불행을 알린다. 때론 자식의 탄생이 부모에게 크나큰 불행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여자의 경우가 그랬다.


여자의 이름은 한미란, 올해 스물여덟이었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이었다. 여자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여자의 어머니는 여자를 안고 엉엉 울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경사스런 날에 주위에는 오직 여자의 어머니뿐이었다. 핏덩이를 끌어안은 그녀의 나이는 여자보다도 어린 겨우 스물둘, 아직 식조차 올리지 못했다.

모두가 반대하는 아이였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도 원치 않은 아이였다. 그러나 단 한명, 여자의 아버지는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아이를 절대 죽일 수 없다고 했다. 여자의 어머니의 눈물이 피도 마르지 않은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적셨다.

여자가 태어난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와 동갑인 아버지는 아직 대학생이기에 육아를 포함한 모든 살림은 어머니가 도맡아해야 했다. 식조차 올리지 못한 채 겨우 혼인 신고를 하고 출생 신고를 했다. 아직 어린 두 사람은 연애 시절 달콤한 기억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행복한 날들을 꿈꾸고 있었다.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를 알지 못한 채.

여자가 태어난 지 삼 개월, 여자의 어머니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시어머니란 작자는 수시로 그녀의 보금자리를 찾아와 어머니를 괴롭혔다. 찾아올 때마다 이것저것 살림을 트집 잡으며 아기를 업은 자기에게 몇 시간이고 욕설이 섞인 막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의 아버지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는 날엔 집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아버지는 네가 참으란 말밖엔 건넬 수 없었다. 아직 어린 나이, 학교조차 마치지 못한 아버지로선 부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엉엉 울며 여자를 괜히 낳았다고 원망했다. 아버지와 여자가 자신의 신세를 망쳤다고 고함을 질러댔다. 식조차 올리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핀잔을 듣고 사는 여자, 아직 가족을 책임지기엔 어린 나이인 아버지는 엄마를 따라 우는 아이를 껴안고 조용히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전쟁 통에 소년병인 할아버지를 여의고 온갖 고생을 하며 재산을 모으고 당신 자식들을 키웠다. 그렇게 고생하며 재산을 모아 당시 꽤 잘사는 편이었던 아버지의 집안에서 어머니를 반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간 날 어머니는 오줌으로 가득 찬 요강을 뒤집어쓰고 그때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온갖 욕을 다 먹어야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어머니의 옆에 무릎 꿇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런 할머니였기에 어머니는 힘든 시집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혼인을 하기 전까지 그녀와 어머니는 친척들에게 소개 시키지도 않았다. 명절과 제사 때 새벽 세시부터 그녀를 업고 음식을 만들던 어머니는 친척들이 올 시간이 되면 늘 다락방에 숨어야했다. 이불 하나 없는 차가운 바닥, 그곳에서 쪽잠을 자며 행여나 여자가 울기라도 할까봐 젖을 물리고 친척들이 어서 가기만을 바랬다.

아버지가 졸업을 하자 어머니는 드디어 식을 올릴 수 있었다. 반짝이는 결혼반지를 끼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어머니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침내 아버지의 아내이자 할머니의 며느리로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할머니는 여전히 여자를 못 마땅해 했기에 신혼여행에 여자를 데리고 가야만 했다. 아직 여린 몸, 결혼식으로 지쳐있는 작은 생명은 부모의 마음도 모른 채 계속 울기만 했다. 결국 어머니는 평생에 한 번 뿐인 신혼여행을 여자의 울음소리와 보내야만 했다.

