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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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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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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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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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게릴라의 길 2

DUMMY

북한 냄새와 비슷해졌다. 남조선 고깃기름이 좌악 빠졌다. 볼살이 쑥 들어가고 광대뼈가 나와 남한사람 같지가 않다. 북한군복 입는 첨병조나 위장기습조에게 면도칼 밀어주고 (특히 북한군모 밑의) 머리칼도 의무주특기 가위로 서로 잘라준다. 바리캉 하나 사올 걸. 강릉삼척무장공비 사건에서 왜 124군이 일제 바리깡을 휴대하고 내려왔는지 이해한다.


솔직히 말해 북한군복은 편하다. 바지 품도 넓고 발목에 단추만 잠그면 남한식 링이 필요 없다. 상의는 그냥 뒤집어쓰면 되고, 여름에는 반 찜통이지만, 남한군복처럼 앞면이 열리지 않아 걸릴 일도 없고 공기가 안 통해 밤에 따뜻하다. 군복 천의 질이야 말할 것 없지만.


체면 사라졌다. 성격들이 제대로 재편성된다. 같은 아군으로도 보고 싶지 않은 눈을 드러낸다. 저 사람이 날 버리고 가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믿기로 한다. 내가 믿어야 저 사람도 날 믿는다. 적 시체 배때지가 터져 있어도 상관없이 뒤진다. 숨 끊어지지 않은 자가 쳐다봐도 상관 않는다. 담배가 더 중요하다. 사람 죽기 전의 ‘그 숨소리’를 자주 들어 익숙해졌다.


“농담이지만, 모가지 잘라서 3~4부에 하나 걸카놓고 싶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니들 올라오면 이래 된다고. 왜 말이 안 돼.”

“시체가 얼마나 무거운데 끌고 올라와.”

“따라오다 죽은 놈을 걸어놓으마 되지.”

“금방 잘리나?”


비는 일말의 낭만이 사라지고 그냥 지옥이다. 정말 개 같은 지옥이다. 판초가 없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주야로 비를 피할 수가 없어 마르지 않고 덜덜덜 떨린다. 비트 위에 초가지붕을 만들고 싶다. 총 닦는 것이 미칠 지경이다. 해상훈련 제외하고 총에 시뻘건 녹이 스는 걸 경험한다. 누울 자리에 깔 마른 풀도 사라지는 비 오는 날 전후는 없어도 작전하는 게 낫다.


하루라도 방에서 자고 싶다. 구들장에 몸을 지지면 며칠 못 일어날 것 같다. 판초와 텐트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았다. 하지만 그런 거 다 지고 다니면 죽는다. 그 다음 중요한 건 삼단삽. 불을 피우던 비트 파던 잠자리 준비하던 맨손으로 한계가 있다. 결국 군인에게 지급된 것 중에 중요하지 않은 건 없었다. 북한군 우의도 노획대상. 시신에 양말이 있나 일단 지하족을 벗겨본다. 체중은 떨어지고 몸은 덜덜덜 떨리고 위산으로 속이 쓰리다. 또 그렇게 작전을 나간다. 그렇게 모든 게 이해된다. 탱크도 잠수함도 복잡해 보이지만, 이처럼 ‘정말 필요한 것들만’ 모아놓은 군용물품이란 걸. 모든 걸 가지고 다닌 훈련은 타워펠리스였다. 내륙전술훈련 때 샀던 대형 톱과 야스리가 그립다.


먹고 싸는 게 문제지 자는 건 그런대로 버틴다. 2차가 끝나고 은근히 밤기운이 차가워지자 우린 처음으로 개 같았던 공중침투를 칭송했다. 군장과 장구를 많이 잃어버린 가운데, 우리 팀은 DZ로 가서 파묻었던 낙하산들을 꺼내 2미터 곱하기 2미터로 잘라 각자 하나씩 둘둘 말아 특전조끼 등낭에 넣었다. 가벼워서 휴대하기 최고인데다, 둘둘 말고 고랑창에 들어가 자면 상당히 괜찮다. 판초와 카나피 조합이면 호텔이다. 염병할 관급 침낭은 무겁고 부피가 커서 심히 부담된다. 군장이 둔해서 초반에 거의 다 버리거나 파묻었다. 몸이 젖은 날 카나피로 몸을 둘둘 말면 천이 습기를 흡수하고 - 카나피는 물기가 금방 마른다.


