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231,837
추천수 :
6,987
글자수 :
2,076,964

작성
20.12.02 12:00
조회
433
추천
20
글자
11쪽

격납고 1

DUMMY

도시 불빛을 봤다. 읍내 정도가 아니었을까? 완전 소등을 예상했기에 깜짝 놀랐다. 착시는 분명 아닐 거다. 북한은 평상시에도 소등훈련을 하기에 집집마다 검은색 커튼이 창문에 달려 있다고 들었다. 비행기가 내가 있던 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창으로 지나가는 불빛의 무리를 분명히 봤다. 산에 가려서인지 지금은 안 보인다. 내가 뭘 본 거지. 왜 내가 봤다고 생각하는 불빛이 사방 아무리 둘러봐도 없어.


재수도 더럽게 없다. 산악헬멧부터 벗자... 어 답답한 거.


분해는 조립의 역순?


낙하산과 군장은 바늘 하나 안 들어갈 정도로 ‘존나게’ 조인다. 그렇게 아닥 조여도 낙하산 펴지면 출렁출렁 여분이 남아돈다. 너무 강하게 조여 처음에 숨쉬기 힘들어도, 기내에서 시간이 흐르면 몸이 적응한 건지 어쩐지 점차 편해진다. 결속을 대충 조였다가 산개 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산개 충격에 출렁~ 군장이나 총이 떨어지는 불상사도 가끔. 손을 아무리 세게 묶어도 시간 지나면 헐렁해지는 것과 비슷하게, 낙하산과 장비는 아무리 조여도 결국 공간이 벌어진다. 그래서 일단 끝까지 조인다. 공수교육 첫 강하 때 기름 짜기가 시작된다. 산악복 벨트부터 시작해, 낙하산 군장 총. 특히 가슴 띠 + 사이드 벨트 + 가랑이 벨트는 살에서 즙이 나올 정도로 조인다. 이 스머프께서 나만 죽이려고 이러나...


불안해. 쉬면 안 돼. 일단 이동준비 상태를 만들어!


다용도 칼을 꺼내 예비낙하산 위에 총기 이중결속한 끈을 잘라. 총 먼저 free! 탄창과 총 몸통에 연결해 바른 테이프 떼고, 탄창 빼서 뒤를 톡 톡 톡, 다시 탄창결합, 후퇴전진 1발 삽탄, 조정간 안전. OK. 총끈 완전히 늘여 각개로 걸어... 예비산 떼고 군장 내림줄 옆구리에 묶은 것 풀고,


“하 이런. 진짜 쎄게 묶었네...”


주 낙하산은 하던 대로 : 가랑이 고리 풀고 가슴 띠 해체... 아 존나게 손이 떨린다. 추운 것도 아닌데 왜 이래. 긴장이 너무 지속되면서 체력을 잡아먹었나. 그럼 염병 죽는 줄 알았는데 살이 안 떨려? 자꾸 시선이 사방으로 돌아가고 귀가 민감하다.


무슨 소리?...... 뭐 안 들렸어 지금? 아닌가? 어, 바람 펄럭이는 소리! 카나피에 바람 들어가 부푼다, 빨리 빨리. 산악복 벗어... 어? 카나피! 안 되겠다 낙하산 회수부터. 낙하산 끝 기공으로 뛰어. 어 숨차.


악! 하... 씨. 발에 뭐가 걸린 거야. 일어서 빨리 해.


기공 고리에 엄지 걸고 8자 감기 시작. 바닥에 뭔 걸리는 게 많아. 무릎 존나게 아프네. 뭐야 이거. 민가가 가까운가? 짧게 친 나무뿌리들이 이리 많아. 땅에 손가락만한 죽창들이 꼽혔네 에이, 빨리 감아 감아. 그나저나 이거 너무 고요~ 하다... 낙하산 부피 줄여. 바람 빼.


답답하다 산악복 벗자. 어, 산악복 백 안 가져왔어... 뭐 다시 쓸 것도 아니고.


추워. 축축해. 땀 무척 흘렸구나. 거총! 특전조끼에 탄창 수류탄 확인. 이제 군장 결속벨트와 내림줄 풀어. 군장 정말 무겁네. 돌덩어리야. 후... 땀. 얼굴 너무 문지르지 말자. 벌써 위장 떴다.


야~ 저것 봐라. 자칫하면 저 나무에 걸렸네. 어떻게 피했지? 공중에서 나무 못 봤는데. 저거에 걸렸으면 낙하산 회수 못할 뻔했다... 지체하지 말고 삼단삽 풀어서 묻어... 삼단삽을 왜 군장 밖에 결속하라 그랬는지 여기 와서 깨닫다니 참...


새가 울었나?... 여기면 안 이상하지? 매몰...


