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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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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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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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Act 21. 그 이름 - (1) [수정]

DUMMY

미래의 스승이 누구인지, 그를 찾아내는 것까진 좋았다.

딱 거기까지만.


“다시.”


리딩 현장은 내 마음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리딩을 끝내고 한세강으로부터 들은 첫마디였다.

한세강은 나의 연기를 보고 어떠한 감흥도 없었다.

아무리 대본에 심취하고 몰입하여도, 그녀는 오로지 ‘다시’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충격이었다.

대본이 닳고 닳을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연기 연습에 매진했건만, 이런 결과가 흘러나올 줄이야.

지적이야 얼마든지 각오하고 있었지만, 부족한 연기력을 보충해줄 [몰입]까지 통하지 않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좀처럼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목소리 톤이나, 발성이 역시 아쉽습니다. 감정은 차고 넘치게 충분합니다. 중저음의 목소리도 훌륭합니다만, 대사를 말할 때의 목소리 톤, 호흡, 발성, 이러한 기술적 요인들이 부족합니다.’


괜스레 차성우에게 들었던 지적이 다시금 머리를 어지럽혔다.

역시 홀로 독학한 연기, 몰입의 재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임무가 남아있다는 건데.’


- 긴급 임무 : [스승] -


한세강의 반응을 보면 명백한 실패였다.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는 실패.

하지만 스마트폰 화면은 고요했다.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이야.’


리딩은 이미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첫 촬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실패 시 배역이 조연에서 단역으로 조정된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결국 첫 촬영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끝이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첫 촬영까지는 이틀의 시간이 남아있다.

다소 빠듯하긴 하지만, 충분히 오늘의 수모를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김수아나 강석호에게 연기 지도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어떻······.


사앗.


난데없이 볼을 덮치는 싸늘한 감촉.

시원하면서도 정신이 반짝 떠지는 한기에 고개가 절로 위로 향한다.


“마셔.”

“서, 선배님?”


위를 보니 이시환이 내 볼에 캔 커피를 들이밀고 있다.

분명 대기실엔 나밖에 없었을 터인데?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사이 그의 입술이 다시금 열렸다.


“뭐해, 얼른 안 받고?”

“가, 감사합니다.”


커피를 받자, 대본 리딩 때처럼, 그가 내 옆으로 엉덩이를 붙였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입으로는 한숨이 가득히 흘러나온다.


“에휴, 들어온 줄도 모르고 뭘 그리 고민하고 있어?”

“잠깐 생각 좀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때문에 그렇지?”


이시환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번졌다.

그는 쓰게 웃으며 자신 몫의 캔 뚜껑을 뜯었다.


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캔 뚜껑이 곤두섰다.

이시환은 다시금 캔 뚜껑을 눕히고 마치 맥주 마시듯 커피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낸다.


“캬, 꿀꿀할 땐 시원한 캔 커피 한잔이 딱이라니까. 시원한 게, 정신도 바짝 들고, 피로도 싹 날아가고. 너도 얼른 한잔해봐.”

“예, 예···”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 그가 시키는 대로 나 역시 캔 커피의 뚜껑을 뜯었다.

달콤 쌉싸름한 시원한 청량감이 식도를 타고 흐르며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피로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정신은 훨씬 개운해졌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 너무 그렇게 마음 담아두지 마.”

“예?”

“아까 네가 직접 겪었으니 잘 알 테지만, 선생님은 세세한 부분까지 굉장히 민감하셔”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웃고 있던 이시환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낸다.

민감하다?


“역시 제 연기가 많이 부족······”

“어째 이야기가 그쪽으로 빠진대?”

“그 말씀 아니십니까?”

“단지 연기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신 분이라 그래. 어느 누구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연기를 펼치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특히 신인에겐 많이 엄하셔. 이 바닥 생활이 쉽지 않은 것을 몸소 경험하신 분이니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뜻이시지.”

“···그렇습니까?”


이시환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그와 동시에 눈동자로부터 시작된 씁쓸함이 입가에도 번진다.


