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악마의 눈빛
28화 악마의 눈빛
앞에 가는 차를 따라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길은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도 긴장이 되어 대식이 형의 손을 잡고 싶어졌다.
조수석에 앉아 뒷 좌석에 앉은 대식이 형에게 조용히 손을 뻗으니 형도 기다렸다는 듯이 땀이 나는 두꺼운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차량은 그렇게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와 어스름한 아침 햇살을 볼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대식이 형의 얼굴은 이 곳 아지트에 오고 나서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였다.
퍽
뒷 창문을 뚫고 들어온 총알은 대식이 형의 관자놀이를 관통했고 살짝 피가 튀었다.
“ 맞았어요.”
“ 일단 병원으로 옮길 테니까 상율씨와 요한씨도 제이콥 풀어주고 병원으로 오라고 하세요.”
< 로날드, 지금 미스터 송이 죽고 수호령이 생겼어요. 이건 내 번호인데 나중에 수습되면 다시 약속 정하기로 해요. 참고로 제이콥은 객관적인 혐의가 없어 풀어줄 거니까 팬텀이 처리해 주세요.>
형수님은 어제 대식이 형이 죽고 나면 해야할 일들을 이미 생각해 놓았는지 운전을 하면서 로날드 에게 만들어 놓은 문자까지 전송했다.
“ 줄리아! 줄리아!”
풀려난 제이콥은 현주에게 악령을 빙의시켰던 어느 산 속 동굴로 차를 달려와 있었다.
“ 아저씨. 여기요”
“ 놈들이 줄리아에게 악령이 씌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팬텀에 일러바치러 갔어. 송 대식이 죽어서 신령의 수호령이 생겨났고...”
“ 그럼 나는 어떡해요. 수호령을 피해서 이 육체에 계속 숨어 있어야 하나요?”
“ 수호령도 수호령이지만 팬텀에서 움직이면 압둘이 자기의 악령을 알아보고 류양이라는 중국 사람이 악령을 꺼내서 압데라가 악령을 봉인해제하면 우리 복수의 계획은 모두 끝나는 거야.”
“ 그런데 신령들은 왜 아저씨를 풀어준 거죠?”
“ 내가 그들에게 대항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를 감금하는 눈에 보이는 명분도 없으니까”
“ 저와의 악연을 또 만들어서 다른 신령들도 박 명호처럼 없애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 신령은 최고의 수호령을 가지고 있어서 악령과 잘 연결되지 않아. 박 명호는 줄리아와 원래 인연이었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간 거고”
“ 네? 명호 오빠가 원래 저와 인연이었다고요? 그런데 왜 미란이랑 결혼을 하고 인연을 맺었던 거 에요? 거짓말 하지 말아요.”
제이콥은 그제서야 말이 너무 많았다고 후회했다.
“ 원래 줄리아와 박 명호가 부부의 인연이었는데 내가 끊고 미란이와 이어 주었지. MK 그룹 회장을 살리려고”
현주는 기가 막혀 허탈하게 웃었다.
“ 그럼 오빠의 그 모든 게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게 아니라 진짜 사랑이었다는 거라고요 하하하”
명호와의 만남과 사랑이 가득한 얼굴이 떠오르자 악령도 제어하지 못 할 만큼 현주의 그리움과 죄책감이 생각을 지배했다.
“ 그냥 모르게 놔두지. 왜 얘기했어. 왜?”
현주의 분노가 가득찬 악마의 눈빛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죽기 전에 알건 알고 가야지.”
제이콥은 가지고 온 총을 꺼내어 현주에게 쏘았다.
눈물을 흘리며 최후를 맞이한 현주의 육체에서 거대한 악령이 태어나는 아기처럼 울부짖으며 빠져나왔다.
뉴스에서 송 대식 선수의 피습 사건을 크게 보도하자 경찰은 대식이 형이 머물렀던 MK 그룹의 아지트도 조사하기 시작했고 대식이 형의 장례를 치른 우리들은 모두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총을 쏜 사람들은 외국인으로 밝혀졌고 모두 출국을 한 상태여서 인터폴에 수사를 의뢰해 놓은 상태였다.
김 회장의 심복 황 부장은 살인 방조죄의 죄목으로 붙잡혔지만 경찰 진술에서 수호령이 어떻고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변호인 측에서 정신감정 의뢰를 부탁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남은 송골매 세 명과 미란이 다시 모여 호텔방에서 로날드를 만난 건 송 대식이 죽고 5일 뒤였다.
“ 반갑습니다. 신령님들”
필리핀 아저씨가 우리에게 합장을 하고 가볍게 목례를 했다.
“ 안녕하세요.”
“ 제이콥은 팬텀에서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직설적이고 급한 성격인 형수님은 인사도 채 마치기 전에 질문부터 퍼부었다.
“ 제이콥은 지금 악령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신령님들 수호령도 지금은 영계에서 우리 편에 있는 것 아시죠? 영혼을 불러서 대화하는 분이 여기 계신다고 알고 있는데..”
“ 네. 수호령과 이틀 전 대화를 마쳤습니다.”
대식이 형이 총으로 피살된 날 밤, 대식이 형을 주문을 통해 불렀다.
