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핵산1
심장 마비가 온 듯한 처음 보는 남구의 별난 모습에 모두가 놀라 말을 잃었다.
남구의 감정 동요는 순간이었다.
습관처럼 작용한 생존의 노하우는 치솟던 맥박 수를 급속히 뚝뚝 떨궜다.
‘맞아! 승아도 일찍이 핵산1을 얻었었어. 단지 그 숨겨진 효능을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나 깨달았을 뿐이지!’
남구가 가타부타 말없이 손을 척 내밀었다.
박영호가 살짝 머뭇거리다가 마법서와 사용 설명서를 그 손 위에 올렸다.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삐죽이며 피식 웃고는 가져가 펼쳐 보았다.
지금 저 손에 들린 마법서가 대단한 물건이라는 것쯤은 남구의 반응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들 마법서를 내려다보는 남구에게 극도로 주목했다.
남구가 동요하던 모습이 무색하게 담담히 입을 열었다.
“사용 설명서를 보자면.”
모두 입을 닫은 채 목을 쭉 빼고 남구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생명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는 오러네요. 쉽게 말해서 생명 에너지라는 내공을 얻을 수 있는 마법서예요.”
‘내 뱃속에 생명의 핵을 품는다.’
“참고로 말해서 핵산2가 있는데 그건 마법사 전용이에요. 그걸 얻게 되면 바로 마법사로 전직하는 거죠.”
똘망똘망한 눈초리들이 남구의 설명을 재촉했다.
‘풋! 아주 기대를 한껏 하고 있구만.’
“습득 조건!”
꼴깍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전에 여타 다른 내공이 없어야 합니다.”
모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박영호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내공 같은 거 없는데.”
조무모가 바로 핀잔을 날렸다.
“쉿! 조용히 해! 여기 그런 거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
박영호가 무안한 얼굴로 샐쭉 웃었다.
남구가 여전히 삐뚜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습득하려면 2000 LP가 듭니다.”
일순 사람들의 얼굴에 만발하던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오직 조무모만이 눈빛을 번드르르 빛내며 벅찬 목소리를 내질렀다.
“오오! 난 배울 수 있어!”
‘하! 많이도 모아 놓았네? 왜 쟁여만 놨지? 저렇게 모으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쩐지 신체 능력이 제일 떨어진다 싶더라니! 거시기 아프다고 엄살이나 부리고 말이야!’
“또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안달이 난 조무모의 질문에 남구가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근력, 지구력, 회복력, 내구력이 최소 40 스텟 이상 필요합니다. 그 이하가 배우면 바로 뒈져요. 흔히들 주화입마라고 하죠?”
“헉!”
조무모의 낙담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풀죽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택도 없구만.”
남구의 비틀린 웃음이 흔치 않게 균형을 이루었다.
양쪽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졌다.
다 읽은 사용 설명서를 공중에 팽개치며 간사한 웃음을 흘렸다.
“으흐흐흐, 조건이 나만 되나 보네?”
다들 부러운 표정을 한가득 짓고 있었다.
‘당연히 나만 되겠지! 이게 다 너희의 생존에 직결되는 거랍니다. 나 혼자 살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랬다면 벌써 글탄 마나 호흡법을 체득했겠지!’
제어구를 움직이는 힘은 생명 에너지다.
마족들은 자신의 마력에 중앙으로부터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아 생명 에너지의 운영권을 얻는다.
하지만 핵산1과 핵산2는 그런 권한을 따로 득할 필요가 없었다.
그 자체가 생명의 핵과 같은 생명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핵산1이든 핵산2든 핵산만 품고 있다면 마족들만의 전유물을 한계 없이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애완용 게임 말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 바로 이 핵산을 얻는 것이었다.
‘흐흐흐, 일단 키는 쥐었군. 다행히 이른 시일에 말이지!’
탁-
남구가 망설임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마법서에 손을 올렸다.
[핵산1을 습득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시스템 메시지가 재차 물어왔다.
[정말로 핵산1을 습득하시겠습니까? 부작용으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핵산을 얻을 수 없다면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 지금 죽나 나중에 죽나 마찬가지! 부작용을 염려하는 모양인데 난 이미 50 스텟을 찍어 놨다고, 어서 실행해!’
남구의 손바닥 아래에서 마법 문자들이 계약을 이행하려는 양 서서히 황금빛 광채를 뿜어냈다.
곧 광채는 형형색색으로 변하여 마법서 위로 일렁거렸다.
무지개처럼 오색찬란하게 발하던 광휘가 절정에 다다라 백색 광채를 발하며 남구의 손바닥을 통해 신체로 흡수되어갔다.
