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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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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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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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Act 34. 마녀의 남자 - (1)

DUMMY

어느덧 시간이 흘러 여명의 후예의 종방을 앞둔 5월의 어느 날.

2016년의 4월과 5월은 여명의 후예의 달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성적이 영 좋지 않은 드라마의 경우 종방연은커녕, 조촐한 회식도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태반인 반면.

대박 중의 대박을 터뜨린 여명의 후예는 여느 드라마 이상의 대우가 주어졌다.

무려 시청률 30%를 돌파한 덕분에, 포상으로 해외여행까지 주어진 데다, 종방을 기념하여 배우들과 함께하는 인터뷰 형식의 후일담 프로그램까지 편성된 것이다.

덕분에 나도 인터뷰에 참석하게 되었지만.


“아, 아영 씨 너무 옷이 많은 거 아니야?”

“무슨 말씀이세요! 종방을 앞둔 기념 인터뷰인데 더욱 신경 써서 입고 가셔야죠. 오빠 얼른 서보세요.”


파도처럼 몰아붙이는 박아영의 공세에 결국 나는 백기를 들고 자리에 바로 섰다.

면접 때도 그러했지만, 박아영은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같은 스타일의 옷이라도 색깔과 분위기 등 작은 차이가 있는데, 박아영은 그 많은 옷을 직접 다 구해 와서 하나하나 직접 자신만의 스타일을 연출했다.

몇 번이나 옷을 대보고서야 박아영은 최종적으로 결정된 옷을 내밀었다.


“자, 오빠 이걸로 갈아입어 보세요.”

“···이걸로 확정된 거지?”

“에이 오빠 농담도. 스타일이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갈아입으셔야죠. 자자, 그러니까 얼른 갈아입고 와보세요.”

“······”


마치 쇼핑센터에 끌려다니는 남자들의 심정을 겪는 기분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얌전히 그녀가 권한 옷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와.”


단지 옷을 갈아입고 나온 것만으로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박아영이 추천한 것은 네이비색의 슈트 세트였다.

내가 보기엔 다 같은 슈트 같은데도 주변의 반응을 보니 확연히 다르다.


“와, 지혁 씨 봐봐.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잘 입었는데?”

“평소에도 잘생긴 건 알고 있었지만, 군복만 입고 있어서 몰랐는데. 저렇게 입으니까 훨씬 세련돼 보이고 분위기도 산다.”


여기저기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들의 모습에 나는 멋쩍은 듯 한쪽 뺨을 긁적이며 박아영에게로 향했다.


“괜찮아요?”

“역시 오빠가 옷 태가 진짜 확 사네요. 대충 입어도 세련되어 보이는 느낌이랄까? 제대로 스타일링하니까 평소보다도 훨씬 더 댄디하고 세련돼 보여요.”

“···그래요?”

“다 좋은데 위에 상의만 한번 갈아입어 볼게요!”

“이대로도 괜찮은데···”

“안 돼요! 오빠는 제 얼굴이나 마찬가지예요.”


결국 박아영에게서 풀려난 것은 두어 번 정도 옷을 갈아입고 나서였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반응은 내가 생각보다도 훨씬 기대 이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여명의 후예의 종영 인터뷰의 MC를 맡은 아나운서 김하나입니다 오늘은 화제의 드라마 여명의 후예의 출연자 분들과······”


산뜻한 아나운서의 인사와 함께 인터뷰가 시작됐다.

아나운서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배우들의 모습에 대한 말로 운을 떼었다.


“화제의 여주인공 우리 강수연 역의 연하윤 씨. 와 백의를 입고 나오신 모습도 정말 예뻤는데 이렇게 실물로 뵈니 훨씬 더 예쁘시네요. 같은 여자인데도 반할 것 같아요.”

“아니에요. 하나 씨가 훨씬 더 예쁘신걸요.”


인터뷰에 참석한 배우는 연하윤, 김현호, 그리고 나까지 총 3명이었다.

연하윤으로 포문을 열었으니 다음은 김현호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의외의 반응으로 흘러갔다.


“다음 제가 가장 뵙고 싶었던 분이었던 우리 리태홍 역의 정지혁 씨! 와, 제가 많은 분들을 뵈었지만, 실물이 진짜 엄청 잘생기셨어요. 맨날 군복에 환자복만 입고 계신 모습만 봤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정말 멋있으신데요?”