“60년을 아직 살아보지도 못했지만, 그 아득한 세월을 연기로 보내신 분이신데, 후배들이 잘못된 연기를 펼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시는 거지.”


삽시간에 분위기가 그 무게를 더했다.

무거워진 분위기 사이로 그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게다가 이거 리메이크 작품인 거 알고 있잖아. 각본도 리터치 들어가고 배우들도 전부 바뀌었지만, 빼어난 실력 덕분에 유일하게 다시 기용되신 선생님이신데······”


이시환은 슬며시 말꼬리를 흐렸다.


“제 연기가 많이 부족했습니까?”


잠시 고민에 잠긴 사이, 이시환은 남은 커피를 전부 털어놓고 다시금 말을 덧붙였다.


“너무 조바심내지 마. 첫술에 어떻게 배부르겠냐.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네 나름대로 그렇게 노력하고 있잖냐. 단지 네 전에 그 역할 했던 사람이 너무 잘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마음 담아두지 말고.”

“선배님.”

“응?”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시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에게로 향하는 그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줄곧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초면인 제게, 이렇게 잘해주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다소 곤란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그의 친절을 의심해버리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궁금했다.

단순히 선후배의 관계를 넘어 친한 형처럼 나를 계속 챙겨주는 이유가.

뻣뻣하게 굳어있던 이시환은 이윽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좀. 옛날 보는 모습 보는 거 같아서. 옛날에 나랑 내 동기들도 너처럼 선생님께 된통 혼난 적이 있었거든.”

“선배님도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힘 좀 내. 그렇게 욕먹고도 아직까지 배우를 계속하는 나 같은 놈도 있는데, 한번 혼난 거 가지고 다 큰 사내놈이 축 처져 있으면 되겠어?”


그가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준다.

연주에게서 느꼈던 감정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다.

물론 공통점도 있었다.

별거 아닌 이유에서 이어지는 그의 선행과, 배려가, 내게는 너무 큰 힘이 되었다.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는 무슨. 먼저 일어난다. 얼른 기운 차리고 나중에 같이 소주나 한잔하자고.”


이시환은 내 등을 몇 번 두드려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나를 배려하듯 먼저 자리를 비켜준다.

그의 선행과 배려가 내게 더없이 큰 위로가 되었다.


또다시 홀로 남은 대기실 안.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스마트폰을 켜고 보은의 아이콘을 두드렸다.

덕분에 새로이 각오가 다져졌다.


- 월 1회 힌트 제공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 사용 시 30일간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


한번 쓰면 한 달 동안은 다시 사용 못 하지만, 망설임은 없다.

잡힐 듯 말 듯, 보일 듯 말 듯,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는 감각을 풀어내기 위해서, 한세강에게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

화면을 가득히 채우는 두 개의 버튼 중, 예(Y)의 버튼을 누른 순간.


- 힌트 제공권을 사용하여 임무 수행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가 지급됩니다. -

- 010-XXXX-OOOO. -

- 리메이크되기 전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의 연락처가 지급되었습니다. -


“같은 배역의 배우?”


멍하니 힌트를 바라보던 입에서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난데없이 배우의 연락처라니.

저번처럼 미래의 기사라던가 그런 것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의외다.


“···일단 전화라도 걸어볼까?”


고심 끝에 움직인 손가락이 키패드의 버튼을 두드린다.

이윽고 모든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뚜, 뚜.


익숙한 연결음이 이어진다.

잠시간의 기다림이 끝나고.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가득히 메운다.

막상 전화를 걸긴 했는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여보세요?”

“시, 실례합니다. 혹시 한세강 선생님······”

“···누구십니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단번에 경계심을 보인다.

하긴 소개도 없이 다른 이의 이름을 말하고, 딱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받기 좋은 상황이다.


“초면에 죄송합니다. 배우 정지혁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연락드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정지혁 배우요? 처음 들어보는데.”

“신인 배우입니다.”

“···보아하니 저에 대한 소개도 못 듣고 연락한 거 같은데 맞죠?”

