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학박사이자 사제왕 요한이 조선에서 겪는 비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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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드라시
그림/삽화
Mid.Journey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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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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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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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2) / 9.3 수정

DUMMY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구나.”



영돈녕부사 김상헌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곁에 앉아있던 김집, 송시열, 송준길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회피하며 말했다.



“성상께서 왜 갑자기 산당을 견제하시려는지 마땅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야 나이가 들어 그렇다 치지만 여기 있는 우암이나 동춘당은 큰 일을 해낼 자들인데 어찌 그런 하교를 내리신단 말입니까?”



김집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것 같다며 퉁명스럽게 답하자, 송시열과 송준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아무래도 성상께서 김자점과 친청파의 눈치를 보고 계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송시열이 조심스레 의견을 내자, 송준길이 한 숟갈 보탰다.



“우암 저 친구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몇년 전에는 강연을 하다 말고 북벌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으시던 적이 몇번이나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즉위하시자 마자 그 뜻을 같이 한 사람들에게 벼슬은 커녕 아예 중앙으로 올라오지도 못하게 하심은 너무나 가혹한 일입니다!”



송준길의 토로에 김상헌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성상께서 세자시절에 모두 안면 있는 이들이었고,


세자께서는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청나라 라고 하면 고개조차 그 쪽으로 돌리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왕이 되자마자 자신들을 모두 내치다니?


영섭이야 그저 좋은게 좋은거다 하면서 훌륭한 학자들을 지방으로 보내라 한 것이었지만, 정작 중앙 정계로 진출하려던 김집 이하 산당 요인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아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가. 내가 잘못 생각했던것 같다고. 성상께서는 지난 세자시절 불같던 그 모습이 아닐세.”



김상헌이 회상하기로, 성상의 성격은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어찌나 뜨겁고 폭발적인지 스스로가 제어할 기운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성상의 성격을 적당히 맞추어주며 유도해낸다면, 그 방향에 필요한 모든 자원과 사람을 쏟아부어서라도 해낼 위인일 텐데.


하지만 즉위식이 끝나고, 이튿날 상참에서 마주한 성상은 전혀 다른 사람같았다.


종묘에 인사를 드리지 않겠다는 것도 그랬고, 뜬금없이 검은색 허리띠를 매고 나온것도 그랬고, 관료들에게 나누어줄 진귀한 팔도 진상품도 거부했다.


그러면서 결국 김상헌의 말을 따르기는 했지만 가장 중요했던 산당 요인의 중앙 정계로 진출은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었다.



중앙정치라는 것을 뜯어다 보면 한정된 권력을 왕과 신하들이 서로 투쟁하듯 성취하는 것에 불과했다. 모든 사안에 대해서 왕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반대로 신하들이 모든 사안을 쥐락펴락 할수 없었다. 그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신하가 좀 더 무거워야 한다.) 얻을건 얻어내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하는 것이 중앙정치일 터.


어제 모습은 도저히 예전부터 보아온 모습이 아니었다. 성상께서는 그저 잔챙이 몇마리를 성심껏 양보해주더니 가장 중요한 대어는 순식간에 가로채 가버리지 않았던가?


게다가 앞서 안건 몇 차례를 신하들에게 양보해주었던데다, 관료의 인사권은 신하가 아닌 왕이 행사하는 것이니 더 뭐라고 할 명분조차 없었다.


이 능수능란한 결정에 김상헌조차 눈뜨고 당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성상의 모습을 관찰하니,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꼭 김상헌 본인의 나이보다 더 많은 노인 하나가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대감마님. 승지 김익희(金益熙)가 찾아왔사옵니다.”



행랑아범의 말에 김상헌의 상념도 잠시 흐려졌다.



“안채로 모시거라.”



승지 김익회가 들어오니, 산당의 주요 요인들이자, 원 역사에서 효종과 함께 북벌을 부르짖는 중심 인물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오는 길에 공무가 겹쳐 늦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스승님.”



“괜찮네. 방금까지 성상께서 우리를 거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자네도 오늘 상참때 있었지?”



“예 그러합니다. 소인, 참으로 이상하여 성상께 말씀을 올리고자 했지만, 어심이 이미 기울어져 있는듯 하였습니다.”



“어심이 이미 기울어져 있다니요?”



송준길이 놀라며 김익회에게 얼른 뒤 이야기를 해달라는듯 말했다.



“확신은 아니지만, 김자점 일파가 선대왕께서 승하 하신 후 성상을 몇 차례나 따로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뭐라? 혹 선대왕의 승하 이후 일 때문은 아닌가?”



