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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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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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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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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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화. 서장(2) 탈출(脫出)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불안한 가운데 지나간 이틀.


그동안 땅은 더 거세게 흔들리고, 대지에 거미줄처럼 생긴 균열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쥬맥네 집도 튼튼했던 벽 여기저기에 금이 쩍쩍 가서 집안에 있기가 불안할 정도였다.


어떻게 될지 앞날을 모르니 집을 기둥으로 받치고 중요한 짐은 모두 밖으로 내다 놓았다.


“이러다가 정말로 별이 부서지는 것 아닌가? 그럼 도망갈 곳도 없는데···.”


“설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어. 무슨 수가 있겠지.”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정말로 별이 파괴되리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니 모두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대낮에도 온통 하늘이 붉게 보일 뿐 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불안감만 점점 쌓여 갈 뿐이고······.


하늘을 밝게 물들이는 화광(火光)이 이제는 마치 산너머까지 다가온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사흘째 되는 날.


멀리서 큰 행렬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천령대의 기마대가 줄줄이 늘어서고, 뒤에서는 말 여덟 마리가 끄는 커다란 마차가 많은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또 그 뒤에는 지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나타났고, 말미에는 수레에 이삿짐처럼 여러 가지 물건을 실은 사람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가축을 몰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쥬맥의 아버지 한청은 직감적으로 이것이 선인이 말했던 한울의 행렬임을 알아차렸다.


“그래, 저 앞의 큰 마차가 한울님의 마차겠지. 그렇다면 다른 별로 탈출구를 만든다는 것이 정말이었어.”


한청은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두 아들을 챙겼다. 그리고 간단히 싸 두었던 봇짐을 짊어지고 아직도 철부지인 두 아들의 손을 잡았다.


“여보! 얼른 따라와. 그래야 살 수 있어. 우리도 저 뒤를 따라가야 해.”


그러면서 지나치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저 행렬(行列)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대부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 따라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빠! 저 사람들은 왜 안 가요?”


쥬맥이 이상하다는 듯이 그들을 보면서 말하자 아버지는 신경 쓸 것 없다는 듯이 아들의 손을 급하게 잡아 끌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생각이 있을 거야. 놔두고 우리나 얼른 가자.”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천둥산으로 오르는 행렬의 중간에 잽싸게 끼어들었다.


천둥산에는 먼저 온 기마대가 길을 낸 것인지 완만한 경사(傾斜)를 택해서 정상까지 달구지나 수레를 끌고 올라갈 길이 닦여 있었는데······.


그래도 큰 마차들은 오를 수가 없어서 아까운 마차들이 길가에 버려지고, 말을 타거나 걸어서 줄줄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쥬맥은 정상(頂上) 근처에 이르자 그동안 살아온 곡산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끝없는 피난 행렬은 아직도 곡산마을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빠 엄마, 저기 좀 보세요.”


가족들이 모두 쥬맥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이제는 하늘로 충천하는 화광이 가시거리까지 이르렀고, 벌판 끝에 보이는 산이 온통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산을 넘어서 용암 같은 붉은 액체가 길게 흘러내린다. 마치 지옥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급해지자 쥬맥네도 서둘러서 정상으로 들어섰는데······.


천둥산 정상에는 거대한 진법(陣法)이 펼쳐진 모양인지 하얀빛에 가려져 있었고, 그 둘레를 선인들과 천령대 소속의 기마대가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고계 선인들 이십여 명이 법술의 신통을 부리는지 입을 달싹이며 진언을 외우고, 주술문자가 흐르는 금빛 수정 같은 것들을 수없이 땅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산 정상 쪽 하늘에 먹장구름이 일더니 천지를 울리는 듯한 천둥소리가 계속 들려오다가 하얀빛이 가린 곳을 향해서 수없이 번개가 내리쳤다.


우르릉~ 꽈과강!!


그 엄청난 소리에 모두 놀라서 주춤거리며 하늘을 바라보는데······.


쨍!


맑은 쇳소리와 함께 하얗게 빛나던 공간(空間)이 유리가 깨지듯이 부서지면서, 악마의 목구멍 같은 검은 균열(龜裂)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차갑고 음습(陰濕)한 바람이 으스스하게 불어 나온다.


먼저 선인들 수십 명과 기마대 수백 명이 말에서 내려 그 안으로 들어가고, 한참 뒤에 선인 한 사람이 다시 나오더니 한울과 지도부(指導部)를 안내하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충 이만 명 정도가 들어간 뒤에 겨우 쥬맥네 차례가 되었는데, 쥬맥은 그 균열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고향의 산하(山下)를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천둥산 근처까지 붉은 용암의 물결이 밀려왔고 세상은 온통 지옥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산 정상도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점점 더 떨림이 심해졌다.


