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학박사이자 사제왕 요한이 조선에서 겪는 비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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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드라시
그림/삽화
Mid.Journey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7
최근연재일 :
2023.05.0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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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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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글자
6쪽

임종 그리고 성황당금화기 (9.2 수정)

DUMMY

나, 박영섭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병실 밖 가로수들이, 저 멀리 목멱산이 눈부신 녹색으로 일렁이는 사월이 다가왔건만,


미국 시인 엘리어트가 말한 대로, 사월은 너무나 잔인한 달이 되어버렸다.



점점 옅어져 한밤 어두움이 찾아오는 시야 속에서, 마지막으로 내 곁에 있던 모든 이들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누군가는 슬퍼하는 눈으로, 누군가는 체념한 듯한 눈으로, 누군가는 대단히 차분한 눈으로.. 그런데 그대는 누구요?



“망자께서 벌써 나를 알아보는 모양이오.”



눈부시게 하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입고 다니던 두루마기를 입고있는 젊은 남자가 보였다.



“선생께서는 누구신지요.”



“한 번쯤은 들어보시지 않았나 싶은데. 저승차사올시다.”



“들어는 보았지만 저는 평생을 천주님을 모시며 살아왔지요. 천사께서 왕림하신게 아니었나 했습니다.”



“그게.. 천사 그 양반이 와야 하는 게 맞긴 한데.“



저승 차사가 말을 얼버무렸다.



“실수가 있었소.”



“예?”



“그러니까.. 명계와 천국, 지옥, 극락세계 등등 명부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바람에 잘못 집행이 되었다는 거요.”



“제가 늙은이라 그런지 잘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선생.”



그러자 차사가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망자여, 그대는 지금 죽을 운명이 아니었소.”



“예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선생?”



“실수였다지 않소 실수!”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인생이 달린 일인데 어찌 실수가 있단 말입니까? 선생!”



“아주 드물지만 있는 일이오. 한 오백 년 전쯤 누구였더라. 이순신이라 했던가. 그 사람도 지금처럼 비슷한 일이 있었소만.”



“그래서 이제 어찌 되는 건지요. 저는 다시 살아나는 거겠지요?”



“그게··· 가능할 뻔 했는데 보시오, 그대의 육신은 인간세계 의학발전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다 약속했었던 것을.”



차사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을 보니, 아뿔싸. 입원했던 병원에 사후 시신 기증을 하기로 약속했던 터라 벌써 의료진이 인수하여 수순에 들어가 버린 게 아닌가!



“그렇다면···”



“뭐, 대왕님의 전언도 있고 해서, 우리 측 과실도 있으니 깔끔하게 5:5로 하는 게 어떠겠소?”



“5:5라구요?”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줄테니, 살아갈 사람은 명계에서 선택하는 것이오.”



“아니 선생. 명계의 법칙이 무슨 교통사고 변호사 방송이요?”



“그래서 하겠소 안 하겠소?”



“아니··· 안 한다곤 안 했지만, 기왕 새로 사는 삶 부탁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내 평생을 감자 개량 하나만 바쳐온 삶입니다. 제게 자식 같은 놈이니 말동무나 하게 딱 하나만 같이 가게 해주십시오.”



“그거야 안될 거 없지만··· 뭐 알겠소. 나중에 딴말하지 말기요.”




그리고 앞이 완전히 껌껌해지더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




“···.밥은커녕 피죽 구경도 못 한지 이틀이 되었습니다. 서낭님, 거기 계시면 이 불쌍한 소녀 굽어살피셔서 도토리 한 줌이나마 줍게 해주소서.”



열대 여섯쯤 되어 보이는, 머리는 정갈히 땋아 내렸지만 흙먼지가 꽃 대신 피어있고 입은 옷은 군데군데 해지고 뜯어져 볼품없는 소녀가 갈라지고 부르튼 손을 내저으며 슬피 탄식하였다.



“거세게 불어오는 골바람 (習習谷風)

날이 흐리더니 비가 내린다 (以陰以雨)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야지 (黽勉同心)

성을 내어서는 안 되지요 (不宜有怒)”



별안간 공중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탄식하던 소녀가 황망히 매무새를 가다듬고 경계하며 말하기를



“삿된 놀음으로 소녀를 희롱할 생각이라면 썩 물러가시오!”



하며 아까 탄식하며 슬피 울던 눈가에 형형한 빛이 감도는 것이었다.

별안간 벌어진 일에 급히 주변을 살피니 보이는 건 초여름 따뜻한 햇살이 일렁이는 버드나무 녹음이요, 저 멀리 날아가며 우짖는 장끼 한 마리뿐이었다.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모르겠구나.”



주변을 살쾡이와 같은 눈으로 훑다가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는 비명조차 지를 힘도 없음에, 비명을 아로새기기도 전에 비명할 운명이 아닌가.”



소녀는 허탈해하며 픽 웃었다.



그렇게 문득 다 말라 비틀어진 계화나무, 그 가지끝에 애처로이 매달린 담황색 꽃 한 떨기가 여름바람에 흔들리고 있던것이 시선에 들어왔다.



“너도 나와 같은 명일진대 어찌 그윽한 향을 내는지···”



향이 이끄는 대로, 소녀가 천천히 - 비틀거리며 꽃으로 다가갈 때였다.

처음엔 꽃에 햇빛이 비치어 밝게 보였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밝아져 이제는 금가락지 같은 색을 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이제는 꽃인지 서낭님 영인지 모를 눈부신 금빛이 눈을 감았음에도 눈 안으로 한가득 밀려들어 왔다.

지난 병자년 피난길에 오를 때 보았던 화염보다 더 밝은 빛에 눈을 감았지만, 다시금 눈에 힘을 주며 감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소녀가 눈을 뜨니 한순간 밝게 빛나던 꽃은 온데간데 사라져 없고, 토란 같기도 하고 칡 같기도 한 것이 계화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제 무게를 못 이겨 땅에 툭 하고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소녀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 앞에서 뭐라 할 새도 없이 마을로 뛰어갔다.


작가의말

수정완료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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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만민공동회 (1) / 9. 5 수정 +24 22.05.17 9,046 250 13쪽
6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5) / 9.5 수정 +18 22.05.16 9,549 235 14쪽
5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4) / 9.4 수정 +20 22.05.15 10,084 245 15쪽
4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3) / 9.4 수정 +21 22.05.14 10,710 290 13쪽
3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2) / 9.3 수정 +21 22.05.13 11,951 303 13쪽
2 왕이 되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다. (1) / 9.2 수정 +21 22.05.12 13,917 353 14쪽
» 임종 그리고 성황당금화기 (9.2 수정) +21 22.05.11 16,182 362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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