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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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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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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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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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게릴라의 길 1

DUMMY

커피에 프림을 넣고 딱 한번 저은 것처럼 얼룩진 하늘.

유선형 구름들이 바람과 어우러져 천천히 흘러간다.

뭉크와 고흐가 그린 돌개바람처럼 기괴한 오늘의 하늘.

축축한 습도. 반가웠던 냉기가 이내 한기로 바뀌는 오후...

간밤의 비로 물방울 머금은 풀과 나뭇가지, 그리고 사람.


딱 따다닥 주황색 불꽃에 화목 부러지는 소리를 제외한 고요.

둘러봤자 지번도 모르는 주인 없는 산, 저기 다가오는 사람.


나는 일어서, 올라오는 얇은 연기를 모자로 휘젓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시선으로 이상 유무를 물으며

개머리판 목을 잡고 땅을 향해 총열의 물을 턴다.


모든 것이 불편하다. 모닥불과 시신.


하지만 넘어와서 가장 불편한 건 대변보는 것이다. 사람에게 총을 쏘는 건 이제 그렇다. 한발 한발 사람으로 안 보이고 가늠자 위의 거무틱틱한 그 무엇 정도. 헌데 대변은 계속 불편하다. 작전 이틀이 지나고 알았다. 닦을 종이가 없다는 걸. 이런 걸 누가 생각했겠나. 대대장 앞에 놓고 작전브리핑에서 똥을 쌀 때는 적의 종이를 취득해 사용하겠습니다?... 두 번째 작전에서 우린 북한 서적을 챙겼다. 시골 살던 상사님이 가르쳐준다.


“그냥 닦으면 뒤가 상하니, 종이를 부드러울 때까지 부벼서 써.”


보름이 지난 지금, 항상 종이 다발을 휴대할 수도 없고, 우린 자연스레 넓은 잎사귀와 적당한 크기의 돌을 쓴다. 알갱이가 꺼끌거리지 않도록 말끔히 털고, 물이 있으면 돌에 부어 씻어 사용한다. 말끔한 처리는 안 된다. 걷다보면 약간의 잔유물로 거기가 개같이 꺼끌거리고, 항문과 팬티 뒷부분도 누렇게 변색되고 딱딱해지다 - 계속 걸으면 가루처럼 부서져 떨어진다. 시간이 나면 물에 거길 헹구고 싶다. 속옷은 걸레가 됐고, 군장을 줄이고 줄이는 판에 예비 군복과 예비 내의는 아무도 넣지 않았다. 걸레로 변하는 시간을 승전으로 알았다. 군장 무게가 목숨을 담보한다면 개인물품은 사치다. 내의 대신 사탕을 더 넣겠다.


며칠 만에 군복이 넓어진다.


먹었으면 싸야 하고, 싸고 나서 흔적인멸 흙으로 덮어야 하고, 산 아래와 가까우면 총을 들고 일을 보기도 한다. 대원들이 다 보는 데서 쌀 수도 없고 말이다. 먹은 게 적어 나오는 것도 별로에다 불규칙적이고. 지나가다 호박잎을 챙긴 적도 있다. 넘어와서 이틀 만에 터진 첫 대변은 엄청나게 딱딱한 것이 뚝 떨어졌다. 긴장한 거다. 훈련소에 이어 두 번째 경험. 타격 직후까지 대변을 까먹었었다. 그것이 몸 밖으로 나가자 갑자기 힘이 빠진다.


“우리 몸에서 농촌 냄새가 나. 아주 시골.”

“예를 들면 어떤 거죠?”

“있어. 흙 똥 풀 퇴비냄새 섞인.”

“남에서는 군발이 된장국 냄새 난다 하더니...”