“네, 초면에 다짜고짜 죄송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잠시간의 정적 끝에 그는 다시금 목소리를 내었다.


“누가 일러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찾았네요.”

“예?”

“저도 배우거든요. 예전에 은퇴한.”


***


나는 먼저 장소를 옮겼다.

리딩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김수아를 돌려보내고, 나는 그가 일러준 카페로 향했다.

자주 오던 것인지, 인적도 거의 없고 굉장히 조용한 곳이다.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호록.”


커피 한 모금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정지혁 배우 맞죠?”


수화기 너머로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맞네. 일찍 왔네요.”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동공에 가득 찬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익숙했던 목소리의 정체가 떠올랐다.


한지호.

배우인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있겠지만,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연극에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뽐내며, 10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명배우 중 한 명이지 않은가.

비록 몇 년 전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여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긴 했지만, 분명 굉장한 배우이자 선배임에는 틀림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신인 배우 정지혁이라고 합니다.”

“에이 선배는 무슨. 은퇴한 지가 몇 년이 지났는데, 그냥 편하게 강사님이라 불러주세요. 요새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 이름이 훨씬 더 자연스럽네요.”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앉았다.

어쩐지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상냥한 느낌이다.


“한세강 선생님에 대해 여쭤보셨죠?”

“네. 선생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바로 알려드리기는 그렇고 이유를 좀 물어봐도 돼요?”

“네. 사실······”


입술이 들썩이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내용이 목소리가 되어 흘러나온다.


“하지만 제가 많이 부족한 것인지 계속······”

“‘다시’라고 하셨죠?”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그걸 어떻게?

미처 의문을 해결할 틈도 없이 이야기를 듣던 한지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고소(苦笑)에 가까운 걸 보니 왠지 모르게 굉장히 익숙한 반응이라는 표정이다.


“여전하시네.”

“네?”

“한세강 선생님 여전하시다고요. 저 때도 그러셨거든요. 아니, 더 심했었나?”


한지호는 고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보다 더 심했다고?

세상에 그렇게 ‘다시’만 듣는 것도 충분히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는데 그보다 더 심하다니.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신 거라면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입니다.”

“네?”

“지혁 씨 연기가 마음에 안 드셨던 거예요.”


···어느 정도 예상은, 아니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직접적으로 들으니 왠지 속이 쓰리다.

하긴 애초에 마음에 들었으면 ‘다시’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겠지,

하지만 뭐가 잘못된 지를 모르니 고치려 해도 고칠 수가···


“아까 리딩했던 대사 기억해요?”

“네? 네, 기억합니다.”


오늘의 대본 리딩을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머릿속에 새겨 넣은 대본이다.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곤 하지만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이윽고 한지호는 씨익 웃으며 입술을 떼었다.


“한번 보여주세요.”

“···여기서 말씀입니까?”

“네.”


태연하게 리딩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이상한 것 같은 느낌이다.


“제가 봐 드릴 테니 해보세요, 얼른.”


하긴 지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내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당장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상황이니까.


“후우.”


나는 찬찬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호흡 사이로.

머릿속에 새겨진 글자들이 단어를 이루고 문장이 되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많이 수척해지셨어요.”

“······”

“아직 기억나지 않으신가 보네요.”

“거기까지.”


기껏 몰입으로 잠겨가던 의식이 산산이 부서진다.

거센 파도에 덮쳐져 버린 모래알처럼, 조각나 버린 의식은 파도와도 같은 한 마디가 사라지고서야 다시금 형태를 이룬다.


“···예?”

“더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단 두 마디.

두 마디에 불과했다.


“지혁 씨 제대로 연기 배운 적 없죠?”


단 두 마디의 대사만으로 한지호는 나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했다.


“대, 대체 어떻게···”

“연기를 제대로 배운 사람과 독학한 사람의 차이가 뭔지 알아요? 바로 호흡이에요.”

“호흡 말씀입니까?”


한지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혁 씨가 지금 한 연기, 감정은 정말 좋아요. 마치 실제 그 배역이 된 것과도 같은 느낌으로 특유의 감정선을 잡고 청자들로 하여금 지혁 씨의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하지만 그 좋은 장점을 호흡이 다 무너뜨려요.”

