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학박사이자 사제왕 요한이 조선에서 겪는 비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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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드라시
그림/삽화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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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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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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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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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3) / 9.4 수정

DUMMY

“참으로 의외였습니다. 전하께서 저 영돈녕부사 김상헌을 단칼에 내치다니.”



병조판서 이시백이 김자점이 따라주는 술을 받고는 물끄러미 술잔을 바라보았다.



“병판. 이 모든게 혹 산당의 함정일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함정이라..”



“전하께서 즉위하시기 전에, 산당 요인들과 교류가 좀 많았습니까? 북벌이며 병자년 치욕을 갚자는 헛소리를 떠드는 이들과 자주 어울리시기도 하셨고···”



이시백은 못 들은척 하며 말 없이 술잔을 입에 대고는 그대로 넘겼다.



“승지 김익희(金益熙), 사간 조빈(趙贇) 은 아직 그대로지요.”



“음..”



김자점이 이시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화로에 타들어가는 숯이 타탁 거리며 이따금 불씨가 살아있음을 알릴 뿐.



“그러니, 영의정께서도 너무 과한 언사는 삼가심이 좋겠습니다.”



“듣고보니 병판의 말이 옳소이다. 내가 지난날 쌓인게 많아 전하께 몹쓸 일을 보였으니 참으로 부끄럽구려.”



“이제 즉위하신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전하께서는 민생안정이라는 뜻에 중점을 두신 듯 합니다.”



“다른 말로는 그 중점을 방해하는 이들이라면 모조리 쳐내겠다라는 뜻으로 들리오만..”



“김상헌의 사직이 왜 하루도 안되어 받아들여졌는지를 영의정께서도 보셨을테니 지금이야말로 몸을 사려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과연.”



김자점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생안정이라. 그러고 보니 평안도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와 있었던걸 기억해냈다.




***




이튿날 어전회의에서, 김자점은 첫 안건으로 기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전하, 평안도와 황해도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 참상이 차마 장계에 모두 쓰지 못할 정도이니 하루라도 빨리 곡식을 풀어 백성들을 살리고 나라가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영섭은 기근이라는 말을 듣자 용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근이라고! 얼마나 심한가!”



“먹을 것이 없어 부모가 아이를 팔아 잡곡 두 어되로 풀죽을 쑤어 먹는 형편이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다가 죽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하였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부모가 자식을 팔아? 이런 개같은..”



영섭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영의정 이하 관료들이 움찔했고, 사관도 깜짝놀라 먹을 갈다가 벼루에 떨어뜨려 관복에 먹물이 튀었다.


순간 내전 전체가 침묵하자, 민망해진 영섭이 크흠 하며 용상에 다시 앉고는 김자점을 바라보았다.



“흠흠! 영의정은 계속 하라.”



“평안도와 황해도에 휼전을 베푸셔 이들을 속히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장계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내용이 괴이한지라..”



“괴이한 이야기라? 자세히 고해보게.”



그러자 김자점이 남몰래 미소를 짓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래 도성에 괴이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바, 평안도와 황해도에 백성들이 배고픔에 허덕이다 못해 극히 참담할 지경이라,


견디다 못한 나머지 땅에서 황석(黃石)이라는 돌을 캐내어 솥째 쪄먹어 주린 배를 채운다는 내용입니다.”



“황석이라고? 아무리 먹을 것이 없다 하여도 그렇지. 돌을 캐내어 먹는다는게 말이 되느냐?”



영섭은 전혀 듣도보도 못한 것이었다. 지난 생에서 육이오 사변 당시에 흰 흙을 캐내어 반죽하여 먹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어도 돌이라니.



그러자 예조판서 김육이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저.. 지난날 양주목사 신속(申洬)이 별비곡면(別非谷面)에서 돌처럼 생겼으되 색은 누르스름 하고 속은 마(麻)나 토란(土卵) 같은 기이한 것을 찾아냈다 알린 사실이 있사옵니다.