우리 몸에서 땀과 똥 버무려진 냄새가 난다. 눕고 뒹굴어 풀 냄새도 섞였다. 우린 이제 우리 냄새를 맡지 못한다. 종종 물을 만나 얼굴 씻고 작전 후에 수통 물로 발을 닦는다. 발이, 발이 좀 그렇다. 비정규전 게릴라 수칙 : 군화 벗은 상태로 쉬면 안 된다. 잘 때 군화를 벗는 건 투 페어 all in, 죽겠다는 거다. 낮에 경계가 확보면 군화를 벗어 태양에 발과 양말을 말리는 시간을 갖는다. 군장에 공간이 없어 카멜백을 두고 왔다. 후회가 밀려온다. 물 구하는 것도 문제다. 민가를 만나면 물을 보충하지만 오염도는 분명히 의심스럽다. 그 물에서 휘발유 냄새나 녹내 같은 것도 나고, 병원성 대장균 같이 심하게 앓는 대원이 나타났다. 남한 같은 대규모 정수시설 없이 식수가 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배고프다. 왜 먹을 것이 없냐고? 특전식량 전투식량 다 까먹고 북한 거 노획 안 했냐고? 많이 했지. 존나게 했지. 허기 참다 사람 죽여! 사람들은 몰라. 인간이 얼마나 먹어 제끼는지. 헝그리 플래넷인가 한 가족 앞에 일주일 동안 먹는 걸 늘어놓은 사진이 있지. 놀라지. 정말 저렇게 많이 먹나? 그 가족이 대식가도 아냐. 우린 그걸 지고 다녀야 평시처럼 먹는 분량이 돼. 먹을 걸 이틀에 한번씩 10km 떨어진 산에 지고 올라가서 해먹는다고 생각해봐. 떨어지면 다시 내려오고. 그게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지...


항상 이동. 쌀을 지고 다녀. 7-8kg은 빠졌어.


모자라. 배고파. 내륙전술훈련 한달 상태의 지속. 요즘은 훈련 때 산에서 불 피우지 말라고 행군로의 다른 부대 식당을 이용하게도 하는데, 그 부대 메뉴가 정말 개 같아도 우리가 먹으면 들어갔던 눈깔이 앞으로 쑤욱 나와. 우리가 산에서 험한 밥을 계속 먹은 거지. 산에 있다가 제대로 끓인 국만 먹어도 눈동자가 확장돼.


군장의 식량은 아껴 먹어도 4일을 못 버텼고, 이제 군용 도라꾸도 노리고 민가 노려. 산열매나 인적 없는 밭에서 야채 아무리 먹어봤자 허기 못 채워. 쌀을 먹어야 돼. 더 나가면 물고기든 육고기든 먹어야 돼. 쌀만 먹다가 고기를 씹어 삼킨 직후의 기분. 엄청나지. 갑자기 팔뚝과 허벅지 뼈가 휠 정도로 용솟음질을 해.


노획. 한동안은 걱정 없겠다싶은 쌀과 반찬 될 걸 지고, 실탄 수류탄 RPG 탄도 들고 땀을 쥐어짜며 산을 오른다. 존나게 무거운 실탄-병기 박스도 들고 오른다. 기동하다 상황 벌어지면 식량부터 버린다. 은거지 노출되면 식량 손도 안 대고 튄다. 군장을 반 이상 풀어놓지도 못한다. 항상 튈 준비. 지고 간 걸 한 곳에 3일은 있어야 그나마 해 먹는다. 대부분 못 해먹는다. 허기에 생쌀을 씹는다. 바람 한 점 없는 낮이나 밤에 불 못 피운다. 피워도 반합 물에 쌀을 엄청 불려 재빠른 불로 지져 뜸을 들인다. 많이 해서 주먹밥도 만든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고 다닌 식량 적지 않다. 이제 직승기도 날아와 로켓 쏘고 기관총을 갈긴다. 남한 땅에서나 일어날 그림이었다. 백두대간 타고 내려오다 아군 헬기에 작살나는 북한군을 상상했었다.


어차피 불편의 천국이 될 거였지만, 손톱 깎기가 없어서 힘들 줄이야. 누가 이런 상상이나 했나. 손톱은 까만 때가 가득 끼고 흉기가 될 정도로 계속 자란다. 혹시나... 시체를 뒤지다 북한제 손톱 깎기를 찾았을 때 정말 기뻤다. 발톱을 제대로 안 깎으면 행군할 때 아프다. 날카롭게 옆으로 자란 발톱이 옆 발가락 맨살을 푹푹 찌른다. 만능 칼로 발톱 오리다 살까지 베어 피를 찔찔 흘리고 붕대를 감았다.