거지 중의 상거지, 먹을 걸 위해 사람 죽이는 짐승. 나 살려고 죽인다. 의식주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불편의 분노가 온다. 배고프고 피곤하자 분노가 올라온다. 걸리면 가만 안 놔둔다. 인간적인 건 개나 쳐 잡숴. 고상한 건 고상한 곳에서나. 잘라온 낙하산 줄도 엄청나게 쓰인다. 지하족 위를 낙하산 줄로 묶고 다니고 개 같은 총기끈을 대신해 사용한다.


안 변한 거야. 원사들이 그랬지. 어째 목표가 옛날이랑 많이 다르지 않다고. 현재는 죄다 정찰감시 항폭팀인 줄 알았다고. 이제 세계적으로 특수전부대의 대세는 정찰감시 항폭이라고? 우린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직접타격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우리 살라고 하는 소리는 감사한데, 할리우드 영화 좋아하다 뇌가 코쟁이로 바뀌었나? 무전기로 여기 중요한 터널 있다 통보하면 끝이겠네. 쉽다 쉬워. 뻔히 군사위성 여러 개가 매일 정밀촬영하고 있는 걸 북한이 모르나? 죄다 갱도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일단 수상하니 때려!’ 그러면 벙커버스터로 뚫어주는 거야? 한 발에 몇 억 원 하는 거? 한 30번 부르면 100억 원이네! 우리더러 정확한 관측을 위해 어떻게 해서라도 침투하라면, 들어갔다 그냥 나와?


군사전문가란 분들은 북한을 어디 이라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미군이 됐어. 특수전은 이제 정찰감시라며 죄다 아는 척이야. 북한 주요 도시는 땅 밑에 지하 도시 같은 터널 망이 구축됐는데, 거기에 군수품 존나 축적했다는 말 못 들었나? 장군님들 대대로 미제 항공기가 무서워서 모든 대책을 강구했다는 거 까먹었나나? 북한 전역에 그런 게 널렸다. 북한이 벙커버스터나 관통폭탄 제원 몰라? 땅속 70미터도 들어가? 그런 거 분석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군사 사이트와 밀리터리 프로그램들이 유튜브에서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들어갔다 나온다고 그걸 누가 부셔. 개 씨알머리도 안 먹히는 사람들이 영화보고 감동받아서 매뉴얼을 읊어대. 맨날 우린 시대에 뒤떨어졌대... 우린 시대에 뒤떨어진 나라에 들어오게 돼있었다고! 차라리 K-3C보다 M4를 특수전용 한정수량 구입하란 소릴 하던지. 피카티니 레일 본체만 받아도 사제 액세서리 잔뜩 사다가 달아줄게. 정찰감시는 야간에 도로 밖에 없어. 조기경보기 공대지 레이더는 어따 써먹으려고?


왜 우리가 일곱 개 여단에서 감축을 안 했는지 감이 오나? 우린 어차피 재래식 반 현대식 반이었어. 가끔 보면 한국말 쓰는 서양인들 많아. 뉴욕 거리에 가서 서봐. 우리가 누군지. 우린 이 땅에 있다고. 죄다 서양 자료 보더니 대가리에 치즈가 꼈나? 여기에 비하면 이라크 아프간은 전쟁도 아녀. 비교할라문 체첸이랑 해야지. 체첸에 러시아 대신 미군이 들어갔다고 생각해봐. 미국 대통령 탄핵될지도 몰라...


우린 해당지역 새터민의 정보를 듣고 올라왔다.