중간에 있던 김현호에 대한 칭찬은 생략되고 연하윤 다음 곧장 내 차례로 넘어온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많이 만나고 싶었던 것인지 아나운서의 눈동자는 오로지 내게만 꽂혀 있었다.

덕분에 한껏 신경 쓰고 나왔던 김현호의 입가가 연달아 꿈틀거렸다.


“옷 태가 진짜 멋있으시네요. 혹시 패션 잡지 자주 읽어보시나요?”

“아뇨, 개인적으로 패션 잡지는 읽지 않습니다. 오늘 옷도 다 제 스타일리스트가 스타일링 해준 옷이에요.”

“스타일리스트분이 진짜 센스 좋으세요. 저도 스타일링 부탁드리고 싶은 정도인걸요?”

“그 말 스타일리스트가 들으면 정말 좋아할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촬영장 한쪽에 있던 박아영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엄지와 검지를 꼬아서 손가락 하트까지 던져대는 모습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덕분에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 김현호를 제외하고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


“자, 이것으로 여명의 후예에서 가장 화제의 인물이었던 세 분의 인터뷰를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인터뷰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아나운서를 비롯한 모든 촬영 스태프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생하셨어요.”

“아, 지혁 씨야말로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오늘 진짜 봐도 봐도 멋있으시네요. 평소랑은 영 딴판이셔서 새삼 반할 것 같아요.”

“아영 씨가 그 말 들으면 정말 좋아할 겁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때마침 박아영이 이쪽으로 후다닥 다가온다.


“지혁 오빠 고생 많으셨어요. 아, 하윤 씨도요!”


박아영은 우리 쪽으로 오자마자 김현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김현호의 표정이 삽시간에 무너진다.


“이번에 지혁 씨 스타일리스트가 되셨다는 말은 들었는데 센스 진짜 좋으신데요? 전이랑은 완전 딴판이에요.”


김현호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건지 무시하는 건지 연하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박아영을 칭찬했다.

잇달아 이어지는 칭찬에 박아영의 어깨가 한껏 들썩인다.

그동안 칭찬을 못 받고 지낸 것인지, 그녀는 작은 칭찬에도 쉽게 들뜨곤 했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혹시 비결이라도 있으세요? 즐겨 보시는 잡지라거나 그런 거요.”


연하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아영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김현호를 향해 눈길을 던져준다.

갑작스러운 눈짓에 김현호가 무어라 입을 열려던 찰나.

박아영은 씨익 웃으며 태연하게 대답을 덧붙였다.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옷걸이가 중요하잖아요. 같은 옷도 입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죠.”


누가 보더라도 김현호를 완벽하게 저격하는 한 마디.

덕분에 김현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옥을 돌멩이로 알고 버린 것은 그 자신이었기에.

결국 김현호는 아무런 불평이나 불만도 쏟아내지 못한 채, 씩씩거리며 촬영장을 나섰다.

아무런 반박도 못 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던 박아영의 입가에는 짙은 비소가 번진다.


“하여간 아영 씨도.”

“오빠도 웃으면서 할 이야기는 아닌 거 알죠?”


입가를 매만져보니 어느새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져있다.

말로 표현은 안 했지만, 내심 무의식적으로 고소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우리 둘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던 연하윤은 다시금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지혁 씨 정말 여행 안 가실 거예요? 다른 곳도 아니고 몰디브라던데.”


연하윤이 안타까움에 눈썹을 오므렸다.

표정도 그렇고 걱정까지 어려 있는 눈동자를 보니 여간 아쉬운 모양이지만, 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려고 한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도 나쁘지 않긴 한데, 이번에 조금 공부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번에 연애물 들어왔다더니, 그거 때문이죠?”


대체 어떻게 눈치챈 것인지 연하윤이 능글맞게 웃음 짓는다.


“그건 또 어떻게 들었어요?”

“이래 봬도 제가 발이 좀 넓어서요. 듣는 귀가 많답니다.”


그녀가 살포시 입가에 호선을 그린다.


“하윤 씨. 이제 가야 해.”

“벌써요?”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는지, 연하윤의 매니저가 초조한 기색으로 시간을 알린다.

동시에 연하윤의 눈동자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가볼게요.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지혁 씨. 아영 씨도 다음에 봐요.”

“조심히 들어가요. 하윤 씨도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들어가세요.”


연하윤은 아쉬운 표정으로 촬영장을 나섰다.