“······”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단순히 숨을 쉬고 내뱉는 게 호흡이 아닙니다. 숨을 어떻게, 어느 정도 들이마시냐에 따라 그것만으로도 발성과 발음, 그리고 억양까지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요.”


이윽고 한지호는 숨을 고르고 다시금 입술을 떼었다.


“많이 수척해지셨어요.”


다르다.

분명 같은 대사이지만,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내가 내뱉었던 대사가 일상적인 대화나 다름없던 대사였다면, 한지호의 대사는 그 자체로 살아있었다.


생동감이라고 해야 할까?

한지호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들은 대사 한 마디로 한지호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캐릭터의 감정뿐만 아니라, 대본 속에 살아있는 특유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물론 단 두 마디만으로 제가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감정은 정말 좋습니다. 다만 적어도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호흡부터 정립이 되어 있지 않으니 계속 ‘다시’라고 하신 것이시겠죠.”

“그, 그렇습니까···”


나름 노력한다고 노력한 것인데도, 이 정도의 차이가 있었던 걸까?

정말 충격이다.

그와 동시에 욕심이 났다.

배우로서 그가 있는 곳에 닿고 싶은··· 아니, 그를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일렁였다.


“배우고 싶죠?”

“예··· 예?”


갑작스럽게 흘러나온 목소리에 무심코 대답이 흘러나왔다.

뒤늦게 의문사를 붙이긴 했지만, 그의 입가엔 이미 짙은 미소가 번지고 있다.


“어쩜 저랑 똑같네요. 저도 예전에 딱 그 모습 그대로였거든요.”

“가, 강시님도요?”

“네, 딱 지혁 씨 같은 눈이었죠. 배우고 싶어서, 연기가 잘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던 그 눈. 덕분에 옛날 생각이 나네요.”


한지호의 고개가 돌아가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향한다.

그리움을 담은 눈동자에 서서히 오랜 추억이 맴돌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입술이 무심코 움직인다.


“···선생님하고는 무슨 사이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스스로의 목소리에 놀랄 틈도 없이 그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제자였습니다.”

“제자요?”

“네. 제가 첫 번째 제자였죠.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네요. 저도 지혁 씨처럼 선생님께 꾸중도 받고 배우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씁쓸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 어쩐지 기시감이 어린다.

한때 제자였었다라.

그의 말은 과거형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파문당했다고 할까요? 정확히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과 연락이 끊긴 것이 벌써 3년도 넘은 것 같네요.”


그의 눈동자에 그리움이 사무친다.

희미한 슬픔마저 담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이윽고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선생님께 한번 크게 대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별거 아닌 사소한 의견 차이에 불과했는데, 선생님의 말씀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제 뜻대로 행동했죠,”

“······”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고 저도 선생님과 같이 후배들을 가르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말씀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 내가 너무 자만했구나.’라고.”


그리움을 넘어 그의 눈동자에 후회와 회한의 감정이 담기기 시작한다.

그는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었다.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어그러져버린 지난날을, 끊어져 버린 현재의 관계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내 그의 입가에 자조 섞인 미소가 번진다.


“부디 지혁 씨는 저와 같은 일 없이 잘 됐으면 좋겠네요.”

“다시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리가 필요하다면 제가 어떻게든······”


무심코 입 밖으로 속마음이 흘러나온다.

호의로 가득 찬 눈동자를 눈앞에서 마주했기 때문일까?

지난날의 과오를 후회하는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안타까움이 인다.

하지만 그는 부드럽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선선히 미소를 지었다.


“그게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가는 대신 다른 방법을 써볼까 해요.”

“다른 방법이라면 어떤······”

“여기 있지 않습니까? 그 방법이.”

“예?”


무슨 소리지?

이해되지 않는 문자의 나열이 고막을 타고 다시 반대편으로 그대로 빠져나온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그의 입가에 연한 미소가 번진다.


“지혁 씨가 조금 도와주실래요?”