미 공급 시기,

다시 말해 고난의 행군 시절. 사람도 잡아먹은 곳.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니... 함북도 온성에서

독에다 사람 다섯을 소금에 절여 놓았다가 보위부에

걸린 일 같은 게 공식적으로 존재했어. 그 독 안에는

자기가 목 졸라 살해한 옆 집 소녀도 있었어.

굶다가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거지.


전쟁만 야만이냐.


특수전은 무식하게 하지 말라고 배운 게다.

허나 결론은 무식한 거였다. 바로 여기는.

여기 사람들이 무식한 게 아니다. 이렇게

무식하도록 조종하고 세뇌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군사물자 인력 장비만 파괴할 뿐,

과거 게릴라전의 ‘해방구’를 꿈꾸지 못한다.


대신,

밤행. 비. 추위. 허기. 인내. 피.


오, 오!

초라하지만 영광의 길!

배고프지만 분노의 길!

우린 젖은 성냥을 들고 기다린다.



“해 진다. 불 꺼.”

따사로움도 끝이다.

“쫌만 하면 뜸이 잘 들 것 같은데.”

“연기 올라가잖아. 오줌까지 싸서 완전히 꺼. 불씨 살면 좆 된다.”

이대로 한동안 놔두면 그래도 먹을 만은 하겠지?


“그리고 현웅아.”

또 무슨 말.

“다시 그런 경우가 생기면 주저 말고 바로 쏘고 떠나.”

이틀 전.

“무슨 말인가 하면, 오래 보지 말라는 거야. 오래보면 기억할 게 많아져.”

대꾸하고 싶지만 그냥...

“걔가 총 안 들고 있다고 주저했지. 칼은? 수류탄은? 니가 돌아서서 그냥 가다가 안 당한다는 보장 있어? 너 누굴 믿냐. 다 습관적으로 쏜다고. 군관은 아니었지만 권총이 있었다면 어쩔래. 정 아니다 싶으면 허벅지에 한방 쏴버려. 전력에서 이탈. 오케바리?”

“예 알았습니다.”


“모든 겁은 죽음을 안 믿는 데서 온다.”

밥이 먹을 만하게 됐을까.

“특히 눈을 보지 마.”


편하다. 따뜻하다. 좌뇌 아이디어의 승리. 낙하산 천을 자를 때, 50cm 곱하기 50cm 여분을 잘라 스카프처럼 목에 둘렀다. 위장할 때 목이 가장 귀찮았었다. 헌데 이것이 너무 부드럽고 따스하다. 땀이 묻어도 금방 말라 뽀송뽀송해지고 밤에 따뜻하다. 오늘 흐린 날씨, 유독 따뜻하다.


시커멓게 그을은 반합이 날 바라본다.

너랑 나랑 뭐가 다른데. 어서 쌀이나 익혀.


마지막으로... 불편한 것이 하나 더 남아 있다.


대검. 처음 썼을 때... 영화처럼 그걸 닦지도 않고 대검집에 꼽는다고? 대충 풀에 쓱싹이고 다시 제자리에 꼽아? 알고도 모를 것이 묻어 있는데 그러라고? 나도 급한 대로 풀에 닦았다. 캑캑거리는 놈 군복에 닦는다고? 뒈질려고 캑캑거리는 거 더 보라고? 물로 세검하고 싶지. 낮에 뽑아보니 많이 남아 있다. 제대로 닦으려도 물이 없다. 버리고 싶었다. 냄새도 난다. 항상, 누군가 내 허리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다. 차라리 착검해서 무른 땅에 푹푹푹 찔러서 닦는 게 낫다. 내 총열덮개에 deep purple 얼룩도 있었다.


언제 누구를 쏜 건지 바로 알았다. 그건 부벼서 털었다. 피도 마르면 가루다. 대검을 냇가에서 물로 닦았지만 좁은 요철에 얼룩이 남아 있다. 허리에 매달린 놈을 떼버리고 싶지만 대검은 중요하다. 관급이니 당연히 버리면 안 되고. 난 가능할 때 적성 대검을 노획한다. 그걸 쓴 장소에 그냥 버리려고. AK 구형 대검은 길어서 등까지 관통한다. 내 허리에 다른 녀석을 더 달지 않아도 된다.


