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여우 판타지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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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여우
작품등록일 :
2019.10.29 20:37
최근연재일 :
2019.10.31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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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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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31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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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인간,악마,인간,괴물

DUMMY

.


터엉-!


“이게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소령은 자신의 앞에 놓인 문서 위에 손바닥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도대체,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명령을 내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뜬금없이 좀비전담 특수부대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을 때부터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챘어야 했다.


소령은 당장이라도 사령부에 연락을 넣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그동안 군인으로서 단련된 차가운 이성 덕분에 간신히 제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사령부에 연락해서 따진다고 해 봤자, 도대체 무엇이 바뀔 것인가?


푹신한 사무용 의자 속에 푹 파묻힌 소령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진정시키며 책상 위의 문서를 노려봤다.


누리끼리한 색의 서류봉투에 들어있던 한 장의 종이에는 최고사령부의 직인과 문장이 새빨간 색으로 뚜렷하게 찍혀져 있었다. 하지만 소령은 그 직인이 마치 피로 찍은 것 마냥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도시내부의 군대와 협력하여 도시 내 만 15세 이하의 민간인을 모두 소각. 명령 불복종은 즉결처형]


그래, 바로 그 명령이 문제였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러나 납득할 수밖에 없는 명령.


정체모를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에 좀비가 출현한 지 세 달. 처음에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던 군대였지만, 금세 전열을 재정비하고 좀비들을 색출하여 제거작업에 들어갔다. 제아무리 죽지 않는 시체들이라고 해도, 온 몸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 진다던지,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다던지, 탱크나 장갑차의 밑에 깔려 곤죽이 되어버린다면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단 세 달 만에 폐허가 되었던 도시들이 천천히 탈환되고, 하수구나 공동묘지에서 기어 나오는 좀비들을 소탕하였다. 그로인해 전 세계 도시의 절반은 다시 인류의 손에 쥐어졌다.


좀비들이 세상을 뒤덮은 세 달 동안, 세계를 구하고 민간인들을 지킨 것은 시민들끼리 만든 민방위 조직도, 국가의 수뇌부도 아닌, 군대였다. 민방위 조직들이 무너지고, 수뇌부가 안전한 해외로 달아날 때도, 군대는 떠나지 않았다. 그들에겐 지켜야 할 것이 있었고, 지킬 힘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령은 그런 군인중의 한 사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아남은 민간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신의 일에 자긍심과 뿌듯함을 느끼고, 도망치는 민간인을 향해 느릿하게 쫒아오는 좀비들을 막아서길 주저하지 않던 그였다.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 하달된 명령은 민간인들을 학살하라는 명령. 그것도 단순히 죽이는 것이 아닌 ‘소각’이었다. 이미 상부에선 그들을 ‘인간’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만약 상부가 그들을 인간적으로 인정했다면 ‘소각’이라는 단어를 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소령은 그 명령에 대해서 상부에 어떠한 항의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명령 불복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상부가 내린 명령에는 소위 말하는 ‘대의’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떠한 행위도 인정되게 만드는 대의라는 단어의 힘. 소령은 사람을 소각해야 하는 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좀비 바이러스의 출현.


감염 후 열다섯 시간 내에 징후가 나타나는 일반 바이러스와는 다른, 슈퍼 바이러스가 이 일대에 퍼졌다는 것이다. 공기로 인해 전염되며, 감염 후 좀비화 되기 직전까지 아무런 사전징후가 나타나지 않다가 갑자기 좀비로 돌변한다. 물린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좀비화 되어버린다. 유일한 약점이라면, 1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만 전염된다는 것 뿐.


그야말로 또 다른 재앙이었다.


“제기랄······."


소령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윤리적으로도, 인간으로도 차마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민간인, 그것도 어린아이들 수백 명을 학살하라니, 이건 도저히 사람들을 지키는 군대가 할 짓이 아니지 않은가. 양심이고 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수행해야만 하는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이후의 책임은 모두 그가 지게 된다. 명령 불복종으로 처형되는 것이 자신이 될 지도 몰랐다. 또한 나머지 민간인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소령은 지금 자신의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 때려치우고 어디 산골에 숨고 싶었다. 결단을 내리는 것은 자신. 명령을 하는 것도 자신이다. 고로 책임도 자신의 것이다. 그들을 죽이는 것은 모조리 자신의 의지였다.


소령은 탁자에 팔꿈치를 댄 채 조용히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작전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열다섯 시간 후. 옳고 그름을 따질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제 자신은 결정해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 부대는 이 도시에서 15세 이하의 민간인을 모두 모아서 소각 처리한다. 불만사항은 묵살하겠다.”


정적.


소령은 모든 병사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소령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도저히 부대원들의 눈을 마주볼 용기가 없었다. 소령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부대원들 전부가 흔들린다. 지휘관이란 그러한 존재였다. 부대의 사기에 영향을 끼칠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부동의 존재.


소령은 어금니가 부서질 것처럼 힘을 주고는, 애써 무표정으로 재차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각자 한 시간 내로 군장을 챙겨라.”

“허, 소령님. 명령 하달이 잘못 된 것 아닙니까?”


