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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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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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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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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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52화. 대신전(大神殿)의 완공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대신전에서의 첫 천제를 신단(1월1일)에 올리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끝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제 거대한 백색의 궁전 같은 지붕 위에 마지막 공정인 첨탑을 세우고 있는데······.


혹시라도 정해진 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봐, 태을 선인이 손에 땀을 쥐고 앞에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천령수의 천기와 일치시키려면 방향을 세 치만 좌측으로 틀어라! 아니~ 너무 틀었어! 다시 우측으로 두 치! 그래, 됐다 됐어!”


“와! 마침내 대신전이 완공되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와~ 정말 멋지군요.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모두 완공된 대신전을 바라보며 경탄을 하는데, 천령수 옆에 지은 이 대신전은 원래 천령수가 완전히 자라는 환시력 백 년에 완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너무 잦으니 천인족의 힘을 최대한 결집시키기 위해서, 미리 성수(聖樹)가 클 공간을 남겨 두고 완공시키기로 한 것!


신전의 크기는 길이가 칠십 장에 폭은 삼십 장 정도. 그리고 지면에서 첨탑까지의 높이가 삼십 장에 이르는, 백옥으로 지은 순백색의 대신전이었다.


“와~ 정말 멋지네.”


모두 바라보며 경탄하고 있는 그때!


아무도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빛이 번쩍하며, 굵은 뇌전(雷電) 한줄기가 천령수 나무 끝에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꽝! 쿠르릉~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자 모두 이 거대한 번개를 맞고 힘들게 키운 천령수가 불타 버릴 것 같은 예감에, 불안한 눈빛으로 천령수 위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붉고 푸른빛이 금색과 적색, 흰색의 삼색 광휘에 휩싸여, 천령수 가지를 타고 대신전으로 전이(轉移)되는 것이 아닌가?


“‘어어어?”


모두 놀라서 입만 벌리고 바라보는 가운데, 신전으로 전이된 빛들이 순백색(純白色)의 대신전을 물들였다.


신전 외벽은 위로부터 절반이 청색으로 물들었고, 절반은 땅에 이르기까지 붉은 빛을 띠었다.


그런데 붉다고 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맑고 투명한 광채 때문인지 성(聖)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위쪽의 청색과 아래쪽의 붉은 색이 만나는 경계에서는, 오행의 기운을 띤 색색의 오로라 같은 기운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꼭 물결처럼 어른거리니 마치 신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대신전 내벽은 맨 윗부분이 금령과 같은 금색으로, 중간은 적령과 같은 적색으로, 아래 하단은 백령과 같은 순백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면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광휘로 건물 전체가 빛난다.


그러자 그 모습이 너무 성스러운지라, 주변에 있던 모두가 무릎을 끓고 앉아 두 손 모아 천신을 경배(敬拜)하였다.


“오~ 천신이시여!”


“천신께서 강림하셨도다!”


“천신을 경배하라!”


그러나 사실 이 현상을 태을 선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전에 성스러움을 더하기 위하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모른 체할 뿐이니······.


모두가 천신을 경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태을 선인은 상념에 잠겼다.


사실 이 현상은 천신이 강림한 것이 아니라 실은 천령수 때문이었다.


천령수는 근방의 천지영기(天地靈氣)와 오행(五行)의 기운을 끌어들여 그 기운으로 자라는데, 이제 어느 정도 성체로 성장하여 그 안에 영기가 충만했다.


그래서 그 기와 잘 조화를 이루는 백옥으로 영기가 전이되면서 나타나는 현상(現象)이었던 것!


그래서 항상 천령수 아래에는 일부러 백옥으로 신전을 짓고, 그 기운을 이용하여 천신의 위엄을 나타내곤 했다.


하지만 천지영기가 모두 천신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니, 천신께서 강림하셨다는 말이 전혀 허구는 아닌 셈이다.


물론 너무 광의의 해석이지만 말이다.


단지 여기에서 천신을 경배하고 천제를 지내는 것은, 생명으로서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천신께서 주신 영혼의 빛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우리 인간들의 의지요 바램일 뿐이다!


천신께서 그 얘기를 듣거나 행위를 참작하여 생계나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코 아니니.


그게 아니라면 천신을 모르는 수많은 종족이나 천신을 모시기 이전에 살다 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모두 다 지옥으로?