‘ 형! 와 있어요?’
‘ 말씀 낮추세요. 신령님. 영계에 들어와 있고 로날드와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 명호 형도 만났어요?’
‘ 네. 로날드가 신령님과 김 회장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게 해 주어서 많은 이야기 나눴습니다.’
‘ 악령을 물리치러 가기로 한 건가요?’
‘ 아직 정비할 시간과 작전이 필요합니다. 제이콥이 악령을 육체에서 꺼내어 통제하면서 악령들의 군대를 모으고 있다고 하는데 제 영혼이 다른 수호령들을 지휘해 악령을 이긴다고 해도 그들이 다시 흩어져버리고 도망가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 명호 형이랑 김 회장도 그 전쟁에 참여하는 건가요?’
‘ 신령님의 영혼은 아직 세 분이 인간계에 살아 있어서 완전체가 아닙니다. 팬텀도 모두 힘을 합쳐야 하고요. 그 동안 한국에 있는 로날드와 만나보세요.’
‘ 제이콥과 악령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 김 회장이 확인한 결과 중국에서 바이러스를 퍼뜨린 다음 죽는 사람들 중에 악령들이 있으면 강압적으로 악령의 군대로 모집하려 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서둘러 막아내야죠.’
‘ 군대가 모이면 형도 상대하기 어렵지 않겠어요?’
‘ 조무래기들이야 몇 십마리가 어떤 정신을 현혹하는 장난질을 해와도 다 없애버릴 수 있는데 제이콥이 봉인 해제한 악령이 조금 세다고는 들었습니다. 신령님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 형! 보고 싶은 수호령님! 부디 그 곳에서도 무사평안하세요. 또 만나겠습니다.’
‘ 신령님 감사합니다.’
대식이 형과 이야기 나눈 내용들을 형수님의 통역을 통해 로날드에게 영어로 설명하였다.
“ 팬텀은 그 사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전장으로 떠났습니다. 중국으로 가실까요?”
“ 지금 중국으로 간다고요?”
“ 팬텀의 영혼들이 모두 중국에 모여 있습니다. 참선을 통해 무극으로 들어가는 과정인데 신령님들은 모두 가능할 겁니다. 통역으로 오신 분은 잠깐 여기서 우리 육체들을 지켜주세요. 인간계의 실제 시간으로는 몇 시간 걸릴 겁니다.”
“ 참선은 해 본적이 없는데요. 영혼을 분리하는 방법도 이 사람 밖에 모르고요”
“ 신령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네 분이 나누어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계로 직접 갈 수 있는 김상율 씨의 중국으로의 시공간이동은 박 명호 씨가 도와줄 겁니다.”
“ 명호 형의 영혼이 이 곳으로 와서 중국으로 가는 건가요? 유체이탈을 했을 때 명호 형과 함께 카타르로 간 적이 있어요.”
“ 네. 그렇게 이동하는 겁니다. 두 분이 이동하는 것은 미스터 김의 영혼과 제가 도와줄 거고요.”
“ 참선은 어떤 방법으로 하는 건가요?”
호기심 많은 요한이는 얼른 해보고 싶은 표정이었다.
“ 머리를 비워야 하고 마음을 비워야 하는 작업인데 쉽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각자 저를 보고 앉으세요.”
“ 저는 잠이 들어야 유체이탈이 가능한데요.”
“ 네. 신령님들은 각자 눈을 감고 편한 자세로 있으시면 됩니다. 눕는 게 편하면 그래도 되고요. 주의할 점은 제시는 신령님이 참선하는 도중에는 누구에게도 말을 걸어 깨우면 안 됩니다. 표정과 상태가 불안해 보이더라도,, 알겠죠?”
“ 네”
세 명 모두 수다스러운 형수님이 말을 걸면 어떡하나 걱정되었다.
“ 상념이 생각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끊어내시고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 하면 끝까지 참아야합니다.”
“ 영혼끼리 대화는 로날드가 도와주는 건가요?”
“ 네. 그건 제 역할이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우리 영혼은 이마를 통해 영계를 보게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 곳을 향해 움직일 겁니다. 그럼 참선 시작해 보겠습니다.”
방울을 흔들면 이마가 뜨거워졌던 그 순간을 생각하니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려 눈을 감고 애를 썼다.
오로지 영혼들과 대화를 하고 있던 그 기분만 온 몸으로 느끼는 순간 다시 이마가 뜨거워지며 스윽 하고 내 이마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신령님 오셨습니까?”
“ 김 회장님?”
내 영혼은 아직 어둠밖에 보지 못하고 다른 영혼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장님이었다.
요한의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자 로날드의 영혼은 요한에게 다가가 요한의 영혼을 무우 뿌리 뽑듯이 빼 버렸다.
그러자 요한과 정규의 눈과 귀가 뜨이며 보이게 된 곳은 중국의 어느 골목길이었다.
각자의 인도자를 따라 골목 안 어느 집으로 향했더니 팬텀과 송골매 모두 집 안에 모여 있었다.
상율 선배와 명호 형은 언제 와 있었지? 상율 선배는 그 새 잠이 든 건가? 대단하다. 하여간 모두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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