영의정이 고한대로 황해도 백성들이 주리다 못해 황석을 캐내어 이로써 서로 구휼한다 하였으니 소신이 생각건대, 양주목사가 찾아낸 것과 황석이 같은 게 아닌가 합니다”



영섭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예판은 지금 뭐라 하였는가?”



“아,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이 농서에 밝지 못하여 백성들을 구휼하는 작물들을 다 모르나, 양주목사가 말한 것은 일찍이 어떤 서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던 것 같사옵니다.”



김육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고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양주목사의 말만 듣고 삿된 생각으로 전하의 어심을 탁하게 하였으니 제 큰 불찰이옵니다.”



“아니다. 예조판서는 양주목사가 발견했다는 황석이라는것을 상세히 고하라.”



김육은 영섭이 자신을 꾸짖으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고개를 들었다.




***




시간을 조금 앞당겨 - 황해도와 평안도를 덮친 기근이라는 괴물이 아직 심연속에 잠들어 있을 때였다.


양주목사 신속은 십년 전 부터 양주 목에 떠돌던 소문 - 돌을 캐내어 구워 먹는 화전민들이 있다더라 - 의 근원은 별비곡면 전도리(全道里)임을 알고 관원을 대동하여 방문했다.


고을에서 태어나 양주목사 같은 높으신 분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백성들은 나랏님께서 오셨느니 하며 분주히 움직였는데,


신속은 부끄러워 하며 이들을 모두 돌아가라 한 대신 마을 촌로를 불러 황석에 대해 물으니 죽을죄를 지었다며 바싹 엎드려 용서를 청했다.



“소인이 무지하여 황석을 마땅히 관에 알려야 했으나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으니 목사께서는 이 촌로의 목숨으로 노여움을 푸소서.”



목사는 민망하여 말했다.



“오늘 내가 여기 온 것은 그대들을 벌하러 온 것이 아니라 돌을 구워먹는 자들을 직접 살피러 온 것이니 상세히 고하라.”



그러자 촌로가 흙먼지와 구정물이 잔뜩 배어있는 의관을 매만지며 말했다.



“실은 그것이 돌이 아니라 무 같은 남새와 같사옵니다.”



“돌이 아니란 말인가?”



촌로가 그 길로 마을 사내 하나를 길잡이 삼아 안내하게 하니 마을에서 멀지않은곳에 풀이 무성히 돋아난 모래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숨 돌린 사내가 나무 곡괭이로 땅을 얼마간 파내자 둥근 덩어리들이 햇빛을 보기 시작하니 목사가 이를 보고 크게 놀라 말했다.



“과연 돌이 아니라 토란 같은 것이구나.”



이에 목사는 뒤에 서있던 관원에게 명해 가져온 쇠 곡괭이를 손수 들어 황석을 캐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관원들은 어찌 목사께서 손을 더럽히시느냐 말렸지만 어찌 자식들이 배고파 울고 있는데 어떤 아비가 가만히 있느냐 하며 일축하니 촌로가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팔자에 없던 곡괭이질 이었지만, 황석은 그가 땅을 파낼 때마다 그 누르스름한 빛을 드러냈다.



“벌써 땅을 두 자 반이나 파내었는데 어찌 이렇게나 많이 있단 말인가? 진실로 신농씨(神農氏)께서 측은히 여겨 점지하신 것인가?”



그 곁에서 행여 황석을 모두 캐내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던 사내가 말했다.



“나으리. 소인 일자무식하여 신농씨가 누군지도 뭣도 모르지먼, 이 황석들이 여기 전도리 사람들을 십수 년간 먹여 살린 보살님이었습니다요.”



신속이 거친 숨을 파 - 하고 내쉬며 사내를 쳐다보았다.



“여기··· 전도리에 자네처럼 황석으로 생활하는 자가 많은가”



사내는 우물쭈물하다가 답변했다.



“그것이.. 소인을 포함해서 열일곱 호가 황석으로 연명하고 있습죠.”



