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 고결한 길 - 1
제 17화. 고결한 길
“반갑네, 단장에게 전해 들었어. 아주 귀한 분이라고 말일세. 난 총관 초리스라네.”
루안은 캐내딘을 떠나기 전 그린빈의 총관을 만나고 가라는 다델의 말에 따라 일행들과 그린빈 본부에 와있었다.
1층의 안내자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니 쉽게 총관실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어. 왕족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말을 높이거나 하진 않을 테니 서운해 말게.”
“괜찮아요, 총관님.”
역시 초리스는 다델의 출신은 물론 루안의 정체까지 알고 있었다.
“오늘로 캐내딘을 떠난다지? 단장이 다른 업무로 자리를 비웠기에 내가 대신 배웅하게 되었네. 자, 이것을 가져가게.”
초리스는 큰 주머니 한 자루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루안이 받아서 열어보니 안에 은화들이 가득했다.
“은화?”
“그래, 3000실버라네. 아마 그 정도 금액이면 키이만 산맥까지 가는데 펑펑 쓰고도 남을게야.”
“너무 갑작스러운 대요? 저 주시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받아야 할지······.”
루안은 조심스러웠다.
물론 현찰이 필요하긴 했지만, 너무도 큰 금액을 대가없이 받아가려니 영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단장이 꼭 전해주라고 한 것이니 나는 자네가 받든 말든 상관없네. 그저 내 일을 할 뿐이야. 영 부담스러우면 나중에 단장을 만나거든 그 때 감사인사를 전하게.”
“아······. 네, 감사합니다.”
“그래, 루안 받아들고 그냥 가자고. 총관님 가볼게요.”
루카가 미적대는 루안을 이끌며 초리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루카가 초리스는 영 아니꼬와 보였다.
“자네는 이제 임무를 수행할 생각이 없나?”
“한동안은 이 친구들을 따라다니는 게 소대장 소집 임무를 수행하기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흥, 핑계 하나는 좋군. 용병단에는 일들이 넘쳐난다는 것만 잊지 말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루안과 희아도 초리스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본부 건물을 나왔다.
건물 밖에는 모골린으로부터 온 전문을 받아온 쿠빌린이 서있었다.
“쿠빌린. 모골린의 전언을 받았나요?”
“그렇답니다, 레이디 희. 헌대,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군요.”
쿠빌린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제 개인적으로는 큰 문제일 수도 있어요. 여기서 여러분들과 헤어져야 할 것 같거든요.”
“네? 돌아가시는 거예요?”
“그건 아니랍니다. 루시아로 가야할 것 같아요. 왕명이 떨어졌답니다.”
희아는 얼굴 가득 아쉬운 표정을 띄웠다.
“아, 너무 아쉬운데요? 또 만날 수 있겠죠?”
“물론이죠, 레이디 희. 우리는 운명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면 꼭 다시 만날 거예요.”
“어머, 낭만적이네요.”
“아, 예예. 그래요, 다음에 또 만나자고요, 쿠빌린.”
둘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는 듯하자 참지 못한 루안이 끼어들어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쿠빌린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보기 싫은 꼴을 더 이상 볼 필요는 없게 되었다.
“물론, 그래야죠, 루안. 아! 잠깐만요, 이걸 챙겨가세요.”
쿠빌린은 뒤돌아 떠나려다 문득 생각난 듯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작은 깃발 두 개를 꺼내어 루안과 희아의 어깨에 걸어주었다.
깃발에는 친나 국가 연방과 모골린 왕국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곤란한 상황이나 신원을 확인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이 깃발을 보여주세요. 모골린이 두 분의 신원을 보장한다는 증빙의 문양입니다. 저 용병씨야 그린빈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필요 없을 거예요.”
“너무 고마워요, 쿠빌린.”
“정말 고마워요!”
루안과 희아는 끝까지 자신들을 신경써주는 쿠빌린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그럼 정말 작별입니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리죠, 그럼 이만.”
쿠빌린은 멋들어지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떠나가는 쿠빌린을 루안 일행은 안보일 때까지 바라본 후 자리를 떠났다.
이제 목적지는 키이만 산맥이 있는 대륙의 서쪽 반도, 프리카 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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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대지는 여러 국가들이 서로 선을 그어놓고 점유하고 있다.