걍 대충 묻어. 다시 올 거 아냐. 왜 이렇게 숨이 턱에 차냐. 땀은 질질 진짜. 군장에 타월? 언제 푸냐 니미. 이게 공화국 흙야? 제기랄... 됐어 묻어. 더 깊이 파 봤자다. 주산 예비산 산악복, 군장 결속물 수고했다. 묻어. 염병 북한서도 삽질이야.


휴, 다 끝났네.

인제 어떡하지?


여긴 어디야. 계산이 안 돼. 전장정보 집중연구 때 공중침투 시간이 얼마 나온다 말하지 않았다. DMZ 상공을 통과해 우리 DZ로 직진? 당연히 아니다. 분명 바다로 왔어. 짬마와 소텍까지 받은 중대장님은 질문에 손가락으로 가볍게 힌트만 주고 끝이다.


“보안엄수.”


공군과 관계된 것이라 복잡하고, 수송기 재급유만 안 하는 상태에서 만땅고로 계산했을 거야. 침투 소모시간을 알아야 기준을 두고 여기가 어딘지 계산하지. 50분은 날았어. 북한전도로 봤을 때 어디란 소리야? 바다에 얼마나 떠 있었지? 지도는 중대장님과 정작. 문제는 내 GPS가 없어. 부팀이라고 싸구려 GPS로 애먹는 정작에게 줬으니 난 어쩌란 말이냐. 내 돈 주고 산 새것을 줬어. 하, 그거만 있으면 지금...


수송기 시속 250~300에 50분.


비행기 탑승해서 중대장님이 침투 소요시간을 말한 거 같은데 못 들었어. 중대장님은 메인패스트 앞, 난 뒷열. 수송기는 시끄럽고 공기는 산만하고.


직선이 아니라 대공포 방공망 피하면서 루트를 그었겠지. 어쨌거나 우리 작전섹터에 한참 멀어. 보안이라고 탑승완료까지 발설 못하는 건 맞지만, 격리지역에서 전화 한통 못하는 우리가 보안을 발설하냐. 사령부와 여단본부 남은 입이 문제지. 여단본부도 우리 침투완료 시점까지 당연 통제되나? 통제 돼야지. 안 그럼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 다 나오는데.


유보계획 [수송기 피탄 시]. 내 앞에 나간 사람은 멀었어. 30초는 넘었고 어쩌면 1분. 찾을 수 있겠어? 뒷사람이 따라 나왔으면 낙하산이 뿌옇게 보였을 텐데. 모르겠어. 내 뒤도 무척 떨어져 나왔나? 십자로 상공 10% 월광에 뛰어도 낙하산은 뿌옇게 보이는데. 못 본 거야? 하긴, 훈련 때도 내가 어디쯤 떨어질까 생각하지, 정말 붙는 놈 아니면 누가 너므 낙하산을 신경 써. 아무리 마이크로 떠들어도 십자로 능선 넘어가 학생대와 막타워 근처로 떨어지는 또라이도 있는데.


내 앞과 뒤 모두 한참 떨어진 거야?


어깨끈 조정. 이동준비 완료.

생각하자. 잠시 앉자.


우린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승무원들만 안 거다. 엔진 굉음 때문인지 대공포가 있었는지, 밖에서 펑펑펑 터지는 그런 소리 못 들었다. 갑자기 전에 못 보던 등들이 사방 껌벅이면서 비상벨이 울리고, 머리칼 곤두서는 비상사태. 고함. 추락한 건 아니겠지? 나오지 못하면 수송기와 운명을 같이 해? 수송기가 생존했다면 점프 못하고 돌아간 병력도 있을 거다. 내가 나올 때 우측열은 반이나 남아 있었어. 이게 말이 돼? 대가리 짱구가 아닌 이상 요즘 누가 대놓고 공중침투야. 육항으로 줬어야지. 우리 섹터가 헬기에 보조연료통 달아도 너무 먼가?


나만 홀로 좆된 건가. 내 앞에, 갑자기 열린 후미문으로 상당한 병력이 앞서 나갔다. 갑자기 바람이 기내에 훅훅 불어 고개를 돌리니 후미문이 아래위로 벌어지고 있었다. 성대가 찢어지는 고함.


“고리 걸어! 고리! 걸어! 무조건 걸어!!!”


비행기 기수가 위로 들리고, 중력은 후미문으로 끌어당기고, 뚝뚝뚝 떨어져 나가던 사람들. 고리 못 걸고 나간 사람도 있었어. 돌면서, 그 육중한 군장과 몸이 회전하면서 바깥 저 컴컴한 상공으로 번쩍하고 사라지던 지역대원들. 돌면서 예비산 개방하다 보조낙하산이나 산줄이 몸에 감기면 끝인데! 방법 없어. 추락사야.