한 소대장이 손을 들며 말했다.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그는 입가에 당황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런 반응쯤은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고, 이해할 수도 있었다. 소령 자신도 처음에는 공문부터 의심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건 현실이다. 그것도 자신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포기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 소령은 이 병사에게 그것을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비록 소령 그 자신이 그것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중사. 이건 농담도 아니고 명령의 오류도 아닌, 상부에서 직접 내려온 사안이다.”


소령의 말에 중사라고 불린 소대장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도 소령이 하는 말이 아무런 꾸밈도 없는 명확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을······.”

“이유는 이미 설명했다. 중사.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을 소각하지 않으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소각이라. 소령은 어느 새 자신도 그들에게 ‘소각’이라는 단어를 쓰길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속으로 조소했다. 방금 전까지 상부의 인간들에게 비인간적인 놈들, 악마 같은 놈들이라며 욕지기를 내뱉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인간이잖습니까! 그들은, 그 애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흥분한 그의 말을 듣자 소령은 당장이라도 그의 멱살을 잡아채고만 싶었다. 누구는 몰라서 그런다는 말인가. 자신이라고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아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들을 삼키고 소령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을 살렸을 때, 빠르게 퍼져나가는 바이러스는 어떻게 할 건가? 공기전염이다. 확산속도는 상상할 수조차도 없다. 주위에 있는 어린아이들은 모조리 언제 발작할지 모르는 위험인자다. 그로인해 다른 생존자들까지 모두 죽어버리길 원하나. 그 책임은 누가 질 건가. 상층부? 나? 그도 아니면, 중사 자넨가?”

“그······.”


소령의 말에 뭔가 반박하려던 소대장은 이내 고개를 떨궜다. 흥분한 채로 꽉 쥔 주먹을 떠는 소대장을 바라보며 소령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거부권이 없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우리는 위험인자들을 제거해야만 한다.”


소위는 자신의 말이 꼭 자신을 향한 창 같다고 느꼈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그런 거창한 명분은 극도의 자위행위일 뿐이었다. 그는 살고 싶었다. 오직 생존이라는 단순한 욕구만이 그를 움직이고 있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 한 발자국씩 걸어갈수록 죄책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지만, 그와는 반대로 자신의 가슴은 점차 가벼워진다. 소령은 너무도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자신이 미치도록 저주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자신을 책망한다 하더라도 결국 본능에서 벗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더더욱 참을 수 없었다.


병사들은 모두들 말이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모두들 그 임무를 마음속으로 거부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눈빛도 점차 바뀌고 있었다. 사소한 자극 하나로도 병사들이 모두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령은, 그들을 통제할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명령 불복종은 즉결 처형이다.”


폭력에 의한 지배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명분. 병사들의 눈빛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한시름 놓은 건가. 소령은 작게 한숨쉬며 주머니 속의 권총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떼었다.


“일단 이쪽 구역이 바이러스 위험 지역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시작한다.”

“말도 안 돼. 나는 이 엿 같은 상황을 납득 못하겠어!”


소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병사 한 명이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그는 흥분했는지 새빨간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트리고는 소령을 노려봤다.


소령은 병사들이 술렁이는 것을 느꼈다. 한 번 반발이 확산되면 걷잡을 수 없다. 온 몸의 피가 차갑게 냉각되는 기분이었다. 소령은 권총을 꺼내들어 병사를 겨눴다.


“명령 불복종은 즉결처형이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연병장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냉각되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쳤어! 모두 다 미쳤다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바이러스 때문에 수백 명의 어린애들을 다 태워버린다? 말이 되는 소리를 지껄이란 말이다!”

“명령한다. 당장 제자리로 돌아가라.”


손가락 사이로 차가운 방아쇠의 한기가 타고 올라왔다. 가슴은 미칠 듯이 쿵쾅거렸지만, 소령 자신의 머리는 너무나도 이성적이었다.


당장 제자리에 앉아. 소령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제발 자리에 앉아. 제발. 소령은 최대한 천천히 손가락을 당기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명령 불복종은, 즉결 처형이다.”


병사는 소령의 말에 잠시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이를 악물고는 연병장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쏠 테면 쏴 봐! 빌어먹을. 난 이딴 임무는 절대······!”


타앙-!


병사는 연병장 밖으로 나가던 그대로 고꾸라졌다. 소령은 순간 자신이 한 일을 인지할 수 없었다. 천천히 당겨지던 방아쇠가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 너무나도 허망하게 한 생명이 스러져 간 것이다.


차가운 연병장 위에 붉은 피가 퍼져나갔다. 죄 없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병사를 쏴 죽여 버렸다.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가 소령을 제정신으로 돌려놨다.


“후우······.”


소령은 코에서 느껴지는 매캐한 화약 냄새에 취해서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휘관이다. 이미 저질러 버린 이상 결코 흔들릴 수 없다. 소령은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또 명령에 불복종하는 자가 있나.”