백색의 빛과 같은 성질에서 변화한 생명 에너지는 일정한 부피로 응집하여 남구의 온몸을 꾸물꾸물 누비고 돌아다녔다.
남구는 언제나 넓게 열어두었던 감각을 오직 제 몸속을 누비는 생명 에너지의 응집체 핵산1에 세밀하게 집중했다.
‘이 에일 듯한 한기! 이 거대한 압박감!’
생명의 핵을 그대로 집어삼킨 것만 같았다.
생명의 핵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이 남구의 내부에서 똑같이 뿜어져 나왔다.
이번에는 반대로 핵의 기운이 내부에 있기에 온몸을 안에서부터 갈가리 찢어발기고 터져 나올 것만 같은 팽창감을 견뎌 내야 했다.
감당하기 힘든 한기와 압력이 핵산1에서 가열하게 일어났다.
최소 요구치를 훌쩍 넘긴 육체라지만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존재감을 폭발시키던 핵산1의 오러가 시끌벅적했던 산책을 마치고 보금자리로 찾아들었다.
무수히 죽어 나가던 세포 가운데 살아남은 세포 하나하나마다 생명 에너지의 은총이 내려졌다.
가공할 기운에 견딜 수 있는 적응력을 선물 받았다.
순식간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신체 조직이 남구의 내부를 안정시켰다.
이제는 편안하게까지 느껴지는 단전에 자리한 묵직한 원형의 기운을 만끽하며 남구가 지그시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시간관념마저 잃어버리고 오직 생존에 집중했던 남구의 의식이 점차 확장되어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바닥까지 축축했다.
“커억!”
촤아악-
역류한 죽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갔다.
‘수류탄을 집어삼키면 이런 기분일까? 뒈지는 줄 알았네! 생명의 핵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과 똑같아. 안과 밖의 차이 정도려나?’
새빨개진 입으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호흡에 따라 서리가 일 듯 한기가 뿜어졌다.
숨결도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안 그래도 서늘한 남구의 눈빛이 더욱더 싸늘해졌다.
아직 갈무리하지 못한 싸늘한 기운이 풀풀 날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모두가 남구를 지켜봤다.
남구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흠칫거리며 몸서리쳤다.
“괘, 괜찮아요?”
박영호의 물음에 남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풋! 내공 함부로 익혔다가는 뒈지겠다.”
‘과거, 내가 익혔던 오러는 정말 허접하기 짝이 없던 것이었어. 바로 비교가 되네! 승아가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는군. 은성이의 오른팔 정도는 충분히 할 만했겠어.’
최남단이 바닥과 벽에 흩뿌려진 핏물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피가 피가, 하이고야! 이기 다 죽은 피가? 우째든지 간에 살았으면 된기라. 참말로 욕봤데이.”
남구가 몸 밖으로 뿜어지는 서늘한 한기를 갈무리하자 새로운 스킬 습득에 대한 시스템 메시지가 여지없이 떠올랐다.
[핵산1을 습득하셨습니다]
[핵산1 ★★★★★ : 핵의 첫 번째 분신, 생명 에너지를 근간으로 하는 전사 계열 전용 오러]
[핵산1 운용 시 모든 신체 능력 30% 상승]
[신체 재생 능력 500% 상승]
[내구력 200% 상승]
[회복력 200% 상승]
[지구력 200% 상승]
현재 상태에 적용되는 핵산1의 효과였다.
‘생명의 핵이 제 분신처럼 만들었다고 별을 다섯 개나 달아 놓았군. 하긴 생명 에너지의 운영 권한이 있는 것만으로 별 다섯 개 값어치는 족히 하고도 남음이 있지!’
박영호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내공이면 앞으로 검기 같은 것도 막 쓸 수 있는 건가요?”
남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도 미약하게 서늘한 기체가 새어 나오는 입을 열었다.
“근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왜 이렇게 배가 고프지?”
남구의 시선이 곧장 회장님 책상 위에 놓인 캐릭터 탁상시계로 옮겨졌다.
‘3시?’
박영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벌써 여섯 시간이나 지났어요. 설마 몰랐던 거예요?”
최남단이 학을 뗀 듯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석상 맨키로 꼼짝도 안 했다카이. 앉아가 디지뿐지 알았데이.”
팽석수가 남구를 경탄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런 걸 물아일체라 하던가?”
조무모도 한마디 거들었다.
“앞으로 마법서가 나와도 스킬 배우기가 무섭겠어!”
