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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퀘이사T
작품등록일 :
2012.03.25 01:28
최근연재일 :
2012.03.25 01:2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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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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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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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화. 그 희비에...

DUMMY

헛된 시간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풀어주기만 하는 것 같은 스승이었는데, 이렇게 늘어난 실력이란 걸 몸으로 체험하니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표정에 기쁘면서도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저렇게 뿌듯해 보이는 표정이라니,

그녀-세리에 폰 에쉬에일은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은 경기였어요.”

그 산뜻함 마저 담겨있는 표정에 나도 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솔직히 기쁘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한테 산뜻하게 깨진건 상당히 불만이었거든.

루리안은 뭐냐고?

...그쪽은 좀 예외고.

약간 배어나온 땀에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싱그러워 보였고 붉게 상기된 뺨은....

아, 안되겠다. 이건 상사병 중증의 묘사잖아!

“저도 마찬가집니다.”

“정말 많이 느셨군요.”

“좋은 스승을 만났죠.”

“스승이요?”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베럴가, 에쉬에일가를 막론하고 무가로서 명성을 떨친 가문들은 제각기 자부심이 깃들어있는 가전검술을 익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스승이라고 해봐야 연장자인 형제나, 아니면 아버지 정도지, 따로 스승을 두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네, 멋진 분이시죠. 제가 아는 여성분들 중 최강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분.”

여러모로 말이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요.”

“네?”

나는 순간 당황했다가, 여자 검사라면 드물다면 드무니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기사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이상은 워낙 낮 뜨거워서 들어도 못들은 척 했다. 눈앞에 있는 남자, 화려한 금색 수실이 수놓아진 털 코트에 파묻힌 남자는 나에게 축사를 읊었다. 그 중에는 전년도 우승자를 이겼다는 치하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추가한 티가 팍팍 나는 게, 분명 다른 사람이 덧붙였을 게 뻔하다.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나름대로의 관록이 풍겨 나오는 얼굴, 깊어진 주름, 총기를 잃어가는 눈동자. 그는 반강제적으로 충성을 맹세당한 이 왕국의 왕이었다.

“따라서 짐은 리카세인 베럴에게 남작의 위를 하사하며, 이는 자손 대대로 이어질 것임을 명시한다.”

덤으로 기사작위까지 얻었다. 하지만 살짝 미안한 게, 나는 어차피 자작의 작위를 물려받게 되어 있다. 즉, 작위를 그것도 한단계 낮은 작위를 일찍 받았다는 것. 그 것 의외에는 특별히 이득이 없는 것이다.


역시나 성대하게 베풀어진 연회.

이전에도 그다지 맘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납득은 했었다. 나라의 품격과 힘이 타국의 사람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화려하고 복잡한 양식으로 연회를 꾸민다. 하지만, 이제는 개뿔이. 그런 품격에 신경 쓸 바에는 차라리 하수도 공사나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른 국가, 이를테면 바로 이웃의 쿠모스 왕국만 봐도, 하층민들의 삶부터가 다르다.

“어디 아프신가요?”조심스래 고개를 갸웃하는 아가씨.

“아니요.”

도대체 이 사람 왜 이렇게 안 떨어지는 거야!

울고 싶어졌다. 솔직히, 이런 미인이, 그것도 나와 취향이 비슷한(심지어 좋아하는 술 종류나 작가까지도!)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북부의 맹장이라고 칭해지는 아버지라도, 중앙의 정계와는 거리가 있는 분. 중요한 직책을 맡은 데다가, 여러 번 공도 세운 사람의 작위가 자작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런 가문의 내가 3대 공작가 중 하나인 에쉬에일가의 최연소 기사가 나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우정인가 싶어도,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크악!

어쨌든 난 도저히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이라는 거.

이렇게 된 거 그냥 즐기자. 다른 얘기가 뭐가 필요하겠는가.

“레이디 세리에, 타국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냥 리에라고 불러주세요. 아니요.”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저도 세인이라고 불러주시길. 이 나라는 정체되어 있습니다.”

“역사서를 뒤집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나는 화들짝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운 턱, 그리고 그 위에 연하게 빛나는 입술이 부드러운 초승달을 그리고 있었다.

“저도 그건 싫어요.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죠.”

“네?”

네 반문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작가의 여자라도, 어차피 미래는 정해져 있으니까요. 공적인 직위에 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하니까, 유일하게 찾은 게 황실근위기사단장이라는 직위였어요, 그 건 성별의 구분이 없었으니까요. 마침 검도 좋아했고, 아무리 아버지래도 딸이 권력의 핵심이 되면 반길 게 뻔하잖아요.”

푸념삼아 늘어놓던 그녀는 입가를 가리며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너무 사적인 얘기를 했나요.”

“아니요.”

아, 나 이러면 안되는데...

반할 것 같다.



더 이상 붙어다녀봤자, 나만 곤란스러워질 게 뻔했다. 어제 연회도 나를 노려보는 수컷들의 눈길에 음식이 목구멍에 걸리는 줄 알았다.

체했냐고? 아니, 전혀. 미인의 얼굴만봐도 정화된다. 그런건.

“으!”

기지개를 펴자 짜릿한 기운이 팔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럼 가볼까.”

