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82,565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0:01
조회
1,481
추천
49
글자
18쪽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집에 돌아오자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가 차례로 쥬맥을 꼭 안아 주면서, 이제 가 봐야 하니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싫어요! 저도 엄마, 아빠랑 함께 갈래요.”


행여 도망갈까 봐 옷자락을 붙잡고 울먹이는데, 아빠가 쥬맥과 눈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쥬맥아! 네가 어려서 아빠 말을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단다. 그러니 죽는 것을 두려워할 것 없고, 또한 사는 것도 두려워할 것 없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運命)을 개척해 가며 용감하게 사는 거란다. 엄마와 아빠는 그 뒤에 보러 와도 되는 거야. 알았지?”


어린 마음에 그래도 헤어지기 싫은데 엄마, 아빠와 형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며 공중으로 떠올라 사라져 간다.


멀어져 가는 희미한 옷자락을 잡으려고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다 잠에서 깨었다.


가만히 눈을 떠 보니 사방에 어둠만 가득한데, 꾸었던 꿈이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다. 천지가 침묵 속에 잠겨 고요한 시간에 홀로 눈을 감고 그 모습들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조금 있으려니 벌써 새벽인지 창밖이 어슴프레하게 밝아 오고 멀리서 수탉의 홰치는 소리와 함께 힘찬 울음소리가 어둠을 깨웠다. 이제 날이 밝았다고···.


쥬맥 자신은 모르지만 길지 않은 7년 인생에 커다란 변곡점이 발생하는 날이 밝았다.


오늘 따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시원하게 불어오는 아침 바람이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쥬맥이 누워 있는 천막은 행여 돌림병이 퍼질까 봐 가림막이 쳐져 있어서 어두컴컴하고 적막할 뿐이다!


야수르와 하유리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돌아서는데, 평소 오지 않던 비율신 대족장이 나타나더니 신녀들의 천막에 들러서 여러 가지 음식을 청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코와 입이 있는 곳을 흰 천으로 가린 뒤 고깃국을 곁들인 밥상을 손수 들고 쥬맥의 천막으로 들어왔다.


쥬맥이 웬일인가 싶어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아침밥을 먹어야지? 일어나서 앉을 수 있느냐?”


“예, 앉을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오셨어요?”


“병이 좀 나아지는지 보러 왔다. 뭐든 잘 먹어야지. 여기 고깃국이랑 맛있는 것을 많이 가져왔으니까 든든히 먹어라. 그리고 힘을 내야지.”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밥을 먹는 모습을 한참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 밖으로 나갔다.



점심때가 되니 어젯밤에 비율신 대족장의 집에 왔었던 부족장 중에 한 사람이 찾아왔다. 또 입과 코를 흰 천으로 가린 채 고깃국을 들고 쥬맥의 천막으로 들어와서 점심을 주더니, 궁금한 척하면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쥬맥이라고 했지? 넌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엄마가 지어 준 흰 쌀밥을 먹고 싶어요.”


“그럼 너는 평소(平素)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저도 형들처럼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검이 너무 갖고 싶거든요. 저도 검술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검술을 배워서 우리 종족을 지키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부족장의 눈에 습막이 번지는데···, 얼굴을 돌려 외면하면서 일부러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럼! 너도 열심히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다. 글을 배워야 읽고 쓸 수 있을 텐데 글은 배웠느냐?”


“예, 형을 따라서 세 살 때부터 학당에 다니면서 배웠어요. 천령문은 다 읽고 쓸 수 있어요. 토납술도 배웠는 걸요. 저 연습 많이 해서 잘해요.”


그 이후로 몇 가지를 더 물은 뒤에 아픈 눈빛으로 온몸이 짓무르는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작별을 고했다.


“그래, 그럼 잘 먹고 지내거라.”


돌아서는 어른의 뒷모습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이 어렸다.



저녁때가 되자 신녀가 흰 쌀밥에 고깃국을 가져다주니, 쥬맥은 오늘 하루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날마다 오늘만 같았으면······.


저녁을 먹고 아무도 없는 빈 천막에 홀로 누웠지만, 어젯밤 꿈을 생각하며 홀로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이 글썽해지기도 하다가 늦게야 잠이 들었다.


어젯밤처럼 꿈속에서 가족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잠이 들었지만 꿈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밤이 깊어 삼경(三更 23시~1시)이 시작될 무렵인데, 검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네 사람이 들것을 들고 쥬맥이 누워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가만히 잠자는 쥬맥을 바라보다가 양쪽으로 긴 막대가 들어간 들것에 쥬맥을 누워 있는 이불 그대로 살며시 옮겨 싣더니, 그 위에 얇고 검은 천을 덮어씌웠다.


