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818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2.19 09:00
조회
15
추천
0
글자
10쪽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4)

DUMMY

“뭐해?”


얼추 아이템 정리를 끝낸 뒤, ‘저것’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통로를 가로 막고 있는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저것.


고민을 하다가 문득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서 뒤를 돌아보니 고서우가 프리즘 앞에 서있었다.


“아 이거 말이에요.”


대략 4m는 될 법한 거대한 유리 덩어리가 조금씩 걷혀가는 구름을 헤집고 나온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 앞에서 멍하니 손끝으로 프리즘을 만져보고 있는 녀석.


“그게 왜?”

“이거 이대로 두고 가도 되는 건가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요.”


프리즘을 만지며 살피던 눈길이 나를 향했다.


“이거 이대로 두고 가도 되냐는 거예요. 몬스터가 아니니까 굳이 부술 필요는 없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몸짓이 만화 캐릭터 같기도 하다.


“그러게. 몬스터가 아닌 게... ”


순간 몬스터가 아닌 줄 알았던 나무와 신나게 한바탕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배 안색이 안 좋아요.”

“미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그냥 가도 되지 않을까?”

“그런가...”


아쉬운 듯이 다시금 프리즘을 바라보던 고서우가 불안하게 싱긋 웃었다.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는 거죠?”

“응...?”


채 대답도 듣기 전에 고서우는 칼을 들어 프리즘을 향해 휘둘렀다.


저러다가 날 다 나가지!!


잔소리가 하고 싶은 욕구를 참고는 녀석이 하는 행동을 마저 바라봤다.


“생각보다 단단하네. 뭐 상관없나.”


고서우는 의외라는 듯이 자신의 칼을 바라봤다.

자신이 휘두르는 칼이라면 분명 산산조각을 냈어야 한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저렇게 큰 걸 벨 수 있겠어?”

“뭐. 안 될 것도 없죠.”

“...”

“아아. 아니. 뭐든 계속 베다보면 깨진다는 거죠. 빗물에 바위가 쪼개지듯이 말이에요.”


녀석은 칼을 넣고 자신의 앞으로 양손으로 들어 올려 와이퍼마냥 움직였다.


“그래서 그건 왜 부수고 싶었던 건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고서우라는 인간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행동에는 대체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다.


“아. 이거요. 이거.”


녀석은 생각났다는 듯이 자신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프리즘 조각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이거... 목걸이로 만들면 예쁘겠다 싶어서요.”

“목걸이?”

“네. 저는 귀걸이는 안 하니까요.”


라면서 자신의 하얗고 작은 귓불을 잡아 보여준다.

녀석의 말처럼 귓불에는 이전에 구멍을 뚫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목걸이라...”


내가 다가가 손을 내밀자 녀석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될 법한 크기의 유리 조각을 내밀었다.


자세히 바라보자 몇 개의 글자가 떠올랐다.


[이름 : 빛이 모여드는 곳의 파편

나이 : 2분

특성 : 마력이 흐르는 유리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신이 있었으니, 그 빛이 희망의 불꽃이 되리라.” ]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신...”


나도 모르게 아이템에 적혀있는 문구를 따라 읽었다.


“네?”

“으응... 아냐.”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신이 존재하면서도 모든 생명을 지킬 순 없었나 보네.


조금 씁쓸한 기분이 되어 프리즘의 파편을 고서우의 손에 다시 올려 두었다.


“선배도 하나 챙기실래요?”

“나?”

“네. 뭐, 이미 조각나 버린 거 하나 더 챙긴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말한 고서우는 이미 허리를 숙여 쓸 만한 파편을 찾고 있었다.


“음...”


마땅한 걸 찾지 못했는지 방금 주운 파편과 처음 주운 파편을 각각 한 손에 쥐고 고민을 하고 있는 녀석.


“아무리 봐도... 이게 더 큰데... 그래도...”


아무래도 뭐를 줘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듯 했다.


“이거면 돼.”


녀석이 방금 주운 파편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어차피 딱히 생각지도 못했던 거고.”


몬스터를 잡고 아이템을 줍는다.

어쩌면 이변이 일어난 이래로 생겨난 단순하지만 확실한 생존 방법이었다.


그랬는데... 이렇게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걸 탑 내부에 있는 무언가로부터 채집을 해서 얻은 아이템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같이 가요!”


먼저 뒤를 돌아 가야할 길로 걷고 있자 뒤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저건 어떻게 할 거예요?”

“음...”


멀리서 봤을 때는 거대한 덩어리로 보이던 그것은 놀랍게도 유리 사슴이었다.

다만 살인지 털인지 무지막지하게 큰.


“옆에 지나갈 만한 틈은 없는 것 같아요. 위에도 없고!”


고서우가 손을 자신의 눈썹에 맞춰 대고는 멀리 내다보듯 잠들어 있는 유리 사슴의 머리 위를 바라봤다.


“이왕이면 깨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앞서 봤던 유리 사슴들은 고서우가 칼을 꺼내 든 것만으로도 달려들었다.

그걸 보고도 자고 있던 몬스터를 깨울 자신도 없지만.


“자신 없으면 제가 깨울 게요.”

“아니. 아니. 잠시 기다려봐.”


물론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선배.”

“응?”

“뭘 고민해요! 자고 있는 상대를 치는 게 더 쉽다고요!”


해맑게 웃으며 말하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서 악마가 보였다.


“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앞선 몬스터들을 모두 쓸어버린 고서우라면 자고 있는 몬스터를 상대로 한 번에 끝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던 차에 이미 고서우의 칼은 칼집 밖으로 나와 있었고, 그 칼끝은 이미 몬스터를 지나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끼에에에엑!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 같은 귀를 찢을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누워있던 녀석이 일어났다.