비슷한 것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불편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눈. 바로 앞에 있던 놈. 견착만 하고 양 눈을 뜬 채... 흐릿한 가늠자와 중첩되어 마주친 다가온 죽음을 바라보던 눈, 멱살을 쥐고 나에게 당기면서 철편의 총구마개가 살에 연신 떡 치는 소리를 내며 봤던 눈이니라. 또한 그런 눈들을 앞으로 계속 보지 않고는 못 배길 그 불편함으로, 사람에게 꼭 ‘삶’을 정의한다면 이제 난 영혼의 바가본도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 하도 날카롭게 갈았더니 날이 살에 닿기만 해도 지익 벌어진다. 살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몸통과 최대한 90도가 되어 들어가지 않으면 옆으로 빗겨나면서 살을 너무 많이 베, 압력으로 내장이 흘러나온다. 맞은 사람이 자기 피와 내장 냄새에 헛구역질을 한다.


비수를 뽑자, 분수처럼 하늘로 치솟는 액체와 그 액체가 달빛에 투영되어 내던 선홍(鮮紅). 거 냄새는 좀 별개로 치도록 하자우야. 왜나문... 그 사람이 내 어깨를 움켜쥐었던 손도 기억이 무겁거던. 누가 영화처럼 죽나. 어느 인간이 그렇게 쉽게 죽나. 당신이 당했다고 생각해봐, 유전 터지고 내장 열렸다고 그냥 인생을 포기해? 하하하.


사회 범죄자라면 맞은 상태로 놔두고 가면 알아서 저승 간다. 하지만 우린 그런 상황이 아니라 곧바로 절명이 필요하다. 그 사람 명은 곧바로 다하지 않았고, 난 달려들어 목을 쥐어 눌렀다. 내 손톱에 목살이 찢어지고, 끝나고 나서 보니 얼굴 피부와 눈에 실핏줄이 터져서 검붉게 변해간다. 군복은 피떡이 되고, 닦았음에도 내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무엇. 상대도 내 얼굴에 손톱으로 자국을 교환했다. 실명할 뻔했다. 거울이 없어 잘 모르겠다. 하여간 내 왼쪽 눈썹과 눈꺼풀에 굵은 선이 사선으로 두 개 생겼다. 가끔 손으로 그 자욱을 만진다. 오늘 같은 날. 보아라 장한 모습.


사람 인생, 결론적으로 참 초라하다.


올해 폭풍은 끝났는가.

마지막 것이 지나가면서 풀이 훅 오르고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행성이 갈색으로 변하면 더욱 삭막해질 것 같다.


반합 뚜껑을 연다.

무럭무럭 김 속에 밥의 상태가.


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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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게릴라의 길 1 +2 20.12.09 479 17 13쪽
156 남조선 항공륙전 3 +3 20.12.08 474 26 12쪽
155 남조선 항공륙전 2 20.12.07 409 24 11쪽
154 남조선 항공륙전 1 +1 20.12.04 482 26 11쪽
153 격납고 2 20.12.03 418 19 12쪽
152 격납고 1 20.12.02 434 20 11쪽
151 마지막 가을비 5 20.12.01 364 23 10쪽
150 마지막 가을비 4 20.11.30 371 19 14쪽
149 마지막 가을비 3 20.11.27 367 20 16쪽
148 마지막 가을비 2 20.11.26 445 22 11쪽
147 마지막 가을비 1 20.11.25 448 24 11쪽
146 분주한 여명 속으로 2 20.11.24 413 23 15쪽
145 분주한 여명 속으로 1 20.11.23 387 23 15쪽
144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2 20.11.21 411 22 11쪽
143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1 +1 20.11.20 412 21 11쪽
142 횃불처럼 3 20.11.19 391 23 15쪽
141 횃불처럼 2 20.11.18 403 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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