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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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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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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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06.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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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70화. 피 끓는 혈전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야차족과 백호대의 전투는 갈수록 격해졌다. 여기저기에서 피가 튀고······.


“진법을 가동하라!”


두두두둥~ 두두두둥~


마침내 중궁에 주술문이 흐르는 기석이 박히고 천령수 잎을 태우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주술진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와~ 죽여라!”


“이놈! 내 칼을 받아라!”


적이 벌떼처럼 달려드니 삽시간에 전장은 죽고 죽이는 혈전(血戰)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사방에 생명이 죽어 가며 뿜어내는 붉은 피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옆에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면서 점점 분노와 광기에 잠식되어 가니, 왜 서로를 죽여야 하는지도 모른 채 오직 죽고 죽이는 일에만 몰두하나니!


그러는 중에도 나선은하진은 회오리처럼 튀어나온 날개를 빙빙 돌려 가면서 적을 수없이 격살(擊殺) 했다. 죽이고 또 죽이고 그리고 또 죽이고······.


수없이 전장에 드러눕는 목숨을 잃은 시신들! 갑자기 육신을 벗어난 영혼은 갈 곳을 몰라서 아수라의 지옥 같은 전장을 헤맨다.


“뒤를 받쳐라!”


“부상자는 뒤로 빠져!”


가운데 있는 큰 원에서는 부상자나 싸우다 지친 무사들이 교대로 휴식을 취했다.


이때 진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서 진법의 중궁에 금빛 주술문이 흐르는 기석(基石)이 하나씩 더 추가되었다.


그러자 나선은하진 한가운데 일 장 높이에서 시작된 돌풍이 점점 더 거세지더니, 하늘을 향해서 마치 거대한 용오름처럼 힘차게 솟아올랐다.


전투로 인하여 발생한 사방의 먼지를 빨아올리는데도 천령수 잎을 태운 연무는 도리어 바닥으로 넓게 퍼지면서 밤하늘의 은하처럼 내부를 가렸다.


적들이 기이(奇異)한 모습에 놀라서 잠시 주춤하더니 이제는 둘이 서로 손을 잡고 돌리기도 하고, 어떤 녀석들은 둘이 서로 꼬리를 말고 휘돌면서 거세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계속 밀어붙여라!”


어떤 놈은 동료(同僚)의 등에 올라타더니 고양이처럼 뛰어서 진법 안으로 뛰어들어 가려고 했고······.


또 어떤 놈은 손을 발처럼 써서 네 발이 달린 짐승처럼 날뛰는데 번번이 방어하는 무사들에게 막혀서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여럿이 긴 대롱을 입에 물고 독침을 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이 갑주에 맞고 힘없이 떨어진다.


만약 갑주를 입지 않았으면 독침(毒針)과 독화살에 천인족의 무사들도 피해가 제법 컷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야차족의 전사자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런데도 발발챠는 후퇴하지 않고 계속 공격을 독려(督勵)했고 말이다.


‘이놈이 어디로 갔지?’


위험한 무사들을 구하면서 전체를 지휘하며 돌아다니던 쥬맥이 기회를 엿보다가, 호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발발챠를 발견하자 은신으로 조용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놈!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오행의 기운으로 몸을 숨기고 보법을 밟으며 빛살처럼 파고드니, 흐릿한 그림자가 움직이는 듯한 순간에 벌써 발발챠의 목전에 다다랐는데···. 그러자,


기감(氣感)이 좋은 몇몇이 순간적으로 칼을 휘두르며 저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쥬맥이 진기를 실어 휘두르는 검에 순식간에 칼과 몸통이 모두 양단되어 짚단처럼 쓰러져 버렸다.


이에 발발챠 주변은 이 한 번의 공격으로 몸이 잘린 부하들의 몸에서 뿜어지는 피로 금방 피바다가 되었다.


그러자 발발챠를 지키는 이십여 명의 수신호위들이 늦게야 알아채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쥬맥의 백호제마검이 발발챠의 목젖에 닿은 뒤였으니!


적장을 제압한 쥬맥이 목소리에 진기를 실어서 야차족 말로 크게 외쳤다.


“모두 물러서라! 움직이면 너희들 대장의 목숨은 없다.”


