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 강철 부족 - 1
제 18화. 강철 부족
풀 한 포기 안 보이는 드넓은 황야.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바위산.
구름 한 점 없이 직방으로 때리는 강렬한 땡볕.
삼위일체가 고루 이루어진 이 곳은 척박하기로는 세계 최고의 나라 프리카 왕국이었다.
“으아, 말을 가지고 왔었어야 했나?”
“그러게 말이에요. 샤라 데저트 맞먹는 것 같은데? 후, 김치 다 조지겠네.”
“아, 그 브리딜의 개자식한테서 말들을 빼앗았어야 하는데, 생각이 짧았어.”
루안 일행은 끝없이 펼쳐진 황야를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돼요?”
루안의 질문에 루카는 배낭 속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키이만 산맥은 수도 유카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어. 프리카 사람들이 산맥을 신성시 여겨서 그럴 거야, 아마.”
“그래서요? 얼마나 더 간다는 거예요?”
“아, 기다려봐. 보고 있잖아, 지금. 가만있어 보자······. 아 여기가 딱 경계네. 여기서 동쪽으로 가면 술사의 탑이 나오고 서쪽으로 가면 강철 부족의 마을이 나와. 그 마을부터 유카까지는 하루면 가는 것 같아.”
“그럼 강철 부족 쪽으로 먼저 가면 돼요?”
“응, 일단 그래봐야 될 것 같다. 여기서 하루만 더 가면 돼.”
여기서 하루나 더 땡볕과 지면의 복사열을 견뎌내야 된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했지만, 루안과 희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보라매의 최종 임무가 눈앞에 와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배도 고픈데, 어디 쉴만한 데 없나?”
“저쪽 한 번 봐요, 루카. 저 큰 바위요.”
희아가 멀리 있는 큰 바위덩이를 가리켰다.
고인돌처럼 생긴 바위는 한쪽으로 높게 튀어나와 있어 아래쪽에 그늘이 있을 것 같았다.
“오! 좋아좋아. 저기서 좀 쉬자, 그럼 나랑 희아가 가서 자리를 펼칠 테니까, 루안 너는 가서 사냥 좀 해와. 식량도 거의 없잖아.”
“에? 내가 왜요?”
“그럼 늙은 내가 가리? 아니면 여린 니 누이가 가리?”
루카는 갑자기 허리를 두드리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고 희아는 별안간 머리를 넘기며 가녀린 척을 했다.
루안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대들어봐야 입만 아프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예예, 암요. 가야지요. 어리고 튼튼한 제가 그럽죠.”
“그래, 어서 다녀와~ 배고프다.”
“내 동생, 파이팅!”
둘의 아양을 뒤로 하고 루안은 사냥을 하러 떠났다.
루카와 희아는 루안을 보내고 바위 밑으로 향해 요리를 위한 간단한 불을 피웠다.
“근데 루카. 우리 프리카에 들어온 건 확실한 거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그렇잖아요. 어떻게 된 게 사람이 단 한 명도 안보여?”
“하긴, 그렇긴 하네. 이런 땅덩이니 농사는 안 될 테고, 그럼 사냥을 다닐 텐데, 전혀 안보이네.”
둘은 갸우뚱 하긴 했으나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
“와씨,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네? 이러다 빈손으로 가는 거 아닌가 몰라.”
루안은 작은 들짐승들이 없나,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황량함만 있을 뿐 그 어느 것도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된 게 새도 한 마리 안 날아 다니냐.”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만 없는 것이 아니라 말마따나 새도 한 마리 없었다.
그야말로 태양 혼자서 전세 낸 모양새였다.
“흠······. 땅 위에도 없고, 공중에도 없고, 그럼 땅 속에 두더지는 좀 있으려나?”
루안은 괜히 혼자 중얼거린 다음 땅에 바짝 붙어 귀를 댔다.
슈우우우우슈슉 슈우우우우슈슉
“응? 이게 뭔 소리야?”
보통 땅속에서 나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왜인지 어디론가 날아가듯이 시작과 끝이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루안은 그 소리를 따라가 봤다.
점점 희아가 있는 곳에서 멀어지기는 했지만,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와 엄청 멀리 까지 가네. 이러다 길 잃겠는데? 어?”
어느 순간 자신이 꽤 먼 거리를 왔다는 걸 인지한 루안은 그제야 발걸음을 멈춰 섰다.
아직 빈손이었기에 걱정되는 마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루안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바닥에 난 자그마한 구멍 같은 곳에 어떤 물체가 스윽 올라왔다가 부리나케 땅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오! 두더지?! 역시, 내 선택은 옳았어! 히히히히히”
루안은 이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침을 흘리며 두더지처럼 보인 무언가가 솟아오른 구멍으로 달려갔다.
막상 다가가서 보니 구멍은 없고 그냥 모래더미였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여기에 두더지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루안은 휘파람을 부르며 모래더미를 파내기 시작했다.
“룰루~ 쫄깃쫄깃, 야들야들, 꼬소꼬소, 담백담백. 흐흐흐,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아주 맛깔나게 구워줄게.”