이제 수도의 볼일도 끝났다. 영지로 돌아가서 좀 쉰 다음에 앞으로 뭘 할 건지 결정해야지. 지금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굳이 빨리 달려갈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느긋하게 도보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젠 여행에 완전히 익숙해진 몸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해가지는 걸 기가막히게 알아챈 몸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정작 나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공작가의 아가씨라.”

못먹는 감은 찔러나 본다고 했던가. 하지만 난 찔러볼 생각이 없다.

모포를 피고 스프가 끓여지기를 기다리다, 주변에서 인기척이 났다.

“응? 어떤 분이신지는 몰라도 불이 필요하면 오세요. 음식도 좀 남을 것 같은데.”

역시 밥은 같이 먹어야 맛있는 것이다.

“너무해요.”

윽?!

눈 앞에 보이는 건, 온통 먼지 범벅에 땀범벅이 된 소녀였다. 말을 타고 온 건지, 옆의 말은 거친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리에?”

“간다면 가다는 말도 못해주나요?”

“에, 그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상처받은듯한 얼굴에 나는 대역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음. 실례라는 걸 전제하고 말씀드리면, 리에가 그럴 맘이 없다고 하셔도, 저와 같이 있으면 좋아하지 않을 분들이 많아서요. 아직 이 나라엔 남녀간의 우정이라는 걸 받아들이기에는 고리타분한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하하핫.”

아 젠장.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내가 속으로 자괴감에 발광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음, 리에?”

그리고 난 세상이 하얘지는 걸 느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기분 좋은 향기. 타닥타닥 불을 튀기는 장작불....

“나, 난...”

잘 익은 과일 같이 붉어진 얼굴. 그녀는 고개를 푹숙이고 양쪽의 검지 손가락을 부딪쳤다.

내 정신아, 내 영혼아, 이 죄많은 육신으로 돌아오거라!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그러니까 이건.”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 둘을 때리고 싶었을 정도로 우리는 말을 더듬었다.

“전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요.”

이 무슨 바보같은 대사인가. 돌에 머리를 들이박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상관없어요.”

아버지!

“그, 저랑 겨,겨,결혼하면 리에의 꿈을 못 이룰지도 모르는데요?”

“상관없어요.”

어머니! 소자를 굽어 살피소서!

“평생 전쟁터를 전전해야 될지도 모르는데요?”

“곁에 있을게요.”

루리안!

아니 이사람은.... 왜?

독감에라도 걸린듯 열이나고 땀이 치솟아서 나는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제 꿈은, 제가 이뤄내면 되요. 상황이 어떻든 간에 만들어내면 되는 거에요. 그리고 그런 꿈 말고도, 어머니가 되고 싶은걸요.... 그런데 세인은? 세인은 제가, 제가 좋나요?”

이거 싫다고 하면 역적이다.

나는 후들거리는 몸을 움직여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물론이죠.”


내 인생에 이게 무슨일인지, 평생 여자에게 고백한 번 못 받아봤는데, 물론, 내 또래가 없는데다가 성비 불균형이 심각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난 내 스스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스라이 뻗어오는 서광에, 잠든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될 데로 되라지..”

서둘러 달려오느라고, 기사단의 실내복을 입고 달려왔는지, 리에의 옷은 이런 날씨엔 추워보였다. 모포가 한 장 밖에 없어서 그걸 주긴 했지만, 역시나 몸을 웅크리고 있다. 난 외투를 풀어서 그녀에게 입혀주고 아침밥을 준비했다.

사실상 어제는 저녁을 먹을 수 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데우기만 하면 됐다.

“으으응.”

잠시 신음을 흘리더니, 그녀는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여.”

나는 한 손을 들어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리에의 멍한 표정은 제자리를 찾다가, 나를 보고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가, 내가 밥을 하고 있자, 부리나케 달려왔다.

흠 표정만봐도 재밌다.

“제, 제가 할게요!”

“응? 아니 뭘, 데우기만 하면 되는데요, 조금 더 자요.”‘

“아, 아뇨! 여자가 있는데.”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 그렇지 우리의 국적은 파일로스 왕국. 남성우월주위가 팽배한 국가. 그리고 끊임없이 그런 사상을 주입받았을 게 뻔한 세리에.

난 여기서 내가 해야한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맡겨야 할지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

행복한 고민이죠. 음, 세인놈 완전히 신혼이네요. 신혼. 전 로맨스 기술은 전무해서요, 밀고 당기는 것 따윈 몰라요. 한눈에 팍. 이게 제 글의 연애랍니다.ㅠㅠ;;

즐겁게 두드리다 보니 너무 많이 써버린 듯(응?)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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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화. 그 평온한 공간에... +2 10.06.05 1,370 10 8쪽
10 3화. 그 평온한 공간에... +4 10.05.29 1,245 10 7쪽
9 3화. 그 평온한 공간에... +2 10.05.23 1,470 10 8쪽
8 2화. 그 여행 +2 10.05.22 1,479 12 9쪽
7 2화. 그 여행 +1 10.05.16 1,512 13 7쪽
6 2화. 그 여행 10.05.15 1,615 9 6쪽
5 2화. 그 여행 +2 10.05.09 1,808 10 8쪽
4 1화. 그 만남 +4 10.05.08 1,940 12 9쪽
3 1화. 그 만남 +4 10.05.07 2,155 13 6쪽
2 1화. 그 만남 +3 10.05.07 2,388 11 8쪽
1 1화. 그 만남 +3 10.05.06 4,122 1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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