알지도 못하고 들은 적도 없는데?


천신은 천지법칙으로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그 대행자를 내세워서 생명체가 지켜 온 영혼의 빛만으로 그 쓰임을 결정할 뿐이다.


그러니 내 영혼의 빛이 퇴색하거나 변색되지 않도록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 생명들의 삶 아니겠는가?


하지만 천신을 믿고 올바르게 살면서 영혼의 빛을 지키고 가꾸며 살아간다면, 그 또한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한 방편은 될 것이다.


천신이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던, 그 가르침과 섬기는 방법이 올바르다면 말이다.


천인족은 천신이라고 부르지만 어떤 종족은 하늘에 계시니 하늘님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유일하시니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자도 있고, 누구는 불타라 하고, 누구는 알라라 하며, 누구는 조물주로······.


그리고 자기 민족의 신화에 빗대어 누구는 환인이나 천제라고 부른다.


또 누구는 반고나 옥황상제로, 제우스로, 혹은 나 아레안으로······.


이렇게 천신을 수많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이는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니 각자가 부르는 그 이름 또한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니리라.


추구하는 바가 올바르다면 오르는 길만 다를 뿐 산 정상은 하나이니 모두 거기에서 만나겠지.


그리고 설사 그 정상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면 또 어떠한가? 올바른 정상이면 된 게지.


그러니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그 이름마저 없는 사람도 있거늘······.


태을 선인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툭 내뱉는 한마디.


“세상만사가 다 저 할 나름이지 뭐.”



이렇게 하여 대신전이 완공되고, 준공식을 겸하여 신단의 천제가 마침내 모레로 다가왔다.


천사장과 대신녀는 미리 와서 선인과 신녀들을 지휘하여 천제 준비에 바쁘다. 그리고 한울과 대족장들 외에도 부족장급 부부(夫婦) 백여 명이 천둔산 중턱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맨 앞에는 천령대(天靈隊)의 총대장 구자룬이, 오천 명의 천령대 무사들을 이끌고 길을 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울 부부가 탄 큰 마차를, 시원마 여덟마리가 힘차게 끌고 있다.


그 주변을 한울의 수신호위장 안율을 필두로 하여 백여 명의 호위들이 사방을 지키며 경계를 펼쳤다.


그 뒤에는 대족장들 부부가 나란히 말을 타고 가는데, 역시 그 주변을 오십여 명의 호위들이 지키며 따라간다.


또 그 뒤를 부족장들 부부가 따르고.

그 다음은 일만여 명의 천령대 기마대가 중무장을 하고 뒤따르는데, 일부는 식량이나 천막 등 여러 가지 야숙에 필요한 물품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한울이 마차의 휘장을 걷고 가까이에 있는 호위 무사를 불렀다.


“가서 구 총대장을 잠시 오라 하라.”


“예, 알겠사옵니다.”


지시를 받은 호위가 앞으로 말을 몰아서 달려가더니 곧 총대장과 함께 돌아왔는데, 마차에 다다른 총대장이 말에서 내려 한울께 예를 올리며 여쭌다.


“총대장이옵니다. 찾으셨사옵니까?”


“오늘 밤은 야숙을 하지 말고 시원평원에 있는 처음 주거지에서 묵고 갑시다. 그곳 부족민들도 어찌 지내나 한 번 둘러 봐야겠소.”


“그리하옵소서. 미리 연락을 취해 두겠나이다.”


다시 예를 취하고 뒤로 물러난 총대장이 무사 두 명을 불러서 지시를 내리자, 둘이 부지런히 말을 달려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중간에 진로가 바뀌었다.


“말머리를 시원평원으로 돌려라!”


그렇게 방향을 틀고 가기를 두 시진.


아직 해가 조금 남아 있는 시간에 지난 추억이 많이 쌓여 있는 첫 주거지(住居地)에 도착했다.


한울은 주변을 두루 둘러보고, 부족민들이 사는 집에도 몇 군데 찾아갔다. 생활에 어려움은 없는지, 이곳 생활이 어떤지 등등을 물어보면서······.


처음에 만오천여 명이 이곳에 도착하여 벌써 인구수가 이백사십만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이제 대부분 환시성으로 떠났지만 아직도 이곳에 세 개 부족이 남아 있고, 그 수가 늘어서 이십만을 넘고 있었다.