그리고 자리를 비운 그녀를 대신하여 또 다른 이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영이 너 어디 있던 거야. 한참 찾았잖아.”

“죄송해요 언니. 김현호 그놈 좀 골려주려다가 깜빡했어요.”


박아영이 멋쩍은 듯이 웃음을 그리며 머리를 긁적인다.

나는 그녀를 변호하듯이 김수아를 향해 말을 덧붙였다.


“하윤 씨가 옷 멋지다네요. 아영 씨 김현호랑 일할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센스 엄청 좋다고 칭찬했어요.”

“하윤 씨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요! 김현호 그놈은 센스도 없으면서 툭하면 스타일링에 딴지를 걸고 자기 마음대로 갈아입거든요.”


또다시 박아영이 흥분한다.

5년의 세월 동안 정말 어지간히 고통받은 모양이다.


“아영이가 옷 고르는 센스는 진짜 좋은데, 김현호 씨도 눈이 영 별로네요.”

“그렇죠? 역시 수아 언니도 뭘 좀 아신다니까.”


이어지는 김수아의 칭찬에 다시금 박아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정말 자매와도 같은 모습이다.


“일단은 저희도 가죠. 이번 시놉도 조금 고민해봐야 하니까요.”


시놉시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둘의 얼굴이 푹 죽는다.

평소라면 왜 그리 처졌냐고 힘내자고 해보겠지만, 그 원인이 나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조용히 둘을 데리고 차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좀 난감하게 됐네요.”

“그러게요.”


너나 할 것 없이 김수아와 박아영의 입에서 진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설마 지혁 씨가 모쏠이었다니.”

“아니 그 얼굴에 마법사라는 게 말이나 돼요?”

“웬 마법사?”

“모태솔로인 남자들을 보고 마법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설마 오빠가 그 마법사일 줄은···”


박아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늘 그렇듯이 운전대를 잡고 있던 김수아의 입가에는 고소가 번진다.


“영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긴 한데.”

“아니, 이 얼굴에 연애 못 해본 게 말이 되는 거예요?”

“지혁 씨 성인 되자마자 입대해서 8년 동안 군인이었잖아.”

“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로하던 박아영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정말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한 마디에 괜스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중사로 전역하기 전까지 8년 내내, 남정네들로 뿐인 군대에만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었지만.

안타까움을 넘어 측은하게 바라보는 저 4개의 눈을 보니 괜히 더 창피하다.


“힘내요. 계속 군인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죠.”

“아니, 전 괜찮······”

“맞아요 오빠. 군인이 뭐 죄인가? 사람이 살다 보면 연애 못 해봤을 수도 있죠.”

“······.”


일부러 저러는 걸까?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두 사람이 더 안쓰럽게 쳐다본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안쓰러운 그녀들의 시선을 피해 침묵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


“대표님 저희 왔습니다.”

“오, 특별 프로그램 촬영 끝났구나. 반응은 좀 어때?”

“방송 나가봐야 알겠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이대로 여명의 후예에 대한 반응도 좋고 촬영 때 인터뷰 내용도 재미있게 잘 풀려서 이제 종방만 잘 방영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차후 반응 모니터링하면서 지켜보자고. 아, 서 있지 말고 앉아, 앉아.”


강석호의 말과 함께 나와 김수아. 박아영은 앞의 소파에 몸을 기댔다.

중요한 회의를 앞둔 탓에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친다.


“후아.”

“대표님 혹시 새로 들어온 시놉시스는······.”


강석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김수아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분명 시작은 긍정적인 이야기로 시작되었건만, 곧바로 강석호의 얼굴이 시름에 잠긴다.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비슷해.”

“그렇다면 역시······”

“지금까지 들어온 제의 10개 중에 6개가 연애물이야. 나머지 4개는 액션이고.”


차기작에 대한 제의는 충분히 들어왔다.

10개나 되는 시나리오 중에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데. 하필이면 10개 중의 6개가 연애물이다.

캐릭터와 비중, 편성 시간과 감독, 작가, 방송사 등등, 10개의 작품 모두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내가 맡은 역할의 대부분은 비슷했다.


“여주인공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감초 역할인데.”


여명의 후예의 리태홍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기 때문일까?

