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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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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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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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2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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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20)

DUMMY

이사벨 여제는 이지적인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벨린 데 란테는 여제의 얼굴에서 시선을 때지 않았다. 여제가 총사대 제복 차림과 기가막하게 잘 어울린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는 듯이.

그녀가 말했다.

"그대가 그 책을 오로지 학구적이고 순수한 열정에서 쓴 것이라면 그 내용은 사실이겠구나."

다빈치 박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다만 진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악한 자가 있어 이러한 사단이 난 것입니다. 란툰 반도의 마법사로서 약속하지요. 폐하를 대신하여 그 자가 요단강을 건너도록 하겠나이다."

"짐은 그것을 논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 자코모 다 빈치."

이사벨이 재빠르게 말했다.

"짐이 그 정도로 분별력이 없을 성 싶으냐? 그대 같은 대 마법사가 황실의 멸망을 꽤했다면 진작에 짐은 비명횡사 했을 터."

자코모가 긍정의 뜻으로 가볍게 고개숙여 절을 했다. 이사벨이 좌석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기대 턱을 굈다. 여제는 드레스차림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좀 더 자유분방한 포즈를 취해도 위화감이 없었다.

"이사벨 1세께서 정말 성전기사단장과 사랑에 빠졌다면 그녀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몰랐겠구나, 그렇지?"

말을 마친 검은 머리칼의 젊은 여제가 갈색머리 총사를 쳐다보며 눈을 맞췄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매우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기색이었다.

안경을 쓴 자코모는 그 미묘한 상황을 재빨리 읽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염두해두고 공손히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폐하. 일생을 처녀로 사신 이사벨 1세께서도 언젠가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아셨을 테지요. 다만 그녀가 그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게 늦은 뒤였습니다.

"미카엘 발부아를 희생하여 성전기사단의 권력을 흡수한 것을 말이냐?"

"아닙니다. 신하와 사랑을 나눴다는 그 자체입죠"

마법사가 안경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사벨은 잠시 언짢은 듯 눈을 턱을 괸 채 눈을 감았다. 란툰 반도의 대마법사는 새 여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작은 근심거리의 정곡을 찌른 셈이었다.

이사벨이 의자에 기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이 마차는 잠시 후 톨레도로 출발한다." 그녀가 눈을 뜨고 말을 이었다. "짐은 그곳에서 리베라 추기경의 손을 빌어 관을 써야 하지. '크라우네 데 엠페라도'일명 황제의 관이라 하는 것이다. 짐의 아바마마께서 중태에 빠지고 내전이 벌어진 이례 추기경이 보관해오던 것이지. 카디나레 데 엠페라도 (제국 추기경)은 지금 이곳에서 100걸음 떨어진 마차에 있다. 제국 황제의 관이 담긴 보물 상자를 품에 안은 채 톨레도로의 출발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여제의 목소리에서 약간씩 흥분한 기색이 느껴졌다. 이 여행을 통해 그녀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여제를 바라보는 벨린의 표정은 그런 질문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톨레도로의 여행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곳은 세 명이 타기엔 너무 비좁아. 다빈치 박사, 그대가 추기경과 합승하는 게 어떨까? 그대가 추기경과 직접 대화하는 게 여러모로 유익할 테니까. 이 마차가 중간기착지인 산 펠리그니로에 도달하는 대로 그에 따른 고견을 들어야겠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폐하."

다빈치가 밝은 어조로 말했다.

"저는 15년을 교황청에 있었지요. 추기경들이 교황의 권능을 빌어 어떠한 성마법을 부리는지도 잘 압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마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모자를 벗어 여제에게 경의를 표하고 나갔다. 그가 문을 닫자마자 마차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여제는 이 순간을 기다린 듯,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서운 자야." 이사벨이 숨을 돌리며 한마디 했다. "저 자가 적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야."

마차가 조금씩 덜커덕거리기 시작했다. 말발굽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지자 두 남녀는 의자의 팔걸이를 꼭 잡았다.

"벨린 데 란테." 이사벨 여제가 그를 불렀다.

갈색머리 총사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군요, 폐하. 뒤늦게라도 잘못을 아셔서 다행입니다. 뒤늦게 가책을 느끼시지 않아도 되니까요."

"천만에 데 란테."

이사벨이 이지적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짐은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록색 총사대 제복 차림의 이사벨 여제가 몸을 다시금 기울였다. 비좁은 마차 안에서 벨린과 이사벨의 거리는 불과 50센티 남짓. 무릎이 아슬하게 닿을 거리였다. 이사벨은 그 거리를 십분 활용하여, 시무룩한 얼굴을 한 벨린 데 란테의 얼굴에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과감하게 입을 맞추어 벨린 데 란테가 저절로 고개를 돌리도록 했다.

갈색머리 총사는 눈을 감고 여제의 혀를 맞이했다. 언제처럼 그녀의 혀는 짠맛이 났다. 다만 총사대 제복을 입은 그녀가 모든 행동을 대담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좀 더 새로운 느낌이 나고 있었다.

1분여간의 긴 키스를 마친 두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사벨은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그녀에게서는 평소같은 꾸민듯한 느낌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벨린은 표정이 단단히 굳어 있었다. 그는 예의 쾌락의 문턱에서 짓고는 하던 사악한 웃음도 보이지 않았다.

총사대 대위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여제가 그의 뺨을 스치듯 어루만졌다.

"짐은 너를 헌신짝하듯 버리지 않을 거야. 너와 사랑에 빠졌다는 죄책감 때문에 너를 내치지는 않을 거야. 톨레도에서 대관식을 마치고 아스티아노로 금의환향하면 네게 기사작위와 황실 사냥군이라는 직위를 내리마. 그러면 우리는 산티에라의 은밀한 황실 사냥터 숲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벨린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음울하고 침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감돌았다.

이사벨이 자리에서 일어나 벨린의 곁에 가 앉았다. 그리고는 쓰러질 듯이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여제가 작게 속삭였다.

"짐은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다. 단 한시간만이라도 도피하고 싶어. 쾌락을 탐하는 게 그렇게 죄가 된다더냐? 주스티안 데 모리체가 당장 성전기사단의 악령 10만명을 끌고온다 해도 상관없어."

"이곳에서요, 폐하?"

벨린이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놀란 척 말했다. "정말 여장부다우시군요. 하지만 저를 설득하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가뜩이나 폐하의 그 복장 때문에 소싯적에 사귀었던 옛 연인이 생각나는데다..."

옛 연인이라는 말에 이사벨이 흠칫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벨린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와 다시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녀는 아마 폐하를 죽이려 들 테고, 저는 그것을 막아야 하지요. 그러니 지금 제게 폐하는 사랑을 나누기보다는 목숨걸고 지켜야하는 대상밖에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자 이사벨은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가 몸을 돌려 다시금 벨린과 마주보고 앉았다. 둘의 시선이 다시 평행을 이뤘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못하겠다만, 데 란테."

여제가 긴 검은머리칼은 묶은 리본을 풀었다. 허리까지 닫는 긴 머리칼이 자연스레 찰랑거리며 의자바닥까지 미끄러저내렸다.

그녀가 손으로 풀어헤친 머리를 쓸어내리며 한마디 했다.

"너는 짐이 지금 여제로 보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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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고민한 장면 들어갑니다...

암튼 리플이 많이 달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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