여자의 어렸을 적 어렴풋이 떠오르는 첫 기억은 할머니의 냉정한 얼굴이었다. 아마 네, 다섯 살로 기억한다. 여자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어머니를 화나게 했다. 회초리를 든 채 달려오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그녀는 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의 다리를 꼭 부여잡은 그 작은 손을 할머니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했다. 여자가 어머니에게 붙들려나갈 때 할머니는 여자를 힐끔 바라 볼 뿐이었다. 그 눈동자는 마치 타인을 본 듯 아무런 관심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 이후로 여자는 두 번 다시 할머니를 찾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자의 가족은 할머니의 집에 얹혀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형제, 자매들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 매일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야만 했다. 어머니는 여자를 엄격하게 키웠다. 행여나 어머니를 귀찮게라도 할지라면 어머니는 사정없이 여자를 매질했다. 그 날도 여자는 도시락 반찬을 하나 집어먹었다는 이유로 개 맞듯이 두드려 맞았다. 그러나 할머니를 포함한 식구들은 아무로 여자를 도와주지 않았다. 여자는 두려움과 아픔에 온몸을 벌벌 떨었다. 여자가 엉엉 우는 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달려와 만류 하면 그제야 어머니의 매질은 멈추었다. 그리곤 아버지를 원망의 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맞이할 준비도 못한 채 너무 빨리 생겨버린 새로운 생명, 어머니는 아직 부모로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여자가 작은 잘못이라도 할 량이면 여자를 마구 두드려 팼다. 여자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어머니의 인생은 바뀌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자의 오랜 기억 속 어머니와 할머니는 항상 자신에게 무심했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인생을 망쳤다며 어머니와 여자를 미워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이유 없이 여자를 매질했다.

아버지는 그런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아버지는 점점 변해갔다.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늘 어머니와 싸우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항상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그때 여자를 없앴더라면 하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어머니의 뺨을 거세게 쳤다. 그 날 이후 아버지의 폭력이 시작 되었다.

술을 마시고 나면 동네에서 온갖 사고를 저지르고 다녔다. 길거리에서 간판을 부수고 지나가던 행인에게 시비를 걸어 싸우는가 하면 가게에서 외상을 하고 안 받아주면 행패를 부리는 등, 아버지는 점점 난폭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술이 아버지를 미치게 한 것인지 아버지가 술을 빌어 본성을 드러내는 것인지 여자로선 알 수 없었다.

여자가 학교에 입학하고 1년,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있었다. 학교를 갈 때에도, 하교를 나고 와서 잘 때까지. 계속해서 아버지는 술에 취해있었다. 할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조차 여자와 어머니 때문이라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여자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사는 것이라 했다. 여자는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조차 말이다.

아버지의 만행을 수습하러 늦은 밤까지 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어머니가 여자의 준비물 같은 걸 잘 챙겨줄 리 만무했다. 초등학교는 준비물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그럴 때마다 여자는 친구의 것을 빌려 썼다. 이제는 선생님조차 그러려니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이 자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저지른 만행에 친구 부모가 당한 것이다. 친구들은 여자의 아버지가 미쳤다며 수군거렸다. 아직 어린 여자는 입술을 꼬옥 깨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어머니, 학교에서의 따돌림에서도 여자가 계속해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존재를 이어준 유일한 한 사람, 이 세상에서 자신을 생각해주고 사랑해주는 단 한명, 그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우습게도 그녀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아직 형태도 갖추지 못한 태아시절,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자신을 인정해준 유일한 한 사람이기에 그녀는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었다. 모두가 아버지를 욕해도 그녀만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 역시 부모로서 첫정인 여자만은 끔찍이 아꼈다. 이렇게 가족의 위태위태한 관계는 가까스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중학생이 되자 아버지의 기행은 절정을 이루기 시작했다. 아마 형제, 자매들의 독립으로 더욱 그랬으리라. 중학생이 되자 대가족이었던 그들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자신 이렇게 어느새 단 네 명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의 기억 속 어머니는 늘 멍을 달고 살았다. 더 이상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사랑이란 게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겁이나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우습게도 어머니는 여자에게 항상 이혼을 거론하며 신세한탄을 했다. 너만 없었으면, 너만. 이 말을 늘 달고 살았다. 이들 가족 사이에는 묘한 기류만이 흐를 뿐이었다.