그제서야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깨달은 발발챠. 결국 당황하는 목소리로 부하들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물러서라! 명령이다!”


칼을 뽑다가 멈춘 발발챠가 죽기는 싫으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명령을 내리면서 부하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쥬맥이 눈만 희번덕이는 발발챠를 지그시 노려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전투를 멈추지 않으면 네 목부터 치겠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온 네 부하들도 모두 죽을 것이다. 어찌하겠느냐?”


혹시 빠져나갈 구멍이 없나 살피면서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더욱 목에 검을 들이대니, 예리(銳利)한 검날에 피부가 갈라져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쉬 결정을 못하자 쥬맥이 발발챠의 머리를 잡고 얼굴을 들어올리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황을 보여 주었다.


“자! 눈이 있다면 보아라! 네 부하들이 몇 명이나 살아 있는지. 이미 절반도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을 것이다. 너는 대장이면서 그러기를 바라느냐?”


발발챠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전장을 살펴보니 이미 자신의 부하들은 삼천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오천여 명이 피바다 속을 뒹굴고 있었으며 나머지도 빠르게 죽어 가고 있었고!


그제야 발발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하들이 다 죽어 버리면 대장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하들이 있으니까 자기가 대장이다.


“전투를 중지하라!”


벼락처럼 소리쳐서 명령을 내리자 이제껏 기다렸다는 듯이 야차족이 신속하게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너희들의 병력은 태반이 죽었지만 우리 병력은 아직도 건재(健在)하다. 산 사람이라도 살아서 돌아가겠느냐 아니면 모두 이 자리에서 죽겠느냐?


돌아가겠다면 전사자와 부상자를 수습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그러면 우리 부족의 영역(領域)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 어떻게 하겠느냐?”


“알았다. 싸움을 중단하고 너희 영역에서 멀리 떠나겠다.”


“다시 침범(侵犯)하면 모두 죽일 것이다. 이 약속을 지키겠는가?”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


“좋다! 지금부터 전사자와 부상자를 수습하여 즉시 이곳을 떠나라.”


이렇게 하여 일단 전투가 중단되었다.


쥬맥이 발발챠를 놓아주고 돌아서 오는데, 뒤에서 수신호위 몇 명이 기습을 하려 했으나 발발챠가 저지시켰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서 기습(奇襲)을 하면 역으로 자신들 전체가 몰살을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투를 끝낸다. 모두 전사자와 부상자를 수습하라!”


양 진영에 모두 명령이 떨어졌다.


넓은 들판에는 목 없는 시신들이 수 없이 많이 뒹굴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야차족들이었다.


벌판은 이미 질척한 피 웅덩이를 이루고 사방에서 갈가마귀와 독수리 떼가 몰려들어 만찬을 즐길 준비를 한다.


성질이 급한 녀석들은 벌써 멀찍이 떨어진 시신에 내려앉아서 눈알을 파내어 꺽꺽대며 삼키고 있으니 이 얼마나 참혹(慘酷)한 일인가?


들개들도 수백 마리가 몰려와 한 손을 보태고 있었고······.


전쟁이란 이렇게 비참하고 참혹한 것!


자만과 오기로 사리 분별(事理分別)을 못하는 순간에, 순식간에 겉잡을 수없이 벌어지는 난장판 같은 것이니.


대장이랍시고 순간의 조그만 분기를 참지 못하여 오기(傲氣)로 시작한 전쟁으로, 부하들 오천여 명이 죽고 천여 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이제 제대로 운신이 가능한 전사(戰士)는 채 이천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수족 같은 부하들을 떼죽음시키고 어떻게 해서든 마린챠 모녀로부터 역전(逆轉)의 발판을 만들어 보려던 발발챠와 부하들의 꿈은 한갓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천인족의 백호대도 이백여 명이 죽고 오백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숫자가 많지 않으니 먼저 전장을 수습하고 뒤로 물러나서 야차족이 수습을 하고 물러나도록 자리를 지켰다.


야차족은 뒷수습을 하면서 그제서야 자신들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는지 절실히 깨달았고,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서 발발챠를 욕했다.


