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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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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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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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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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드디어 명운(命運)이 걸린 전쟁의 날이 밝았다.


오늘 전투에 참여하는 무사들은 동트기 전에 미리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전신에 완전 무장(武裝)을 한 뒤에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목책 앞으로 드넓게 구축된 진지에는 긴장감(緊張感)이 감돌았고, 모여드는 무사들은 하나씩 소속된 곳을 찾아 자리를 지킨다.


멀리 탁녹대평원 쪽에서 하늘이 점차 동녘을 붉게 물들이며 아침노을로 가득 차더니, 태양이 엷은 안개가 서린 벌판을 밝게 비추며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늘 이 전장에서 수많은 생명이 생사가 엇갈리건만 대자연은 전과 다름없이 그저 무심하였다.


나비와 벌떼, 새들은 잠에서 깨어나 먹이를 찾아 나서는데 문명을 이뤘다는 종족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한 아귀다툼이라니······.


한울도 이미 전장에 도착하여 높은 나무 끝을 밟고 서서 적진을 바라보는데,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흔들려도 그 위에 선 한울의 몸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운 것일까?


오늘의 전투 지휘는 구자룬 총대장이 맡아서 하겠지만, 위기(危機)의 순간이 오면 나서기 위해서 한울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마음 깊이 그럴 일이 없기를 기원하지만······.


저 멀리 수백 장 너머에 수많은 반인족의 주둔지가 보이고, 그들도 부산하게 진세를 갖추고 있는 중이었다.


대추장 울트가 주변을 돌며 성격과는 다르게 전투태세를 꼼꼼히 점검하였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동안 싸인 울분을 한 방에 터트려 적진을 무자비하게 휩쓸고 싶었다. 그러나 대군을 잘못 움직이면 많은 부하를 잃는다는 것을 수많은 전투에서 경험한 탓으로 경거망동을 삼가는 것이다.


앞쪽에는 천인족 기마대의 돌진을 막기 위하여 군데군데 함정(陷穽)을 파고, 끝을 뾰족하게 깎은 통나무를 사선으로 빗대어 세웠다.


그 앞으로는 코끼리를 닮은 거대한 짐승들 오백여 마리가 늘어섰다.


반인족이 식량으로 쓰려고 끌고 온 시원맘모스다. 이제 용도가 바뀌어 기마대(騎馬隊)를 막기 위해 방패막이로 앞세운 것.


몸통 두께가 여섯 자(1.8m)에 길이는 스무 자(6m) 정도인데 온몸에 회색빛 긴 털이 북슬북슬하게 자랐다.


일곱 자(2.1m)에 이르는 긴 상아를 주억거리며 자기네끼리 몸싸움을 하는데, 등에는 목책을 만들어 전사가 두 사람씩 타고 있었다.


활과 창 등으로 무장한 모습을 보니 천인족의 기마대와 싸울 모양이고······.



천사장이 가볍게 발을 굴러 한울이 서 있는 나무 위로 뛰어 올랐다.


옆에 나란히 서서 군데군데 군집을 이룬 활엽수로 일부 시야가 가린 들판을 바라보며 함께 적진을 살핀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반인족 진영에 다녀오겠습니다. 적장(敵將)을 설득하여 최대한 화해를 할 수 있도록 설득을 해 보지요.”


“쉽지 않은 일인 줄 알고 있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가능하면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요.”


신선처럼 백발과 백염을 흩날리며 뒷짐을 지고 땅으로 내려선 천사장이,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몸을 다시 한 번 추스르며 조용한 걸음으로 적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가만가만 걷는 듯한데 이슬을 머금은 풀잎은 흔들림이 없었고, 순식간에 수십 장을 지나니 어느덧 반인족 진영에 가까이 다가섰다.


걸어오는 천사장을 발견한 반인족 전사들이 바짝 긴장했다.


“적이다!”


커다란 함성과 함께 신호를 보낸다.