“형아! 저것 좀 봐. 우리 마을 앞까지 불길이 크게 번졌어.”


“어? 정말이네. 같이 못 온 우리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둘은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친구들이 걱정된 것이다. 뒤늦게 아차 싶은 마을 사람들이 쥬맥네가 올라온 길을 따라서 서둘러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용암(鎔巖)이 밀려오는 속도로 보아서는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쥬맥이 바라본 모습은 자신이 살던 마을이 불길에 삼켜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쥬맥도 쥬산도 둘 다 침울해져서 할 말을 잃었고.


쥬맥은 형의 손을 꼭 잡고 부모를 따라서 음습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커먼 균열 속으로 들어섰다.


그 안은 살을 에일 듯한 찬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사방이 어두컴컴하고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었다.


행렬은 어두컴컴한 곳을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데 쥬맥네도 그 뒤를 따랐다.


쥬맥네가 들어가고 나서 다시 만여 명의 사람들이 균열 속으로 들어섰을 때, 이제는 불길이 점점 더 거세지면서 천둥산 중턱까지 타고 올랐다.


그러자 아직도 뒤에 행렬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구를 지키던 선인과 천령대가 안으로 뛰어들며 서둘러 입구를 봉쇄(封鎖)하려 들었다.


그 과정에서 안으로 밀치고 들어오려는 사람들과 격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운 좋게 수십 명이 더 안으로 들어섰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서히 닫히고 있는 공간균열(空間龜裂)의 틈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불길이 바로 코앞까지 닥쳤고···, 이 세상에서 그들이 피할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살려 주세요!!"


절망으로 울부짖는 애통한 소리들! 공간균열 안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도 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데······.


모두 눈시울을 붉혔지만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다. 쥬맥의 눈에도 쥬산의 눈에도 눈물이 그저 그렁그렁 맺힐 뿐!


이렇게 쥬맥네 일가는 아리별을 떠났다.


이제 공간균열은 완전히 닫혔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는 선인들과 기마대를 따라서 어둑하고 희미한 길을 천천히 따라갈 뿐인데······.


어디선가 귀신이 흐느끼는 듯한 음산한 귀곡성 소리가 텅 빈 공간에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자 쥬맥은 너무 무서워서 형의 손을 꼭 잡았다.


마치 미로(迷路)속을 걷는 듯이 사방이 흐릿한 그림자 같은 것만 비칠 뿐이고 주변은 완전히 회색의 세계였다.


“형은 안 무서워?”


“아니야. 나도 무서워. 그래도 네가 있으니까 참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형제는 더욱 손을 꼭 잡았다.


선인들이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곳은 사차원의 공간균열이라고 한다.


고계 선인들 이십여 명이 힘을 합하여 법술 신통으로 겨우 문을 열었다고 한다. 한울과 고계 선인들 외에는 지금 이 무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따라갈 뿐이다!


그렇게 한 시진을 넘게 걸었을 때 앞에서 처절한 비명(悲鳴)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그러면서 앞쪽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 그 비명 소리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점점 작아지다가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삭풍이 부는 겨울밤에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바람 소리처럼.


비명 소리가 잦아지자 쥬맥네 가족도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행여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


쩌저정!


불길한 소리가 울리며 바닥에 시퍼런 균열이 가더니 유리가 금이 가듯이 깨져 나가며 넓고 긴 틈이 벌어졌다.


그러자 그 위에 서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균열 속으로······.


"으아아아아아아~~~"


주변은 갑자기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었고 떨어지는 사람들은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애타게 비명을 질렀다.


쥬맥네도 몇 걸음만 더 앞에 있었으면 모두 그 균열 속으로 떨어질 뻔했다.


아찔한 순간이 지나자 쥬맥네 가족은 모두 다리에 힘이 쭉 빠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리쉬었다.


이래서야 몇 사람이나 이 공간 속에서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아마도 이 공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限界) 이상(以上)으로 많은 사람과 짐, 그리고 가축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다 보니 공간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선인들과 천령대는 수시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사정을 살피고, 바닥의 균열을 건널 다리를 만들며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했다.


위험한 작업이다 보니 그러면서 또 많은 사람들이 균열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들려오는 소리가 아득할 때까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 덕으로 그래도 무리는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동안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니 안심하는 순간에 쥬맥네 후미에서 또 바닥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무수히 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균열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다 보니 모두 극심(極甚)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저 의미 없는 죽음이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중간에서 이런 사고들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을 때 선두는 벌써 목적지 근처에 접근한 모양이었다. 수십 명의 고계(高階) 선인들과 천령대 무사들이 공간의 바닥을 여기저기 살피고 있었다.