대개의 십대가 그렇듯 여자는 사춘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족이란 그저 짜증나는 존재였다. 아버지의 폭행도, 어머니의 원망도, 모두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날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가끔 여자의 방에 들어와 여자가 공부를 잘 하는지 확인했다. 여자는 그날따라 신경질이 나 있었다.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차라리 죽고 싶단 생각이 들던 요즘이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슬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평소였으면 일어났을 여자는 그날따라 이불을 덮어쓰고 모르는 채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끈질겼다. 여자를 기어코 깨우려 했다. 어머니의 만류도 듣지 않았다. 아버지가 여자를 계속해서 흔들자 여자는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벌떡 일어난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며 반항기 가득한 눈으로 아버지를 노려봤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여자를 대할 때 아버지는 늘 싱글싱글 웃는 표정이었다. 여자는 그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그래서 절대 그녀만큼은 손찌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을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여자에게 손을 올렸다. 순식간에 여자의 뺨이 부풀어 올랐다.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어머니가 하던 그 말이었다.


“이럴 거면 왜 낳았어? 그냥 죽이지!”


여자의 외침을 들은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다시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아버지의 얼굴은 악귀처럼 변해 있었다. 눈동자는 충혈 되어 붉게 빛났고 번들거리는 흰자엔 살기가 가득했다.


“그래! 모두 다 죽자!”


아버지는 망치를 꺼내왔다. 그는 물건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거실의 책장도, 부엌의 집기도, 심지어 현관문조차 아버지의 망치가 가해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바닥은 금세 깨진 유리와 플라스틱 파편들로 가득해졌다. 그때 할머니가 나와 아버지를 말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망연자실한 채 방안에서 현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둥글게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죽고 싶단 생각이 떠올랐다. 곧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만류하던 할머니를 아버지가 밀쳐서 넘어진 것이다. 어머니가 밖으로 나와 이 광경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의 손에 여행 가방이 들려있었다. 어머니는 무언가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현관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여자는 멍한 눈으로 어머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저 문을 나가면 다신 어머니를 못 보겠지. 그때 여자의 생각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일까. 어머니가 여자의 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여자를 발견하곤 손짓했다. 여자는 잠시 망설였다. 다시 와장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주체 없이 달려 나갔다.

그날 이후 둘은 아버지를 다신 볼 수 없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버지를 잊고 살아왔다. 어머니는 안경공장을 다니며 일을 했고 공장 일을 마친 뒤엔 머리에 과일을 이고 행상을 다녔다. 여자는 학교를 마치고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최저시급이 뭔지도 모르는 그녀는 그저 돈을 벌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괜찮았다. 그렇게 둘은 아버지를 잊은 채 십년을 살아왔다. 그 동안 주말에 가끔씩 아버지의 집 근처로 가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잘 살고 있기만을 바랬다. 이혼도 하지 않아 여자는 여전히 아버지의 호적에 올라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어머니는 다시는 여자 앞에서 신세한탄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학교 앞에서 작은 분식집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들어가 돈을 벌었다. 야간 근무를 하는 날에는 가게 일도 거들며 어머니를 도왔다. 서로 암묵적으로 아버지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은 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가 찾아왔다.

여자는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까지 세 명이서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을 꿈꿨다. 그것이 유일한 소망이자 그녀 평생소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그것도 거액의 빚을 떠안은 채로.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어서조차 자신을 힘들게 한다며 원망했다. 여자도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 없이 빚의 액수를 보고 놀랐다. 그녀들에게는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그녀들을 찾아온 남자들은 빚쟁이라 자처하며 그녀들에게 빚을 갚기를 요구했다. 십년 넘게 별거 중인 상태였으나 아직 법적으로 부부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 달에 갚아야할 이자는 자그마치 삼백만원, 어머니는 무리해서 일을 하다가 이년 만에 아버지를 따라 가셨다.