이미 지난 번에도 천인족과의 전투에서 적은 수를 얕잡아 보고 덤비다가 수백 명이 죽었다는 것을 소문(所聞)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으니 대장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대장으로서의 명예(名譽)는 실추되고 부하들의 신뢰를 잃었으니, 머지않아 부하들 중에서 모반을 꾀하는 사람이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


야차족은 천인족이 전사자를 거두는 모습을 보고 자기네도 느끼는 게 있는지 길게 구덩이를 파고 동료들의 시신을 묻었다.


지금까지는 계속 전장에 버리고 다녔는데 자신도 언제 그런 처지가 될지 어찌 알겠는가? 스스로도 이름 모를 벌판에 버려져서 짐승의 밥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리라.


그렇게 죽은 동료들이 짐승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매장을 한 다음, 부상자들을 데리고 전장을 떠났다.


천인족마저 전사자와 부상자를 수습해서 돌아가니 텅 빈 들판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미 땅은 피에 젖어서 질펀하였고 냄새를 맡고 몰려온 짐승들 수백 마리가 주위를 서성이며 배회하였다.


어떤 놈은 얕게 묻힌 시신을 끄집어내 배를 채우려다가 자기네끼리 싸움이 붙었고, 그 틈에 갈가마귀와 독수리가 어부지리를 노려 배를 채우나니.


이 참혹한 모습은 많은 사람을 거느리는 사람일수록 순간적인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항상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을 말없이 가르쳐 주는 교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투를 마친 백호대는 우선 부상자들부터 후송하여 신녀와 의원들의 치료를 받도록 했다. 가능한 빨리 치료를 해야 빨리 낫고 그만큼 다친 곳의 후유증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 뒤에 전사자들 이백여 명을 들것에 실어서 주거지로 돌아오니, 그 가족들이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비록 대승을 거두고 야차족 팔천 중에서 오천 명을 죽이며 물리쳤지만, 내 자식 한 명과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법!


“으흐흑, 진수야! 네가 왜 나보다 먼저 갔느냐?”


“아이고~ 여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먼저 갔어요. 어허엉~”


“내 아들을 살려 내라! 끅끅끅!”


“앙앙앙! 아빠! 일어나 보세요.”


절절이 외쳐 대는 절규(絶叫)가 쥬맥의 마음을 한층 무겁게 하였다. 그들이 죽은 것이 모두 자신의 책임인 양 한숨이 절로 나오고 어깨가 처졌다.


그런 속에서도 백호대 무사들은 모두 입을 모아서 대장인 쥬맥을 칭찬했다.


비록 평소에는 훈련이 너무 심하다느니 규율이 엄격하다느니 불만을 얘기하고 욕을 했지만, 막상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에서 마치 파리 목숨처럼 힘없이 스러지는 허무한 생명들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目擊)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훈련을 등한시(等閑視)하였으면 그것이 곧 자신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마다 쥬맥이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어서 목숨을 구해 주니 생명의 은인을 욕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상 어디에나 정적이 있는 법! 지금 한울이 핵심 인력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데 이번 전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보 대족장이 나서서 이번 전투의 부당성을 피력하면서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던지는 말.


“이번 전투는 피할 수도 있었던 싸움입니다. 그냥 쫓아내기만 하였으면 또 이렇게 많은 무사가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백호대 대장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야율린 대족장도 덩달아서 한마디를 거들고 나섰다.


“맞습니다.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 종족이 충분히 힘을 기를 때까지는 최대한 이종족과의 싸움을 피해야만 합니다.”


아무래도 서로 사돈(査頓) 간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보 대족장의 역성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비율신 대족장이 억울하여 얼굴을 붉히고 반발을 하려고 하자, 한울이 손으로 가만히 제지(制止)를 시켰다.


그러면서 지그시 보, 야 두 대족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렇게 보고만 있으니 두 사람은 갑자기 기분이 뻘줌해졌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마치 두 사람의 마음속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마음이 매우 불편(不便)하다. 마치 죄인처럼······.


그리고 저음으로 이어지는 질문.


“두 대족장의 말은 백호대가 우리 농민들이 농산물을 빼앗기고 그 야차족들한테 죽임을 당해도 보고만 있다가 말로 타일러서 보내야 했다는 것이오?


그들이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여 빼앗아 가는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면서 협상이나 하자는 것이오?”


“아니, 그런 것이 아니오라······.”