그러더니 선풍도골의 신선 같은 선인들 수십 명이 무엇을 하는지 이상한 깃발들을 여기저기에 세우고, 자색으로 주술문이 흐르는 팔뚝만 한 수정들을 여러 방위의 바닥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선인 몇 사람은 법력을 일으켜서 눈에 금빛을 띠고 주변과 발 아래를 세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아마도 선안(仙眼)으로 투시하여 공간을 빠져나갈 자리를 찾는 모양이었다.


뒤따라온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모여들면서 무리는 금방 눈덩이처럼 수가 불어났으나, 그래도 뒤쳐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 절반도 도착하지 못했다.


이렇게 선두로 나선 사람들이 빠져나갈 탈출구 근처로 모여들고 있을 때, 쥬맥 일가가 포함된 후미(後尾)에서 또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좀 특이했다. 쥬맥네 주변의 바닥이 쩌정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여기저기에 균열을 일으키더니, 그 안에서 괴상한 것들이 튀어나왔다.


반투명한 몸체에 기체처럼 흐느적거리는데 상반신은 사람의 형상을 가졌으나 하반신은 흐릿하게 없어졌다. 뚜렷한 형체가 없는 푸르스름한 기의 형태였다.


“빙령(氷靈)이니 모두 조심하시오.”


선인의 말에 따르면 이 사차원의 공간균열(空間龜裂)에서 그 틈새에 빠져 죽은 사람들 중에 일부가 빙령이 된다는 것이다. 원한이 많은 혼백(魂魄)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면 음기와 결합해서······.


“으흐흐흐흐흐흐!”


“휘이유~ 휘이유~”


수백에 이르는 빙령들이 균열 속에서 빠져나와 갖가지 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마치 거머리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들러붙었다.


그냥 들러붙기만 하면 다행인데 사람들을 균열 속으로 밀어 넣거나 끌어당겨서 함께 떨어져 내리니, 순식간에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엄마! 무서워.”


아직 어린 쥬맥은 귀신 같은 빙령의 모습에 얼어붙어 엄마 옷을 꼭 붙잡았다. 나이가 더 많은 형 쥬산도 무서운지 덩달아서 엄마의 다리를 얼른 끌어안았고······.


선인들이 법기(法器)를 들고 뛰어들어서 빙령들과 싸웠으나, 사람들에게서 떼어 내다가 함께 균열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는 와중에 근처에 있던 빙령들이 쥬맥네 가족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특히 어려서 아직 힘이 부족한 쥬맥과 쥬산을 붙잡고 균열 속으로 끌어넣으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아버지 한청이 봇짐을 던져 버리고 아들들을 구하기 위해서 빙령들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어머니 청산댁도 봇짐을 버리고 두 아들을 끌어안았다.


“저리 가! 떨어져!”


“이 나쁜 놈들! 이것 놔!”


쥬맥과 쥬산은 균열 속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한 손은 엄마를 붙들고 한 손은 빙령을 떼어 내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지만 빙령은 쉬 떨어지지 않았다.


법력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형체가 없는 빙령을 떼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한청이 근처에 있는 선인을 부르려고 간 사이에 쥬맥 형제와 청산댁은 균열의 가장자리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바닥이 빙판처럼 미끄러우니 발을 디디고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셋이 한꺼번에 균열 속으로 떨어지려는 찰나에 청산댁은 자신을 포기한 채 쥬맥만을 힘껏 밀쳐 냈다.


“쥬맥아! 아빠한테 가! 으아악!”


“살려 줘! 아빠!”


“안 돼! 엄마! 형아!”


청산댁과 쥬산이 비명을 지르며 쥬맥의 눈앞에서 악마가 입을 벌린 것 같은 아득한 균열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버지 한청이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둘은 이미 균열 속에서 아득히 한 점의 먼지처럼 멀어지고 있었고······.


“여보! 쥬산아! 으흐흑!”


한청이 돌아와 쥬맥을 붙잡고 균열 속을 들여다보지만 그 속에서는 차가운 바람만 거칠게 불어올 뿐이었다.


한청은 절망하여 쥬맥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또 다가오는 커다란 빙령 하나. 눈치를 보다가 어린 쥬맥에게 찰싹 들러붙더니 잽싸게 균열로 끌어당겼다.


아내와 큰아들을 잃고 절규하던 한청은 사랑하는 막내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자 혼신의 힘으로 쥬맥에게 들러붙은 빙령을 떼어 내려고 했다.


그러나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은 빙령은 요사한 눈을 빛내며, 법력(法力)이 하나도 없는 한청의 몸부림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쥬맥을 잡고 점점 균열의 가장자리 쪽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에 한청은 자신과 아들 중에서 한 사람밖에 살 수 없음을 느꼈다. 바로 자신과 아들의 생사를 선택하는 기로에 선 것!