앉아 있을 때도 통로 구멍을 다 막던 녀석이 일어났으니. 그 크기가 프리즘과 맞먹었다.


“한 번에 못 끝냈을 때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그...러게요?”


해맑음을 잃지 않은 미소에 딱밤을 한 대 시원하게 먹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지금 여기서 고서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목숨에도 큰 일이 생길 테니까.


“일단 시작한 거... 같이 해보자.”


라고 말했지만 자신은 없다.

챙겨온 음료도 없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뛰어나온 탓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선배. 긴장 풀어요.”


그 모습을 봤는지 고서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흘러가듯 말했다.


“저만 잘 따라와요.”


[바람의 축복이 함께합니다.]


안내창과 함께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동속도가 30 상승합니다.]

[움직임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잇따르는 안내창과 함께 긴장이 풀려 앞에 있는 상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방금 전까지 두렵다 못해 위압감마저 느껴졌던 몬스터가 그간 봤던 다른 몬스터처럼 느껴졌다.


“마음먹기 나름이라고요. 제가 시선을 끌 테니까. 공격해 주세요.”


고서우는 그렇게 말하더니 제자리에서 높게 뛰어올랐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황금빛의 잔상이 남았다.


끼에에에엑!


유리 사슴이 자신의 주변을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고서우를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말이 고개를 흔들었다지 일반 사슴의 털 대신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두르고 있던 유리 사슴이었다.


조금만 스쳐도 깊게 베일 수 있었다.


그 순간 고서우의 칼이 무언가를 베며, 녀석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쿵-


예리한 유리 조각의 뭉치로 보이는 것은 유리 사슴의 꼬리였다.


바닥에 떨어진 꼬리는 산산조각이 나더니 빛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후.”


흐르지도 않는 땀을 닦아 내고 있는 고서우는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그저 재미있는걸 발견했구나 싶겠지만, 땀 대신 흐르고 있는 붉은 줄기.


“선배. 안 들어오시면 제가 다 잡을 거예요.”


그렇게 말한 고서우는 그대로 다시 뛰어올라 한 마리의 파리처럼 유리 사슴의 주변을 맴돌았다.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다치며 싸우고 있는 모습을 어찌 그냥 보고 있으랴.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오르자 순식간에 유리 사슴과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점프력.


힐끗 바라 본 고서우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유리 사슴의 뒷다리에 난 유리를 베었다.

깨져서 잔해가 되어 튕겨 나가는 조각들이 하얀 피부를 베고 지났다.


비명소리에 가까운 몬스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높게 든 칼로 몬스터의 뒷목을 베었다.


아마도 녀석은 처음부터 이 부분을 알고 있었으리라.


아래에 있었을 때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부분.

몸통과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유리의 결이 바뀌는 부분.

고서우는 이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뒤쪽만을 공격하고 있었다.


유리 사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서 내가 이곳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칼끝에서 약한 것들이 깨지는 수많은 진동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조각이 난 유리 잔해들이 피부를 찢고 지나갔다.

유리가 스치고 지나간 뺨이 불타듯 뜨거웠다.


하지만 몬스터를 가르고 있는 이 칼에서 한 시도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마침내 자잘했던 진동이 멈추고, 어떠한 해방감 혹은 허전함과 함께 바닥에 내려왔고,

유리 사슴의 거대한 몸이 기우뚱하고 균형을 잃더니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쿠웅-!


바닥의 진동과 함께 크고 작은 유리 조각이 나를 향해 날아오다가 이내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이스 선배!”


손을 높게 들고 뛰어오는 녀석의 손에 손바닥을 부딪쳤다.


“나이스는 무슨. 첫 번째 구간에서부터 벌써 이렇게 너덜너덜해졌는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선배도 기분 좋아 보이는데요?”

“그럴 리가.”


양뺨에 홍기를 띠고 웃고 있는 고서우는 굉장히 즐거워보였다.


나또한 그런 얼굴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7 죽음을 피하는 방법(3) 24.04.24 19 0 12쪽
186 죽음을 피하는 방법(2) 24.04.22 22 0 12쪽
185 죽음을 피하는 방법(1) 24.04.19 20 0 12쪽
184 역할극(5) 24.04.17 22 0 12쪽
183 역할극(4) 24.04.15 19 0 13쪽
182 역할극(3) 24.04.12 23 0 11쪽
181 역할극(2) 24.04.10 23 0 12쪽
180 역할극(1) 24.04.08 22 0 13쪽
179 무대 밖에서(5) 24.04.05 23 0 12쪽
178 무대 밖에서(4) 24.04.03 25 0 12쪽
177 무대 밖에서(3) 24.04.01 26 0 12쪽
176 무대 밖에서(2) 24.03.29 21 0 13쪽
175 무대 밖에서(1) 24.03.27 22 0 11쪽
174 증명(5) 24.03.25 19 0 12쪽
173 증명(4) 24.03.22 17 0 13쪽
172 증명(3) 24.03.20 20 0 13쪽
171 증명(2) 24.03.18 20 0 11쪽
170 증명(1) 24.03.15 22 0 13쪽
169 살아간다는 건(4) 24.03.13 19 0 15쪽
168 살아간다는 건(3) 24.03.11 18 0 12쪽
167 살아간다는 건(2) 24.03.08 17 0 13쪽
166 살아간다는 건(1) 24.03.06 14 0 13쪽
165 헤나투(5) 24.03.04 16 0 14쪽
164 헤나투(4) 24.03.01 13 0 11쪽
163 헤나투(3) 24.02.28 16 0 12쪽
162 헤나투(2) 24.02.26 18 0 12쪽
161 헤나투(1) 24.02.23 13 0 10쪽
160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5) 24.02.21 20 0 13쪽
»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4) 24.02.19 16 0 10쪽
158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3) 24.02.16 15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