그러니 처음에 비하면 감히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곳 주거지도 나름대로 시골처럼 정감 어린 풍경을 자아내며, 또 중심가는 도회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쥬맥은 저녁에 어릴 때 자주 놀았던 당산나무 아래 정자에 이르러, 아내 미루와 함께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미루는 자장가를 부르듯이 쥬맥의 어깨를 토닥이며 가만히 저음으로 추억을 적시는 옛 노래를 불러 준다.


풀벌레 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 그리고 어릴적 친구 생각.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추억들에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짓는데······.


그 개구쟁이 친구들은 추억만 남겨 놓은 채 젊은 나이로 벌써 거의가 세상을 떠났다. 그 몹쓸 놈의 전쟁으로!


‘얘들아! 너희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허공에 대고 하나씩 가만히 이름을 불러 본다. 개구쟁이 친구들을······.


그 어리던 꼬마가 벌써 중년이 되어 돌아와,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누우니 감회가 새롭다.


또한 새삼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무상한 세월이 너무 덧없이 느껴진다.


나는 누구였던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 또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선뜻 생각나는 게 없다. 인고의 세월? 영혼의 빛을 지키는 것? 사실 그런 말은 내 인생에서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거친 운명의 시련 앞에서 죽지 않으려고, 물러서지 않고 온몸으로 힘들게 부딪치며 싸워 왔을 뿐이니!


운명에 지지 않으려고 죽음을 불사하며, 그 속으로 뛰어들었을 뿐이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다.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주먹을 움켜쥐고 하늘을 향해 절규(絶叫)하기를 그 몇 번이던가?


하지만···, 이제는 달리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손에 스러진 생명이 벌써 수만 명. 고의로 죽인 자는 하나도 없지만, 정말 피칠갑만 하며 살아가긴 싫다.


'정말 싫어!'


갑자기 신수 주작이 찾아왔을 때 백정처럼 평생 피칠갑이나 하며 살겠느냐고 쏘아붙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삶이란 무엇일까?'


이제껏 정신없이 앞만 보며 쫓기듯이 살아왔건만, 예순이 넘도록 아직도 삶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음에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자신이 잘 살아온 것인지 어떤지 그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다.


다만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운명을 탓하거나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치며 죽음을 불사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것뿐!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에 대한 고민으로 쥬맥은 끝없는 수렁처럼 깊은 상념 속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은 일찍 출발하니 해가 남아 있을 때 천령수 언덕에 도착하였다.


내일이면 신단이니 이미 천제 준비를 모두 마친 천사장과 대신녀가, 직접 진 밖까지 마중을 나왔다.


천령대와 호위들은 모두 진 밖에 머물러 둘레를 경계하고, 구자룬 총대장과 안율 호위장만 안으로 따라서 들어갔다.


이러한 행사에 대비하여 안에도 여러 채의 숙소가 지어져 있기 때문에, 머무는 데는 하등 불편함이 없었다.


진을 벗어나 천령수 그늘에 들어서자 모두 그 광경에 놀랐다.


첫째는 대신전의 크기와 어려 있는 오묘한 빛에, 둘째는 벌써 거대하게 자라서 한눈에 바라보기 어려운 천령수의 장엄한 모습 때문에······.


둘 다 성스러움이 묻어나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분위기를 숙연(肅然)하게 만드는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내일이 천제를 올리는 날이지만 모두 대신전에 들어가서 천신께 예를 올리고, 신전의 내부와 천령수의 둘레를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쥬맥은 중간에 여러 번 봤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변화가 있으니 또한 새롭게 느껴진다.



다음 날.


날이 밝아 오자 모두 대례복으로 갈아입고 대신전으로 모여들었다.


전과 다르게 좌측에는 선인들이 모두 늘어서 있고, 우측에는 신녀들이 줄줄이 늘어섰는데······.


모두 흰 제복을 입고 있다. 천사장과 대신녀가 앞으로 나와서 향을 피우고, 백옥의 술잔에 금령으로 빚은 축성주(祝聖酒)를 따라서 큰 제단 아래에 있는 중간 턱에 올렸다.


그때, 천정의 금색 광휘가 동질의 기운을 가진 술잔으로 떨어져 내려 주변을 온통 금빛으로 물들였다.


그 모습 또한 신비하고 성스럽기 그지없었다. 다음에는 적령으로 빚은 축성주에 적색의 광휘가 떨어져 내린다.


