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처음이자 마지막 이벤트
화들짝 놀란 남구가 헛숨을 토해내며 감전이라도 당한 듯 펄쩍 뛰었다.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쫌!’
냉철함을 생명같이 여기던 남구의 심장이 쿵덕쿵덕 미친 듯이 널뛰었다.
‘전체 메시지! 젠장, 하필이면 대비할 여유도 없이 바로 시작되다니!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나마 다행인 건가?’
간발의 차이였다.
형편없는 몸뚱이를 바꿀 절호의 기회는 그래도 날아가지 않았다.
‘은성이가 총력을 다했겠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나 보군.’
남구가 잡아먹을 듯이 은성을 꼬나보았다.
눈앞에 난데없이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기분 좋게 웃던 은성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한참을 웃고 떠들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시에 멈추었다.
남구를 주시하던 선생의 시선도 갈 곳을 잃고 허공을 헤맸다.
누구를 막론하고 저마다 한결같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남구는 벌떡 일어나 다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운동장 한가운데 커다랗게 소환진이 빛을 발하며 점멸하고 있었다.
화단에서 나뭇가지를 정리하던 선생이 진의 발광에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할머니를 구할 길이 없겠구나!’
시간이 조금이라도 주어졌다면 수십 년 만에 뵙는 할머니를 모시고 최대한 안전하게 지낼 은신처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머니께 달려가는 것은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꼴이었다.
어릴 적부터 홀로 키워주신 할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속에 처연함이 밀려왔지만, 몸은 교실 문을 열어젖히고 복도를 내달렸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최은성에 대한 원망도 현재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약한 육신도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 머릿속 한구석에 밀어버리고 계단을 내려가며 앞으로의 생존 전략을 생각했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일, 원망과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학교 건물에서 뛰쳐나온 남구가 미리 보아둔 선생을 향해 멈추지 않고 곧장 내달렸다.
선생은 넘어진 화단에서 엉거주춤 일어났지만, 엉덩이에 덕지덕지 묻은 흙을 털어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운동장 가득 번쩍이는 진의 경이로운 광원에서 휘둥그레 뜬 눈을 떼지 못한 채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었다.
“헉헉, 선생님! 그 가위 좀 빌려주세요.”
“어?”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선생의 손에서 조경 가위를 낚아챘다.
“어?”
어리둥절한 선생이 점멸하는 빛무리 속으로 어느새 들어서는 남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똑같은 단어를 다시 뱉어냈다.
“어?”
발밑의 진에서 발생하는 광원이 더는 깜빡이지 않았다.
극지방의 오로라처럼 은은한 푸른빛을 내며 지속해서 온전한 광채를 발산했다.
소환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였다.
‘곧 소환되겠지?’
인원이 확보되면 또는 일정 시간에 다다르면 진 안에 있는 사람들을 어딘가로 보낼 것이다.
남구도 처음이었다.
과거에는 참여하지 않았었다.
과거, 남구는 작고 나약한 몸뚱이였으나 그렇다고 남의 몸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었다.
손목을 두 번이나 그었었지만 그건 단지 수철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어설픈 충동이었다.
자신에게 애착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얼굴만큼은 조금 생겼다고 생각했었나? 맞아! 그 당시에는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내가 외모에 신경을 쓰던 시절도 있었군.’
“풋!”
남구가 문뜩 떠오른 한심하기 짝이 없던 시절의 기억에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자기 몸을 버리고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의 몸을 얻는다라······. 선뜻 결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체 시스템 메시지는 가타부타 부연 설명 없이 막연하게 달랑 한 줄이었다.
부작용으로 죽을 수 있다는 엄포 말고는 어떠한 보장도 약속도 조건도 없었다.
하려면 하고 싫으면 말라는 식의 배짱이었다.
자신의 몸뚱이에 애착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난데없이 하루아침에 지금 당장 신체를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분명했다.
메시지가 지칭한 타인의 육체가 자기 육체보다 더 건강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연령이나 성별이 다를 수도 있었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
눈앞에 떠올랐던 시스템의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도 드물 것이고 부작용으로 죽고 싶은 이도 없을 터.
남구도 당연히 메시지를 믿지 않았었다.
그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었다.
교실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들과 화단에 멍하니 서서 바라보는 저 선생과 한 치도 다르지 않게 행동했었다.