두 사람이 어색하게 말끝을 흐렸다. 하나에서 열까지 틀린 말이 없으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 번 얕보이면 계속 쉽게 보고 많은 것을 요구해 올 것이오.


우리를 쉽게 멸족(滅族)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려고 할 터인데, 그때 가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상황이 되면 어찌하려고 그러시오?


지금 수십만을 동원하여 우리를 멸족시키려고 들면 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들도 많은 피를 흘려서 힘이 약화(弱化)되면 다른 종족에게 잡아먹힐까 봐 못 하는 것이오.


우리는 이 틈을 이용해서 힘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수는 적지만 무력이 강하여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야 더 큰 화(禍)를 막을 수 있습니다.


종족을 지키기 위해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무사들에게 사기를 꺾는 그런 발언은 앞으로 삼가시오.”


“알겠사옵니다.”


한울의 따끔하고 근엄한 질책에 두 대족장은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협의하고 회의가 끝났는데, 나오면서 두 대족장이 머리를 맞대고 수근거린다.


“이렇게 한울이 비 대족장을 감싸고도니 큰일입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갑시다.”


“그나저나 쥬맥 그 녀석이 골칫덩이입니다. 비 대족장에게 더 큰 힘이 되기 전에 어떻게든 치워 버려야 할 텐데.”


“기회가 올 것입니다. 무공이 높다고 늘 이기는 것은 아니지요.”


수상쩍게 수군대며 가는 두 사람을 뒤에서 비 대족장이 바라보고 있었다. 비 대족장은 종족 대회의가 끝나자 바로 백호대가 상주하는 곳에 들렀다.


“그래, 전사자들 장례가 잘 끝났으니 다행이군. 부상자들의 치료는 잘 되고 있나? 나와 함께 둘러보러 가지.”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비 대족장은 부상자 치료소에 들러서 일일이 손을 잡아 주며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거렸다.


그리고 순시가 끝나자 쥬맥과 부대장들을 불러서 잘 싸웠고, 또 수고했다고 치하하며 격려금도 주었고······.


마지막으로 쥬맥의 등을 두들겨 주며 한마디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도 잘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소신을 가지고 하면 된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비 대족장이 돌아가고 나서 분위기가 한껏 살아나고 사기가 올랐다. 비 대족장은 다른 두 대족장이 거론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내비치지 않았다.


괜히 말해 봐야 잘못하면 부하들까지 쓸데없는 정쟁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쥬맥은 오랜만에 주거지에 있는 자신의 천막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늘에는 초승달 옆으로 흰구름이 몇 조각 두둥실 떠가는 사이로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한조각 바람도 휘돌고······.


오랫동안 하늘도 제대로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천가의 다리에 걸터앉았다. 그곳에서 다리를 대롱거리며 흘러가는 물과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


지나간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찬찬히 돌이켜보았다. 혹시 그곳에 잘못한 일은 없는지, 다시 새겨야 할 부분은 없는지······.


그런데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원치 않는 일이지만 싫다고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일!


더구나 이미 백호대의 대장이 되었으니 부하들 뒤로 숨을 수는 더더구나 없었다. 대장이니 어떻게든 부하들의 목숨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 혼자 도덕군자처럼 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목숨이 달린 일이고, 거기에 딸린 가족들까지 생각하면 더욱 더······.


그때, 전에 죄책감에 시달려 본 주거지에 있는 신당(神堂)을 찾았을 때 천사장이 해 주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일단 무사가 되겠다고 도검을 들었으면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그것은 무사의 숙명과 같다는 말.


그렇지만 같은 칼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칼을 휘두르지 말고, 살리는 칼을 휘둘러야 진정한 무인이 된다는 말.


그렇다면 나도 사람을 살리는 칼을 휘두르는 진정한 무인이 될 수 있을까?


한 명을 죽여 백 명을 살릴 수 있다면? 천 명을 죽여서 만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리고 만 명을 죽여 백만 명을 살리 수 있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하나?


최근에 자기가 행했던 일들을 견주어 보니 어렴풋이 자신이 무인으로서 가야 할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거두며 피를 묻혀야 할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래야만 한다면······.


내 동료들과 종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사양치 않고 기꺼이 검을 들겠다. 위선이라는 가면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동료도, 이웃도, 종족도 지키지 못하면서 어쭙잖은 자비와 쥐꼬리만 한 도덕성을 내세우느니, 나는 차라리 조금 욕을 먹더라도 과감히 검을 들겠다!