두 사람은 들것을 들고 한 사람은 큼직한 봇짐을 들었다. 또 한 사람은 양손에 크고 작은 검(劍)을 들고 함께 천막을 나서더니, 천둔산 쪽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목책에 이르니 보초를 서는 무사들이 나타나서 사전에 미리 약속이라도 된 듯이 조용히 문을 열어 준다.


목책을 나선 네 사람은 밝은 달빛을 받으며 빠른 걸음으로 산 쪽을 향하여 달려가니 금방 목책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데······.


경신술을 쓰는지 일단 달리기 시작하자 들것과 봇짐을 들고 있는데도 그 속도가 꼭 말이 내달리는 것 같았다. 주마등처럼 사물이 휙휙 지나가고······.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끼면서 쥬맥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몸이 흔들리는 것이 마치 자기를 누군가 들고 가는 듯하여 일어나려고 하다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서 가만히 들어 보았다. 무슨 일이지?


어른들의 목소리인데 그중에 하나는 낮에도 들어 본 목소리 같았다.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가는 것 같아서 일부러 자는 척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지? 벌써 천둔산을 훨씬 지났잖아?”


“길을 찾아 돌아올지 모르니 찾아오기 힘든 제법 먼 데까지 가야 하지 않겠어?”


“우리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어린 것을 갖다 버리려고 이 휘영청 밝은 달밤에 산길을 가고 있다니, 나 원 참!”


“우리가 이미 멍에를 지기로 하지 않았는가? 그만들 하게”


“그래도 그나마 달이 밝아서 밤길을 가기에는 다행입니다.”


“자네는 공력이 깊어서 어두운 밤에도 다 보지 않는가?”


“그래도 밝으면 진기(眞氣)를 쓰지 않아도 되니 좋지요.”


“그나저나 험한 길을 뛰려니까 이렇게 경신술(輕身術)을 쓰는데도 힘이 드는군. 여기서 한숨 쉬었다 가세.”


번개처럼 내달리던 네 사람이 풀밭에 들것들을 내려놓고 둘러앉았다. 간식을 먹는지 뭔가를 씹어 먹는 소리와 대화 소리가, 이미 깨어서 자는 척하고 있는 쥬맥의 귓가에 들려온다.


“그나저나 이번에 돌림병으로 열 명이 넘게 죽었다면서?”


“열세 명이야. 전염성 풍토병(風土病)이라고 하더구먼.”


“그런데 저 애가 옮겼다는데 왜 쟤는 아직도 살아 있어?”


“모르지. 병에 내성(耐性)이 있어서 남보다 강하거나 뭐가 있겠지.”


“하여간 이제 저 애만 갖다 버리면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네.”


“자네 보따리 쌀 때 보니까 책 같은 것도 같이 넣던데 그건 뭐야?”


“애가 글도 읽을 줄 알고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 마음에 걸려서 혹시나 살지도 모르니까 그냥 헛것 삼아서 무공서(武功書)를 함께 넣었네.”


“그랴. 다 낳아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래야지. 이제 쉬었으니 얼른 갔다가 오자고. 새벽까지는 돌아가야지.”


그러더니 일어나서 또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쥬맥은 이미 잠에서 깨어나 모든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 들은 얘기로부터 정리를 해 보면 자기 때문에 전염성 풍토병이 퍼져서 열세 명이 죽었고, 전염병이 도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기를 산속에 버리려고 가는 중이라는 것을······.


그것도 돌아올 수 없는 곳에 버리려고, 이 밤중에···, 아주 먼 곳으로······.


갑자기 죽을까 봐 무섭고 두려워서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데···, 자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이 열세 명이나 죽었다고 하지 않는가?


돌아가면 또 많은 사람이 죽을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어린 나이에도 차마 말을 못 하고 치미는 울음을 눌러 참았다.


산을 몇 개를 넘었는지 모르나 달리던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이제 적당히 버릴 자리를 찾은 것일까? 나를 어디에 버릴까?


“혹시 짐승들이 있을지 모르니 그래도 안전한 곳에 버려야 하지 않겠어? 좀 높으면서 짐승 눈에 잘 안 띄는 곳을 찾아봐.”


“아! 저기 큰 바위 위가 좋겠네. 옆에 큰 나무가 있어서 가려 주기도 하고, 높아서 짐승이 오르기도 힘들고. 아래서는 보이지도 않을 거야.”


