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과학자-개정판-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SF, 대체역사

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최근연재일 :
2023.07.20 18:43
연재수 :
166 회
조회수 :
157,863
추천수 :
6,522
글자수 :
832,090

작성
22.08.05 19:05
조회
898
추천
40
글자
9쪽

2년 5개월차 -3-

DUMMY

여차하면 목숨을 버릴 각오까지 하고 내려온 조인영과 김유근이었으나, 각오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상소와 장계로만 보던 그 이양선을 보고, 인간이 아닌 것이 명백한 사영을 보자 그만 얼어붙은 것이었다.


산전수전을 겪고 오만가지 일을 들으며, 괴력난신을 믿지 않는 유학자들이었으나 글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는 상당했다. 자신들의 목숨을 거두길 원하며 몰려든 백성들은 전혀 무섭지 않았으나, 영국이라는 나라의 상징이 분명한 깃발을 펄럭이는 수많은 이양선 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회색빛 철선을 보고, 이어서 사영이라는 자를 보자 그만 마음이 무너질 뻔 했다.


“풍문은 많이 들었으나, 실제로 보니 또 다르구려. 일단 승선을 허가해줘서 고맙소. 조인영이라 하오.”

“김유근이라 하오.”

“사영이오. 이쪽은 찰스 엘리엇이라고 하며, 전 청국 주재 영국 상무총감이었소. 지금은 이 영국 선단의 장을 맡고 있다고 하오.”


영국 상무총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최소한 여기에 와 있는 이양선들과 영국인이라는 양이들만 하더라도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 해서 조인영과 김유근은 일단 서로 고개를 숙이는 선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뒤쪽에 있는 선비 두명 중 한명은 조인영과 김유근도 아는 자였다. 아니, 다른 한 명도 아는 얼굴이기는 했으나, 그들은 설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 분들은 아시리라 믿소.”


박규수야 익히 아는 얼굴이었으나, 정약용과 쏙 빼닮은 사람을 본 조인영과 김유근은 서로 작은 소리로 물었다.


“다산에게 남동생이 있던가? 아니면 아들인가?”

“모두 형이고, 모두 죽었습니다. 아들은 다 천연두로 죽고, 두명이 살았는데 따로 벼슬을 하지는 않아 얼굴이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 다산을 닮은 자는 누구라는 말인가?”


정약용에게 선왕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충분히 죽음에 이르게 할 고문을 명했던 그들이었기에,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정약용 본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다산이오.”

“...?”

“...!!”


“어떻게...살아계시오?”

“심지어..머리도 검어졌구려...주름도 없어지고...?”


사영도 이들이 등장했을 때 대략적인 상황을 들었기에 이들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실상 조선의 최고 권력자들인셈인가...’


“이분께서 나를 치료해주셨소.”

“치료..정도가 아니구려. 많이 젊어지셨소이다.”


“그래서, 어찌 오셨소?”


사실 조선 조정과도 이미 척을 진 상태였기에, 조정에서 온 자들, 특히 이번 마을 학살과 정약용, 홍희근 고문에 대해 책임이 있는 이들을 어찌 대할지 피해자들에게 물어본 바 있었다.


“죽입시다.”

“아주 몸통은 다져버리고 모가지만 떼서 보내버려유.”

“그러면 또 쳐들어오지 않겠슈?”

“어차피 청국도 치러 들어가는 마당에 조선이 뭐가 대수유?”

“하긴. 그건 그렇쥬.”


도륙을 내버리고 수급을 조정으로 보내 전면전을 벌이자는 의견도 있었고,


“문서만 접수하고 사람은 들이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직 조정을 어찌 할지, 조선 국왕을 어찌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으니 방침이 확정될 때 까지 문서만 접수하고 사람은 들이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만남을 보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며,


”무슨 이야기를 가져왔는지 들어나 보십시다.“

”일단 들이면 목을 따지는 못하지 않소이까?“

”왜 못 땁니까?“

”일단 들이면 객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니오이까? 제사와 빈객은 동급이라, 차라리 들이지 않았으면 모를까 들였으면 법식을 갖추어 대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밤이 아닙니까?“


봉제사 접빈객(奉祭祀接賓客), 제사를 지내는 것과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동급으로 중요하다는 조선 특유의 관습을 들어 일단 맞이는 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사실 조선 바깥으로 눈을 돌리더라도 접대의 관습은 인류 공통의 문화에 가깝기도 했고...