소령은 싸늘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불만을 표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을의 언덕 위, 나무로 만들어진 유일한 건물인 교회 주위는 온통 기름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교회 바깥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전차와 군인에 의해 가로막혀 아우성치고 있었고, 수십 명의 군인들이 교회를 빙 둘러싼 채로 교회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들어간 교회 안을 보며 소령은 갈등했다. 차마 불을 붙이라는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공포에 질려 우는 아이들, 소령은 괴로운 눈으로 교회의 십자가를 바라봤다. 잠시 후면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지르게 된다.


신이시여. 어째서 이런 시련을 인류에게 내리시나이까.


소령은 교회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부대원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모두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총을 잡고 있었다. 눈은 꾹 감고,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소령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인류의 생존, 아니 자신들의 생존을 지킬 필요가 있는가.


바깥에서 군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이 안까지 들려왔다. 빨리 죽여 버리라는 고함부터, 자식을 빼앗긴 부모의 비명까지. 소령은 차라리 귀가 멀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그만두고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공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상부에다 엿이나 먹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더 이상은 돌이킬 수 없었다. 자신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의 짐승이고 악마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울부짖는 부모에게 자식을 빼앗을 때부터? 자신에게 항의하던 병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라면, 이 결정을 내린 그 순간부터였을까?


십자가에 매달린 신의 얼굴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었다. 마치 신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과연 신은 그를 노려보며 분노하고 있을까. 아니면 가여워하고 있을까.


아니, 소령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는 것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 생존이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위해서 스스로 인간을 버리고 악마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해도 그는 자신을 위해 수백 명의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소령은 들었던 손을 내렸다.


새빨간 불길이 순식간에 교회를 덮쳤다. 바깥의 소리가 한층 더 격렬해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소령은 불타는 교회를 바라보며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모두 말라버린 것일까. 눈물조차 나오지 않다니. 자신은 이미 악마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차마 볼 수가 없어 소령은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소령은 고개를 젓고는 교회를 바라봤다. 새빨갛게 불타는 교회는 마치 붉은 톤으로 채색된 듯 했다. 그러나 그것에서 아름다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소령은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 가슴을 매만졌다. 손을 통해서 체온이 전해졌지만 그의 가슴은 한없이 차가웠다.


순간, 소령의 눈에 한 소녀의 모습이 비춰졌다. 열 살쯤 되었을까. 교회 창가에서 멍한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소녀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공허한 눈동자는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소령은 갑자기 너무나 부끄러웠다. 교회의 십자가를 볼 때조차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았는데, 마치 전부 발가벗겨진 채로 모든 속마음을 보인 것 같았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소령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사들을 제치고 교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뒤에서 그를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오직 그 소녀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였다.


불타는 교회의 빗장을 연 그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서 시뻘건 불꽃이 낼름거리며 그를 위협했지만, 그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사방의 불꽃이 그의 옷을 태우고, 머리카락을 태우고, 피부를 태웠지만 그는 전혀 뜨겁지 않았다. 그 순간 뜨거운 건 오직 그의 가슴뿐이었다.


소령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들을 구할 때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 소녀를 발견하자, 소령은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흘렸다. 아까 전에는 흐르지 않던 눈물이, 지금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것은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일까. 아니면, 인간으로 돌아온 증거의 눈물일까.


소녀를 안아든 뒤, 소령은 생각했다. 자신은 결코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소녀의 눈물은 그쳤지만, 소령은 소녀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콰득-


순간 들려온 소름끼치는 소리와 목에서 느껴진 화끈함에 소령은 고개를 숙였다.


소녀가 그의 목을 물고 있었다. 새빨간 불길 속에서 새빨간 색으로 칠해진 소녀의 얼굴이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며, 소령은 천천히 정신을 잃어갔다.





악마를 인간으로 되돌려 놓은 것은 괴물이었다.




.


작가의말

이것도 2009년도의 글이군요. 처음으로 썼던 좀비 소재의 글이었습니다. 군대 주제에 뭔가 어설퍼 보이는 건 당시의 제가 군대를 영화로 배운 중고등학생 정도 나이대였기 때문에...XD


언젠가 본격적으로 좀비물을 한번 써보고 싶네요. 좀비물은 영화든 소설이든 참 좋아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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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끝) 후기 19.10.31 257 8 2쪽
14 혁명의 열쇠 19.10.31 174 8 32쪽
13 바람이 태어난 곳 19.10.31 122 5 16쪽
» 인간,악마,인간,괴물 19.10.31 162 5 17쪽
11 우상과 향수의 굴레 19.10.31 95 5 3쪽
10 도를 아십니까? 19.10.31 131 5 15쪽
9 당신에게 향하는 편지 19.10.31 98 5 9쪽
8 나를 이끌어 주었던 그 손의 온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19.10.31 108 4 9쪽
7 산 중턱 산장에서 만난 어떤 남자의 이야기 19.10.31 117 5 7쪽
6 휴머노이드 테러 19.10.31 122 5 6쪽
5 시선 가득히 19.10.29 140 5 12쪽
4 마법은 위대해! +3 19.10.29 362 10 32쪽
3 불꽃을 빚는 노인 +2 19.10.29 624 19 14쪽
2 고양이는 민들레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3 19.10.29 1,168 2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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