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박스 크랙이 쏘아올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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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바리
그림/삽화
샘바리
작품등록일 :
2021.05.19 23:46
최근연재일 :
2021.06.20 23:41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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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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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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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파비오 칸나바로 (1)

DUMMY

U리그 숭강대전은 완벽한 터닝포인트였다. 축구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평소 땜빵으로 몇번 뛰어본 왼쪽 윙백에서 인생 경기를 펼치다니. 고등학교 다닐 때도 호종이의 환상적인 개인기와 골결정력 덕분에 어시스트는 한 두번 해봤지만, 골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냥 열심히 뛰다 보니깐 쫓아가고, 뭐, 공간 보이는 곳으로 세게.. 어. 패스. 아니 차려다 보니깐 운 좋게 잘 맞았던 것 같.. 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마치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울음이 터져버려, 어떻게 인터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형식적으로 경기 끝나고 하는 대학생 리포터의 어리숙한 인터뷰를 찾아보지 않으니 걱정 없었다. 물론 엄청난 궤적의 UFO 슈팅은 이야기가 달랐다. 골 장면이 SNS로 퍼지면서 순식간에 조회수가 폭발했고, 나는 일약 스타가 됐다.


“와···. 쩐다! 공이 상식적으로 이렇게 휘는 게 말이 되냐?”

“정훈이 보면 훈련 열심히 해야겠다니깐. 봐봐 확실히 달라지잖아. 괜히 그런 괴물 같은 프리킥 나온 게 아니라니깐.”

“말만 맨날 무슨. 롤하러 PC방 가기 바쁘면서”.

“아니, 하면 하지 또. 아무튼 맨날 야간 훈련하더니, 프리킥을 대체 얼마나 찬 거야?”


순식간에 SNS 스타가 된 나는 축구부에서도 단숨에 스타가 됐다. 그러나 나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왼발의 묵직한 그 마법 같은 감각이 이제는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날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죽어라 크로스를 올려보고, 일부러 잔디로 넘어져 보기도 했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냥 잠깐 찾아온 행운 같은 건가? 하긴, 게임에서도 스페셜 카드는 횟수 제한도 있고.. 나라고 평생 그렇게 뛸 수 있으면 국가대표 되는거지. 하. 내 인생.’


순식각에 밀려온 좌절감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이왕 나온 야간 훈련을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리프팅이나 100개를 채우고 돌아가려는 순간!


빠빠빰! 펑! 펑!


다시 찾아왔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폭죽이 터지며 누군가 웃으며 걸어들어왔다.


‘됐어! 그때 그 폭죽 소리다! 다시 기회가 온거야!’


처음 카를로스를 만날 때처럼 놀라지 않고 반가울 뿐이었다. 다시 악마의 왼발을 뽐내면서 적토마처럼 공격에 가담할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어? 같은 빡빡인데.. 조금 더 큰데?’


170cm는 넘어보이는 역시 다부진 체격의 대머리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설레는마음으로 인사를 나누는데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파비오 칸나바로(Fabio Cannavaro)


이탈리아의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자 수비수로 세계 최고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한 레전드. 특히 월드컵 전경기 풀타임 출장에 경고 하나 없는 완벽한 수비를 선보였다. 클럽에서도 나폴리, 파르마, 인터밀란, 유벤투스로 세리에A를 평정하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통곡의 벽으로 활약했다.


파워풀한 수비로 유명한 센터백으로 정확한 클리어링과 끈질긴 대인마킹으로 스트라이커를 꽁꽁 묶었다. 센터백치곤 작은 키인 176cm였지만 놀라운 점프력으로 장신 공격수도 두렵지 않던 레전드가 눈 앞에 서있었다.


‘공은 내 앞에서 멈춘다.’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소심한 내게 칸나바로의 기운이 온 몸에 전해지자 자신감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카를로스에 이어 칸나바로라니. 키가 작아도 상관없어. 발도 빠르고, 제공권도 좋은데 U리그를 씹어 먹고도 남을 거야!’


내 몸이 칸나바로의 100% 기량을 다 쓰지 못하더라도, 이정도 실력이라면 대학 무대에선 적수가 없을 거라 자신했다. 게다가 다재다능한 풀백 현빈 선배가 부상에서 돌아오고, 피지컬이 좋은 동찬이까지 함께 수비하면 무실점은 보장된 시나리오였다.


적어도 대학무대에서는.


하지만 우리의 다음 경기는 FA컵 32강전. 상대는 K3리그 최강팀 의정부FC였다. 비슷한 또래의 대학교 팀을 상대로는 우리는 언제나 점유율을 높이고 압도하는 경기였지만, 프로는 이야기가 달랐다.


###


“오늘은 스리백이다. 3-5-2로 서서 양 사이드도 최대한 안전하게 풀어나가자. 상대방 패스 짧게 주고 받으면서 전진해오는 거 알지? 무리해서 발 뻗지 말고, 지키면서 조심스럽게. 알겠지?”