스스로의 숙명(宿命)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동료와 종족을 살리는 칼이 되어 나아가리라!


그러나···, 오직 하나만은 잊지 말자. 사람을 죽이기 위한 칼이 되지 말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칼이 되자!


“나는 할 수 있다!”


독백처럼 내뱉으며 손바닥이 아프도록 두 손을 움켜쥐고 하늘을 우러르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


“나는 정말로 할 수 있다. 반드시 하겠다고!”


길게 꼬리를 끌며 하늘을 가로질러 사라지는 유성을 바라보면서 쥬맥은 또 이런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칼!


종족과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칼!


정(正)이니 협(俠)이니 허울좋게 무림인들이 외치는 그런 말들은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 뒤에다 권력과 명예와 부를 향한 욕망(欲望)을 몰래 감추지 않았던가?


겉으로는 성인군자(聖人君子)인 척하면서 드러나지 않는 뒤로는 자신이 비난하는 사람들보다 더 추악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들!


항상 가면 속에 숨어 있는 자들!


그러면서 혹시라도 본모습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독버섯처럼 자라는 바로 그 위선자들 말이다.


이제 부모 형제도 없이 홀로 이 세상에 남아 있으니 더 이상 잃을 것도 더 이상 아래로 추락할 곳도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오르막뿐이니!


그러나 결코 그 오르막을 위해서 칼을 쓰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 칼은 그런 데에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바로 흔들리지 않는 영혼을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 이것이 오늘 밤 쥬맥이 자신에게 한 맹세였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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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화해 협상의 결렬 +1 21.07.11 1,351 42 19쪽
82 82화. 참혹한 전투(戰鬪) 21.07.10 1,350 42 20쪽
81 81화. 선발대와의 접전 +1 21.07.09 1,333 44 19쪽
80 80화. 거인족의 침략 21.07.08 1,355 43 20쪽
79 79화. 남은 자의 몫 +1 21.07.07 1,366 44 20쪽
78 78화. 사랑의 절규 +1 21.07.06 1,325 43 20쪽
77 77화. 불타는 것은 재를 남기고 21.07.05 1,331 45 19쪽
76 76화. 뜨겁게 타오르는 불 21.07.04 1,335 45 18쪽
75 75화. 사랑의 불씨 +1 21.07.03 1,357 46 18쪽
74 74화. 새로운 인연 +1 21.07.02 1,357 47 18쪽
73 73화. 최연소 소족장이 되다 21.07.01 1,349 45 18쪽
72 72화. 신의와의 새로운 인연 21.06.30 1,359 45 19쪽
71 71화. 점박이 별이와의 재회 21.06.29 1,346 45 18쪽
» 70화. 피 끓는 혈전 21.06.29 1,340 46 19쪽
69 69화. 백호대와 야차족의 전투 21.06.29 1,349 47 19쪽
68 68화. 백호대 대장이 되다 +1 21.06.29 1,341 46 19쪽
67 67화. 비월족과 소인족의 격돌 21.06.29 1,355 46 19쪽
66 66화. 유리의 결혼 21.06.29 1,354 47 18쪽
65 65화. 금령파와 금령신공 21.06.29 1,367 47 19쪽
64 64화. 백호제마검의 비밀 21.06.29 1,367 47 19쪽
63 63화. 마린챠 모녀의 복수 21.06.29 1,362 47 19쪽
62 62화. 새로운 출발 21.06.29 1,388 44 19쪽
61 61화. 기다리는 지혜를 배우다 21.06.29 1,363 46 19쪽
60 60화. 야차족과의 충돌 21.06.29 1,346 46 18쪽
59 59화. 길거리 생사결(生死決) 21.06.29 1,347 47 18쪽
58 58화. 영웅(英雄)이 되다 21.06.29 1,359 48 21쪽
57 57화. 비루먹은 망아지라고? 21.06.29 1,361 47 18쪽
56 56화. 영웅대회(英雄大會) 21.06.29 1,365 46 18쪽
55 55화. 선배들의 신고식 21.06.29 1,362 48 19쪽
54 54화. 의무 복무 입대 21.06.29 1,351 4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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