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되는 홍수
링겔액이 다 떨어지자 혁수는 뒷 정리를 해준 후 푹 쉬라고 당부하고는 한준의 집을 나갔다. 한준은 컴퓨터를 키고선 usb를 끼웠다. 곧 컴퓨터가 usb를 인식하고 탐색창을 띄웠다.
"압축파일이네."
더블 클릭을 하자 암호를 묻는 창이 나왔다.
"암호?"
다행이 힌트 창이 깜빡이고 있었다. 힌트 창을 누르자 글자가 표시되었다.
-우리가 함께 갔던 해수욕장-
잠시 울컥했던 한준은 암호 창에 '대천'이라고 쳤다. 바로 압축이 풀리고 음성 파일이 하나 나왔다. 한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파일을 더블클릭했다.
[안녕, 한준아.]
스피커에서 들리는 미림이의 목소리에 한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가 이 말을 듣고 있다면 이미 모든 일이 끝난 뒤겠지. 미안해, 한준아. 너를 그렇게 모질게 떠나버려서. 내가 떠난 건 결코 네 잘못이 아니야. 사실은 내가 못 견뎌서였어. 그래서 너에게 몹쓸 짓을 한 거 같아.
나. 미래를 봤어. 그것도 두 가지 미래를 말이야.]
한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가지 미래는. 너와 내가 함께 하는 미래야. 너와 나. 정말 행복하게 지내게 돼. 너와 함께 한 10일.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날이었어. 그리고 그 미래는 계속해서 이어지지. 하지만 네가 말한 데로 전쟁은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어가.]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다가 다시 말이 이어졌다.
[또 한 가지 미래는. 내가... 너를 떠나는 미래야. 네가 많이 화나고 아파하게 되지만. 그래도 넌 그걸 계기로 세계의 미래를 바꾸는 행동을 시작해.]
한준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에 눈을 부릅 떴다.
[성공여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해. 그 미래를 처음 봤을 때. 나... 정말 괴로웠어. 내 선택에 따라 너의 행동이 바뀌고, 그로 인해 세계의 미래가 바뀐다니.]
"말도...안 돼..."
한준은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싫었어... 내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갈린다니... 정말...정말... 그냥 모른 척 하고 너와 함께하는 생을 택할까 하고 정말 많이 생각했어. 세상이... 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그들을 위해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를 아껴주는 너를 떠나야한다는게...]
미림이의 목소리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난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어. 100억 가까이 사람들이 죽는 거... 지켜볼 자신이 없어. 그래서... 널 떠날 결심을 했어. 그러면 한준이 네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일 테니까.]
한준의 눈에도 눈물 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걱정은 하지마, 한준아. 그래도 나 희망이 생겼다. 처음이야. 내 선택에 의해 달라지는 미래를 본 거. 난 여지껏 미래라는 게 바뀔 수 없다고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내 선택으로 달라지는 미래를 보았어. 이건... 한준아. 네 덕분인 거 같아. 네가 나를 바꿔줬기에. 나도 내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된 거 같아. 거기에 너무 고마워. 그런데... 그렇게 고마운 널... 떠나는 거 너무 힘들어.]
미림은 거의 통곡 수준으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래도...그래도 정말... 너와 함께 있고 싶었는데... 정말 너랑 함께 있고 싶었는데...]
한준은 입을 틀어막았다. 우우 하는 신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한준도 같이 통곡했다.
[한준아... 부탁...이야. 사람들을... 세상을 구해줘.]
한준은 격통 속에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알았어. 내가...내가 할게...
미림은 한참을 울다가 겨우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한준아...]
파일이 끝났다. 한준은 허물어지다 못 해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준은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묻고 속으로 외쳤다.
내 잘못이야. 내가 소심해서. 내가 우유부단하고 멍청하고 한심해서. 빨리 행동을 못 해서.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진작에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내가 겁 먹지 않았더라면. 내가... 내가...
한준은 한참을 그렇게 자책하며 울고 또 울었다.
- 작가의말
즐감하세요.^^ 내일 마지막 화가 되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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