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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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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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풍운록(좌천 8)

DUMMY

아무 생각도 없다. 대원들 중 그 누구도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몽둥이가 왔다 가면 몸뚱이가 홀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 뿐, 그들의 정신세계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틈을 연휘의 자연기가 파고들었다. 텅 비어버린 공간에 연휘의 몽둥이를 통해 자연기가 몰려드는 것이다. 의지를 잃은 육신에 스며들은 그것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재빨리 안돈했다. 그러고도 남은 것들이 비어있는 정신에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몽둥이질은 계속 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연휘의 몽둥이는 계속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타인들은 연무장 근처에 얼씬 거리지도 못했다. 처음엔 사람 잡는다며 몰려들 왔다가 서슬 시퍼런 연휘의 눈빛에 질리고 기세에 눌려, 허둥지둥 돌아가더니 아예 관심을 접어버린 것이다.

또다시 하루가 지났다. 연휘의 몸놀림이 둔해졌다. 지친 노인네의 몸놀림처럼 그렇게 느려진 것이다.


그때쯤 대원들은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몽둥이가 타격을 하는데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극히 미약한 아픔이었다.

처음엔 연휘가 힘이 다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알게 되었다. 몽둥이가 신체에 가까워지면서 몸속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일어나더니, 순간적으로 타격점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피부위로 엷은 막을 형성하며 회전을 하는 것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기운이 몽둥이의 타격을 튕겨내는 것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 자신들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다른 원인은 없었다. 이틀 동안 계속된 연휘의 몽둥이질 때문인 것이다.

그들의 눈이 젖어 들고 있었다. 온 몸을 감싸고 있던 찐득한 무력감이 사라졌다. 하릴 없이 퇴물이 되어 쓰레기처럼 뒹굴며 지내왔던 수년간의 삶이, 주마등같이 흐르고 있었다. 희망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폭우가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연휘의 몽둥이질이 멈췄다. 아니, 멈춰졌다. 그리고 연휘의 몸과 함께 질퍽한 연무장 바닥을 굴렀다.

일백의 사내들이 진창이 되어버린 연무장에 널브러져 있었다. 한 올의 움직임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 처음 그대로 빗물에 젖었다. 그들은 비록 그렇게 누워 있었지만, 그들에게서 타오르는 열기는 빗속의 연무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광도 조찬이 일어났다. 늘어진 연휘를 안아들고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대원 하나가 따라 걸었다. 하나 둘 늘어났다. 일백 명의 사내들이 조찬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몸에 질퍽하게 달라붙어있던 것들이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흙덩이들만 흘러내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들의 몸을 휘감고 있던 이전의 삶도 같이 데려가고 있었다.


“깨어났다던가?”

세차게 쏟아지는 폭우가 시원스럽다. 연휘가 쓰러지고 하루가 지났다.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워낙 심하게 탈진한 터라 이틀은 더 지나야 깨어날 듯 보인답니다.”

양위의 물음에 진총관이 답을 하고 있었다.

검마(劒魔) 진여송. 진총관의 정체다.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운남에서 손에 꼽던 고수다. 양위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수하가 되어 운남지부의 총관으로 있은 지 벌써 십년이 되었다.

“흠... 자네가 보기에는 어떻던가?”

양위의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도 진여송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무엇을 묻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입니다.”

물음과 동시에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튀어나온 대답. 양위의 고개가 끄덕거린다. 당연하다는 뜻이다.

“광도는 어찌하고 있는가?”

“꼼짝도 안하고 연휘의 옆에 붙어 있습니다. 나머지 대원들도 자리이탈 없이 연휘만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연휘가 깨어날 때까지 그대로들 있을 것 같습니다.”

뜻밖이었던 듯,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양위가 몸을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참으로 시원스럽게 쏟아 붓는구나...”

“.....”

사흘째 계속되는 폭우를 보며 둘은 망연히 서 있었다.

문득, 양위의 입이 열리며 집무실을 울렸다.

“이번 기회에 짐을 벗어 버리는 건 어떨까...?”

“너무 이르지 않겠습니까?”

진여송의 염려어린 대답에 양위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기회가 될 수도 있지. 맹주 선출이 반 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야. 지금쯤 흔들기 시작해야지.”

“연휘의 생각을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파벌 쪽으로 붙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동안의 준비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면서 잔뜩 긴장하는 진여송이다.