“예?”

“지혁 씨가 제가 분신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하지만 잘못 들은 것치곤 그의 입가에 번지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내가 들은 사실이 거짓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윽고 멍한 시선이 집중된 그의 입술이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을 털어놓는다.


“선생님께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그러니 우리 한번 선생님께 제대로 인정받아 보죠.”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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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1

  • 작성자
    Lv.99 장금
    작성일
    20.12.15 20:21
    No. 1

    잘봤어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풍뢰전사
    작성일
    20.12.15 20:37
    No. 2
  • 작성자
    Lv.27 레쥬
    작성일
    20.12.15 20:42
    No. 3

    절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아사아
    작성일
    20.12.18 07:53
    No. 4

    자기 경험때문에 다른사람들한테 성질부리는 게 선배랍시고 인정받는 상황이 참 슬프네요

    찬성: 21 | 반대: 0

  • 작성자
    Lv.24 이얍두루미
    작성일
    20.12.20 10:09
    No. 5

    연기경력 60년, 6년전 사고, 사고를 어느정도 이겨낼즈음 환갑이 지난 나이

    완전 어릴때 4~5살 쯤부터 아역을 하신 건가요? 머리속으로 대충 17살 쯤으로 생각했어서 인지부조화가 왔음

    찬성: 4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쥬운
    작성일
    20.12.20 10:21
    No. 6

    안녕하세요 작가 쥬운 입니다.
    항상 주의깊게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부분을 통해 확인해보니 제가 계산하던 부분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해당부분의 계산은 즉각 수정하여 '환갑'에서 '일흔이 넘는 나이'로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좋은 지적 정말 감사드리며, 이얍두루미님 덕분에 글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었습니다. 혼란을 야기시켜드려 죄송하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2 다위
    작성일
    20.12.20 15:03
    No. 7

    뭐지...연기랑 아무상관없는
    본인개인사정때문에 남한테 성질부리는
    나이지극한 연예계 대선배라는거네 그냥
    되게 별로인 캐릭터네요 ㅋㅋㄱㄱㅋㅋㄱㄱㅋ
    뭐지 ㅋㅋㄱㅋ

    찬성: 26 | 반대: 0

  • 작성자
    Lv.99 yeom
    작성일
    20.12.20 20:13
    No. 8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포스아인
    작성일
    20.12.28 18:08
    No. 9

    즐감하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3 오스마일
    작성일
    20.12.29 23:08
    No. 10

    연기할 때마다 지적받는 목소리톤이나 발성 연습이나 하지.
    글 읽는 입장에서는 가장 급하고 근본적인 것부터 천천히 나아질 생각을 하기보다 갑자기 얻은 몰입이라는 능력에만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래서 안일하게 보이기도 하구요.
    이번에도 발성 연습보다는 선생님 개인사나 파고 있고.
    발성이 하루아침에 나아지진 않는다지만 글 속에서는 한번도 그 매번 지적받는 발성 연습한다는 내용이 없어서..좀 그래요.

    찬성: 8 | 반대: 0

  • 작성자
    Lv.87 Tringya
    작성일
    20.12.30 18:40
    No. 11

    이번 에피소드는 참 아쉽습니다. 주인공에게 스승을 붙여 줄 개연성을 보여주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도저히 몰입이 안됩니다. 발성이나 표정의 재능을 보상으로 주는 미션을 하는 것이면 몰라도 , 스승을 굳이 저렇게 꼬장 부리는 사람으로 한다는것도 그렇고 주인공이 급하게 올리려는 것으로 보이는게 좀 그렇습니다. 요즘 텃세도 저렇게 부리면 연예계에서 일 못한다고 알고있는데... 뭐 결론은 아쉽습니다. 더 나은글을 기대하겠습니다. 건필하세요 작가님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96 상처엔후시딘
    작성일
    20.12.30 18:51
    No. 12

    소속사 계약할때 발성이나 연기.. 스승붙여준다더니 아직까지 혼자서 독학하고 있다는게 이상하네요..
    소속사에서 일을 안하는건가요? 좋은 소속사인것처럼 밑밥은 엄청깔더니.. 신인인데 혼자서 발성연습을 어떻게 하는건지..

