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우리가 연애를 할 수 없는 이유.(2)
제대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청룡단의 미팅 사건 그 옆자리, 그곳에는 현무단의 미팅이 한창이었다. 그나마 문제아는 없는 곳이긴 한데 청룡단의 사건을 한번 겪게 되자 괜스레 걱정이 되는 현무단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사건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어머, 설마 저분이 총단장님?”
처음엔 왜 소녀인가 했던 영애1은 소녀가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문양을 보고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저희 황실 기사단의 총단장입니다.”
“어머나, 의외네요. 그 대단한 황실 기사단의 총단장이 저런 꼬맹이라니. 이래서야 원,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겠는데요?”
“호호, 그러게요. 이 분들도 대단하시네요. 저런 분 밑에서 훈련을 받다니. 괜찮으시면 아버지께 말씀 드려서 총단장을 바꾸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 어떠신가요?”
나름 호의인 척 건네는 말이었지만 들어있는 악의는 분명했다. 하긴 다들 레안에게 한번씩 데인 적 있는 귀족가의 영애인지라 이해가 되긴 하지만.
“레이디께서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레안 님이 다소 외모 상으로 어려보일 수 있으나, 실력은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말씀하시는 건 삼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여자라고 애써 차분하게 말하는 하륜이었다.
“그래봤자 꼬맹이 아닌가요? 거기다 여자가 검이라니. 그럴 시간에 자수나 하나 더 할 것이지.”
나름 우아한 척 하며 차를 마시는 영애였다.
“편견 아닐까요? 여자라고 모두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천박하게 여자가 검이라니. 그걸 법에 언급하는 것 부터가 이상한 일이에요.”
내가 지금 과거에서 온 것일까.
유난히 막혀 있는 사고에 저리 편협한 생각이라니. 물론 아무래도 대부분의 기사들이 남자이고, 귀족 영애 쯤 되면 손에 굳은 살 생기는 검술이 아니라 자수나 그런 것들을 배운다지만 저건 좀.
“그 입이 더 천박하군.”
“뭐라구요, 감히 제게!”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시선을 보낸 영애의 눈에 현무단 단장인 라이너가 보였다.
드물게 제대로 화가 난 듯 흉흉한 라이너의 모습에 다소 놀라던 하륜은 이내 라이너가 왜 화를 냈는지 알 수 있었다. 하륜이 레안을 욕한 그녀의 행동에 화를 낸 것이라면 라이너는 자신의 아내인 유란 때문이었다. 확실히 황실 기사단 내 검을 쓰는 여자는 두명이었다. 레안과 유란. 그러니 저 여자는 잘못 건드린 것이었다.
그나마 하륜은 적당히 조절을 한다지만 라이너의 인간 구분법은 아내와 그 외로 구분되어 여자라는 것에 대한 배려도 해주지 않는데.
“너 따위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감히 내 아내를 욕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능력도 좋네요. 별 볼 일 없는 꼬맹이 주제에 단장도 유혹하고.”
“누가 꼬맹이라는 거지. 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나 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유란의 그 몸매와 그 얼굴 보고 꼬맹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어머, 그러고 보면 당신은 저속한 그네들의 단어로 로리콤이던가요. 하긴, 그런 사람이 있는 기사단이니 멀쩡한 게 이상하네요.”
“눈과 입이 병신인데 그걸 왜 얼굴에 달고 다니는 거지?”
“내가 지금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건가요?”
“하난 확실하군. 약도 통하지 않을 미친년이라는 거.”
“뭐라구요?”
“귀까지 병신이군. 그리고 죽여 달라고 삽질을 하고 있는 게 미친 게 아니면 어떤 게 미친 거지?”
“이런 무례한!”
“무례는 그쪽이 먼저 내 아내에게 했지. 내 아내만큼 검이 잘 어울리는 여자도 없으며, 내 아내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는 없네. 감히 멍청한 귀족들 따위가 건드릴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야.”
싸늘하게 내뱉어진 말 치고는 그야말로 애처가의 모습을 띠고 있는 지라 듣고 있던 하륜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저 단장인 라이너는 무언가 오해를 한 듯 했다. 애초 귀족 영애가 꼬맹이라 부른 것은 유란이 아니라 레안이었건만. 그 부분에 대한 말은 듣지 못한 듯 했다.
“하, 우습군요. 고작 그따위 꼬맹이한테 절절 매는 꼴이라니.”
결국 참지 못한 라이너가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가까스로 카렌과 하륜이 그를 막을 수 있었다.
“당장 비켜.”
비키지 않으면 너희를 베겠다, 라는 살벌한 엄포에 카렌과 하륜이 잠깐 움찔했지만 여기서 문제를 더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역시 여자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는 것도 거슬리고.
가까스로 카렌이 라이너를 데리고 사라졌고, 그 틈에 하륜은 좀더 효과적인 복수를 했다.
화장 떡칠을 한 귀족 영애들에게 한바탕 물을 퍼부은 것이었다. 덕분에 애써 한 화장이 지워지며 영애들은 검은 눈물과 함께 팬더의 모습을 해야 했다.
2.41.1
:범인은 그 중에 있다!
어둑한 밤. 하엘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
힘들게 겨우 몰래 빠져나왔건만. 제대로 산산조각이 난 건물에 하엘이 인상을 찌푸렸다.
희미하긴 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분명 그 구슬이 여기 있었던 건 맞는데. 거기다 이 냄새 익숙하다?
레안?
아무래도 이 건물을 이 꼬라지로 만든 것은 레안과 그 기사 떨거지들인 것 같았다.
끄응.
레안이 구슬을 발견했다면, 그 구슬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을 터. 그랬다면 자신에게 뭐라 언질을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으니, 레안이 아닌 누군가가 그 구슬을 발견하고 주워갔다는 이야기.
귀찮은데. 또 어떻게 찾아야 하려나.
기껏 구슬 가지고 토낀 흑마법사 찾고 여기까지 왔는데.
또다시 한단계가 더 생겼다는 사실에 하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 작가의말
얘네들에게 애초에 연애란 불가능한 것인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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