“일어서! 모두 일어서! 서로 도와줘!”


일어서 고리 걸라고? 군장 무게에 바닥은 기울어지고. 누가 먼저 일어나서 당겨줘야 안전고리를 걸지. 훈련강하 최고봉인 내륙전술훈련 군장은 안전근무자가 1번 강하자부터 일으켜 주니까 도미노처럼 서로 잡아줘 일어나지.


내가 나온 건 운이다. 대체 뭐야. 공격헬기 직승기? 미그기 뜬 거야? 대공포가 레이더 전파를 쐈어? 펑펑 터지는 소리는 없었어. 12.7밀리 대공기관총 소리도 못 들었고. 상공에 나오니 훈련 때처럼 고요했어. 무슨 지랄을 한 거야. 아무 위협도 없이 그럴 리 없어.


격리구역에서 우리에게 전황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 사기에 영향을 줄까봐 그런 것으로 아는데, 그래도 우리끼리 한 이야기가 있다. 만약 우리의 진격이 급격하게 북상하면 우리 월북작전이 취소되거나 임무가 변경될 것이라고. 머나먼 우리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정. 고로 ‘현 목표 취소!’ 통보가 오면 전황은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우린 [임무 취소. 대기.] 상황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마음이 변하면 무너진다. 비상부터 격리구역까지 목숨 걸고 간다는 긴장감과 전투사기! 그건 지켜야 했다.


우리가 날아갈 때 미그기가 나타날 거라곤 상상하지 않았다. 개전 시점에서 미군과 우리 공군은 분명 북한의 재래식 공군을 완벽하게 파괴할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비상식적인 북한의 비대칭 군사력으로 돌격을 하더라고, 상공은 불가능하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최신식 전투기를 100대를 받지 않는 한 그건 불가능한 거 맞다. 우리가 두려운 건 북한에 깔린 재래식 대공포였다.


대체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진짜, 진짜 농담으로 하던 수송기 ‘내장 털기’를 당했다. 하지만 공군 탓이 아냐. 만약 추락할 위험이 있었다면, 그 고도에서 내리 꼽으면 1분도 안 걸려 땅을 때려. 기내는 정어리 통조림 몰살이다.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니 욕할 게 아냐. 수송기가 어디 고장 난 거야?


그래, 풀 옵션이면 100억 원에 가깝다는 수송기는 살려야지. 국민의 세금인데. 그럼 우리 한 명은 얼마일까. 한 명 당 2억은 돼야 수송기 가격과 비슷하겠네. 과연 우린 얼마야. 하지만 격추되어 통으로 다 죽느니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쏟아냈어. 기수를 45도 직전까지 들고 후미문으로 그냥 쏟아냈어. 수송기 자체 고장이 아니라면, 수송기는 뭐에 맞기 직전이었어. 그 찰라, 공중에서 제트기 소리를 들은 것도 같고.


적색램프와 작전용 미등 외에 어둑했던 기내. 램프와 벨이 지랄발광하고 저 멀리 마름모꼴 사각형의 시커먼 블랙홀. 돌면서 나가다 번쩍 증발하는 작은 조각들, 지역대원들이 뚝뚝 떨어져 사라진다. 중대장을 찾았지만, 저 앞에 있다는 것 외에 구별 못 한다. 뒷모습으로 팀원 둘을 알아봤지만 의사소통할 시간도 없고.


“내-외측 순서 없어! GO! GO! 어서 나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함경도의 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0 태운다 나의 거짓 2 20.12.16 389 16 11쪽
159 태운다 나의 거짓 1 20.12.14 419 13 11쪽
158 게릴라의 길 2 +3 20.12.11 442 19 13쪽
157 게릴라의 길 1 +2 20.12.09 479 17 13쪽
156 남조선 항공륙전 3 +3 20.12.08 474 26 12쪽
155 남조선 항공륙전 2 20.12.07 409 24 11쪽
154 남조선 항공륙전 1 +1 20.12.04 482 26 11쪽
153 격납고 2 20.12.03 418 19 12쪽
» 격납고 1 20.12.02 434 20 11쪽
151 마지막 가을비 5 20.12.01 363 23 10쪽
150 마지막 가을비 4 20.11.30 371 19 14쪽
149 마지막 가을비 3 20.11.27 367 20 16쪽
148 마지막 가을비 2 20.11.26 445 22 11쪽
147 마지막 가을비 1 20.11.25 448 24 11쪽
146 분주한 여명 속으로 2 20.11.24 412 23 15쪽
145 분주한 여명 속으로 1 20.11.23 387 23 15쪽
144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2 20.11.21 411 22 11쪽
143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1 +1 20.11.20 412 21 11쪽
142 횃불처럼 3 20.11.19 391 23 15쪽
141 횃불처럼 2 20.11.18 402 2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