뿌우~ 뿌우~ 뿌우~


뿔고동 급하게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반인족 전사들이 앞을 살피니 나이 든 노인 한 사람이 가만히 걸어오고 있는데, 손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으니 높아진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창을 든 수십 명의 병사가 우르르 튀어나와서 천사장(天司長) 주변을 에워싸고 물었다.


“너는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나는 천인족의 천사장이다. 너희들의 수장(首長) 만나러 왔다.”


“이 노인이 뭐라고 떠드는 거야?”


[난 네 말을 들을 수 있다. 신통으로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읽을 수 있고, 또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네 머리에 전할 수 있으니 편히 말하라.]


천사장이 가만히 앞에 있는 병사의 눈을 바라보며 선어(仙語)로 얘기했다.


“어어어~ 말이 어떻게 머리로 들리지? 아참! 다 들린다고 하니까 반말을 하면 안 되겠네. 아니, 적진에서 온 것 같은데 그래서 왜 왔소?”


[그대들의 수장을 만나러 왔으니 그렇게 전해 다오.]


“우리 울트 대추장님을 만나신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겁도 없이 빈몸으로 혼자 왔소?”


[사자(使者)는 원래 무기가 없지. 내 걱정은 말고 어서 전하기나 해 다오.]


“그럼 여기서 잠시 기다리쇼.”


대화를 나눈 전사가 주변을 둘러싼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래도 이 중에서는 제일 고참인 모양이다.


“이 노인이 천인족의 사자라고 하는데 우리 대추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한다. 내가 얼른 갔다 올 테니까 다른 데로 못 가게 지키고 있어라. 알았제?”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리며 뛰어갔다.


“다 늙어서 이제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남?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벼.”


비릿한 미소가 비웃음이 틀림없다.



대추장 울트는 전투태세(戰鬪態勢)를 둘러보다가 뿔고동 소리에 놀라서 이미 근처까지 와 있었다.


범상치 않은 노인이 왔는데 병사가 얘기를 하다가 뛰어오는 것을 보고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 했다.


근처에 있는 막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무슨 일인지 묻고 있는데, 근처에 있던 추장들도 궁금한지 뒤를 따라서 들어왔다.


“그래, 무슨 일이냐? 말도 안 통할 텐데 노인이랑 무슨 얘기를 했어?”


“예, 대추장님. 그것이 요상합니다. 말은 안 하는데 머릿속으로 말이 들려옵니다.”


“그게 무슨 자는데 봉창을 두들기는 소리야?”


“정말입니다. 희한하게 머릿속으로 말이 막 들려옵니다요.”


“그래서 뭐라고 하는데?”


“우리들의 수장을, 즉 대추장님을 뵈러 왔다고 헙니다.”


“왜 나를 만나러 왔는데?”


“그것은 얘기를 안하던디요.”


“알았다. 나가서 지키고 있어.”


“예! 알것습니다.”


병사가 나가자 울트가 주위의 추장들을 둘러보며 의견을 물었다.


“아무래도 적의 사신으로 온 것 같은데 만나 봐야 할까?”


“아니, 그럼 지금 와서 화해라도 하시려고요? 그냥 죽여 버리죠.”


“여기까지 대군(大軍)이 왔는데 그럴 순 없지. 죽은 내 부하가 몇인데. 그래도 뒷일이 어찌될지 모르니 사신은 함부로 죽이는 게 아니다.”


“좋은 수가 있습니다. 적은 사신이 갔으니 우선 돌아오기를 기다릴 텐데, 대추장님께서는 여기서 사신하고 협상(協商)을 하시는 척하고 계십시오.


그 사이에 저희가 복수를 좀 해야겠습니다. 이참에 아예 한 절반쯤 죽여 놓죠. 협상은 복수를 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좋지. 어차피 오늘 하루는 힘을 저울질하는 탐색전이다. 그럼 사신을 저 뒤쪽에 있는 내 막사로 불러라.