조촐한 장례식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가게를 정리했다. 가게를 판 돈으로 빚을 정리하기엔 무리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원망했다. 죽어서까지 자신을 옭아매는 아버지, 그러나 죽은 이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 순간 어머니의 심정이 떠올랐다. 이렇게 살아선 희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가게를 판 돈을 가지고 달아났다. 자신의 지역과 먼 이 곳 울산으로. 오직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어머니의 사망신고를 하며 사람을 시켜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말소 시켰다. 빚쟁이들은 더는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여자는 이번에야말로 새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새롭게 시작한 식당의 아르바이트는 그녀의 적성에 잘 맞았다. 제법 큰 식당인 이 곳은 원한다면 숙식제공까지 하고 있어 그녀에겐 딱 이었다. 공장의 매캐한 기계 내음, 기계부품 같은 동료들 보다 먹음직스런 음식 냄새와 활기찬 이 곳이 더욱 맘에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날따라 가게가 너무나 복잡했다. 식당엔 사람으로 가득했고 한 부부의 아이가 정신없이 왔다갔다 거렸다. 주변 이들의 핀잔을 들은 아이들은 이내 그들을 피해 주방에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뚝배기를 들고 돌아서려는데 아이들이 그녀의 몸과 부딪혔다. 천만 다행이도 뚝배기는 옆으로 쏟아졌으나 아이들은 이 상황에 놀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게 중 아이들의 얼굴을 본 손님들은 아이 부모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이 부모는 그녀에게 괜찮냐는 말도 없이 이내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 듯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녀의 팔에 물집이 부풀어 올랐다. 그릇을 떨어뜨릴 때 실수로 팔을 데고 말았던 것이다. 붕대로 감고 얼음찜질을 했으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동료의 의료보험을 빌려 병원을 들르게 되었다. 의사는 친절하게 붕대를 새로 감아주곤 일주일 후 다시 오라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낯선 이들이 그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집요했다. 여자에게 관심 있는 손님인 척 여자의 신상을 캐묻고 다녔다. 제법 예쁜 얼굴의 그녀가 일만 하는 것이 안타까운 주방 아줌마 하나가 그녀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려주자 남자들은 노골적으로 그녀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늦게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그녀를 급슥했던 것이다. 그들이 향한 곳은 그녀가 치료를 받았던 ㅇㅇ병원 이었다.




* * *




“호오, 이들이 바로 사방신의 수호자로군. 반갑네.”


강림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서호와 운용, 다윤은 멍청한 얼굴로 강림을 바라보았다. 택우는 눈을 빛내며 유심히 그를 살피더니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했다.


“현무의 수호자가 강림님을 뵈옵니다.”


현무의 말을 들은 셋은 화들짝 놀랐다. 강림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택우를 응시했다.


“과연 현무의 수호자로군. 보는 눈이 있군 그래. 현무는 수호자를 잘 골랐군.”


그 말을 들은 셋이 다급히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강림은 만족한 얼굴로 그들의 인사를 받다가 다윤의 순서에 이르자 눈빛이 달라졌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반갑네. 난 사자들의 우두머리인 강림이라네.”


강림, 수호자라면 어떻게 그를 모를 수 있겠는가. 사자들의 우두머리이며 염라대왕이 특히가 가장 아끼는 부하인 그를.


“반수호자들에게 꽤나 밀리고 있다며?”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맘 같아선 자네들과 악마를 처단하고 싶으나 저승의 규율이 엄격해서 말이야.”


저승과 이승은 철저하게 나뉘어 있었다. 저승에 머무르는 자를 죽은 자, 이승에 머무르는 자를 산 자라 칭했다. 저승사자와 수호신은 죽은 자에 속했으며 생명을 지닌 대다수의 사람들은 산 자에 속하는 것이었다. 다만 수호자들만이 그 중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이들은 서로 관여할 수도 없고 영향을 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자네들이 악마들에게 당하는 것을 볼 수만 있나. 그래서 주작을 찾는 것을 도와주려고 한다네.”


강림의 말에 다윤의 눈동자가 커졌다.