피해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사영도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과연 의술의 신묘함이 대단하다더니...“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오셨는지 들어나 보십시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있는 어린 왕이 아프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여기서 받아갔던 페니실린이 엄청 잘 들었으니 그것을 좀 더 줄 수 있겠냐는 말을 했다.


”너무 염치가 없는 것 아닙니까?“

”염치도 없고 명예도 없는 일인 것은 알고 있네만, 국본이 풍전등화와 같으니 어찌 개인의 사사로운 영달을 논하겠는가.“

”약만 내어준다면, 우리 목을 바칠 수도 있네.“


”어쩌시겠습니까?“


사영이 정약용을 바라보자, 정약용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어차피 다 늙어가는 저들의 목을 쳐서 무엇에 쓰겠는가. 그리고 저들의 목이 필요하다면,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 한양에 가서 잘라 올 수 있지 않은가?“

”......“


조인영과 김유근 또한 그 말에 일리가 있다 싶었다. 열 명도 되지 않는 저들 무리에게 도성의 방비가 뚫리고 감옥 중 가장 삼엄하다던 의금부 남간을 파옥하고 중환자였던 정약용과 홍희근을 데려간 자들이 저들 아닌가. 그 보고를 들은 조인영과 김유근은 간담이 서늘해져 그 이후 한참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다.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들의 목도 쉽게 따서 갈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럼 약은 내어드리겠습니다. 어쨌거나 사람은 살려야할테니... 처분은 그럼....“


사영은 정약용을 한 번 보고 말했다.


”일단 이 곳에 머무르면서 기다리십시오. 상의를 좀 해보겠습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조인영과 김유근은 이 곳에 남고, 약은 그날부로 한양으로 출발했다. 예의 그 터빈엔진을 단 나름 고속정에 조인영과 김유근이 데리고 왔던 하인과 집안 사람들이 타서 빠르게 멀어지는 것을 본 그들은, 어쨌거나 원하던 바를 달성했다는 안도감과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두려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다행이오이다. 최소한 상께서는 살아 남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이제 이 늙은 목숨들이 그래도 제대로 쓰임을 얻기는 했구만.“

”그들이 무엇을 시키겠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네. 워낙 신묘한 것들을 많이 봤으니..그래도 객 대우는 해줘서 다행일세.“


그렇게 약이 출발한 후 며칠이 흘렀다. 딱히 행동에 제한을 가한 것은 없었지만, 그들은 최대한 손님방에서 나가지 않고 머물고 있었다.


대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삼 일 동안은 자기도 태연하였지만 때때로 드나들던 가노들도 바깥 상황을 잘 알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자기들이 뛰어다니며 물을 경황은 더욱 없었다.


이왕 죽기를 각오하고 내려왔으나, 앞일은 대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뛰어넘을 수가 없는 큰 바다가 가로놓인 것만 같았다.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가 전연 다듬어지지 않는 뒤헝클어진 상념 속에서 그래도 조선을 좌지우지하던 세도가의 가장들답게 그들은 막연한 기대만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채 지내고 있었다.


지난 일에 대한 뉘우침이나 가책 같은 것이 자꾸 떠올랐다 사라지면서 마음을 괴롭히기도 했으나, 어차피 죽음을 각오해서인지 그런 괴로움은 곧 뒤로 밀려 사라져가곤 했다.


”일단 편지를 써야겠네.“

”무슨 편지를 말입니까?“


“손주놈들에게 내려와서 영국 말과 산술을 좀 배우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어찌 그러십니까?”