사신이 막사로 들어서면 너희는 바로 공격한다. 적군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용히 달려가서 들이치는 거야. 알았지? 한 방 제대로 먹여야지. 통쾌하게.”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추장들이 나가고 대추장 울트는 일부러 사신에게 잘 보이지 않는 뒤쪽의 자기 막사로 가면서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천사장은 잠시 기다리다가 달려온 병사를 따라서 대추장을 만나러 갔다.


막사는 제법 뒤쪽의 중앙에 있었고, 주변에는 작은 막사들이 둘러서 있어서 그 안에 호위들이 들어가 있는 듯했다.


가림막을 옆으로 젖히며 안으로 들어가니 가운데에 둥근 탁자가 있고, 대추장 울트가 큰 의자에 앉아서 들어오는 천사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서 오시오. 내가 여기의 수장인 대추장 울트라고 하오.”


[나는 천인족의 천사장을 맡고 있는 돈문입니다.]


“어쨌든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좀더 좋은 상황에서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아니 가만, 정말로 우리말로 얘기를 하시는군요?”


[이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 그래도 놀라운 재주를 지니셨군요. 보통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오면서 보니까 밖에 커다란 짐승들이 있던데······.]


“그것은 식량이 떨어지면 잡아먹으려고 끌고 온 시원맘모스라는 동물이지요. 처음 보셨나 봅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생각보다 순탄한 대화(對話)가 오가며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밖에서는 이와 다르게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반인족 추장 둘이 시원맘모스로 공격할 준비를 마치고 오백 마리에 두 명씩 천 명, 옆에서 몰이꾼 겸 맘모스 보호군으로 오천 명을 동원하여, 천사장이 천막 안으로 사라진 시점에 막 공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불시(不時)에 덮치려고 뿔고동도 불지 아니하고 나무의 그늘을 이용하여 천인족 진영으로 접근했다.


천인족은 천사장이 적진에 사신으로 갔기 때문에 설마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뒤늦게야 적의 꼼수를 알아차렸다.


두웅~ 둥~둥~둥~


전고(戰鼓 전장에서 사용하는 북) 소리가 드높이 울려 퍼지자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었지만, 이미 거대한 짐승 떼가 백 장(300m)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접근이 발각당하자 일곱 자(2.1m)에 가까운 상아를 흔들며 회색 털로 뒤덮인 짐승 떼가 달리기 시작했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며 땅이 쿵쿵 울린다.


“전원 전투를 준비하라!”


“기마 1대는 선봉에 서서 우선 짐승 떼를 저지하라!”


“기마 1대는 돌격 앞으로!”


급히 기마대에 돌격 명령이 떨어졌다.


“와!”


함성과 함께 기마대 천 기(千騎)가 병장기를 높이 쳐들고 뛰쳐나가니 사방이 순식간에 긴장과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푸르르르~ 히히힝!”


두두두두두두두!!


일순간에 분위기가 바뀌었고 사나운 살기가 전장을 휘몰아친다.


앞에서 몰려오던 짐승 떼와 뛰쳐나간 기마대 천 기(千騎)가 중간에서 충돌했다.


기마대는 일단 멈추면 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대로 치고 나가는데···, 그때 다시 명령이 떨어졌다.


“기마 2대 돌격 앞으로!”


“와!”


두두두두두두두!!


기마 2대마저 함성과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앞으로 뛰쳐나가서 짐승과 적군들을 사정없이 베어 버렸다.


“끄아아아악!”


“우우우워~”


순식간에 여기저기 핏물이 낭자하게 흐르며 짐승과 사람의 시체가 즐비하게 널리기 시작했다. 기마 1대는 벌써 뒤돌아 오며 적의 후방을 치고 있다.


반인족이 착각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기마대만 생각했지 실제 싸우는 무사들이 전문적으로 무술을 익힌 고수들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치 못한 것.