“그렇다고 하기엔 수상한 점이, 찾아간 시간들이 모두 해가 지고 난 뒤였다는게.. 그런 일이야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허어···”



김상헌은 탄식하며 머리를 짚었다. 만약 김익회의 말이 맞다면, 성상께서 지난 상참때 산당 요인들의 중앙 정계 진출을 막은 것이 충분히 설명이 된다.


이미 김자점 일파는 성상께서 즉위하시기 전에 미리 찾아가 모종의 밀약을 맺었거나 어떠한 일에 대한 확답을 받았을 터.


그 결과로 산당 요인들이 중앙 정계에서 축출된다면, 그 빈 자리는 당연히 김자점 일파의 차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친청파는 더욱 큰 위세를 얻어 팔도 곳곳에 폐단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혹은 나라를 통째로 청나라에 가져다 바치지는 않을 것인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김상헌은 마음이 급해졌다. 저 친청파 세력이 조정에 얼마나 뿌리를 내렸는지는 모르지만, 성상께서 마음이 더 굳어지기 전에 저들을 모두 뽑아내야 했다.




***




이튿날 상참에서는 별다른 마찰 없이 영섭과 신하들이 안건을 주고받았다.


영섭은 전날 자신을 열심히 저격하던 영돈녕부사 김상헌이 가만히 있으니 드디어 정신을 차린 모양이라며 흡족한 표정으로 이따금씩 “참 좋은 생각이오.” 하며 안건을 처리할 따름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안건 하나가 올라올 때 마다 영의정 이하 백관들이 모두 영섭의 눈치만 보고있었으니 진정 왕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느낌이 절로 들게 했다.


다만, 영섭이 생각하기에 이는 함정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모든 안건을 왕 마음대로 할 것이라면 그 아래 영의정과 다른 신하들은 왜 있겠냐는 것이었다.


백마탄 초인이 있어 그가 모든 일을 해결한다는 것은 그저 영화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현실 정치판에서는 결코 그럴수 없는 일이다.


왕권과 신권을 조화롭게 여겼다던 조선이라면 분명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장 어제만 하더라도 종묘에 꼭 가야하느냐는 말 한마디 실수한 덕에 얼마나 곤욕을 치루었는가?


종묘에 가던 안가던 그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 수면 아래에 있는 왕과 신하 사이의 권력 싸움이 메인 이벤트였을 뿐.


대부분의 안건 역시 그 자체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권력을 행사할 것이냐는 것에서 왕과 신하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하여 영섭은 중요한 안건에만 고민하는 척 지침을 내려주고, 나머지 제사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무슨 색의 옷을 입어야 하는 지 등 자질구레한 일은 신하들에게 대충 던져놓으며 인심 쓰는 척을 했다.


신하들 역시 경력이 수십년씩 되는 자들이니 아무리 엿같은 지시라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성은이 망극합니다.” 따위의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래 이렇게만 쭉 갈 수 있다면 적어도 멍청한 임금이었다. 라는 기록은 남지 않을테지 하며 영섭이 생각하고 있을 때, 계속해서 듣고만 있던 김상헌이 입을 열었다.



“전하. 북방 국경의 일이 심상치 않으니 지난 호란에 무너진 의주성과 백마산성을 시급히 보수해야 합니다.”



“북방 국경의 일이라 함은 무엇을 뜻하는가?”



영섭은 어리둥절했다. 그가 배운 역사에는 병자호란 이후 벌어질 외국과의 전쟁은 앞으로 이백여년 후 강화도에서 있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일텐데?



“청나라가 얼마 전 북경을 점령하고 도읍으로 삼아 중원의 패자가 되긴 했지만 아직 천하를 모두 얻은 것은 아닙니다.


명나라에 충성하는 많은 군사들이 이에 저항하고 있고, 이미 청나라가 점령한 땅에서도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 청나라 군사들과 전투를 벌인다 하니 이 모든 화가 조선땅으로 넘어올까 두렵습니다.”



“그렇단 말은 부사는 우리 조선과 청나라가 다시 한번 전쟁을 벌이는 일이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



영섭이 단호하게 말하자, 김상헌은 크게 당황했다.


당연히 그의 뜻대로 하라고 할 줄 알았던데다 국경 근처 무너진 성을 보수하는 일은 어느 누구라도 반대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성상께서는 이를 거부했다!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전쟁은 더 없을 것이다.”