“매 해 소출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고 있는가?”



“소출이라고 따로 글월로 적지는 않사오나··· 한 호당 못해도 팔백여 근은 너끈히 소출합지요.”



“팔백여근? 이 모래땅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말인가?”



“그렇습니다요.. 나으리께서 들고 계신 곡괭이가 있으면 더 많이 소출도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만..”



하며 사내는 연신 신속이 들고 있는 곡괭이를 힐끔거렸다.



목사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곡괭이를 사내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곡괭이를 각 호마다 세 자루씩 지급함세. 저기 영평현에서 만든 것이니 이런 모래밭 정도 파 내리는 덴 쓸만할 게야.”



“아이고 나으리 큰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사내는 넙죽 절하며 당장이라도 어깨춤을 출듯하였다.



“다만.”



그렇지만, 세상에 공짜 없다 했던가.



“자네와 전도리에서 황석을 가장 오래 재배했던 자 둘 을 뽑아 열닷새 후 양주목 관아로 오게나 그중 하나는 글을 아는 자면 좋겠네만.”



그 후 별비곡면 촌부들이 양주목 관아에 신속을 찾아온 것은 꼭 열사흘 하고도 해가 막 질 무렵이었다.


신속은 그들을 내아 행랑채로 보내어 따뜻한 쌀죽과 꿩 우려낸 물로 정양케 하였으니 촌부들은 어쩔줄 몰라 하면서도 넙죽 받아먹었으니, 모두가 훈훈한 광경이었다.


아전을 시켜 행랑채에 호롱을 가져오니 동백 타는 냄새가 방 안을 감돌았고, 이따금 그을음이 이무기처럼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촌부들은 밝은 불빛을 말 없이 바라보다가 그중 하나가 황석 몇 덩어리와 책이라 부르기 민망한 무언가를 봇짐에서 꺼내어 목사에게 떨리는 손으로 공손히 바쳤다.



“그러니까, 이 황석을 반으로 갈라 땅에 심었더니 이듬해 열 근이나 캘 수 있었다.. 말인가?”



지난번에 신속을 안내하다가 곡괭이를 받은 사내가 답했다.



“예 맞습니다요. 황석을 유심히 보아도 종자로 보이는 것은 없었기에 갈라내어 종자를 찾아보려다 포기하고 모래밭에 던졌더니 그렇게 되었습죠.”



목사는 흥미로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를 재배하며 곤란한 일은 없었는가?”



사내가 답하길



“나으리께서도 보셨지만, 전도리는 산세가 험하고 비탈진 땅이 대부분이라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죠.


오히려 저 아래 주을곡에선 땅이 완만하여 벼농사를 지으니 황석도 심어보겠노라 가져갔었지만, 되려 썩어버려 제대로 소출하지 못했습니다요.”



하는데 옆에 앉아있던 늙은 촌부가 거들며 말했다.



“거기에, 캐낸 황석을 며칠간 볕에 널어두었더니 싹이 돋아났었으나 이걸 개의치 않고 먹었다가 낭패를 본 자가 아홉이 되었습디다.”



“그들은 어찌 되었는가? 혹 황석이 독초는 아닌 것인가?”



“그것이.. 독초는 아닐 것입니다. 황석이 독초라면 전도리 생민들이 어찌 십수 년 생활을 이어갔겠습니까. 싹이 난 황석을 먹은 자들 중 일곱은 배앓이를 했고, 그중 둘은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내며 발작을 일으켜 급히 의원을 찾았습니다.”



“으레 채소라는 것도 잘못 두면 쉬 썩기 쉬운 것이니 황석도 다르지 않구나.”



사내가 말을 이어갔다.



“다른 곤란한 것이라면 황석을 캐내려면 땅을 깊이 파야 하는데, 지난 호란 이후로 철이 귀해져 곤궁해져 있던 차였습니다요. 나으리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쇠로 만든 곡괭이가 아니었다면 소인들은 그저 땅 두 자 정도밖에 파내지 못했겠지요.”