바닥이 미끄러우니 힘을 쓸 수도 없고···, 방법은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자신이 대신 빙령을 끌어안는 것이었다.


그러자 과감하게 빙령과 쥬맥 사이로 몸을 밀어 넣어 쥬맥을 두 발로 뒤로 밀치면서, 자신은 두 손으로 빙령을 끌어안고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아빠! 안 돼!”


쥬맥이 목놓아 아빠를 부를 때···, 아득한 아래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쥬맥아! 넌 용감한 아이이니 절대 울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아빠! 아빠! 엉엉엉~”


쥬맥이 애타게 울며 아빠를 부를 때 또 빙령 하나가 쥬맥에게 들러붙어 균열 속으로 끌고 가려고 버둥거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선인 한 사람이 달려왔다. 대머리에 백발과 백염을 곱게 기른 선인이 푸른빛이 나는 막대 같은 법기를 휘둘러 빙령을 가격했다.


“이 못된 놈! 어서 떨어져라.”


푸르스름한 법력이 실린 법기에 얻어맞은 빙령이 제대로 힘을 못 쓰고 흐물거리자 쥬맥에게서 뜯어내더니, 손에서 일렁이는 불길로 태워 버렸다.


쥬맥을 저만치 뒤로 밀치더니 또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급히 달려갔다.


선인들이 법기를 들고 설치자 빙령들도 더 이상 방법이 없는지 균열 위를 떼 지어 맴돌면서 울부짖었다.


“후우우아아아~”


“흐으으으으으~”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음습한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다가 점차 균열 속으로 하나씩 자취를 감추었다.


갑자기 부모 형제를 잃어버린 쥬맥은 많은 사람들 틈에 멍하니 서 있었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서 있건만 홀로 너무 외로워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안 돼! 난 울지 않을 거야. 아빠가 난 용감한 아이랬어. 울지 말고 열심히 살랬어.’


그러면서 작은 주먹을 움켜쥐고 힘을 주며 아픔을 견디려고 하지만, 아직은 철부지 어린아이가 아닌가?


어쩔 수 없는지 눈에 커다란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맺혔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은 선두가 지나간 자리를 찾아서 다시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천령대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균열을 건널 통로를 만들고, 선인들은 진법으로 결계(結界)를 쳐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지나가도록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러는 한편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고 현황을 파악했고.


마침내 저 앞쪽에 선두로 나섰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보이고, 지휘부로 보이는 고위층 사람들과 주변을 지키는 무사들도 눈에 띄었다.


모두가 한결같이 긴장한 얼굴들이다.


지금 그 앞쪽으로는 출구를 만들고 있는지 고계 선인들이 우윳빛 장막을 두른 것 같은 진을 치고, 수십 명이 법술의 진언(眞言)을 외우고 있었다.


“천계의 힘으로 시공에 명하노니······”


그러자 점점 진에 푸른빛 광채가 밝아지면서 공간 밖의 풍경이 희미하게 비쳐 들었다. 지금 출구를 만들고 있는 곳도 어떤 산의 정상인 모양이었다.


흰 눈이 쌓인 넓은 곳과 얼핏 나무와 바위 같은 것들도 눈에 보였다.


사람들은 과연 이 밖에 무엇이 그리고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때 흰옷을 입은 신녀(神女) 한 사람이 쥬맥에게 다가오더니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며 다정하게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니?”


“나는 쥬맥인데요.”


“다른 가족이 없이 너 혼자 남았니?”


“예, 그런데요.”


“그럼 날 따라오너라. 부모를 잃은 애들은 별도로 모아서 돌봐 줄 거야.”


함께 할 가족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신녀의 뒤를 터벅터벅 따라가는 쥬맥.


그때 쨍하는 맑은 소리가 울리더니 진이 설치된 곳에서 선인들의 진언 소리에 따라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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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33 무림존자
    작성일
    21.07.01 14:08
    No. 1

    호호호! 혹시 아리별은 아리랑에서 따온 이름 아닌가요? 나중에 우리 민족과 연결성을 갖게 하려고. 아니면 말고요.

    찬성: 36 | 반대: 0

  • 작성자
    Lv.29 철없는사과
    작성일
    21.08.02 16:09
    No. 2

    시련을 겪고 잘 버팀으로서 성장하는 부분이네요.
    쥬맥에게는 더한 시련도 이때와 비교한다면 아무렇지
    않다고 다짐할 듯... 오늘 천천히 따라갑니다. (__)

    찬성: 13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2.10.21 13:50
    No. 3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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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95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417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70 55 18쪽
»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70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709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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