그들은 급경사를 이뤘다가 윗부분은 널찍하면서도 우묵하게 들어간 바위 위에 들것과 봇짐을 내려놓았다.


“애를 혼자만 두고 가려니까 마음이 아파서 죽겠네그려.”


“어쩔 수 없지. 운명에 맞기는 수밖에. 운이 좋으면 살겠지 뭐.”


“먼 거리를 들고 뛰었으니 아마 깨서 우리 얘기를 다 들었을 거여. 얘야 미안하다. 우리도 어쩔 수가 없구나. 부디 병마를 이기고 살아남아라.”


“날이 밝기 전에 어서 가세.”


그들은 쥬맥이 한마디라도 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돌아서지 못할까 봐 서둘러서 왔던 길로 돌아섰다.


산속으로 데려온 네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쥬맥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이 깊은 산속에 이제는 나 혼자 남은 것인가?


이제 들리는 건 가느다란 바람 소리.


여기저기서 울어 대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밤 늦은 줄 모르고 울고 있는 새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 갑자기 무서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치미는 무서움과 설움에 눈물이 쏟아지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그렇게 울지 않으려고 참고 참았던 울음이 결국 터져 나왔다.


“엄마~ 엉엉엉!”


“아빠~ 엉엉엉!”


“형아~ 엉엉엉!”


“나 무서워~ 엉엉! 나 어떡해 엉엉!”


애타게 찾는 사람은 대답이 없고, 야속한 메아리만 산중에 울려 퍼진다.


이미 멀리 가고 있지만 무술의 고수들인 네 명의 어른들 귀에도 그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그러나 그들의 눈가에도 습막이 번지건만 그들은 뒤로 돌아서지 않았다. 주먹을 움켜쥐고 일부러 더 발걸음을 빨리하여 가던 길을 재촉할 뿐······.


한참을 목놓아 울고 나니 그래도 가슴이 후련해졌다. 무엇보다 소리 내어 울면 짐승들이 찾아올까 봐 두려움에 울음을 멈추었다.


그때 지난밤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빠가 꼭 안아 주며 하던 말. 어려서 그 말뜻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단다. 그러니 죽는 것을 두려워할 것 없고, 또한 사는 것도 두려워할 것 없단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해 가며 용감하게 사는 거란다.’


형이 하던 말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쥬맥아! 이 형이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꿈속에서 들었던 말들을 떠올리자 이제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나는 용감한 아이라고 했고, 설사 죽은들 엄마, 아빠와 형의 곁으로 가는 것이니 겁날 것도 없지 않은가?


용기를 내어서 가만히 위에 덮어씌운 천을 손으로 천천히 밀어 냈다.


누운 그대로 얼굴을 내미니 드넓은 하늘이 두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먼 길을 떠나는 철새들은 그 시간에도 드높은 창공을 떼 지어 날고 있고.


욱신거리는 몸을 손으로 버티며 가만히 일어나 앉았다.


시원한 산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뒤쪽에는 높은 산이 솟아 있고 앞쪽에는 야트막한 산들이 층층이 널려 있었다.


지금 앉아 있는 곳도 높은 산 아래에 있는 조금 더 낮은 산의 정상이었다.


여기저기 군집한 활엽수(闊葉樹)의 숲이 보이고 높고 낮은 풀들이 자라 있는데, 이름 모를 꽃향기가 불어오는 밤바람에 솔솔 풍긴다.


더 용기를 내어서 바위의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최근에 일어서서 걷는 일이 많지 않아서 다리가 뻐근하였지만, 바위 위로 늘어진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섰다.


이제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으니 모든 일을 스스로 혼자서 해야 한다.


훨씬 더 시야가 탁 트이는데 잡고 일어선 나무를 보니 활엽수 가지마다 하얀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보름달 아래 하얀 꽃잎들이 꿈결처럼 떨어져 날린다. 산 아래 구릉을 타고 멀리까지 눈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도취되어 자신이 버림받은 것도 잊은 채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는데,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우~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무서움에 소름이 돋고, 갈 길을 잃은 마음에 심장은 쿵쾅거리고······. 그러다가,


야밤에 홀로 산속에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제는 혼자 살아야 하니 먼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어린아이 혼자 다니기에는 숲속은 너무 위험(危險)하다. 그래서 우선 날이 새기를 기다리면서 옆에 놓인 봇짐을 달빛에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봇짐 옆에는 길이가 세 자쯤 되는 소형 검이 놓여 있는데, 들어서 살펴보니 일곱 살 아이가 휘두르기에는 약간 무거웠다.