이어서 백령으로 빚은 축성주에는 흰 빛의 광휘(光輝)가 떨어져 내려, 천지인(天地人) 세 잔의 축성주가 각각의 광휘로 빛나며 조화를 이루나니······.


그 신비스럽고 성스러움이 저절로 모인 사람들의 고개를 숙이게 하였다.


이렇게 축성주를 올리고 세 번 큰절을 한 뒤에, 천사장이 다시 그 앞에 꿇어앉아서 성전의 완공을 천신께 고하는 축문을 읽는다.


“천신이시여! 오늘 천인족이 마침내 이곳에 천신의 성전을 완공하여······.”


이어서 신단에 즈음한 천신의 사랑과 은덕에 찬미와 경배(敬拜)를 드리고 물러났다.


이어서 천지의 음양이기(陰陽二氣)를 나타내는 상징인 챤들라와 샨들라의 꽃을 제단에 바치고······.


한울이 나와서 다시 축성주를 올린 뒤, 종족을 위한 기원을 드리며 큰절을 세 번 올렸다. 그러자 모두 따라서 큰절을 올리면서 천제(天祭)가 끝이 났다.


천제가 끝난 뒤에는 서로 인사를 나누며 새해의 덕담을 주고받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올해도 항상 건강하십시오.”


신전에서 모두 물러나는데, 선인들과 신녀들이 제단에 가득 차려져 있던 금령과 적령, 백령을 내려서 큰 가죽 부대에 담아 모두 한울의 마차에 실었다.


이것들은 성내로 가져가 각 부족별로 나누어서, 명절에 외롭게 지내는 사람들이나 생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줄 것이다.


출발하기에 앞서 한울이 전송을 나온 태을 선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가끔 성도에도 좀 놀러 오십시오.”


“감사하옵니다. 항상 강녕하시옵소서.”


한울이 물러나자 쥬맥도 아내와 함께 급히 선인께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제 아내인데 전에 보셨지요? 잘 지내세요. 또 찾아 뵙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또 뵙겠습니다.”


“그려, 그려, 조심히들 가게. 늙은이야 뭐 걱정할 게 있겠나.”


주름진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고 흐뭇한 눈으로 쥬맥 부부를 바라본다.


* * * * *


천인족의 신단이 지나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천인족이 태양력을 쓰는 것과는 달리,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태음력을 사용하는 야차족이 섣달 그믐날을 맞이했다.


주요 본거지인 야아란의 북쪽 에린강 주변에서 암야축제를 벌이고 있는데······.


근래에 보기 드물게 수만 명이 모여들었고, 이번 축제에는 비승야차인 수라챠도 함께 참여했다.


수라챠는 벌써 나이가 스물셋에 이르러 완전히 성장하였기 때문에, 야차족에서는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전사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비승야차는 나이 스물이 넘어 성년이 되면, 모두가 당연한 것처럼 야신(최고수장)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수라챠도 이미 야신이 되어 수하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키가 십칠 척이 넘고 양날개를 펴면 삼 장이 넘어서, 모두 그 큰 덩치에 눌려 감히 도전하는 야차족이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양날개가 접히는 관절 부위에는 날카로운 악마의 발톱 같은 것이 솟아 있었다. 그러니 손이 아니라 날개로 한 번 휘둘러 쳐도, 어지간한 야차족은 날갯짓 한 번에 나가 떨어진다.


혼자서 여러 명의 여자를 끌어안고 뒹굴던 수라챠. 이제는 이 짓도 신물이 난다. 그러자 옆의 심복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봐라! 이제 이 짓도 별로 재미가 없구나. 사내라면 당연히 피바람이 불어서 전율이 스치는 전장의 긴장감(緊張感) 속에서 살아야지.


도대체 맨날 여자들 속에서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냐? 무언가 이보다 더 재미난 일이 없겠느냐? 전쟁(戰爭) 같은 것 말이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측근 중 한 명인 적모야차가 허리를 굽실거리며 답했다.


“이미 우리 종족은 야신께옵서 일통하셨기에 종족 내에서 전쟁을 할 만한 일은 없사옵니다. 모두 야신께 진심으로 충성하옵니다.”


“그래? 아니 우리끼리 싸울 것 뭐 있어. 다른 종족 놈들과 싸우면 되지. 비월족한테 전에 당한 수치(羞恥)를 돌려줘야 할 텐데······.”