당연히 그들의 개념으로는 힘세고 날래며 기술 좋은 용사가 최고인데, 용사와 무사의 차이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비록 처음 보는 커다란 짐승을 앞세워서 기세등등하게 돌진해 왔으나, 비호처럼 내달리며 진기가 실린 도검으로 번개같이 휘두르는 일격(一擊)을 일반 용사들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저 짐승과 숫자에 기대어 길을 막고 몇몇을 도모할 따름인데······.


사방에 즐비하게 목이 잘려서 핏물 속에 드러눕는 시신의 대부분이 반인족이라! 이건 사실 일방적인 처참한 학살(虐殺)에 가까웠으나 천인족도 살고자 함이니 어찌할 수 없음이다.


한울은 그 상황을 비통(悲痛)한 심정으로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오호통재라! 이 업보(業報)를 다 어찌할 것인가!’


결국 살아남은 오십여 마리의 짐승과 수백의 인원이 겨우 천인족 진지 앞에 다다랐으나, 적이 가엽다 하여 대신 죽을 수는 없는 법!


한울이 나무 위에서 등 뒤에 메고 있던 해타정심검을 뽑아 들고 진기를 주입하여 내던지니, 이기어검(以氣馭劍)으로 번개처럼 날아간 검이 접근하는 짐승들의 머리를 단칼에 잘라 냈다.


그런데 떨어질 줄 알았던 그 검은 다시 검결지를 따라서 순차적으로 다른 짐승들의 머리를 베어 내니, 순식간에 삼십여 마리의 목이 떨어지고 이십여 마리만 남았다. 그제야 순식간에 전력을 상실한 적군이 뒤돌아서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러나 후퇴하는 적을 구태여 뒤쫓지 않음은 자비인지 자신감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음인지 모르겠다.


천인족 진지(陣地) 앞 백 장(300m) 이내에는 핏물이 내를 이루었다. 질퍽거리는 핏물 속에는 수많은 짐승과 사람이 뒤엉켜 쓰러져 있는데, 대부분 단칼에 머리가 잘린 형상이었다.


먼저 천인족이 동료들의 시신과 부상자(負傷者)를 거두니 수없이 널린 나머지는 모두 반인족이었다.


멀리 숲에서는 키가 작은 소인족(小人族)인 듯한 몇몇이 나무 위에 앉아서 전장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하늘 위에서는 비월족(飛月族)이 몇 명 날아다니며 아래를 염탐했다.


아마 이들도 두 종족 간에 전쟁이 벌어진 것을 알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염탐(廉探)꾼을 보낸 것이리라.


그 시간에 이런 처참한 전투가 벌어진 것도 모른 채 반인족의 대추장 울트는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속마음을 감춘 채 사신으로 온 천사장과 한창 협상 중이다.


“아니, 이제 와서 화해를 하자니 그게 말이 됩니까? 수많은 내 부하가 죽었습니다. 그만한 대가(代價)가 없으면 물러설 수 없소.”


[이 싸움은 모두에게 남는 것이 없습니다. 비록 우리 종족이 수가 적다고 하나 모두 뛰어난 무사들입니다. 아니 무사라는 개념을 모를 테니 일당백(一當百)의 용사들이라고 해 두지요. 우리도 타격을 받겠지만 그대들은 그 열배 이상의 치명타를 입을 겁니다.]


“날쌘 기마대가 있다고 큰소리치지 마시오. 우리 종족은 천만이 넘고 수백 만의 용사와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소. 수많은 짐승과 우리밖에 모르는 독충을 동원하면 그대들쯤은 하루 아침에 쓸어버릴 수가 있소.”


[그래서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그대의 종족이 수가 많다고 하여도 우리를 멸족시킬 수는 없소. 우리가 멸족의 위기에 처하면 우리를 지키는 신수들이 나설 것이요.]


“신수라니···, 신수가 무엇입니까?”