그 결과 작고 나약한 몸을 이끌고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멸시와 구박을 받거나 소외되어 모진 세월 연명했었다.
또한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어지간해서는 쉽게 바뀌지 않았었다.
남구가 새로 갓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도 친구들은 왕따에 부적응자며 잉여 인간이라 친절히 일러주고는 했었다.
조금 있자니 건물 밖으로 은성이 걸어 나왔다.
‘역시 전과 똑같이 행동하는군.’
부리부리하게 큰 눈과 짙은 눈썹 때문에 강한 인상이었다.
과거의 몸뚱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키도 크고 다부진 체격에 잘 생기기까지 했다.
언제나 여유만만에 자신감이 넘쳤으며 위풍당당했다.
전교에서 손꼽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예의 바르며 모범적이라 선생들도 좋아했다.
주변에는 항상 따르는 아이들이 바글바글 몰렸고 그런 아이들을 구름 떼처럼 몰고 다녔다.
‘저런 녀석이 왜 몸을 바꾸길 원하는 걸까? 알 수가 없네?’
다른 몸을 얻은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강한 정신력과 의지의 소유자여서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었다.
둘 다 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은성은 새로운 몸을 얻었었다.
인류 최강자였다.
은성이 이끄는 무리에 대적할 적수는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한없이 나약하기만 했던 남구가 초반을 버틸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성이 남구를 보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건넸다.
“너 따라왔다.”
‘뻥치고 있네! 원래 왔을 거면서.’
그 대단했던 은성마저 지금은 긴장으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소환진에 들어온 은성이 남구의 어깨를 격려하듯 툭툭 두드렸다.
은성의 가벼운 손길에 앙상한 남구가 휘청거렸다.
‘자기 밑으로 보는 버릇은 여전하구만.’
“근데 그건 왜 갖고 있어?”
은성의 시선이 조경 가위를 가리켰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찔러 죽이려고 그런다.’
“그냥!”
비치된 육체보다 소환된 사람이 많다면 이후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그들의 패턴을 미루어보자면 어떤 형태로든 분명 데스 매치가 벌어질 것이다.
‘강한 신체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일어나겠지. 지금 난 허약하기 짝이 없는데······. 잘 버텨봐야지 뭐 별수 있나!’
교복 바지춤에 커다란 조경 가위를 찔러 넣고 웃옷을 여몄다.
양손으로 사용하는 공구인 만큼 너무 크고 길어서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은성이 얻었던 신체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은성과 같은 곳으로 전송될지 아닐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만약 같은 곳으로 소환된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 대단한 몸뚱이를 내가 취해야겠어. 네가 주도한 미래는 어차피 성공하지 못한다고.’
부작용으로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종종거리며 진 안으로 들어온 웬 여자아이를 끝으로 더는 합류하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 담장 너머로 이곳 운동장처럼 푸른 빛을 발하는 몇 군데가 멀찌감치 보였다.
남구의 시선을 따라 은성과 여자아이도 군데군데 공중으로 피어오르는 푸른 광원을 쫓아 고개를 돌려댔다.
“이게 대체 뭘까? 저것들은 또 뭐고?”
은성은 운동장 바닥을 발 앞부분으로 콕콕 찌르며 혼잣말처럼 물었다.
은성의 질문에 남구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 건물 창가에는 온통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밖을 내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생과 교직원 누구를 막론하고 경황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근데 쟤는 왜 자꾸 날 쳐다보지? 말라비틀어진 놈 처음 보냐?’
진 안에서 기다리는 내내 여자아이는 은성을 보지 않았다.
남구만을 힐긋힐긋 곁눈질했다.
‘보통은 은성이 같은 애를 힐끔거리지 않나? 내외하나?’
어떤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처음 보는 여자아이는 남구만 힐끔거리다 말을 붙였다.
“너도 몸을 바꾸고 싶니?”
여자아이는 남구가 몸을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묻고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자기가 알아서 수긍하고 있었다.
‘나 원 참! 동병상련이다. 너도 만만치 않게 빵빵하거든? 꼭 하얀 찐빵 같다.’
찐빵처럼 하얀 피부에 찐빵처럼 비만이었다.
‘까만 눈동자와 까만 머리, 까만 눈썹은 팥고물 같구나!’