남구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모든 스킬이 다 이렇지는 않습니다. 이건 특별한 경우에 해당돼요. 그리고 다 안전장치가 돼 있어요. 조건이 걸려 있잖아요. 나오는 대로 팍팍 배우도록 하세요.”
최남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말로? 니 안 배우고 우리한테 넘길 끼가?”
남구의 삐뚜름한 입술에서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풋! 제 얘기 뭐로 들었어요. 적어도 내 시선이 닿는 곳에서 독과점은 있을 수 없어요. 소외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야 우리가 아니, 내가 산다니까요.”
최남단이 남구의 얼굴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펴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따! 울 오야붕 억수로 멋째이네?”
1호실 사람들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도르르르르르-
조그마한 바퀴 구르는 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철창으로 돌았다.
물품 이동용 카트의 바퀴 소리가 아니었다.
식기 전용 카트의 바퀴 소리였다.
활짝 펴졌던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더 환해졌다.
박영호의 헤벌쭉 벌어진 입에서 반가움이 잔뜩 배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밥이다.”
조무모의 밝아졌던 표정이 살짝 누그러들었다.
“우리 것은 좀 있다가 나오는 건가?”
박영호의 얼굴에도 잠시 실망의 기운이 스쳤지만, 목소리는 밝았다.
“우리 것도 곧 나오겠지! 당연히 우리 대장부터 드셔야지!”
카트를 밀고 온 페이가 철창 밖에서 1호실을 쓱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또 살아왔네? 그것도 다 살아왔네요? 근데 웬일로 이렇게 빨리 왔어요?”
빨강 머리의 서양 아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모두 어리둥절한 눈으로 철창 밖을 쳐다봤다.
남구만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풋! 난 좀 있다가 오려고 했는데 이 아저씨들이 몽땅 죽여버렸어.”
“오! 보기보다 센가 보네?”
“흐흐흐!”
“밥때 한참 지났는데 계속 앉아만 있어서 다시 데워왔잖아요. 아우 귀찮아! 관리자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대요?”
페이가 투덜거리며 철창을 두드렸다.
캉캉-
박영호와 팽석수가 잽싸게 뛰어나왔다.
은 쟁반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뚜껑이 덮인 쟁반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마지막 쟁반은 엄청난 크기였다.
“이건 안 들어가요.”
페이의 말에 지켜보던 염소수염이 철창 앞으로 다가왔다.
[물러서라!]
박영호와 팽석수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드르르르르륵-
배식구를 통과할 수 없었던 커다란 쟁반이 열린 철창으로 들어 왔다.
페이가 작은 몸집으로 낑낑거리며 볼멘소리를 뱉었다.
“아휴! 무거워! 빨리 좀 받아.”
박영호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눈치로 후다닥 받아 들었다.
페이가 대형 쟁반을 넘기며 물었다.
“요즘 맨날 특식이야? 뭐 힘든 거라도 잡았어요?”
“그런 셈이지. 꽤 벌었을걸?”
“에휴! 살살 좀 해요. 특식 준비하기 너무 힘들어. 저 가요!”
드르르르륵- 차캉-
페이가 나가자 곧장 철창이 닫혔다.
페이가 꼴깍꼴깍 군침을 흘리며 빈 카트를 밀고 총총히 사라져 갔다.
도르르르르르-
이제는 카트의 바퀴 소리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관심은 오로지 반짝이는 은쟁반에 있었다.
황홀한 표정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깔린 쟁반들을 내려다보던 최남단이 희열에 찬 목소리를 높였다.
“쥑이네! 이, 이기 다 우리 끼가? 으잉? 참말로 다 묵어도 되는 기가? 으잉? 이기 다 몇 개가? 으잉? 마 배때지 째지 뿌겠다. 으잉?”
연신 울대를 꿀렁이던 박영호가 커다란 뚜껑이 덮인 대형 쟁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큰 거 보니까 이게 우리 대장 밥인가?”
“돼지 통바비큐야! 그냥 바닥에 놓고 먹어!”
남구의 얘기에 박영호가 뚜껑을 열어 봤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 환호성을 질러댔다.
“헉! 아따 마 쥑이네!”
“오오오!”
“이, 이건!”
“우와! 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새끼 돼지 한 마리가 노릇한 자태를 뽐내며 쟁반 위에 다소곳이 엎어져 있었다.
새끼 돼지임에도 뿔이 달린 게 조금 이상했지만, 뿔만 제외한다면 돼지의 형상임은 틀림없었다.
남구가 사람들 곁으로 다가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들 나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있었네! 자, 먹자고.”
남구는 피로 물든 시뻘건 입술을 닥지도 않고 찢어져라 열어 젖혔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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