군복 모가지와 소매가 기름때로 번들번들하다. 군복이 찢어진다. 게릴라에게 바느질 주머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군화 밑창이 덜렁거려 버리고 북한군 군화인 지하족을 신고 다닌다. 저가 농구화 비슷한데, 바닥에 고무신 모양으로 고무를 입혔다. 가벼워서 뛰는 데는 좋은데 거칠게 걸으면 쉽게 상한다. 땅바닥에 낫으로 친 날카로운 나무를 밟으면 뚫고 들어올 수 있다. 지하족 A급을 챙길 기회가 오면 예비로 챙긴다. 내가 신은 것보다 크기만 하면 된다. 신발을 겹쳐 신발 끈으로 꽁꽁 묶어 특전조끼 등낭에 넣는다. 천리화(학생 운동화)나 나름 명품 브랜드인 신의주 운동화를 신은 대원도 생겼다. 양말 거의 못 구한다. 평양과 먼 이곳은 아직도 넓은 손수건 모양의 군발이 발싸개를 많이 쓴다.


북한 정보도 구라 많았다. 발싸개가 옛말이라고? 몇 년 전에 탈북한 북한군이 분명 발싸개 쓴다고 했어. 원 병신들이 평양에 눈이 돌아서 ‘북한 경제 실제로는 좋아.’ 자기가 비밀이라도 아는 것처럼 아는 체 했지. 이번 지도자가 군대에 돈을 안 썼어. 평양만 삐까뻔쩍 남한을 착각하게 만들었지.


이 고립된 경제에서 평양이 삐까뻔쩍할수록 지방은 더 굶는다는 거 상상이 안 되나? 그 번듯한 평양 아파트 안에서 난로로 밥 해먹는 것도 모르지. 그 고층 아파트에서 던진 쓰레기에 맞아 사람이 죽은 적이 있는 건 아나? 정전이 오면 수압이 고층에 쳐주지 못해 화장실을 못 써, 비날론에 똥을 담아 던져서 보안원들이 감시한 일도 있어. 평화의 희망에 부풀어 피양을 바라보았지. 아, 저기도 문명이 있구나... 지도자가 문명처럼 보이길 원했던 거지. 평양도 정전이 오기 때문에 노인이 있는 가족은 고층 아파트를 꺼린다. 정전이면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춘다.


남쪽 사람들은 왜 정상적인 논리도가 작동하지 못하나. 발전소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평양에 고층아파트들이 지어지면 다른 곳의 전기는 더욱 끊긴다.


그래서 평양 가지고 쇼를 했다. 평양에 쓸 돈이 비자금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군대나 기타에서 쓸 돈을 돌려쓴 거다. 고로 전체 인민 복지는 줄어든다. 평양이 화려할수록 사람은 더 굶는다. 투자유치를 하려면 북한도 평양을 빛나게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풀어줘야 한다. 평양의 가난해 보이는 사람도 특권층이란 기준으로 북한을 봐라. 어떤 국가라도 기본적으로 성장은 한다. 일부러 가난해지려고 노력하기 전에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광물 약초 산삼 산나물까지 싸그리 따다가 중국에 밀무역 저가로 판다. 그렇게라도 돈을 벌어서 다행이라고? 그럼 주민은 뭘 먹냐. 고사리까지 중국에 톤으로 넘기는데.


전투는 평양이 아냐. 상징에 불과해. 도시를 부수는 것처럼 쉬운 게 어딨는데. 폭격하고 도로만 차단하면 돼. 진압할 필요도 없어. 다 모여서 나 죽여주쇼 하는 게 도시다. 다만 도시 전체를 완전히 평정할 때까지 피해도 크고 힘이 들 뿐이지.


그거 알아?


잠도 몸에 기력이 있어야 숙면을 할 수가 있어. 굶어보면 알지. 굶다가 배불리 먹어보면 그걸 경험하지. 먹은 것이 없고 힘이 없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자. 가면의 연속이지. 굶주리고 수면이 부족하면 그런 모든 짓이 가능해져.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것들. 대체 너희가 인간이냐?... 할 수 있는 것들.