깡
“악, 아오, 이거 뭐야. 쓰읍.”
꿈에 겨운 바람을 읊은 루안은 정신없이 모래를 파다 순간 무언가 가로막혀 손을 찍자 벌떡 일어나 손을 털었다.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자 다시 한 번 슬며시 손을 넣어봤다.
그러자 무언가 단단한 것이 만져졌다.
하지만 금속이 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고 어떠한 기운을 내뿜는 에너지막 같은 것이었는데, 그 기운은 루안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이거, 설마······. 결계?”
바이두 숲에서 느껴지던 바로 그 결계의 기운이 여기서도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숲에서의 결계에 비해서는 매우 약해보이긴 했으나 결계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프리카는 두더지도 마법을 쓰나? 허참, 그래, 뭐 좋아! 내가 기필코 네놈을 잡아주마.”
배가 너무 고픈 루안은 깊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결계의 출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두더지에만 눈이 먼 것이다.
“이크, 칼재기!”
치우를 힘껏 끌어올린 루안은 손가락을 꼿꼿이 세운 후 상대를 찌르는 칼재기를 결계에 밀어 넣었다.
까가가가가가가가가콰지지지지지지지지직
끔찍한 금속음과 함께 결계는 침입자를 튕겨내려 발악했지만, 애초에 결계가 가지고 있는 힘은 너무도 약했다.
손끝에 걸려 결계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자 루안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푸하하하, 보았느냐, 이 미물아!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다!”
고작 두더지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루안에게 그런 것은 별로 중요치 않아 보였다.
꽈지지지지직 펑
결국 결계는 작은 폭발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자 순간, 루안의 발 아래로 사람 두 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동그란 구멍이 생겼다.
“음······. 음? 음! 으아아악!”
결계를 뚫은 기쁨에 차있던 루안은 구멍을 바라보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고,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자신의 몸이 떨어져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루안은 눈물을 쏙 뺄 만큼 크게 비명을 질렀지만 추락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퍽
“으헉! 아고고고.”
루안은 지끈대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자 대리석으로 잘 닦인 통로 같은 곳이었는데, 사이사이 불이 켜져 있는 수정구와 통로 가운데는 금속으로 된 긴 선이 놓여있었다.
“설마, 여기도 뱀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이무기를 만났었던 미지의 통로가 문득 생각난 루안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뱀 없어. 넌 누구야?”
“히익!”
허리 아래쪽에서 갑자기 말소리가 들리자 루안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검은 피부를 가지고 얇은 반바지 하나만 입고 있는 작은 소년이 동그란 눈을 부릅뜨고 루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가 짧고 복슬복슬한 게 아무래도 프리카의 원주민인 것 같았다.
“아유, 놀래라. 너야말로 누구냐? 응?”
“니가 날 따라왔잖아. 니가 먼저 얘기해야지.”
“따라와? 내가 널? 아, 설마······. 니가 두더지였니?”
아무래도 모래더미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것이 이 아이였던 모양이다.
“난 루안이야. 바이두 숲에서 왔어. 넌 누구니?”
“난 파이. 위대한 강철 부족의 전사가 될 몸이야.”
“그럼 여기는 강철 부족 마을로 갈 수 있는 통로인거야?”
“그렇게 볼 수 있지. 여긴 철로니까.”
“호······.”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기도 한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식량을 구하려다 목적지까지 햇볕을 피하며 갈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철로라니? 철로가 뭘 얘기하는 거야?”
“숲에서 왔다더니 쌩 촌놈이구나, 루안? 어떻게 철로를 몰라.”
“끙, 그래 미안하다. 그러니 좀 알려주지 그래?”
“철마가 움직이는 곳이지 뭐긴 뭐야.”
“철마?”
슈우우우우우우욱
“이, 소리는?”
“응, 이게 바로 철마 소리야. 철마가 오고 있어.”
갑자기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루안이 지면위에서 따라다녔던 바로 그 소리였는데, 파이는 이 소리가 철마의 소리라고 했다.
슈우우우우우욱 슉슉
소리는 점점 가까워 오더니 철로 위로 거대한 금속 구조물이 다가왔다.
구조물은 점점 속도를 늦추더니 루안과 파이 앞에 멈추어 섰고 그 안에서 수많은 부족민들이 창과 방패를 들고 내리며 루안에게 겨누었다.
“결계를 부순 침략자가 바로 너냐?”
“아! 죄송해요, 결계를 부순 게 제가 맞긴 맞는데······. 파이, 니가 말 좀 해줘.”
루안은 파이에게 곁눈질을 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파이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위대한 강철의 전사가 될 몸이지. 그 시작은 공익을 위한 투철한 신고정신을 발휘하는 것이야.”
“뭐, 뭐?”
“전사님들! 이 놈이 결계를 부수고 철로로 침투한 침략자가 맞습니다!”
“야, 인마!”
파이는 바로 뒤를 돌아 루안을 가리켰고 전사들이라 불린 부족민들이 루안에게 달려들었다.
- 작가의말
과연 루안은 어떻게 될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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