    찬성: 13 | 반대: 0

  • 작성자
    Lv.98 몽환이월영
    작성일
    20.12.30 22:45
    No. 13

    이분은 글을 쓸때 에피소드 내용을 늘리기 위해 사이드 스토리를 하나씩 넣는데 그거 독자들이 볼때 다 짜증나는 사이드 스토리라 메인 스토리에 집중도 안되고 등장 캐릭터의 매력도 다 날림.

    찬성: 7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1.01.01 21:28
    No. 14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3 이베리어
    작성일
    21.01.04 15:14
    No. 15

    웃기고 자빠졌네. 자기 사연으로 화풀이?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2 라라므
    작성일
    21.01.04 20:20
    No. 16

    아니. 발성 연습하고 연기 실력을 키워야지. 그냥 대선배한테 잘보이는걸로 넘어가려고하다니.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46 g548
    작성일
    21.01.09 01:37
    No. 17

    연기연습없이 그냥 되는데로 연기하는거?
    거기에 엄마역은 트라우마? 아들죽었다고 연기서 히스테리부린다고? 주인공은 연기연습이 아니고 잘보일려고
    자식이되겠다고? 와우~역시 군인출신
    계산이 빨라 머리는 돌대가린데 어떻게든 끈을잡으려는 꼼수는 군인출신(하급장교)들이 최고지 확실히 짬밥은 괜히있는게아니야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go*****
    작성일
    21.01.09 09:49
    No. 18

    나는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주인공 행동을 강제하는게 제일 맘에 안드네.. 이런 장치는 왜들 넣는거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푸른평원
    작성일
    21.01.11 19:38
    No. 19

    잘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musado01..
    작성일
    21.01.12 12:32
    No. 20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n9******..
    작성일
    21.01.19 13:25
    No. 21

    ? 아니 아직도 독학으로 했다고요? 소속사는 놀았나봐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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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Act 26. 연출 - (2) +12 20.12.20 13,049 30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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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Act 24. 그 이름 - (4) [수정] +24 20.12.18 13,486 284 18쪽
23 Act 23. 그 이름 - (3) [수정] +16 20.12.17 13,453 268 19쪽
22 Act 22. 그 이름 - (2) [수정] +21 20.12.16 13,706 268 12쪽
» Act 21. 그 이름 - (1) [수정] +21 20.12.15 14,293 258 19쪽
20 Act 20. 룰렛 +15 20.12.14 14,490 286 17쪽
19 Act 19. 프로필 - (2) +17 20.12.13 14,181 303 13쪽
18 Act 18. 프로필 - (1) +15 20.12.12 14,608 305 19쪽
17 Act 17. AND +14 20.12.11 14,589 309 15쪽
16 Act 16. 제의 - (3) +18 20.12.10 14,860 294 15쪽
15 Act 15. 제의 - (2) +13 20.12.09 15,432 298 18쪽
14 Act 14. 제의 - (1) +18 20.12.08 15,653 299 14쪽
13 Act 13. 불청객 - (3) +16 20.12.07 15,709 291 15쪽
12 Act 12. 불청객 - (2) +20 20.12.06 15,728 302 12쪽
11 Act 11. 불청객 - (1) +18 20.12.05 15,992 299 12쪽
10 Act 10. 첫 촬영 - (2) +20 20.12.04 16,636 323 17쪽
9 Act 9. 첫 촬영 - (1) +20 20.12.03 17,140 318 17쪽
8 Act 8. 오디션 - (3) +12 20.12.02 17,117 320 11쪽
7 Act 7. 오디션 - (2) +19 20.12.01 17,350 33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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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ct 3. 튜토리얼 - (3) +21 20.11.27 19,551 379 15쪽
2 Act 2. 튜토리얼 - (2) +26 20.11.27 21,580 351 16쪽
1 Act 1. 튜토리얼 - (1) +25 20.11.27 26,037 3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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