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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
작품등록일 :
2012.05.15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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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창도 없는 답답한 마차에 실려 꼬박 이틀하고도 반나절을 흔들린 끝에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를 깊은 산 속이었다.

폭과 길이가 이십여 장쯤 되는 연무장과 몇 채의 허름한 모옥.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깊고 어두운 숲.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십여 명의 사내들은 식당으로 사용되는 한 채의 모옥 안에서 검은 무복의 사내들이 날라다주는 음식들을 허겁지겁 집어 삼키고 있었다.

“먹으면서 들어라.”

차가운 인상의 사십대 장한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이곳 무림맹 제삼 경비단 교육대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나는 교육대장 오창록이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곳에서 나를 비롯한 여러 교두들과 함께 제삼 경비단원이 되기 위한 육 개월 간의 교육과정을 밟아야 한다. 여러분은 전원이 엄선된 지원자이며 또한 이미 이곳 교육을 받기에 충분한 강호 경험과 무공을 갖추고 있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지는 마라. 무림맹에서 앞으로 오 년 동안 여러분에게 지급할 매달 다섯 냥의 은자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따라서 그만큼의 대가는 반드시 받아낸다. 우리 교두들이 원하는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교육생은 혹독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각오해도 좋을 것이다.”

카랑카랑한 교육대장의 목소리가 모옥 안을 울려 퍼지자 부산스럽던 분위기가 차츰 잦아들어 갔다.

“그리고 교육대에 있는 동안에는 동료의 인적사항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말고 자신의 인적사항을 동료에게 말하지도 마라. 그리고 앞으로 교육생에 대한 호칭은 좀 전에 나눠준 훈련복에 부착된 숫자로 대신한다. 그 숫자가 오늘부터 자신의 이름이다.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푹 쉬기 바란다. 교육은 내일부터 시작한다. 이상.”



“어이 육 호, 자넨 어디 출신인가?”

콧수염이 짧게 자란 삼십대 중반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오후 내내 계속되었던 검진(劍陣) 훈련을 끝내고 막 숙소로 들어서던 호리호리한 체격의 젊은 사내가 멈칫거렸다. 육 호라 불린 사내였다.

“호북 출신입니다.”

말을 하기 싫은 듯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여는 육 호였다.

“아니, 고향 말고 문파가 어디냐고.”

“네?”

당황한 듯 반문하는 육 호를 바라보던 콧수염 사내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번졌다. 틈만 나면 동료 교육생들의 무공과 말투 등을 살펴 출신문파를 맞춰보곤 하던 사내였다.

“비록 며칠 동안이지만 자네가 훈련받는 걸 보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능숙하더군, 보통 무림에서 잠입, 은신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살수를 의미하지. 아니면 하오문 같은 정보를 주로 수집하는 문파 출신이거나. 그런데 자네가 간혹 펼치는 무공을 보면 그런 류의 문파 출신은 아닌 것 같고 말이야. 또 나이는 이제 겨우 약관으로 보이는데 몸에 있는 흉터들을 보면 강호생활을 수십 년은 한 듯하고…….”

사내가 자신의 안목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떠들어대자 각자 침상에서 휴식을 취하던 교육생 중 몇 명이, 자신들도 육 호 의 과거가 궁금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이것 봐 이십이 호, 그만 하라고. 동료의 인적사항은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교두들이 늘 강조하잖아.”

육 호의 옆 침상에 누워 있던 사십대 장한이 말을 끊고 나섰다. 나이에 걸맞은 단정한 외모를 지닌 사내였다.

“이보게 육 호, 신경 쓸 것 없네. 이미 무림맹의 까다로운 선발절차를 통과해 이곳에 있는 것이니 자네가 사문을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자네보고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네.”

사십대 장한이 말을 마치며 주위를 둘러보자 육 호를 향하던 몇몇 훈련생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이 분분히 흩어졌다.

“번번이 고맙습니다.”