“그럴 사람은 아니야...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수많은 기회가 있었을 테니까... 그리 했었다면 운남에 올 이유도 없었겠지”

“그래도 좀 더 지켜보시는 편이”

“깨어나면 전말을 일러주고 다 넘겨버려”

“헉! 어찌...”

놀라며 신음을 뱉어내는 진여송을 무시하고 단호하게 끝을 맺어 버리는 양위다.

“찜을 쪄서 먹든 말아서 먹든 알아서 하라고 해. 젊은 사람이니까 우리처럼 눈치만 살피지는 않겠지”

진여송의 머리에 오백의 무인과 곳곳에 기반을 잡아놓은 사업체들이 떠올랐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기운이 빠졌다.


지난 십년동안 무맹의 눈치를 보면서 남 몰래 만들어 온 준비였다.

무맹과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생각은 전혀 할 수도 없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개별적으로 한 놈씩은 제거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기반이 되어줄 사업체를 만들었고 사람들을 키웠다.

말도 못 할 고생을 했다. 이 일에 참여한 모두가 하루하루의 삶을 살얼음판 위에서 사는 것처럼 불안해하며 견뎌왔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해 온 것을, 아직 제대로 파악도 못한 연휘에게 몽땅 주라는 것이다.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고 간에 사람인 이상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여 남을 먼저 생각할 순 없는 것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양위의 수하였다. 주인이 하라면 해야 하는 것이다.

진여송은 돌아가신 사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사천에 일이 있어 다녀온다던 사부가 다 죽어 가는 상태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힘들어 하며 얘기를 시작한 사부였다.


일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객잔에 들어간 사부였다. 한참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이층에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남의 일에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이어서 그냥 점심을 먹는데 열중할 뿐인 사부였다. 그 때 한 여인이 층계를 구르다시피 하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좀 전에 비명을 지른 여인인 것 같았다.

얼굴이 하얗게 뜬 상태였다. 그녀가 문 앞으로 달려가자 어느새 멀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놈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더니 부들부들 떨고 서 있는 여인의 손을 잡고는 질질 끌면서 층계로 향하는 것이었다.

“말을 잘 들으면 돈도 벌 텐데 왜 이렇게 까탈을 부리나?”

“흑흑, 제발 놔 주세요, 싫다고 했잖아요, 싫다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거예요, 흑흑”

사내에게 끌려가면서 힘겨워하던 그녀가 하는 말이었다.

“네년이 어떤 년인지 몰라도, 조금 있으면 오히려 나한테 달라붙을 거다. 천상의 경험이 어떤 건지 보여 줄 테니까 그때 가서 매달리지나 말거라. 흐흐”

“제발 살려주세요, 흑흑”

“시끄러워! 얌전히 안 따라오면 머리채를 끌고 갈 테다.”

사부는 결국 젊은 놈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기고 여인을 구해냈다. 인상을 쓰는 놈에게 몇 대 더 쥐어박자 두고 보자며 달아나 버렸다.

그 뒤로 사부가 했던 얘기를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던 사부 앞에 한 떼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자신이 당문의 노가주라고 밝히는 노인이, 손자가 당했으니 네놈도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부는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젊은이가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성질을 내더니 달려들었다. 그래서 그와 한 판 벌렸다. 둘의 무위는 비슷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지쳐갔다. 사부가 지친 모습을 보이자, 옆에서 지켜보던 당문의 문도들이 달려들었다. 그때부터 도망쳐야 했다. 뒤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죽기 살기로 도망을 쳤다. 다행스럽게도 사부는 독에 대해서 내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독은 너무 강했다. 돌아 왔을 땐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당문에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아는 진여송 이었다. 이를 갈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무행(比武行)을 시작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검마라는 별호를 얻었다. 양위를 만나고 그의 뜻이 자신의 복수와도 연관이 있음을 알고, 운남지부에서 총관을 맡은 지 벌써 십년이었다.

운남 십대고수라고도 불렸지만 허명일 따름이었다. 자신은 너무도 약했던 것이다. 당문을 상대하려면 힘이 필요했다.

양위와 자신이 공을 들여 준비한 것들은 자신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애송이한테 거저 주라고 했다.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끝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어느덧 비가 그쳐 있었다.

운남지대원들의 숙소를 향하는 진여송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발걸음 뒤에는 한숨만이 남아,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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