[수천 년을 살면서 도를 닦아 온 신령스러운 동물들이지요.]


“동물이 수천 년을 살고 도를 닦아요? 구경이나 하게 한번 데려와 보세요. 그런 신화(神話) 같은 얘기나 하시려거든 돌아가세요. 우리들 육만 명이면 며칠 내로 그대들을 끝장낼 수 있습니다. 밖에 멀리서 그대 종족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글쎄요. 조금 전부터 계속 들려오긴 하는데 저게 누구의 비명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요. 허허허!]


“하하하! 혼자 빈몸으로 와서 배포도 좋으시구려. 노인장이시니 그냥 보내 드리리다. 여봐라! 사신께서 가시니 고이 보내 드려라.”


[그럼 신수와 함께 다시 찾아오지요.]


“재주 있으면 그러시던가요.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잘 가세요.”


[그럼 이만······.]


천사장이 작별을 고하고 돌아서 나가는데 울트의 입가에는 비릿한 비웃음이 걸렸다. 한 시진(時辰)이 넘게 협상을 하였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었고······.


‘돌아가 보면 시원맘모스에 짓이겨진 시신들만 보게 될 것이다. 으흐흐흐!’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법! 알면 도리어 병이라······.


대추장 울트의 막사를 나선 천사장은 적진을 떠나 돌아오는데, 멀리서 비명(悲鳴) 소리만 들리고 아무도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적진을 나서서 백여 장을 오는데, 앞쪽에서 시원맘모스라는 짐승 이십여 마리와 온몸에 피칠갑을 한 병사들 수백 명이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이 정신없이 달려온다.


대부분이 여기저기에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패색이 짙은 모습으로······.


천사장은 가만히 발을 굴러서 나무 위로 피한 뒤 적군(敵軍)이 모두 지나가자 내려와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천인족의 진지 백여 장 전부터 사방에 널린 게 짐승과 사람의 시신이었다.


걱정이 되어 주변을 두루 살펴보는데,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이 반인족과 시원맘모스의 시체임을 알고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선인인지라 수많은 시신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한편, 대추장 울트는 멀리서 들리던 비명과 함성이 잦아진 듯하여 오늘 싸움의 결과가 자못 궁금하였다.


그동안 당한 대가를 이번에 톡톡히 치러 주고 오기를 기대하면서 연락병을 찾는데······.


“여봐라! 가서 오늘 전투 상황을 파악하고 추장들을 불러라.”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기다리는데, 달려갔던 연락병이 허겁지겁 들어오며 고했다.


“대추장님! 오늘 전투도 크게 당했다고 합니다.”


“뭐야? 이런 병신들이 있나! 빨리 추장들을 전부 오라고 해!”


“지금 보고를 드리러 오고 있습니다. 금방 도착할 겁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자 탁자를 주먹으로 꽝 소리가 나게 내리치는 울트.


그동안 당한 것도 원통해서 죽겠는데 대군을 몰고 와서까지 바보처럼 당하다니!


도대체 어떤 녀석이 지휘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놈에게 화풀이라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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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3 무림존자
    작성일
    21.07.01 14:46
    No. 1

    천인족들은 무사들이라 그런지 정말 잘 싸우네요. 펼치는 진법 이름이나 위력이 우주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면서 장난이 아니네요.

    찬성: 36 | 반대: 0

  • 작성자
    Lv.29 철없는사과
    작성일
    21.09.17 00:51
    No. 2

    현명한 대처가 옳은 법인데..... 살생을 하고자 한 것도 아니어서
    서로 다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무겁겠네요.. 그저 원만하게
    이루어지길... 오랜만에 들러서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천사장님처럼
    안도가 먼저 드네요^^

    찬성: 4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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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19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23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501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501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82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82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80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79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94 50 18쪽
»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83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519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73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27 49 21쪽
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31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705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77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87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36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95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417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70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70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709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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