“아닐세, 자네도 그만 쉬게.”

육 호가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중년사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른 듯 호리호리하면서도 보통의 사내보다 조금 큰 체구에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외모. 하지만 얼굴에 다소 그늘 진 분위기가 배어 있어 왠지 강인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 육 호도 곧 자기 침상 위에 몸을 뉘였다.

젊은 사내의 이름은 육전호였다.

십오 세가 되던 해에 정위군에 징집되어 바로 몇 달 전까지, 육 년 동안 북방의 전쟁터를 전전하며 살아왔던 터였다. 늘 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이동로를 따라 추적하는 비찰대원이었던 그였기에 다행히도 이곳 교육장에서 가르치는 추적, 은신, 침투, 퇴출 등의 교육과정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청살검진(靑殺劍陳) 같은 합격술과 용독, 해독술 등을 배우고 있었지만 과히 어렵지는 않았다.

이곳에서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또 제삼 경비단원으로 지내야 할 오 년 동안 큰 탈 없이 살아남는다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은자 삼백 냥이라는 큰돈을 들고서.


늦은 밤.

여러 개의 굵은 초가 타오르는 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여러 사내들이 앉아 있었다.

“검술교두부터 보고하게.”

탁자의 맨 앞에 앉아있던 인물에게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교육대장 오창록이었다.

“예, 청살검진 기본형에 대한 교육은 두 달 만에 모두 마쳤고 지금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른 응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육생 대부분이 낭인출신이긴 하지만 무공수준이 상당하고, 또 비교적 단순한 청살검진의 특성상, 진도가 특별히 늦거나 하는 교육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작고 옆으로 길게 찢어진 매서운 눈매의 교두가 대답하였다.

“음…… 이번 교육생들은 그나마 낫군. 교육과정별로 계속 보고하게.”

교육대장의 말에 따라 용독술 교두를 시작으로 다섯 명의 교두들이 차례대로 지난 두 달간의 교육성과에 대해 보고했다.

“여러 교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석 달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원래 목표치보다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더 분발해 주도록. 무림맹 지휘부에서는 최근 제삼 경비단원의 손실이 늘어나는 것에 주목하고 있어. 우리 교육대에서 좀 더 철저히 교육시키기를 바라는 것 같다. 기무관(機務官), 그동안 살펴본 교육생들의 동향은 어떤가?”

교육대장의 질문에 맨 끝에 앉아있던 문사 풍의 중년 사내가 입을 열었다.

“교육생들은 이곳에 지원할 때부터 맹에서 철저히 신원조사를 했고, 제가 그동안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만 특별히 수상쩍은 교육생은 보이질 않습니다. 교육생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다만 뭔가?”

“육 호와 십일 호를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둘 다 교육성적은 우수하지만 동료들과의 친화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이런 교육생들은 실전에서 동료들과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합니다.”

기무관의 말에 교육대장 오창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짐작했던 대로군. 육 호는 나이는 어리지만 군(軍)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무림의 관습이 낯설겠지.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적응할 거야. 다만, 십일 호가 문제야. 어쩌다가 화산파의 적전제자(嫡傳弟子)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오창록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차자 음침한 인상을 한 용독술 교두가 입을 열었다.

“하여튼 명문의 제자란 놈들은 설사 지원을 하더라도 받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암기술이나 용독술은 천하게 여기고 교육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니 다른 교육생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이 있습니다.”

화가 나는 듯, 용독술 교두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가자 오창록이 손을 저어 말을 끊었다.

“흥분하지 말게. 사실 무공만 놓고 본다면 화산파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니까. 또한, 실전을 겪다 보면 살기 위해서라도 암기와 독을 가까이하게 되어있어. 기무관은 십일 호가 이런 문제 때문에 다른 교육생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좀 더 관심을 두고 살펴보게.”

“예, 알았습니다.”

“이상, 오늘 회의를 마치겠네.”

교육대장의 말을 끝으로 교두들이 하나 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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