“그래. 그 곡괭이가 효험이 있던가?”



“아무렴요 나으리. 영평 시우쇠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는 네 자 아니 다섯 자까지 파내려 갈 수 있었습죠. 참 신기한 것이, 황석이 칡뿌리도 아닐지언데 어찌하여 다섯 자 아래 땅속에서도 자라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디다.”



“그거 참 묘연한 일이구나. 내 여지껏 어느 농서를 보아왔어도 황석 같은 것이 있다고는 듣지 못하였는데 말이다.”



그때 별비곡면에서 명망 있는 박 서생이 목사에게 공손히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목사는 촌부 삼인중 예법을 아는 유자가 있다며 속으로 기뻐하였다)



“소인 박열홍 양주목사께 아뢰옵니다. 고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지난 호란 이후에 떠돌며 밥을 구걸하던 한 여인이 몸가짐을 정갈이 하여 서낭당에 기도를 올렸더니 하늘님께서 어여삐 여겨 황석을 내려주었사온데, 정작 여인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도망하고 말았다 합니다.


훗날 여인이 돌아왔을 때. 황석이 떨어진 그 자리엔 풀이 무성히 자라 있어 그녀가 헛것을 본 것이었구나 하며 걸음을 하는데 순간 무언가 발에 걸리는 것이 있어 보았더니 과연 황석이었습니다.


놀랍고 반가운 마음이 들어 황석을 캐내어 보니 생긴 것은 토란과 같아 정녕 서낭님께서 자신을 원통함을 들어주었다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 길로 황석을 가져와 아궁이에 굽기도 하고 솥에 넣어 삶아 껍질을 벗기니, 곱고 흰 알맹이가 있어 과연 토란과 같았다 합니다.


이후 여인은 황석을 구워내어 그간 자신을 돌봐준 고을 사람들에게 보답하였다 하는데 모두가 배고픔으로 고통받던 차였습니다.


황석 덕분에 비로소 굶주리지 않고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였으니 어찌 성현의 밝은 도가 고을에 실현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후에 여인은 고을에 삼 년을 머물며 황석이 어디에 자라고, 어느 날 캐내어야 하는지 ‘황석촬요(黃石撮要)’ 라는 글월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하는데,


고을 시림들중 그 누구도 여인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깊이 탄식하였다 합니다.”



“그 이야기가 언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인가?”



“소인이 아직 학동일 무렵이었으니 십 년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알겠네. 벌써 사경(새벽 세 시쯤)이 지났으니 이만하고 내일마저 듣겠네.”



행랑채에서 나와보니 밝은 달빛이 산하를 비추고 있었다. 신속은 촌부들과 대담을 복기하며 상념에 빠졌다.



‘벼농사를 짓는 땅은 물과 진흙이 많은데, 황석은 썩어버리고 외려 모래밭이나 비탈진 땅에서 잘 자란다.


팔도 곳곳 화전을 일구거나 개간할 때 황석을 심으면 필시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이 줄을터인데..’



하며 신속은 서찰을 써서 예조판서 김육에게 보냈다.


작가의말

9. 4 수정되었습니다. 문체 수정 및 개연성 확보차 내용 보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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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박사이자 사제왕 요한이 조선에서 겪는 비범한 이야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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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만민공동회 (1) / 9. 5 수정 +24 22.05.17 9,046 250 13쪽
6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5) / 9.5 수정 +18 22.05.16 9,548 235 14쪽
5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4) / 9.4 수정 +20 22.05.15 10,083 245 15쪽
»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3) / 9.4 수정 +21 22.05.14 10,709 290 13쪽
3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2) / 9.3 수정 +21 22.05.13 11,950 303 13쪽
2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1) / 9.2 수정 +21 22.05.12 13,916 353 14쪽
1 임종 그리고 성황당금화기 (9.2 수정) +21 22.05.11 16,181 362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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