대륙의 북쪽은 드래곤의 거처이자 괴물들의 대지, 베툰 마의 숲이 펼쳐져 있고, 동쪽은 루시아 신성제국, 남쪽은 친나, 서쪽은 프란칠라 제국이 점유하고 있다.
프란칠라 제국 아래, 대륙의 서남단에는 길쭉이 튀어나온 반도가 위치하고 있는데 프리카 왕국은 그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프리카 왕국은 여러 부족들이 뭉쳐져 있는 조금은 원시적인 국가인데, 그들만의 토착 신앙과 문화들은 다른 국가들에게 미개하다며 손가락질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전통과 풍습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깊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루안 일행은 캐내딘 공화민국을 출발하여 캐스탄 왕국과 프란칠라 제국을 지나 프리카 왕국을 향하고 있는 중이다.
“늘 바이두 숲만 보다가 슈가 숲을 보니까 여기는 낙원이네.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있나?”
“그러게 말이야.”
그들은 캐스탄과 프란칠라 사이에 펼쳐져 있는 슈가 숲을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슈가 숲은 제법 넓은 숲임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나 마물들이 전혀 없기로 유명한 숲이었다.
“그러니 지금 체력들 많이 비축해놔. 숲을 나오고 남쪽으로 움직이면 곧바로 프리카니까. 거기는 햇볕도 워낙 세고, 수풀도 거의 없다고 하니 많이 지칠 거야.”
“루카도 프리카는 안 가봤나 보죠?”
“거기는 다른 나라들이랑 척질일도 별로 없는 곳이고, 전부 바위산이라 몬스터들도 거의 없거든. 용병이 갈만한 곳이 아니야.”
“그렇군요.”
척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가 프리카 왕국이었다.
“아무튼, 너희들 만나고부터 어딜 가나 사건 사고였는데, 캐스탄은 별 탈 없이 벗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부디 프리카까지 무탈하기를!”
“참나, 그게 우리 탓이에요?”
“아니라고 해보시지.”
“끄응······.”
“잠깐만요.”
루카와 루안이 투닥거리는 것을 지켜보던 희아가 갑자기 손을 들고 자세를 낮췄다.
루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젠장, 주댕이가 방정이지.”
“쉿, 잘 들어봐요, 루카.”
끄악
끔찍한 비명이 숲 외곽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일행들은 비명의 발원지를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근처에 도착해 몸을 숨기고 상황을 보니 영 이해 가지 않는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그 곳에는 금칠이 되어 있는 너무도 사치스러운 도로가 놓여 있었는데, 그 주위로 장년 남자 하나가 칼에 베여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한 명의 여인과 작은 아이가 사색이 된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 사람들. 고결한 길 위에 서 있었나 보군. 이건 어쩔 수 없겠는데.”
루카가 혀를 차며 말했다.
“고결한 길? 그게 뭐에요?”
“프란칠라 제국은 계급의 격차가 너무나도 명확한 보수적인 나라야. 그렇기 때문에 덤폴 기사학교 학생이나 귀족들만 다닐 수 있는 길이 닦여져 있는데, 그게 바로 저기 휘황찬란한 고결한 길이야.”
“그럼, 저 사람들은 귀족이 아닌데 저 길 위에 있었다고 칼을 맞았단 거예요?”
“그렇겠지.”
희아의 눈에서 불이 일었다.
모두가 웃으면서 지내는 고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아이고, 용서해주십시오, 이 늙은이가 간청 드리겠습니다.”
“너는 누구냐?”
“이 마을에 촌장입니다.”
어느 샌가 웬 노인이 나와 남자를 벤 기사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을 촌장이라고 밝히자 기사는 더욱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다.
“감히 천박한 것들이 고결한 길 위에 불결한 발을 들이밀다니, 가당치 않다.”
“어린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랬나이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아무것도 몰랐기에 꼬마가 아닌 그 애비가 죽은 것이다. 흥, 교육도 통하지 않는 천한 것들.”
“진실로 천한 것은 너의 인격과 상대를 가리지 않는 그 더러운 검술이다.”
루카는 두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희아가 어느 샌가 고결한 길 위에 서서 기사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엄청나게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게 생겼다.
- 작가의말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_^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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