김유근은 갑작스러운 조인영의 말에 의아함을 느끼면서 반문했다.


“세상이 크게 변할 것 같지 않은가.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지. 적어도 한둘은 이 곳에 와서 이 곳의 학문을 꾸준히 익히게 해야겠네.”


“...그렇겠군요. 저도 편지를 좀 써서 알려야겠습니다.”

“그래. 내 나이가 들어 이제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이 예전만 하지 않으나, 새파란 나이인 녀석들은 금방 익히지 않겠는가?”

“저는 아직 새로운 것을 배울 만 합니다만.”

“...그래, 자네는 나보다 아직 많이 젊지. 라떼는 말이야..”


시덥지 않은 말을 잠시 하던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디 저 사영이라고 하는 명백히 인간이 아닌 자나 저 희고 코 큰 놈이라구 별것이겠나, 말 잘해서 진정이 통하기만 하면 그것들도 다 그렇지······”


“하긴, 그렇겠습니다. 호랑이도 굴에 가야 잡는 법이지요. 무슨 세상이 되건 한번 해 봅시다.”

“그렇지. 어디 앞일을 알겠는가마는, 세상이 확실히 변하긴 변할 것이네.”

“그렇지요, 큰 일을 할 것들은 큰 물에서 놀아 봐야 눈도 귀도 열리는 법이지요. 어르신이나 저나 죽더라도...후대 놈들은 어디 보란 듯이 다시 한 번 살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 전쟁도 사화도 다 뚫고 살아온 가문들 아닌가.”


그들은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 답지 않게 기염을 토하며 희망에 찬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말

오늘은 좀 짧아서 죄송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5 3년 9개월차 +10 22.09.19 815 36 10쪽
84 3년 6개월차 -4- +4 22.09.17 841 38 9쪽
83 3년 6개월차 -3- +4 22.09.15 820 40 9쪽
82 3년 6개월차 -2- +9 22.09.14 827 41 9쪽
81 3년 6개월차 +8 22.09.08 843 41 9쪽
80 3년차 -3- +4 22.09.07 866 37 10쪽
79 3년차 -2- +13 22.09.06 861 41 12쪽
78 3년차 +9 22.09.02 920 45 15쪽
77 2년 7개월차 조선 -7- +12 22.09.01 848 43 11쪽
76 2년 7개월차 조선 -6- +10 22.08.31 838 38 8쪽
75 2년 7개월차 조선 -5- +2 22.08.30 813 40 9쪽
74 2년 7개월차 조선 -4- +6 22.08.29 831 36 9쪽
73 2년 7개월차 조선 -3- +8 22.08.27 832 38 10쪽
72 2년 7개월차 조선 -2- +2 22.08.26 875 40 9쪽
71 2년 7개월차 -조선- +5 22.08.22 885 38 9쪽
70 2년 8개월차 +13 22.08.19 882 45 15쪽
69 2년 7개월 2주차 -2- +4 22.08.18 880 39 12쪽
68 2년 7개월 2주차 +8 22.08.12 878 37 12쪽
67 2년 7개월차 -2- +4 22.08.11 882 40 15쪽
66 2년 7개월차. +6 22.08.10 911 40 13쪽
65 2년 5개월차 -4- +4 22.08.08 893 39 10쪽
» 2년 5개월차 -3- +4 22.08.05 899 40 9쪽
63 2년 5개월차 -2- +9 22.08.04 891 39 13쪽
62 2년 5개월차 +6 22.08.03 936 39 15쪽
61 2년 1개월차 -3- +2 22.08.02 961 41 12쪽
60 2년 1개월차 -2- +7 22.07.29 957 39 12쪽
59 2년 1개월차 +6 22.07.28 969 38 16쪽
58 1년 11개월차 -5- +3 22.07.27 914 40 11쪽
57 1년 11개월차 -4- +2 22.07.27 902 41 13쪽
56 1년 11개월차 -3- +2 22.07.25 928 39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