“비월족을 치려면 우르산맥 북단의 천주봉(天柱峰)쪽을 넘어야 하는데, 그곳에는 마수나 요수가 많이 살고 있어서 전사들이 넘기가 어렵사옵니다.


또 비월족은 하늘을 날아다니니 수백 명이 하늘에서 야신님께 달려들면 저희가 도울 수도 없고 위험하옵니다.”


“그러면 거인족을 치면 될 것 아닌가? 거인족은 어때?”


“전에 거인족 이만과 우리 야차족 오십만 명이 싸웠다가, 삼십만 명이 넘게 죽었사옵니다. 덩치가 너무 커서 우리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으니 싸워 봤자 손해이옵니다. 참으시옵소서.”


“이도 저도 다 안 된다면 누구랑 싸우란 말이냐? 맞다, 딱 맞춤으로 하나 있네. 천인족! 천인족이라고 숫자도 몇 안 되는 놈들이 있잖아?”


“천인족은 미라챠께서 친구가 있으니 적대시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사옵니다. 게다가 천인족은 우리보다 덩치는 좀 작지만 싸움을 무척 잘해서, 거인들도 여러 번 싸웠으나 모두 졌다고 하옵니다.”


“뭐? 대모께서? 그 어릴 때 산속에서 만났다는 친구?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그놈 때문에 대사를 그르칠 수야 없지. 치려면 우르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가는 길은 있느냐?”


수라챠는 이미 결심이 선 모양이다.


심심하니 전쟁놀이로 가장 만만하다고 생각되는 천인촉을 치기로 말이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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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3화. 살모야차(殺母夜叉) 21.09.09 1,285 9 19쪽
142 142화. 대이주와 축제(祝祭) 21.09.08 1,281 10 19쪽
141 141화. 환시성의 완공(完工) 21.09.07 1,297 11 18쪽
140 140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1.09.06 1,267 11 17쪽
139 139화. 사필귀정(事必歸正) 21.09.05 1,273 11 18쪽
138 138화. 추풍낙엽 같은 생명들 21.09.04 1,274 11 19쪽
137 137화. 비겁하게 피해가지 않는다 21.09.03 1,280 11 18쪽
136 136화. 요계왕과의 결투 21.09.02 1,301 11 19쪽
135 135화. 요계(妖界) 수행 21.09.01 1,297 11 18쪽
134 134화. 소원림의 복수전(復讐戰) 21.08.31 1,316 10 18쪽
133 133화. 새로운 한울 21.08.30 1,299 10 19쪽
132 132화. 헤어지기 싫은 친구들 21.08.29 1,306 11 19쪽
131 131화. 인수(人獸) 합격(合擊) 21.08.28 1,305 11 18쪽
130 130화. 요수 소탕작전 21.08.27 1,305 11 18쪽
129 129화. 환시성 내성 완공 21.08.26 1,315 11 19쪽
128 128화. 적의 생명도 중시한다 21.08.25 1,286 10 17쪽
127 127화. 우르강의 혈투(血鬪) 21.08.24 1,292 11 19쪽
126 126화. 반인족의 침략(侵略) 21.08.23 1,290 12 18쪽
125 125화. 아구산의 화산 폭발 21.08.22 1,319 13 18쪽
124 124화. 새로운 물결 21.08.21 1,337 12 18쪽
123 123화. 지옥의 심판(審判) 21.08.20 1,308 12 18쪽
122 122화. 유계의 파천대(破天隊) 21.08.19 1,314 13 19쪽
121 121화. 유계(幽界) 수행 21.08.18 1,354 13 18쪽
120 120화. 비승야차(飛昇夜叉) 출생 21.08.17 1,314 15 18쪽
119 119화. 혼원은하무량신공 대성 21.08.16 1,322 15 18쪽
118 118화. 피바다 거원해(巨怨解) 21.08.15 1,324 13 19쪽
117 117화. 야차족과 거인족의 혈투 21.08.14 1,332 13 18쪽
116 116화. 반인족 첩자(諜者) 사건 21.08.13 1,311 14 19쪽
115 115화. 어수족의 시조신(始祖神) 21.08.12 1,317 13 18쪽
114 114화. 어수족과 천망의 싸움 21.08.11 1,334 1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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