찐빵 같다고 속으로 흉은 봤지만, 이 여자아이의 얼굴은 눈에 확 띄었다.
칠흑같이 짙은 흑색과 눈처럼 투명한 백색의 명확한 명도 대비는 안구의 구조상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거참, 어지간히 말똥말똥하게 쳐다보는군.’
어린아이라 그런지 눈빛이 생기있고 순수했다.
맑은 눈동자 역시 검은색과 하얀색의 대비가 극명했다.
‘그런 체형으로 귀엽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야.’
남구는 여자아이의 또렷한 눈망울을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봤다.
하마터면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뻔했다.
‘한동안 이런 얼굴은 보기 힘들었지!’
이런 선량한 얼굴을 한 사람들은 먼저 다 죽어 버렸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차들만 판치는 세상으로 변해 갔다.
평범했던 사람들의 인상 또한 악귀처럼 바뀌어 갔다.
괴물이 되지 않으면 괴물에게 잡아 먹히는 세상이 또다시 도래했다.
‘아가야, 이 아저씨는 너처럼 어쭙잖은 미적 욕망 때문에 몸을 바꾸려는 게 아니란다. 내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을 네가 아니?’
여자아이는 남구가 자기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구의 시선이 여자아이의 얼굴에서 서서히 밑으로 내려갔다.
흠칫한 여자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당혹감이 어렸다.
저도 모르게 양손을 교차해 역부족이지만 앞섶을 가렸다.
여자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포동포동한 전신을 이곳저곳 훑어보고 아이가 지었던 표정을 흉내 내며 몸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만하다는 듯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과하게 풍만한 여자아이는 눈치가 빨랐다.
우유처럼 하얀 뺨이 홍당무가 됐다.
몸을 움츠리고 어쩔 줄 몰라 하다 발끈하여 꽥 소리를 질렀다.
“야! 강남구!”
‘나는 너를 모르는데 너는 나를 어찌 아니? 하긴 날 모르는 애는 없겠지!’
흥분한 여자아이의 무거운 발 구름과 동시에 진의 광원이 별안간 강렬해졌다.
“어맛!”
“으윽!”
놀란 여자아이와 은성이 외마디 비명을 뱉어냈다.
‘소환 시작이군!’
맹렬하게 폭사하는 진의 광채에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긴장시켰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빠르게 대응할 준비를 했다.
파악-
격렬한 빛과 함께 사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아악!”
“꺅!”
“엄마!”
“어이쿠!”
꽈당- 우당탕-
“괘, 괜찮아요?”
“여, 여기는?”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고 바닥에 구르며 사람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사방으로 휘젓고 당혹스러운 눈동자를 빨빨거리며 굴려댔다.
은성과 과하게 풍만한 여자아이도 공간 이동에 놀라 온몸을 휘청댔다.
남구는 소환되자마자 몸을 낮춰 중심을 잡고 날카롭게 뜬 눈으로 재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가며 상황 파악에 여념이 없었다.
생명의 핵에 의해 과거로 역행했을 때보다는 후유증이 한참 덜했다.
아니, 후유증이라는 것이 없었다.
이 정도 공간 이동은 여러 차례 경험이 있어 익숙했다.
바로 시야가 트이고 몸도 이상 없이 잘 움직였다.
‘이곳은 지구가 분명해!’
그들이 지구에 확보해둔 아지트 중 하나일 것이다.
건물의 벽체나 바닥, 천장, 기둥 등의 구조물에 마감도 없이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초반부터 생명 에너지를 과하게 투자할 필요는 없겠지. 생각보다 손익계산이 분명한 놈들이니.’
초반에 으레 그러하듯 광범위하게 시스템을 이식하느라 대량의 생명 에너지를 사용했을 터.
먼 거리를 이동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지구에 투자한 만큼 어느 정도 회수할 때까지는 무차별 살상이 주를 이룰 것이다.
전과 마찬가지로 생명 에너지의 손익분기점을 넘을 때까지 어떻게든 지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핵으로 빨려 들어가 흐물거릴 수는 없었다.
‘육체 쟁탈전이라!’
육체를 바꿔버리는 영혼과 의식의 전이는 발악하는 식민지 생명체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유희였고 침공을 축하하는 일종의 이벤트며 우월감에서 나오는 퍼포먼스이자 조롱 섞인 오픈 기념 선물이었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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