1960년대 이승복 어린이로 대변되는 강릉삼척무장공비 사건을 보라고. 내려온 124군부대는 무식한 부대가 아냐. 북한의 당시 가장 엘리트 부대였어. 울진 삼척 주민들에게 정치강좌도 열 정도로 혁명성도 강하고. 결국 몰리다 몰리다 주민들을 칼로 찌르고 짱돌로 머리를 내려져 죽이고 사지를 찢고 난자했어. 총성을 안 내고 또한 총알을 아낀다고. 문제는 굶주리고 극도로 민감한 인간이 총과 칼을 가진 군인이라는 거지.


햄과 소시지의 아질산나트륨은 발암물질이다

미국서 스팸은 발암까지 따지지 못하는 빈민층이나 먹는다

유전자변형식품 GMO는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

불에 탄 고기는 위험하다. 참치의 수은이 위험하다

하지만 그걸 버릴 거면 내 아가리에 버리라는 사람들도 있다


새로 한 밥에 참치와 데친 스팸을 넣고 간장과 케첩으로 비벼 먹고 싶다.


여기 사람과 똑같아 진다. 없었던 비듬이 떨어지고 머릿속에 고름 딱지 같은 잔유물이 눌어붙고 가렵다. 며칠 동안 머리를 물에 행구지 못했다. 닦을 것이 없어 면상에서 뭣이 나오면 그냥 소매로 닦는다. 아님 뭐 풀에 닦아? 군장을 잃으면서 치약을 가진 사람이 줄어들어 나눠 쓰다 바닥난다. 칫솔 없는 사람도 있다. 개 쳐먹고 나서 물을 머금어 부륵부륵 푸악질을 해 뱉는다. 비누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하루 한번 세면 세족 양치질이 불가능하다. 지금 이빨 신경 쓰게 생겼나. 스켈링은 천국이나 지옥에서, 지금은 일단 살아야 한다. 거르지 않고 닦는 건 오직 총. 총기기름을 군장에 챙길 때 꼭 필요한가 의문했었다. 반드시 필요하다. 난 여분의 칫솔로 틈만 나면 약실과 노리쇠 요철 부위의 때를 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5.56mm 몇 발까지 총기손질 안 하면 문제가 생기는지. 전사자 실탄까지 무척 쐈다. 아직 실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AK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모든 개 같은 것들을 하룻밤 작전하고 돌아가서 문명을 만끽하는 서양 특수전부대는 상상도 못하겠지. 개자식들아 여기 들어오면 못 나가. 아냐? 티어 원, 델타, 데브그루 너희들 정말로 여기 들어올 수 있어? 죄다 좆밥 동네에서 무장 부실한 애들 데리고 오! 찬란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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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7 ak****
    작성일
    20.12.09 16:15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0.12.09 16:43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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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태운다 나의 거짓 2 20.12.16 391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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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게릴라의 길 2 +3 20.12.11 444 19 13쪽
» 게릴라의 길 1 +2 20.12.09 481 17 13쪽
156 남조선 항공륙전 3 +3 20.12.08 476 26 12쪽
155 남조선 항공륙전 2 20.12.07 409 24 11쪽
154 남조선 항공륙전 1 +1 20.12.04 483 26 11쪽
153 격납고 2 20.12.03 418 19 12쪽
152 격납고 1 20.12.02 434 20 11쪽
151 마지막 가을비 5 20.12.01 365 23 10쪽
150 마지막 가을비 4 20.11.30 371 19 14쪽
149 마지막 가을비 3 20.11.27 367 20 16쪽
148 마지막 가을비 2 20.11.26 447 22 11쪽
147 마지막 가을비 1 20.11.25 448 24 11쪽
146 분주한 여명 속으로 2 20.11.24 413 23 15쪽
145 분주한 여명 속으로 1 20.11.23 387 23 15쪽
144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2 20.11.21 411 22 11쪽
143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1 +1 20.11.20 413 21 11쪽
142 횃불처럼 3 20.11.19 391 23 15쪽
141 횃불처럼 2 20.11.18 403 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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