하 코치님은 오늘따라 선수 개개인에게 다양한 주문을 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묵묵히 작전판 앞을 오가는 감독님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작전판 돌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계속 고민하고 계셨다.


“호종이는 오늘은 후반에 들어갈 준비하고. 만약.. 전반에 확 밀리면 그냥 쉬는 거다.”


‘나름 토너먼트 단판이라 호종이도 준비시키는구나. 하긴 1골차든, 승부차기든 이기기만 하면 16강이니깐 중요한 경기지.’


“자 선발 명단 부른다. 키퍼 정병근, 백동찬, 최현빈, 권정훈···..”


권정훈?


‘됐다! 드디어 선발이야! 그것도 프로팀이랑 뛰는 경긴데. 이건 버리는 경기가 아니잖아 라인업 보더라도.’


지난 U리그 숭강대전에 맹활약덕분인지 감독님은 주전 현빈 선배가 돌아왔지만, 나를 과감하게 센터백에 세웠다.


“정훈아, 중앙 수비도 본 적 있지? 지난 경기처럼 공 뿌려주고, 빠르게 커팅하고. 잘할 거라 믿는다. 대신 유병주는 어떻게든 막아야한다. 그거 하라고 넣은거야 알겠지?”


유병주. K리그1 신인왕 출신으로 동유럽 리그까지 진출했던 파이터형 스트라이커가 내 맨마킹 상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K3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였지만, 군복무때문에 의정부FC에서 뛰고 있었다.


‘분명 클래스가 다른 스트라이커다. 일단 몸으로 밀고 들어오고, 뒷공간 침투를 즐겨하지만 드리블도 잘하는데.. 과연 막을 수 있을까?’


“막을 수 있어! 걱정하지마.”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현빈 선배가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백동찬이랑 고등학교 때도 많이 맞춰봤을 거 아니야?”


아니다. 내가 센터백을 본 건 주전 센터백 동찬이가 다쳤을 때, 동찬이가 퇴장당했을 때 뿐이었다.


“정훈아, 헤딩이나 몸싸움은 어떻게 버텨볼테니깐 뒷공간만 잘 막아줘.”


우직하고 묵묵히 제 할일을 하는 동찬이는 호종이 끼워팔기 멤버가 아니었다. 당당히 실력으로 현제대에 입학했고, 1학년인데도 주전으로 뛰고 있다. 그래도 듬직한 짝꿍이 센터백으로 나와서 그렇게 떨리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지금 칸나바로니깐 걱정 없···다고는 못하겠다.


장내 아나운서까지 있는 으리으리한 그라운드에서 프로와의 공식 경기는 처음이니깐.


“안녕하십까, 의정부 스타디움을 찾아주신 여러분! 오늘 FA컵 32강 상대 현제대. U리그 강호긴 하지만, 아직 대학생일 뿐이죠. 리그 7경기 9골, 지난 경기 해트트릭을 기록한 유병주의 골 폭풍을 충분히 기대할만 합니다. 초특급 유망주 이호종은 벤치에서 시작하네요. 걸어 잠그고 버티다 한방을 노리는 걸까요?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 시작합니다!”


삐이익!


경기 시작과 동시에 천천히 유병주가 내 앞쪽으로 다가왔다. 188cm에 다부진 동찬이가 아니라 내쪽을 공략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4-5-1의 의정부FC는 압도적인 스트라이커 유병주에게 화력을 집중하고, 중원에서 짧은 패스로 상대 균열을 엿보는 타입이었다. 측면 공격에서도 높은 크로스보다는 얼리 크로스로 발이 빠른 유병주의 침투를 노리곤 했다.


‘충분히 비디오 분석으로 예상했던 전술이다. 침착하게 뒷공간만 내주지 말고.. 언제 돌아서 뛰어들어갈지 모르니깐.’


하프라인 근처에서 침착하게 공을 돌리던 의정부FC는 템포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측면 윙어들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서 11명 모두가 라인을 끌어올렸다.


“자기 마크 챙겨! 정훈아! 유병주 잡아! 동찬아 올라온다!”


현빈 선배가 열심히 콜을 하며 수비진을 다독였지만, 갑작스런 공격에 순간 움츠러들었다.


예상밖이었다. 침투가 아니라 측면을 향한 날카로운 전진패스가 연결됐고, 단숨에 높은 크로스가 유병주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175cm와 184cm의 헤딩 경합은 누가 봐도 노련한 유병주의 압승이었기 때문에 제공권 싸움을 붙인 것이었다.


벌써 어깨를 들이밀고 자리를 잡은 유병주의 몸은 강철같았다. 미처 점프를 뛰기도 전에 타이밍을 빼앗겼고, 뒤늦게 뛰어보려 했지만 공은 빠르게 넘어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칸나바로의 능력치를 고스란히 전해 받았지만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해서인지 균형을 잃고 쓰러진 나의 몸뚱아리였다.