검을 놓고 봇짐을 풀어 보니 위에서부터 애들 옷이 세 벌에 가죽신발 두 켤레, 흙으로 구워서 만든 질그릇 두 개와 쇠로 만든 수저 한 벌이 나왔다.


더 밑을 들추니 불을 켜는 화섭자와 육포 등 여러 가지가 섞여 있고, 비상식량과 작은 단검 하나, 그리고 가장 밑에는 세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책을 달빛에 살펴보니 한 권은 그동안 조사한 식용(食用)과 약용(藥用)이 가능한 식물들이 그림과 함께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독초도 있고······.


다른 책 두 권은 무공서인데 한 권은 심법(心法)과 장법(掌法), 권법(拳法), 경신술 등이 적힌 것이고, 한 권은 검술과 보법에 대한 것이다.


혼자 산속에 버리기가 미안하니 여러 가지를 신경 써서 챙겨 준 것일까?


이제는 다시 구하기도 어려운 것이라 잘 챙겨서 싸 두고, 다시 누웠던 자리에 하늘을 향해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벌써 동녘에 여명이 비치고 있으니 머지않아 곧 날이 밝아올 터.


* * * * *


한편, 쥬맥이 떠난 천인족 주거지에도 아침이 밝아 오고 따스한 햇볕이 여기저기 비추는 가운데 바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한울의 막사 앞에 비율신 대족장이 서서 계속 서성거리고 있었다.


안율을 비롯한 수신호위들이 사방에 은신하여 눈을 번뜩이고 있으나, 상대는 잘 알고 있는 대족장이고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않아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지켜볼 뿐이었다. 급히 보고를 드릴 일이 있겠거니 하면서······.


안율이 나서서 물어보려고 하는데, 마침 한울을 시중드는 여자아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다가가서 물었다.


꼭 뒤가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모습이 보기에 안타까웠나 보다.


“비 대족장님! 한울님을 뵈러 오신 것인지요?”


“그래,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뵈러 왔다.”


“그럼 식사 중이시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바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셔서 기다리시지요?”


“알겠다. 그냥 여기서 기다리마.”


다시 왔다갔다하면서 서성거리는데 표정이 밝지 않았고 침울한 것으로 보아서는 좋은 내용이 아닌 모양이다.


잠시 뒤에 여자아이가 다시 나오더니 한울께 대족장을 안내하여 들어갔다.


이제 막 식사를 마친 듯 한울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고, 가족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자리를 피해 주었다.


“여기에 차 좀 내오너라.”


한울은 시녀에게 차를 시킨 뒤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것을 보니 급한 일인가 보다 하고 조금 긴장을 하면서도 웃는 얼굴로 비 대족장 보았다.


“이리 앉으시오. 아침부터 어인 일이오? 우선 차부터 한잔 합시다.”


“예, 감사하옵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니 이제 가을이 다 된 듯합니다."


“그러하옵니다. 몇 달 전에 심었던 태을미(太乙米)가 벌써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다른 작물들도 곧 거두어들일 때가 된 듯하옵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큰 싸움이 없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지난번 같은 큰 싸움이 또 벌어지면 정말 난감(難堪)한 일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차가 나왔고 두 사람은 따끈한 차를 조금씩 훌훌 마시는데, 그 맑은 향이 머리까지 맑게 해 주었다.


“이 신선초 잎으로 만든 차는 언제 마셔도 머리가 맑아지고 입안이 시원해지는 게 아주 일품(一品)입니다. 가져온 씨를 심었다고 들었는데 잘 자라고 있지요?”


“벌써 거둘 때가 다 되었사옵니다.”


비 대족장은 마음이 무거워 얼른 해야 할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한울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29 철없는사과
    작성일
    21.10.04 21:54
    No. 1

    아이의 울음소리가 머리를 가득 채워서
    먹먹해지는 눈가였네요........ 좀 더 실컷 울기를
    바랬는데 그 소리에 달려올 산짐승으로 인해 중간에
    삼켜야 했던 순간을 떠올리니 더 맘이 아프네요...
    대족장님은 혹여 죄를 청하러 오신것일까요....ㅜㅜ

    찬성: 3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18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22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500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99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82 47 19쪽
»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82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80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78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92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81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518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72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26 49 21쪽
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29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705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77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87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36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94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416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69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69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708 58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