영섭이 뭐 그런걸로 호들갑을 떠냐는 눈빛으로 김상헌을 바라보았다. 이미 수백년 뒤 일 까지 알고있는 그였으니, 시간이 흐른뒤엔 청나라가 중원의 패자가 되고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이어진다. 순치제 이후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에 이어지는 강건성세 또한 예정되어 있는 바. 이런 나라에 다시 전쟁을 건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전하! 지난날 선대왕 전하께서 삼전도에서 행하신 일을 잊으셨습니까!”



영섭의 핀잔에 김상헌의 얼굴이 벌개진 채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삼전도의 굴욕 운운하며 지난날 북벌 북벌 외친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알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 원수나 다름없는 청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겠다는게 소신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부사.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라. 계란으로 바위를 내려치면 어찌 되느냐?”



“그야 계란이 깨져나갈 것입니다만.”



“그 계란이 조선이고 바위가 청나라다. 지난 두 번의 호란 이후로 조선땅에 기근이 겹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가는데 국경에 성을 보수하여 저들과 다시 긴장 상태로 지낼 필요가 있겠느냐 그 말이다.”



안그래도 전쟁 두번이나 해서 먹고살기 힘든 시기인데 지금 꼭 성을 쌓아서 청나라와 긴장 관계로 대치할 필요가 있냐는 것인데 김상헌이 고개를 가로짓더니 답했다.



“전하.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져 간 원인이 무엇입니까? 저 청나라의 군사들 때문 아니겠습니까? 만약 저들이 마음을 바꾸어 이번엔 종묘를 완전히 파괴하고, 청나라에서 한성에 총독을 보내어 다스린다 하면 그 땐 어찌하시겠습니까?”



영섭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두 알고있었기에 정답을 이야기 했지만, 김상헌은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쥐어짜내어 답할수 밖에 없었다.


김상헌의 입장에선 당장 청나라가 다시 조선으로 쳐들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었던게, 아직 명나라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언제든 조선과 손을 잡아 청나라에 대항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섭이 뭐라고 할 찰나에 영의정 김자점이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영돈녕부사께선 언변을 삼가시오! 어느 안전이라고 종묘의 파멸을 운운하고 망국을 운운하시는게요? 그러고도 그대가 조선의 관료요?”



영섭은 김자점을 바라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라 팔아먹은 역적이라면 당신도 만만치 않은데?


김자점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김상헌을 몰아부쳤다. 성상께서 저들과 날을 세운 지금, 친청파가 조정의 분위기를 뒤집을 절호의 기회였다.


“성을 쌓아 적 일만 군사를 막아낼 수는 있소. 하지만 비위를 맞추어 잘 지낸다면 적 백만 군사를 막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단 말이요!


전하께서도 하교하신 바 왜 쓸모없는 일로 하여 저 청나라와 대립하려는 것인지 본관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소이다!”



그러자 김상헌의 표정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부들부들 떨렸다가, 이내 한숨을 토해내고는 영섭에게 절을 올렸다.



“전하. 신 어리석은 언변으로 종묘사직에 커다란 누를 끼쳤습니다. 이에 관직을 반납하고 물러날 것이니 부디 허락하소서.”



김상헌의 말이 끝나자, 편전 안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저 말의 뜻은 꼬장꼬장한 유학자이자, 관료들의 필살기 ‘그래? 내 관직과 벼슬을 걸만큼 내 논리와 말이 타당하니 어디 한번 반박해봐라!’ 라는 뜻이었는데,


영섭은 그 말을 듣고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늘 사직을 반려하면 다음에 또 의견이 충돌할 적에 저럴게 뻔했다.


그럴거면 초장에 기선을 완전히 제압해버리는게 나을 터.



“부사가 아무래도 선대왕께서 승하하신 후 많이 힘든 모양이다. 사직을 허락하니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라.”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김상헌이 되묻자, 영섭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사직을 허락한다 하였다.”



배를 째라고 들이 누우면 째는것이 도리가 아닌가! 이내 영섭은 싱글벙글 웃으며 김상헌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양 잘 하시게나.”



그 날, 김상헌은 벼슬도 잃고 홧병도 얻어 몇달간 누워 지내게 되었으니 관료들은 제 욕심에 산당이 제 길을 망쳤노라 할 뿐이었다.


작가의말

9. 3 수정 완료. 기존 내용과 다른 부분으로 전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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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3) / 9.4 수정 +21 22.05.14 10,710 290 13쪽
»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2) / 9.3 수정 +21 22.05.13 11,951 303 13쪽
2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1) / 9.2 수정 +21 22.05.12 13,917 353 14쪽
1 임종 그리고 성황당금화기 (9.2 수정) +21 22.05.11 16,181 362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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