“주작! 주작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그녀의 외침에 강림은 빙긋이 웃었다.


“아니, 하지만 흔적은 포착했지.”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강림에게 집중되었다.


한편, 은하는 태화와 헤어져 친구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앞에 검은 연기가 스르르 피어나더니 이내 사람의 형태로 변했다. 바로 창림이었다.


“형? 강림님과 같이 가신 거 아니었나요?”

“먼저 가셔서 잘 이야기 하고 계실게다.”


은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창림이 다가와 그의 곁에 나란히 섰다.


“후회하고 있느냐?”

“네?”

“네 친구를 못 도와준 거 말이다.”


그 말에 은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후회, 후회가 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가. 다시 되돌아온들 그 행위 자체가 용서될 수가 있을까. 그를 만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해라.”

“네? 그게 무슨…?”

“그릇은 아직 인간이다. 말하자면 변하기 전 네 친구와도 같지.”


그 말에 은하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러나 황룡의 지시는 그를 죽이라 하지 않았는가.


“무슨 선택이든 간에 네가 후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과 같은 겪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은하는 그의 말을 경청한 뒤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곤 그에게 꾸벅 인사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형.”


창림은 그런 그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가지. 강림님을 조심해라.”


은하는 순간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무슨….”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


창림은 말을 마친 뒤 입을 꾹 다물었다.


작가의말

뜬금 없는 내용 전개네요.

8화가 되어서야 드디어 4장의 주제가 나오는군요. 

조금 노골적으로 던졌는데 아실 런지 모르겠습니다.

이번화는 글이 산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죄송합니다.

 

항상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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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8 직설법
    작성일
    13.08.26 21:26
    No. 1

    오, 이번 화만 읽어서 전체적인 스토리는 잘 모르지만 '여자'이야기는 꽤 몰입도가 있네요. 주변에서 흔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면서, 여자의 불행한 처지가 잘 느껴집니다. 내용중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부모의 빚을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개인파산 신청인가 하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이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거라도 했으면 더 불행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드네요 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운(woon)
    작성일
    13.08.27 01:17
    No. 2

    댓글까지 달아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D 그 부분을 발견하시다니 예리하시군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흑천청월
    작성일
    13.09.25 07:28
    No. 3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운(woon)
    작성일
    13.09.26 22:15
    No. 4

    헛, 댓글 감사합니다.
    확인이 너무 늦었네요. ㅠ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__)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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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2) +2 13.07.08 896 16 17쪽
31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1) +5 13.07.01 680 7 16쪽
30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8) 13.06.24 1,979 36 23쪽
29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7) 13.06.22 865 32 17쪽
28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6) 13.06.16 584 9 16쪽
27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5) 13.06.16 552 8 15쪽
26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4) 13.06.16 509 8 18쪽
25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3) 13.06.16 1,206 31 25쪽
24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2) 13.06.16 555 14 14쪽
23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1) 13.06.16 1,032 29 11쪽
22 제 2장 네 개의 세력(11) 13.06.16 647 8 12쪽
21 제 2장 네 개의 세력(10) +3 13.06.16 1,144 36 18쪽
20 제 2장 네 개의 세력(9) 13.06.16 979 50 14쪽
19 제 2장 네 개의 세력(8) 13.06.16 695 16 15쪽
18 제 2장 네 개의 세력(7) +3 13.06.16 1,023 26 14쪽
17 제 2장 네 개의 세력(6) +2 13.06.16 1,207 17 14쪽
16 제 2장 네 개의 세력(5) 13.06.16 718 8 16쪽
15 제 2장 네 개의 세력(4) 13.06.16 1,359 29 13쪽
14 제 2장 네 개의 세력(3) 13.06.16 788 12 18쪽
13 제 2장 네 개의 세력(2) +5 13.06.16 823 14 16쪽
12 제 2장 네 개의 세력(1) 13.06.16 679 9 13쪽
11 제 1장 시작의 장(10) 13.06.16 936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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