유난히도 그런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주연과 비슷한 느낌과 비중의 조연도 있는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연애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수라와 카네이션이나 여명의 후예, 모두 직접 혹은 유사하게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쉽게 몰입할 수 있었건만, 연애 경험이 전혀 없으니, 쉽게 몰입할 수가 없는 현실이 큰 걸림돌이 됐다.


“차라리 제가 지금이라도 연애를 해보는 건.”

“안······”

“절대 안 돼요!”


곧바로 흘러나오던 강석호의 말꼬리를 자르며 김수아가 크게 소리쳤다.

평소답지 않은 서슬 퍼런 기세에 강석호는 물론 나와 박아영 역시도 흠칫 놀랐다.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그녀는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고 말을 덧붙였다.


“다, 당장 연애가 그리 쉬운 것도 아니겠지만, 한창 승승장구하는 와중에 갑자기 열애설이라도 터지면 팬들이 엄청 실망할 거예요.”

“맞아요 오빠. 김현호 그 망나니도 항상 연애만큼은 조심했다니까요.”

“김 팀장이랑 아영 씨 말이 맞아. 경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건 너무 무모한 방법이야.”

“대표님, 다시 한번 액션물을 찍는 것은 어떨까요? 여기 이 작품들도 나쁘지 않은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김수아가 테이블 위에 몇 가지 시놉시스를 짚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석호의 대답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했다.


“작품 활동 3개 중에 2개가 액션이라 여기서 또 액션으로 가면 완전 액션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릴 가능성이 높아.”

“역시 그럴까요?”

“회사 차원에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지혁 씨의 성장 가능성과 앞으로 선보일 연기 스펙트럼을 생각하면 액션물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야. 대중들도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연애물 제의가 많은 거겠지.”


강석호는 슬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의 기업을 이끄는 대표로서 그는 냉철하게 현 상황을 분석했다.


“결국 이 여섯 개의 연애물 중에 하나인데. 다들 뭔가 하나씩은 애매해서 걱정이야.”

“하나씩 한번 읽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지혁 씨가 참여할 작품이니까 한 번씩 읽어봐봐. 김 팀장이랑 아영 씨도 같이.”


강석호의 지휘에 따라 우리는 액션 작품 4개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의 시놉시스를 읽기 시작했다.

허나 뭔가 아쉬웠다.

대부분 뭔가 하나씩은 부족한 것이, 스토리가 마음에 들면 캐릭터가 별로고.

반대로 캐릭터가 마음에 들면 비중이나 스토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망설이던 찰나.


“와, 이거 대박인데요?”


하나의 시놉시스를 읽던 박아영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덕분에 그녀를 제외한 6개의 눈동자가 그녀에게로 향한다.


“왜, 좀 괜찮아?”

“이 작품 등장하는 캐릭터, 지혁 오빠랑 같은 모태솔로 설정인데요?”

“그런 작품이 있었나?”


듣고 있던 강석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박아영은 한껏 신이 난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오빠, 이거 봐봐요. 아니 이 캐릭터, 오빠랑 같은 모태솔로인데 외모도 되게 잘생긴 데다 운동도 잘한다는 컨셉이에요.”

“에이 그런 능력자면 진즉에 채갔겠지, 현실에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는 모태솔로가 세상에 어디 있어?”

“여기 있잖아요.”


강석호의 푸념 아닌 푸념에 두 여자의 검지가 나를 가리킨다.

괜스레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오른다.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강석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반론을 던졌다.


“에이 지혁 씨랑 같아? 지혁 씨가 연애 경험이 없다고 해서 굳이 그런 캐릭터를 맡을 필요는······”


강석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아영이 자신의 품속을 뒤적거린다.

이윽고 그녀는 품속에서 꺼낸 무언가를 다짜고짜 내 얼굴로 들이민다.


“오빠 이거 써봐요.”


박아영이 내민 것은 안경이었다.

안경알은 없이 뻥 뚫려 있는 뿔테안경.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자, 박아영은 못 참겠다는 듯이 자기가 직접 내 얼굴에 안경을 씌운다.


“여기 봐봐요! 세상에, 그 캐릭터 지혁 오빠 보고 만든 거 아니에요? 정지혁 그 자체네! 안경 쓰니까, 적당히 찐따 같으면서도 긁으면 1등 나올 것 같은 복권 느낌이 정말······”

“쉿! 아영이 너 너무 흥분했어.”


박아영이 목소리를 키우자 옆에 있던 김수아가 눈치를 주며 그녀를 진정시킨다.