“아 유병주! 몸싸움을 이겨내고 아예 가슴 트래핑으로 공을 잡았어요! 대단한 힘입니다! 지금 위치면 헤딩보다는 전매특허인 강력한 오른발 슈팅이 확률이 높거든요. 경기 시작과 동시에 쉽게쉽게 가나요!”


쓰러진 나를 지나 오른발로 공을 툭 치고 그대로 강한 슈팅을 때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현빈 선배와 동찬이가 급하게 커버를 뛰어오고 있었지만, 태클을 해도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결국 골키퍼의 슈퍼세이브를 기대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나는 발을 뻗었다.


넘어진 와중에 빠르게 몸을 뒤집어 고민할 겨를도 없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뻑!!


“악!!!!!!”

“레프리!!! 퇴장!! 백태클이잖아!”


유병주의 강력한 오른발은 공이 아닌 내 발등을 차버렸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둘다 뒹굴었다. 부상 위험으로 공은 경기장 밖으로 내보냈지만, 상대 선수들은 거칠게 퇴장이라며 소리쳤다.


“아니, 뒤에서 발목 보고 들어 왔잖아!”

“어린 새끼가 이거 완전 일부러.”


동찬이는 쓰러진 나를 막아서며 지켜주었고, 흥분한 상대들을 차례로 밀어냈다.


‘뭐지? 벌써 퇴장인가? 경기 시작하자마자 무리하게 태클을 해가지고. 아 어쩌지. 완전 민폐인데?’


“나이스 태클. 완벽한데? 심판이 잘 본거야 저건.”


험악해진 호종이는 벤치에서 과열된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봐봐 넘어진 상태에서 빠르게 일어나는 순발력, 그리고 누가봐도 무서운 유병주 슈팅 타이밍에 절묘하게 발을 집어넣어서 공만 먼저 건드리는 과감함. 저건 진짜 엄청난 감각 아니면 힘들걸?”


심판은 단호하게 반칙이 아니라 골라인 아웃을 선언했다.


“야 그만해, 반칙 아니야. 내가 슈팅 타이밍 늦었어.”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는지, 유병주는 툭툭 털고 일어난 동료들에게 복귀하라고 말했다.


‘내가.. K리그1 신인왕 유병주와 일대일 싸움에서 이긴건가? 분명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이었는데 절묘하게 태클이 성공했다니. 이게 칸나바로의 아크로바틱한 수비인가봐!’


FA컵 32강전은 나의 환상적인 태클로 초반부터 뜨겁게 달아올랐고 나는 한층 자신감이 생겼다.


“동찬아, 조금 더 라인 올려! 뒤에 한명 뛴다!”


침착하게 라인을 조율하며 전진 패스는 정확한 태클과 앞서 튀어나가 커팅을 하며 상대 공격을 차단했다. 유병주에 비해 다른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의 움직임은 어느정도 예측이 다 될 정도였다. 2대1 패스, 드리블, 페인팅. 상대의 움직임에 속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며 강하게 몸싸움을 걸었고, 프로 선수들 역시 쩔쩔 맸다.


‘뛰어 나가야 할 타이밍, 물러서야 할 상황. 나만 보이는 게 아니라 동료들의 움직임과 라인까지 다 챙길 수 있다. 분명 이길 수 있어. 예전엔 생각만 하던 플레이들이 몸이 반응하고 있어.’


“아 현제대 권정훈 대단한데요? 작은 키인데 엄청난 투지와 집중력으로 의정부FC를 꽁꽁 묶고 있어요. 유병주도 아까 충돌 이후에 딱히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데요? 해설위원님이 보시기에 경기 흐름 어떤가요?”


“점유율이나 공격 숫자를 보면 압도적으로 의정부FC가 우위거든요. 하지만 최종 수비수에서 모두 걷어내버리니 어찌할 방법이 없는 거에요. 1대1 마킹에서 어마어마한 장점을 보여주고 있네요. 처음 보는 선수인데 탄력과 스피드, 클리어링 능력이 대단합니다! 전반이 다 끝나가는데 0대0이면 사실상 의정부FC가 말린 거죠.”


칭찬과 함성 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나를 속이려는 상대방 헛다리에 속지 않으려 집중하고, 정확히 가랑이 사이로 발을 집어넣어 공만 빼냈다. 그리고 곧장 길게 공을 뿌려주며 1골만 터지기를 빌었다.


“호종아, 몸 풀어라”

그리고 드디어 호종이가 벤치에서 웜업을 시작한 게 보였다. 1골만 넣어줄 에이스가 드디어 움직였다.


작가의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추천은..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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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베르토 카를로스 (1) 21.05.20 922 27 9쪽
1 프롤로그 +2 21.05.19 1,075 43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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