그제야 강석호의 존재를 의식한 박아영은 입술을 꾹 닫고 다시금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 사이 강석호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이제야 기억났다! 마녀의 남자라고 했지? 확실히 스토리는 괜찮고 내용도 참신한데 그 작품이 작가 입봉작이래서 좀 망설여져. 입봉작에 잘못 나섰다가 시청률 바닥 치면 괜히 덤터기 쓸 수도 있어서.”

“아영 씨 저도 한번 볼게요.”

“네, 여기.”


박아영이 건네는 시놉시스를 받아들고 나는 곧장 이름부터 살폈다.


“마녀의 남자?”


이름부터 조금 특이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작품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을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점점 눈동자가 크기를 더했다.


재미있다.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다.

특히 박아영이 지목했던 민강윤이란 캐릭터는 모태솔로라는 점과 연애에 대해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없다는 점에서 나와 완전 판박이처럼 일치했다.


“대표님 저 이거 해보고 싶습니다.”

“지혁 씨?”

“아니, 좀 더 읽어보고 정하지 그래. 단번에 정하기엔 리스크가 좀 크다니까.”


강석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의 만류에도 내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마녀의 남자>의 시놉시스를 읽고 난 후부터는 더욱 욕심이 일었다.

이 작품이라면 지금 여기 있는 어느 작품보다도 훨씬 더 정밀하고 몰입감 넘치는 연기를 펼칠 수 있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닮아있는 캐릭터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감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를 고를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와, 이거 스토리 진짜 괜찮은데요? 캐릭터도 아영이가 말한 것처럼 지혁 씨랑 판박이에요.”


스토리가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다.

이만큼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면 충분히 도전해봄 직하다.

하지만 주름진 강석호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그래, 알았어. 다 좋은데 다들 착각하고 있는 게 지혁 씨한테 제의 들어온 캐릭터는 민강윤이 아니야.”

“예?”

“지혁 씨에게 들어온 건 다른 조연 역할이라고. 그래서 그건 후보군에서 좀 멀리 떨어뜨렸던 거야.”


강석호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말과 동시에 김수아와 박아영 역시도 한숨을 내뱉는다.


“그럼 어쩔 수 없겠네요.”

“민강윤이라면 모르겠는데 다른 조연은 좀······”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이 시놉시스 쓰신 작가분이 백인화 작가님 맞으시죠?”

“네, 그렇게 적혀있어요.”

“혹시 어디 소속이신지도 적혀 있어요?”

“MBT드라마국에서 온 거라 아마 MBT에 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건 왜······”


착실하게 대답해주던 김수아의 말꼬리가 흐려진다.

김수아뿐만이 아니다.

지켜보던 강석호와 박아영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시놉시스를 들어 올리며 나직이 입술을 달싹였다.


“하고 싶은 배역이 있으면 직접 따내러 가야죠.”


작가의말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선호작 배너에도 들어갔더군요.

전부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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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Act 16. 제의 - (3) +18 20.12.10 14,859 294 15쪽
15 Act 15. 제의 - (2) +13 20.12.09 15,431 298 18쪽
14 Act 14. 제의 - (1) +18 20.12.08 15,653 299 14쪽
13 Act 13. 불청객 - (3) +16 20.12.07 15,709 291 15쪽
12 Act 12. 불청객 - (2) +20 20.12.06 15,728 302 12쪽
11 Act 11. 불청객 - (1) +18 20.12.05 15,992 299 12쪽
10 Act 10. 첫 촬영 - (2) +20 20.12.04 16,635 323 17쪽
9 Act 9. 첫 촬영 - (1) +20 20.12.03 17,140 318 17쪽
8 Act 8. 오디션 - (3) +12 20.12.02 17,116 320 11쪽
7 Act 7. 오디션 - (2) +19 20.12.01 17,350 332 14쪽
6 Act 6. 오디션 - (1) +13 20.11.30 17,840 330 11쪽
5 Act 5. 뉴스 - (2) +12 20.11.29 18,224 328 12쪽
4 Act 4. 뉴스 - (1) +21 20.11.28 19,280 345 15쪽
3 Act 3. 튜토리얼 - (3) +21 20.11.27 19,551 379 15쪽
2 Act 2. 튜토리얼 - (2) +26 20.11.27 21,580 351 16쪽
1 Act 1. 튜토리얼 - (1) +25 20.11.27 26,037 3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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